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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227화 (227/328)

[227화] 줘도 못 먹는 떡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귀가 솔깃해진 천쥐펑 부회장이었다.

하지만 정명훈 사장의 제안을 ‘옳다구나’하며 덥석 물 수는 절대로 없었다.

물론 공사비는 불량자재를 사용하거나 자재를 누락시키면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공사 기간이 문제였다.

공사 기간을 인위적인 수단을 사용해서 단축시키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야간 공사 등을 통해서 공사 기간을 어찌어찌 맞춘다고 해도 풍선 효과로 인해서 공사비가 턱없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였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되는 상황.

더구나 파트너인 YCM건설의 시공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공사 기간을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줘도 못 먹는 떡이 되어 버린 기막힌 상황 앞에서 속으로 심음을 흘렸다.

천쥐펑 부회장은 겨우 평정을 유지하고 대답했다.

“정 사장님, 저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서 정말 감사합니다만, 두 건의 공사는 대한건설 컨소시엄에 넘겨주는 것이 타당할 듯싶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천쥐펑 부회장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제시한 공사 기간은 어느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었으니까.

“전혀 뜻밖의 대답이군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두 건의 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저희의 준비가 너무 소홀했습니다.”

“정말 안타깝게 됐네요.”

“다음번에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반드시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저희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이용해서 부투야 실장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천 부회장님, 완커건설이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에게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저도 케냐의 루사토 부통령을 잘 알고 있으니까, 완커건설이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한팔 거들어 주겠습니다.”

“그래 주신다면, 정말 고맙습니다.”

반면에 최성진 부회장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비록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발을 빼기로 마음먹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처남인 임지태 회장까지도.

따라서 부투야 실장은 자신들에게도 덕담 한마디 건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YCM건설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부투야 실장님, 세 나라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YCM건설도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YCM건설도 세 나라에 기부하셨다는 말씀인가요?”

“그게 아니라, 완커건설이 저희 몫까지 대신 기부한 겁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YCM건설이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보란 듯이 화통한 웃음을 터트렸다.

부투야 실장은 그의 웃음에 슬쩍 동조하고 말을 이어 갔다.

“최 부회장님, 별도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저희는 오늘 오후에 체크아웃 할 예정입니다. 호텔 숙박비는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난감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자신들은 하루치 호텔 숙박비를 부담해 주는 조건으로 그를 하루 먼저 프랑스에 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까지 이 호텔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고.

상황이 이러니 무조건 자신들이 숙박비를 부담해 주는 것이 이치상 옳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숙박비는 끽해야 50만 유로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병에 30만 유로가 넘어가는 빈티지 와인 50병이 문제였다.

자신들이 콩고민주공화국으로부터 더 얻어 낼 것이 있다면, 기꺼이 거액의 숙박비를 부담해 줬을 테지만…….

제법 길던 생각을 끝낸 촤성진 부회장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대답했다.

“그럼 부투야 실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임지태 회장은 깜짝 놀라서 최성진 부회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

그 사실을 최성진 부회장도 알고 있을 것이 빤할 텐데, 그깟 1,600만 유로밖에 안 되는 숙박비 때문에 부투야 실장을 적으로 돌리려하다니.

이유가 정말 궁금해서 들릴락 말락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급하게 말을 걸었다.

“매형,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않을 겁니까?”

순간, 최성진 부회장은 아차 했다.

자신의 생각을 임지태 회장에게 얘기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구구절절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는 없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 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저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매형 뜻에 따를게요.”

반면에 천쥐펑 부회장은 최성진 부회장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부투야 실장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는 거하게 부투야 실장의 호의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이 인간이 이렇게 대답한 이유가 뭘까? 혹시… 내 의도를 눈치챈 것이 아닐까? 그럴 리 없는데…….’

자문자답을 끝낸 천쥐펑 부회장은 재빨리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부투야 실장님, 호텔 숙박비는 저희가 대신 부담하겠습니다.”

“천 부회장님의 성의는 고맙지만,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부투야 실장님과 꽤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섭섭합니다.”

“천 부회장님과 친해졌기 때문에 부담주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도대체 숙박비가 얼마인데 그러십니까?”

“1,600만 유로가 조금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천쥐펑 부회장은 부투야 실장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불과 며칠 동안의 숙박비가 1,600만 유로라니.

부투야 실장이 자기에게 거짓말할 리도 없고.

“부투야 실장님, 숙박비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한 병에 30만 유로가 조금 넘어가는 빈티지 와인 50병 값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천쥐펑 부회장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명문인지 제가 알 수 있습니까?”

“사실은 최 부회장과 처음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날…….”

부투야 실장의 말을 들으면서 천쥐펑 부회장은 지난 일요일 밤의 기억을 끄집어 냈다.

