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네, 알겠습니다.”
딸깍.
정명훈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끊자, 귀를 쫑긋 세워 놓고 있던 부투야 실장이 말을 걸어왔다.
“정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서 실장님이 전화 주셨는데, 한 시간 뒤에 귀한 손님을 만나게 해 준답니다.”
“귀한 손님이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짐작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히무 장관이 누군가 떠오른 듯 발언권을 요청했다.
“정 사장님, 정확하지는 않지만, 귀한 손님이 VINCH의 나발 페키르 회장님인 것 같습니다.”
“그분과는 화요일 오전에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굳이 오늘 밤에 만날 필요가 있을까요?”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를 최초로 시공한 건설사가 VINCH입니다.”
정명훈 사장은 송훈석 회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곧바로 감 잡았다.
대한건설이 VINCH와 컨소시엄을 맺어서 도로 확포장 공사를 수행할 생각인 것이다.
한 가지 확실 것은 최초로 도로 공사를 시공한 회사이기 때문에 노하우를 많이 축적해 놓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그 노하우는 공사비가 조금이라도 절감되는 혜택으로 이어질 것이다.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콩고민주공화국을 비롯한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방법임은 분명했다.
“마히무 장관님의 말씀처럼 페키르 회장님이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만, 지금 언급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어차피 만나야 봐야 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부투야 실장님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마히무 장관이 2선으로 물러났다.
정명훈 사장은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부투야 실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부투야 실장님, YCM건설과 완커건설에서 기부 받은 45억 달러는 어떤 용도로 사용할 생각입니까?”
부투야 실장은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비록 겨울 등의 도움을 받아서 기부를 받았지만, 기부금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자신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정명훈 사장은 자신들이 기부 받은 45억 달러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은근슬쩍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럴 사람이 아님을 알면서도 의심이 싹 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희가 기부 받은 돈에 대해서 정 사장님이 관심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투야 실장이 예민하게 반응했으나, 이미 이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정명훈 사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 이유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의 오해부터 풀어 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부투야 실장님, 제가 뜬금없는 질문을 드린 이유가 궁금하시죠?”
“솔직히 궁금하기는 합니다.”
“저는 콩고민주공화국이 기부 받은 45억 달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질문을 드린 겁니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면 들어 보고 싶군요.”
“먼저 잉가 3댐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기부 받은 25억 달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0억 달러는 잉가 3댐 공사비에 보태고, 남은 돈으로 정수기 150만 대를 구입하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돈이 남을 것 같은데, 그것은 어디에 사용하면 좋을까요?”
“우리나라에는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전국의 학교에 선풍기를 설치해 주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부투야 실장은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도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꾸준하게 투자하고 있었으니까.
“선풍기는 H&J 컨설팅에서 공급해 줄 거죠?”
호영은 두 가지 문제 때문에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벽걸이 선풍기는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고, 가격 또한 한국 산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저렴했다.
남은 예산으로 선풍기를 구매한다면, 적어도 1,000만 대 이상 공급해야 하는 상황.
국산 벽걸이 선풍기로 1,000만 대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최소 2∼3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도 잠시.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호영이었다.
그는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하고 떠올린 생각을 입에 올렸다.
“부투야 실장님, 선풍기 대신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도 에어컨을 설치해 주고 싶지만, 전기가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요즘에 출시되는 에어컨들은 절전형들이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호영 씨의 의견을 참고하도록 할게요.”
그때, 겨울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투야 실장님, 시범적으로 에어컨을 설치해서 효과를 검증해 보고 난 후, 점차 확대 실시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시범 실시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경우에 전면 실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학교부터 전면 실시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부투야 실장은 겨울이 더위에 취약한 초등학교부터 전면 실시하자고 얘기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교부터라니.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 부사장님,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사실 겨울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대학교부터 전면 실시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번째 이유는 꼼수에 가깝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10억 달러가 조금 부족한 금액으로 학생 수가 많은 초등학교 등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는 1년 중에 절반 가까이 방학이기 때문에 부족한 전기를 많이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군요.”
