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최후의 승부수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아니나 다를까, 천쥐펑 부회장의 목소리에 노기가 실려 있었다.
“부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작년 10월에 CTG와 ACS 컨소시엄은 11년이라는 공사 기간을 제시해서…….”
리스롱 사장은 자신의 생각을 상세하게 밝혔다.
“그런데도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공사 기간을 7년을 제시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저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성진 부회장이 불쑥 입을 열었다.
“천 부회장님, 송훈석 회장은 욕심도 매우 많지만 지극히 계산적인 사람입니다. 그가 7년을 제시했다는 의미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인건비가 비싼 VINCH와 컨소시엄을 맺어서 7년 안에 공사를 끝내겠다고 하는데, 우리들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 부회장님은 송 회장이 믿고 있는 구석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때, 성진수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최 부회장님, 제가 알고 있습니다.”
“빨리 얘기해 봐.”
“잉가 1, 2댐을 VINCH가 건설했습니다.”
리스롱 사장은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VINCH는 잉가 1, 2댐을 건설하면서 충분한 노하우를 확보했을 것이다.
그들의 노하우와 대한건설의 스피드가 합해지면, 충분히 7년 안에 잉가 3댐 건설 공사를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어떤 노하우도 없는 자신들은 불가능했다.
리스롱 사장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지금 얘기하면 어떻게 하나?”
“저도 오늘 아침에 자료 검색하다가 우연찮게 알아낸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쥐펑 부회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최 부회장님, 지금 알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십시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만약에 저희가 계약 체결한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됐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겠습니까? 저희가 제시한 6년 안에 공사를 완료하지 못해서 막대한 지체보상금을 부담할 것 같지 않습니까?”
“하긴… 천 부회장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최 부회장님, 공사 기간으로 몇 년을 제시했으면 좋겠습니까?”
“저희가 잉가 3댐 건설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한건설 컨소시엄과 같은 7년으로 제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7년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천쥐펑 부회장보다 리스롱 사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VINCH의 노하우 때문인가?”
“그 점도 물론 있겠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얘기해 봐.”
“저희는 아프리카에서 수십 여건의 공사를 진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노하우가 충분하게 쌓여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YCM건설은 저희와 정반대 상황입니다.”
“그럼 리 사장은 몇 년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
“YCM건설의 숙련도를 감안하면, 9년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최 부회장님, 리 사장의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성진 부회장은 리스롱 사장의 말이 지극히 맞았기 때문에 반박할 거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9년은 너무 길지 않을까요?”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8년 6개월이 어떻습니까?”
“어쩔 수 없네요.”
“기간은 결정됐고, 공사비는 얼마를 제시하는 것이 좋을까요?”
“부투야 실장이 우리 편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134억 달러 정도가 적당하겠지만, 공사 기간이라는 핸디캡이 있으니까 130억 달러를 고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이제 도로 확포장 공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봅시다. 저희가 산출한 조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로 확포장 공사는 완커건설이 단독으로 수주할 예정이었지만, 어젯밤에 임지태 회장이 딜을 벌여서 공사 구간의 40%를 YCM건설이 차지한 상태였다.
따라서 최성진 부회장은 천쥐펑 부회장이 어떤 근거로 공사 금액과 기간을 산출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결정을 그대로 수용할 생각은 없었다.
“VINCH가 도로 확포장 공사에 참여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천쥐펑 부회장은 대한건설이 H&J 컨설팅에 제안한 조건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공사비 190억 달러에 9년의 공사 기간을 제시했다.
공사비는 그렇다하더라도 대한건설의 건설 공사 스피드를 감안하면 9년의 공사 기간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하지만 VINCH가 대한건설 컨소시엄에 참여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인건비도 비싸지만, 꼼꼼하기로 소문났으니까.
따라서 대한건설 컨소시엄의 제안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최 부회장님은 우리가 어떤 조건을 제시했으면 좋겠습니까?”
“공사비는 약간 줄이고, 공사 기간은 1년 정도 단축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합시다.”
“네, 좋습니다.”
* * *
“저희 YCM건설 컨소시엄은 130억 달러의 공사비를 투입해서 8년 6개월 안에 잉가 3댐 건설 공사를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YCM건설 컨소시엄이 공사비 134억 달러에 공사 기간 7년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조건을 제시했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물어보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승자 발표는 나중에 한꺼번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YCM건설 분들은 비어 있는 비즈니스 룸으로 이동해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임지태 회장은 정명훈 사장이 어떤 이유로 자신들을 퇴장시키려는지 단숨에 캐치했다.
“정 사장님, 저희 YCM건설도 도로 확포장 공사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장대산 부사장에게 보고 받아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모른 척해야 할 때였다.
“언제 결정됐습니까?”
“어젯밤에 천 부회장님이 통 크게 양보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럼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임지태 회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정명훈 사장은 시선을 옮겨 천쥐펑 부회장과 대화를 시작했다.
