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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223화 (223/328)

[223화] 선 조치, 후 통보

천쥐펑 부회장의 스위트룸에서는 설영석 이사가 보내온 자료를 가지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설 이사가 보내온 자료가 가짜일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성진수 실장이 출력해 온 자료를 꼼꼼히 살피며 리스롱 사장이 한마디 했다.

반면에 최성진 부회장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서류가 진짜라고 확신했다.

자료가 대한 그룹에서 사용하는 문서의 형식과 일치했고, 결정적으로 설영석 이사가 문서를 위조할 정도로 간이 큰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가짜 여부가 아니라, 최종 제안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쥐펑 부회장은 어젯밤의 기억을 참고했다.

어젯밤 분명히 설영석 이사는 대한건설이 잉가 3댐 건설 공사를 135억 달러에 실행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알려 왔다.

그의 말이 맞다는 듯 자료에는 떡하니 135억 달러가 적혀 있었다.

만약에 이 자료가 가짜라면, 공사금액은 135억 달러가 아니라 140억 달러 언저리로 상향되어 있어야 한다.

“저도 최 부회장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리스롱 사장은 최종 결정권자인 천쥐펑 부회장의 말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H&J 컨설팅에 얼마를 제시하는 것이 좋을지 논의해 봅시다. 저는 넉넉하게 130억 달러 정도를 제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부회장님, 그렇게 낮게 잡으면 자칫하면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 사장, 잉가 3댐 건설 기간을 4년이 아니라 5년을 단축시키면 되잖아. 그래도 이익이 발생할 것 같지 않으면, 그때 편법을 사용하면 되고.”

“정 사장이 저희의 꼼수를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잖아요?”

“최 부회장님이 우연의 일치라고 했던 말을 벌써 잊어버린 거야?”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리스롱 사장이 마지못해 수긍하고 한발 물러났다.

임지태 회장은 드디어 때가 왔다고 판단 내리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

“천 부회장님, 저희 YCM건설이 도로 확포장 공사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사실 천쥐펑 부회장은 도로 확포장 공사에 YCM건설을 참여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과로 놓고 봐도 자신들은 무려 40억 달러라는 뇌물을 사용했지만, 그들은 1달러조차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눈물을 머금고 YCM건설을 참여시킬 수밖에 없었다.

철도 건설 공사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결정적인 키를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왕 나눠 주는 거 화끈하게 주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합시다. YCM건설에 40% 정도 공사구간을 나눠 주겠습니다.”

“네?! 그렇게나 많이요?”

임지태 회장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YCM건설과 저희는 한 배를 탄 사이인데, 그 정도 호의는 베풀어야죠.”

“하하하, 정말 고맙습니다.”

“도로 확포장 공사에 대한 전략은 저하고 리 사장이 별도로 상의해서 내일 알려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철도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천쥐펑 부회장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고 대책 또한 완벽하게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천 부회장님,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닙니까?”

‘가증스런 인간아, 네놈이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독차지하려는 사실을 내가 모를 것 같아?’

천쥐펑 부회장은 속으로 욕 한마디를 걸쭉하게 퍼붓고 최성진 부회장과 대화를 시작했다.

“설마하니 타당성 검토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정명훈 사장의 말을 믿고 계신 것은 아니겠죠?”

최성진 부회장도 그의 생각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함이었다.

“천 부회장님은 정 사장이 그런 말을 꺼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H&J 컨설팅이 세 나라에 건네줄 뇌물 액수를 올리기 위한 수작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철도 건설 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습니까?”

“1등 전략을 사용하는 게 어떨까요?”

즉, 가능한 빨리 지금 뇌물을 뿌리자는 의미였다.

“저도 천 부회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만,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케냐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철도는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을 출발해서 케냐의 나이로비를 거쳐서 우간다의 캄팔라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중간에 끼어 있는 케냐가 철도 건설 공사를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요?”

“케냐는 나중에 기부하자는 말씀으로 들리는데, 제 말이 맞겠지요?”

“계약을 체결할 때 기회를 봐서 기부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가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었다.

최성진 부회장은 일행들과 논의한 내용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천쥐펑 부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공사 구간은 어떻게 나눌까요?”

“지도를 보면 케냐 구간이 제일 깁니다. 탄자니아와 우간다 구간을 저희가 책임지고, 케냐 구간을 YCM건설이 책임지는 게 어떨까요?”

최성진 부회장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사실 자기는 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적어도 1년 안에 시작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악의 경우에는 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드롭될 가능성도 일부 있다고 판단했고.

불과 하루 앞도 모르는 세상인데, 1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는가.

때문에 모든 것이 확실할 때까지 뇌물 제공을 최대한 늦출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케냐 구간을 자신들이 책임지기를 내심으로 바라고 있었는데, 불감청고소원이라고 천쥐펑 부회장이 그 얘기를 먼저 꺼냈다.

하지만 자기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비즈니스맨이었다.

적당히 곤란한 척 연기를 해서 그들이 의심을 못하도록 못 박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천 부회장님, 완커건설이 케냐 구간을 담당하는 게 어떨까요?”

천쥐펑 부회장은 최성진 부회장의 제안을 죽었다 깨어나도 수용할 수 없었다.

