[236화] 1억 달러를 지켜라
정명훈 사장도 우리나라 신발 제조 회사들이 중저가 운동화들을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생산해서 역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운동화의 주원료인 고무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과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만약에 바이어가 미국을 비롯한 부자나라였다면, 한국에서 생산한 운동화를 공급하자고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케냐를 비롯한 네 나라의 GDP는 대한 그룹의 매출액과 엇비슷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들이다.
어차피 결정은 자신의 몫이다.
“운동화 공급 건은 정상호 사장님의 의견을 수용하겠습니다. 이제 어느 나라에서 생산한 운동화를 공급했으면 좋겠는지 논의해 봅시다.”
“우리나라 신발 제조 회사를 비롯해서 세계 유명 메이커의 신발 제조 회사들은 베트남에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미얀마 사람들보다 숙련도가 뛰어나다고 알고 있습니다.”
“운동화의 품질은 베트남이 뛰어나고, 가격은 미얀마가 약간 저렴한 편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운동화를 선택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대산 부사장은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중동 및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입한 대부분의 자원들을 말라카 해협을 통해서 운송하고 있다.
하지만 말라카 해협은 현재 미국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중국은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자원들을 수입하기 위한 방법을 물색해 왔고, 결국 선택된 나라가 미얀마였다.
따라서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미얀마를 매우 중요시하게 여기고 있는 중이었다.
제법 긴 생각을 끝낸 그는 조용히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중국은 예전부터 인도양에 직접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오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선택된 나라가 미얀마입니다.”
장대산 부사장은 중국과 미얀마의 관계와 현재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미얀마 국민들은 중국의 자원 수탈에 대해서 반감이 매우 심한 상태입니다. 그런 이유로 미얀마 정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운동화는 미얀마에서 공급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장 부사장의 생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찬성합니다.”
“좋습니다. 운동화는 미얀마에서 공급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모두들 장대산 부사장의 의견에 동의했고, 정명훈 사장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의견에 따랐다.
그 뒤를 이어서 신지훈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 의류에 대해서 토의해야 하는데, 작은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의류는 종류도 많고, 사이즈도 다양하고, 의류를 만드는 재료 또한 다양합니다. 그런데 H&E 트레이딩은 발주서를 뭉뚱그려 보내왔습니다. 저희가 기준을 정해서 H&E 트레이딩에 발주서를 다시 요청했으면 하는데,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SH무역에서 의류 수출을 담당하고 있는 주철훈 부사장입니다. 저희가 기준을 수립해서 H&E 트레이딩에 발송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겨울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주 부사장님, 바이어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의류의 이미지 사진도 첨부하는 게 어떨까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적극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으로는 선택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일단 이미지 사진을 보내 놓고 샘플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호영이도 한마디 보탰다.
하지만 주철훈 부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저희가 의류 샘플을 준비 발송하고 바이어가 받아서 선택하는 기간을 감안하면, 최소 열흘에서 보름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렇게 되면 바이어가 통보한 납기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이어한테 양해를 구하면 동의해 주지 않을까요?”
어차피 이 문제에 대한 결정권도 정명훈 사장에게 있었다.
“주 부사장님, 저희가 바이어 측에 양해를 구해 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주철훈 부사장의 대답을 들은 정명훈 사장은 고개를 돌려서 서동호 실장에게 말을 건넸다.
“서 실장님, 인도 의류회사의 연락처를 주 부사장님께 알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회의를 종료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정상호 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공지 사항을 하나 전달했으면 합니다. 저희 SH무역에서는 5월 1일자로 정호영 사원을 이사로 특별승진 시킬 예정입니다.”
“네?! 저를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는 듯 호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하지만 송훈석 회장이 먼저 입을 여는 바람에 정상호 사장의 대답은 이어지지 못했다.
“정 사장님,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지금부터 이사로 불러 줍시다.”
“하하하, 그럴까요?”
“정 이사, 진심으로 승진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사로의 승진 소식에 꽤 놀랐는지 호영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정 이사한테 근사한 승진 기념 선물을 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요.”
“주신다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 * *
“회장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대한 그룹 본사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에서 서동호 실장이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송훈석 회장에게 말을 건넸다.
“서 실장, 이번 기회에 지유도 특별 승진시키는 건 어때?”
기업의 후계자들은 일반 직원들과는 달리 기업에서 정해 놓은 승진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송지유는 송훈석 회장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 승진 여부가 얼마든지 결정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서동호 실장은 그녀를 특별 승진시키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아무리 그녀가 송훈석 회장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라 하더라도 특별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한 법.
그렇지 않으면 최성진 부회장도 최준하를 특별 승진시켜 달라고 주장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현재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내세울 만큼 공적을 쌓지 못했다.
일반 사원이라는 직함이 발목을 잡은 것도 한몫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송훈석 회장도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고.
그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어차피 자신밖에 없었다.
“회장님, 지유한테 그럴듯한 공적을 하나 만들어 주고 승진시켜 주는 게 어떨까요?”
“우리 지유에게 공적을 만들어 줄 만한 건수가 있나?”