“천 부회장님,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에 대한 공사비와 기간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는 189억 달러를 투입해서, 착공 후 8년 안에 도로 확포장 공사를 완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천 부회장님, 방금하신 제안을 변경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천쥐펑 부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젯밤에 설영석 이사에게 입수한 대한건설 자료에는 공사비 190억 달러에 공사 기간 9년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이 제안한 조건은 대한건설 컨소시엄보다 나은 조건임에 분명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명훈 사장의 말에는 제안을 검토하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최성진 부회장에게 말을 걸었다.
“최 부회장님, 정 사장의 의도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밖에 모르겠습니다.”
“저희의 어떻게 제안을 변경해야 할까요?”
“저는 만약을 대비해서 공사비와 공사 기간을 조금씩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리 사장은 어떻게 제안했으면 좋겠어?”
비즈니스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필수였다.
따라서 리스롱 사장은 정명훈 사장이 들어올 때부터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천쥐펑 부회장이 공사 수주 조건을 제시할 때, 그는 인상을 찡그리지 않고 오히려 살짝 웃었다.
이는 즉, 자신들의 제안이 만족스럽다는 뜻.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명훈 사장이 자신들에게 기회를 다시 한번 부여했다는 의미는 보나마나 빤했다.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겠다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공사비는 손대지 말고 공사 기간을 8년 6개월 정도로 늘렸으면 좋겠습니다.”
“최 부회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한테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천 부회장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최성진 부회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천쥐펑 부회장은 공사 기간을 6개월 늘리는 것으로 수정 제안했다.
“천 부회장님, 방금 전에 하신 제안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단호한 정명훈 사장의 말에 천쥐펑 부회장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큰일 났다는 생각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정 사장님, 다시 제안하면 안 될까요?”
“미안합니다만, 이미 기회를 소진하셨습니다.”
“하아, 무슨 말씀인지 알았습니다.”
“이제부터 잉가 3댐 건설 공사와 도로 확포장 공사를 실행할 건설 회사를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꿀꺽.
잔뜩 긴장한 천쥐펑 부회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정말 안타깝게도 YCM건설과 완커건설은 두 건의 공사를 모두 실행할 수 없습니다.”
순간, 비즈니스 룸에 깊은 침묵이 찾아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천쥐펑 부회장이 정신을 차리고 따지는 듯 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 사장님,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제출한 제안서를 저희가 확인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신지훈 실장에게 건네받은 제안서를 읽어본 천쥐펑 부회장은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 잉가 3댐 건설 공사 : 공사비 120억 달러, 공사 기간 7년
― 도로 확포장 공사 : 공사비 170억 달러, 공사 기간 6년
한참 예상에서 빗나간 가격과 기간.
그럼 설영석 이사에게 1억 달러를 건네주며 입수한 자료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최 부회장님,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해명해 보세요.”
화가 가득 담긴 천쥐펑 부회장의 말에 최성진 부회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에게 설영석 이사를 소개시켜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였으니까.
그가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을 자기가 져야 한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지만, 뇌기능이 정지했는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임지태 회장도 난감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젯밤에 최성진 부회장이 리스롱 사장과 벌이던 갑론을박이 머릿속을 스쳤다.
리스롱 사장은 설영석 이사가 보내온 자료가 가짜일 수 있다고 주장했고, 최성진 부회장은 최종 제안서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에 후자가 맞다면, 자신들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말의 여지가 남아 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정명훈 사장에게 급하게 말을 걸었다.
“정 사장님, 대한건설로부터 제안서를 언제 받았습니까?”
사실 정명훈 사장도 조마조마한 심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에 임지태 회장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중 스파이인 설영석 이사가 크게 다쳤을 것이니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최종 제안서를 받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의 뒤를 이어서 천주펑 부회장이 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정 사장님,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공사비로 135억 달러를 제시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이 아니었습니까?”
“어제 오후에 제출받은 제안서에는 분명 135억 달러가 적혀 있었습니다.”
“불과 하루만에 15억 달러를 줄일 수 있는 비법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천쥐펑 부회장은 그의 대답이 지극히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파고들지 못했다.
잉가 3댐에 대한 궁금증은 이쯤에서 접어 두고 도로 확포장 공사에 대해서 물었다.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도로 확포장 공사를 6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 공사를 최초에 시공한 회사가 VINCH라고 합니다.”
VINCH가 최초 시공자였다니.
그런 사실도 모르고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며 40억 달러를 허공에 뿌려 댔으니.
천쥐펑 부회장은 자신의 멍청함에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이미 게임이 끝나 버렸다.
마지막 남은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서 겨울에게 들은 아이디어를 꺼내 들었다.
“부투야 실장님은 YCM건설과 완커건설이 두 건의 공사를 수주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제시한 조건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조건을 제시해 주신다면, 공사를 넘겨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