그의 제안을 수용하는 순간, 하이에나 같은 이 인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케냐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에.

자칫 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YCM건설의 독무대로 변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 상황이 우려돼서 먼저 제안을 꺼낸 것이다.

이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품속에 고이 감춰 둔 최후의 수단을 꺼내들 때였다.

“최 부회장님, 그 문제는 조금 있다가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하고 다른 문제를 먼저 결정합시다.”

“말씀해 보십시오.”

“세 나라에 얼마씩 기부하는 것이 좋을까요?”

“공사 금액이 400억 달러라고 가정하면, 70억 달러를 기부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공사 구간의 거리에 따라서 기부 금액을 나누면, 케냐가 35억 달러, 다른 두 나라는 17억 5,000만 달러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계산하기 편하게 기부 금액을 80억 달러로 올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 부회장님, 그런데 40억 달러를 동원할 수는 있습니까?”

“지금은 20억 달러밖에 없지만, 며칠 안으로 20억 달러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천쥐펑 부회장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우간다와 탄자니아 구간을 자신들이 차지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으니까.

“최 부회장님, 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승부욕 강한 송훈석 회장의 귀에 들어가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요? 내일 행동으로 옮기면, 당장 저희는 쉽게 잊혀지는 2등이 되는 겁니다.”

이제 드디어 9부 능선까지 넘었다.

눈앞에 보이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최성진 부회장은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고 천쥐펑 부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차, 제가 그 생각을 하지 못했네요.”

그때를 기다라고 있었다는 듯 임지태 회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천 부회장님, 저희에게 20억 달러를 며칠만 빌려주시면 안 됩니까?”

“임 회장님, 가까운 사람일수록 돈 거래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상한 대로 천쥐펑 부회장이 싫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임지태 회장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최성진 부회장에게 말을 건넸다.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대한건설에 빼앗길 수는 없으니까, 천 부회장님께 양보하는 게 어떨까요?”

“하아, 그래야지. 별수 있겠어.”

“하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기쁨에 만취되어 천쥐펑 부회장은 큰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후. 천 부회장, 최후의 승자가 나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최성진 부회장은 그런 생각을 감추고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천 부회장님, 송 회장이 움직이기 전에 지금 기부하는 게 어떨까요?”

“우간다와 탄자니아 정부의 계좌번호를 건네주시면, 즉시 기부하겠습니다.”

그때, 리스롱 사장이 발언권을 요구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회장님,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에게 생색을 먼저 내고 송금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약에 그 사람들이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선 조치, 후 통보가 맞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문두야 부통령의 스위트룸에는 겨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 부사장님, 과연 오늘밤에 YCM건설 컨소시엄에서 우리나라에 기부할까요?”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한테 생색내기 위해서 지금쯤 전화가 걸려왔어야 하는데?”

“마사카 부통령님, 만약에 제가…….”

하지만 겨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장대산 부사장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으니까.

그는 누가 전화를 걸어왔는지 알고 있다는 듯 재빨리 통화를 시작했다.

통화 도중에 그는 20억 달러라는 의미로 손가락 두 개와 주먹을 말아서 모두에게 신호를 보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미지의 인물과 통화를 끝낸 장대산 부사장은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천쥐펑 부회장이 우간다와 탄자니아 정부 계좌로 각각 20억 달러씩 송금했습니다.”

“와!”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듯 모든 사람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장대산 부사장은 환호성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케냐는 YCM건설이 책임지기로 했고, 철도 건설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올랐을 때 기부하기로 결정된 상태입니다.”

“최 부회장이 잔꾀를 부렸군.”

최성진 부회장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송훈석 회장이 한마디 했다.

“조금 있다가 생색내기 위해서 천 부회장이 두 부통령님께 전화를 걸어올 겁니다.”

장대산 부사장의 짧은 설명이 끝나자, 송훈석 회장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 최 부회장도 기부 행렬에 동참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치졸한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만, 딱히 내키지는 않습니다.”

“어떤 방법인지 얘기나 들어 봅시다.”

“문두야 부통령님께서 케냐의 루사토 부통령님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이용하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겨울의 설명이 끝나자, 서동호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문두야 부통령님, 루사토 부통령님과의 관계를 살짝 언급만 해도 그들이 반응을 보여 올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았어요.”

잠시 후, 겨울의 예측대로 천쥐펑 부회장이 마사카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곧이어 문두야 부통령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천 부회장님께서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오늘 오후에 문두야 부통령님께 무례를 저지른 것에 대해서 용서를 빌려고 연락드렸습니다.]

“그 일은 이미 잊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부통령님은 잊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탄자니아에 저희 회사 이름으로 20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당연히 목적이 있는 기부겠죠?”

[그, 그게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천쥐펑 부회장이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철도 건설 프로젝트 때문에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말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완커건설의 성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잔뜩 움츠려 있던 그의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다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케냐에도 기부하셨습니까?”

[저희도 기부하고 싶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아직 못 했습니다.]

“케냐가 반대하면, 철도 건설 프로젝트는 완커건설이 수주할 수 없습니다.”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루사토 부통령과 상당히 친한 편입니다. 내일 전화를 연결시켜 주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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