그때 최성진 부회장은 와인을 선물하면서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생산된 라타슈 와인을 30만 유로가 조금 넘어가는 돈을 주고 구입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부투야 실장에게 대접하다가 남은 와인을 가지고 와서 자기에게 잔뜩 자랑을 늘어놓은 것이었다.

그가 부투야 실장의 숙박비를 부담한다면 맞는 얘기지만,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신의 없는 인간과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울 따름이었다.

천쥐펑 부회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부투야 실장의 설명이 끝이 났다.

“…이렇게 해서 숙박비가 엄청나게 늘어난 겁니다.”

천쥐펑 부회장은 땡감을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최성진 부회장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고 부투야 실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부투야 실장님, 최 부회장을 대신해서 제가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부투야 실장은 이번 기회에 최성진 부회장에게 망신을 톡톡히 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 독사 같은 인간이 정명훈 사장 등에게 화풀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한 채로 헤어지는 것이 모두에게 바람직했다.

“천 부회장님, 사실 관계를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최 부회장님은 숙박비를 부담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제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거절한 것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 12억 달러라는 거액을 기부해 주신 최 부회장님인데, 설마 1,600만 유로가 없었겠습니까?”

“맞습니다. 최 부회장님은 그렇게 쫀쫀한 분이 아닙니다.”

마히무 장관과 왈라카 장관까지 나서서 최성진 부회장을 적극 옹호했다.

반면에 최성진 부회장은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기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더 이상 얻어 낼 것이 없고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서 발을 뺄 예정이었기 때문에 부투야 실장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점점 숙박비를 부담해야 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분위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숙박비는 얼마든지 부담할 수 있지만, 자기가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아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임지태 회장이 입을 열었다.

“부투야 실장님, 숙박비를 부담하기로 약속한 사람은 최 부회장님이 아닌 접니다. 따라서 제가 숙박비를 부담하는 것이 맞습니다.”

“임 회장님, 그렇게 되면 제가 더욱 미안해지잖아요.”

“부투야 실장님, 구두 약속도 약속입니다.”

“하아…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임 회장님의 제안을 수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투야 실장님.”

“제가 감사하는 의미로 임 회장님께 점심 식사를 대접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지태 회장은 그의 말이 반가웠다.

부투야 실장과 조금이라도 교분을 쌓아서 나쁠 것은 하나 없었으니까.

좋다고 대답하려는 순간에 최성진 부회장이 자신의 발을 꾹 눌러 왔다.

그의 의도는 보나마나 빤했다.

쪽팔리니까 이곳을 빨리 벗어나자는 의미이리라.

“부투야 실장님, 정말 미안합니다만, 저희는 선약이 있습니다.”

“정말 아쉽게 됐네요.”

“호텔 측에 보증금을 걸어 놓을 테니까, 원하는 시간에 체크아웃 하십시오.”

“저희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중에 좋은 일로 다시 한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최성진 부회장 일행이 허겁지겁 자리를 빠져나가자, 하도진 실장이 궁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최 부회장이 악수를 둔 이유가 뭘까요?”

“더 이상 콩고민주공화국과 비즈니스 할 일이 없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남아 있잖아요.”

“부투야 실장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겠지.”

“최 부회장의 무모한 자신감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겠네요.”

하도진 실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정명훈 사장은 장대산 부사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장 부사장, 설영석 이사한테 확보한 음성 파일은 폐기해.”

“네, 알겠습니다.”

“신 실장은 조병석 실장에게 협상 결과를 알려 주고 설 이사한테 입조심 시키고.”

“네, 사장님.”

* * *

한편,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에서 임지태 회장과 최성진 부회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매형,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뭐였습니까?”

“철도 건설 프로젝트 때문이었어.”

“네?! 왜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임지태 회장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처남, 우리가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할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될 것 같나?”

“자세하게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높지 않을까요?”

“나는 처남과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 철도 건설 프로젝트는 아직 타당성 검토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무산될 가능성이 있어. 설령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수행돼도 송훈석 회장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기다리고 있고.”

그 점에 대해서는 임지태 회장도 최성진 부회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잉가 3댐 건설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 무려 25억 달러라는 뇌물을 사용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게도 수주 실패.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송훈석 회장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콩고민주공화국에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자신들이 세 나라에 80억 달러를 뇌물로 뿌렸지만, 송훈석 회장이 이렇듯 무지막지하게 고춧가루를 뿌려 대면 절대로 수주할 수 없다.

최성진 부회장은 이 점을 간파하고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서 발을 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매형, 주기로 한 40억 달러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길 가능성이 없는 게임에 40억 달러를 쏟아붓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어?”

이 말과 함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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