“인도와 제약 회사에서 의약품 구매 업무에 투입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추진해 보라고.”
조수석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병석 실장이 할 말이 있다는 듯 발언권을 요청했다.
“회장님, 설 이사한테 지급할 1억 달러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프랑스 출장 당시에 설영석 이사는 자신들과 최성진 부회장 사이에서 이중 스파이 역할을 수행했다.
그 결과, 허위로 작성된 잉가 3댐과 도로 확포장 공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YCM건설 컨소시엄에 넘기고, 그 대가로 완커건설의 천쥐펑 부회장에게 1억 달러를 받았다.
조병석 실장은 1억 달러를 뿌요네 회장의 집사가 소유한 계좌로 송금 받았고,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지급해 주기로 약속했다.
“뿌요네 회장이 1억 달러를 우리 회사 계좌로 송금해 줬나?”
“그날 밤에 송금 받았습니다.”
“설 이사를 불러서 다시 한번 입조심시키고 지급해 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최준하 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송훈석 회장은 이참에 걸리적거리는 최준하를 해고시켜 최성진 부회장에게 일격을 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겨울의 의중을 모르기 때문에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겨울은 최준하에게 복수할 것이 남아 있는 듯한 뉘앙스를 언뜻 보여 주었다.
“한 부사장이 그놈을 손봐 줄 것이 남아 있는 듯해 보였어. 그때까지 기다려 주자고.”
“회장님, 제가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한 부사장과 최준하 처리 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부사장이 뭐라고 하던가?”
예상한 대로 송훈석 회장은 깊은 호기심을 나타냈다.
“한 부사장은 최준하를 발톱의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놈을 회사에서 내쫓아도 된다는 뜻이겠지?”
“네, 그렇습니다. 다만, 그놈으로 인해서 피해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답니다.”
“한 부사장이 그놈 때문에 피해 입을 일이 뭐가 있는데?”
“신입사원 연수 당시에도 최준하는 본인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잘못이 없는 한 부사장한테 복수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한 부사장은 이번에도 최준하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서동호 실장은 겨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원인은 송지유.
최준하는 송지유를 포기하지 못하고 여전히 치근덕대고 있는 중이었다.
이에 반해 송지유는 최준하를 바퀴벌레 보듯 질색하고 있는 중이었고.
최준하는 그런 대접을 받은 이유가 겨울의 훼방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겨울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기 위해서는 송지유와 전혀 상관없는 이유를 들어서 최준하를 해고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회장님, 최준하를 깔끔하게 해고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어떤 방법인지 빨리 얘기해 봐.”
“최준하를 해고시키기 위해서는 …….”
* * *
같은 시각.
설영석 이사는 회사 근처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에서 박철헌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설 이사, 부회장님이 이번에 프랑스에 출장 다녀와서 얼마나 많은 손해를 얼마를 봤는지 알고 있나?”
“제법 많은 손해를 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놀라지 말게나. 무려 59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손해 봤어.”
지금 박철헌 사장은 최성진 부회장이 손해 본 금액을 부풀려 말하고 있었다.
설영석 이사는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천쥐펑 부회장에게 받은 1억 달러를 욕심내고 있는 중이리라.
하지만 그에게 돈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프랑스에서 조병석 실장은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즉시 1억 달러를 지급해 준다고 약속했지만, 3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돈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것보다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박철헌 사장은 자기가 차명계좌를 통해서 1억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1억 달러를 당신에게 줄 것 같습니까? 삶은 호박에 이도 들어가지 않는 소리 하지 마세요.’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박철헌 사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사장님, 부회장님이 40억 달러는 손해 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순순히 돈을 내놓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박철헌 사장은 설영석 이사가 1억 달러를 순순히 토해 내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책 또한 완벽하게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설 이사는 우리가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거야?”
“저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 이사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는데, 철도 건설 프로젝트는 아직 타당성 검토조차 시작하지 않았어.”
“사장님, 타당성 검토가 끝나지 않았는데, 400억 달러를 투자받을 수 있습니까?”
“뭐야? 진짜로 400억 달러를 투자받았다고?”
설영석 이사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투자받을 예정이었지, 아직 100% 확정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얘기하면, 1억 달러는 절대로 온전하게 지켜 낼 수 없다.
이왕 내친걸음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누구한테 투자받았는지 알고 있나?”
윙윙―
정말 공교로운 시간에 설영석 이사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자마자, 박철헌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실장님.”
[1억 달러를 줄 테니까, 지금 즉시 내 사무실로 오세요.]
“실장님, 이곳이 시끄러워서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전화 받겠습니다.”
설영석 이사는 커피전문점 밖으로 뛰어나가 조병석 실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실장님, 제 앞에 박철헌 사장이 앉아 있어서 부득불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인간이 설 이사를 왜 찾아왔습니까?]
“저한테 1억 달러를 토해 놓으라고 왔습니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빼앗기지 않으려고 궁리하던 차에 실장님께 전화가 온 상황입니다.”
[마침 잘됐네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