겨울은 이번에도 역시 세상사는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하도진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부투야 실장님, 한 부사장님이 한 가지 이유를 숨겼는데, 알고 계십니까?”
“네?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차마 입으로 말씀드릴 수 없고, 대학생들이 성인들이라는 점을 참고하시면 대충 감이 잡힐 겁니다.”
부투야 실장은 겨울과 하도진 실장의 의도를 이제야 완벽하게 깨달았다.
두 사람은 대학생들이 선거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언급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학교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는 것을 매표 행위라고 생각해서 언급하기를 꺼려한 모양이었지만, 부투야 실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교에 설치하려는 에어컨은 나라의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 받은 돈으로 설치하는 것이니까.
“하 실장님이 걱정하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네요.”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는 겁니까?”
“만약에 문제가 발생하면, 대학교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는 조건으로 YCM건설과 완커건설로부터 기부 받았다고 홍보하면 될 것 같아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도진 실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부투야 실장은 고개를 돌려서 정명훈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완커건설에서 추가로 기부 받은 20억 달러는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저는 H&J Investment로부터 지원받는 금액을 줄이는 용도로 사용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0억 달러는 도로 확포장 공사에 사용해야 하니까, H&J Investment에서는 차감한 190억 달러를 지원 받으면 되겠네요?”
“저는 10억 달러를 도로 확포장 공사에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H&J 컨설팅은 우리나라에 3억 달러를 커미션으로 지급해야 하니까, 차짓하면 적자를 볼 수 있잖아요.”
“VINCH는 도로 확포장 공사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알고 있으니까, 공사비를 충분히 절감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를 최초로 시공한 회사가 VINCH라는 사실을 깜빡했네요.”
“도로 확포장 공사비는 실장님, 저희, 대한건설, VINCH가 협의해서 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 * *
같은 시각.
최성진 부회장에게 불려간 최준하는 정말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버지와 임지태 회장에게서 질책을 들어도 수십 번도 넘게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두 사람은 계속해서 천쥐펑 부회장에게 자신의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두 분이 술이 취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해.’
최준하가 각오를 다지고 있는 사이에도 최성진 부회장과 천쥐펑 부회장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천 부회장님, 제 아들을 송 회장이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겠지요?”
“제 아들이 대한그룹에 입사한 지가 이제 몇 달 안 됩니다. 그런데 송 회장이 제 아들을 수행원으로 발탁해서 이곳에 데리고 왔습니다.”
“송 회장이 준하 씨를 수행원으로 발탁한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송 회장의 외동딸도 이곳에 와 있습니다.”
“송 회장이 최 부회장님과 사돈 맺을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사실입니까?”
“저는 그 이유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 부회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이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설영석 이사는 초조해 미칠 지경이었다.
송훈석 회장에게 받은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잉가 3댐 건설공사와 도로 확포장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아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영양가 없는 내용의 대화만 나누는 데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관여해서 화젯거리를 변경시킬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끙끙대고 있는데, 박철헌 사장이 구세주처럼 말을 걸어왔다.
“설 이사, 표정이 별로인 것 같은데,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드디어 기회가 왔다.
설영석 이사는 머릿속에 구상해 놓은 시나리오를 차분히 떠올리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저희 회사 직원들하고 저녁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정보를 하나 취득했는데, 내용이 조금 심각합니다.”
“어떤 내용인데?”
박철헌 사장보다 최성진 부회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천 부회장님도 알고 계셔야 하니까, 영어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대한건설은 H&J 컨설팅에 잉가 3댐 건설공사를 135억 달러에 실행하겠다고 제안할 예정이랍니다.”
“부투야 실장이 H&J 컨설팅에 140억 달러에 계약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해 놨으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무리 부투야 실장에게 권고를 받았다고 해도 135억 달러에 계약할 수 있는데, 이익을 줄여 가며 굳이 140억 달러에 계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쥐펑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설 이사, 우리는 조금 낮춰 134억 달러에 제안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저희는 적자를 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계획이 있습니까?”
“우리는 잉가 3댐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자재를 줄이거나 저급의 자재를 사용해서…….”
설영석 이사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 빛났지만,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회장님,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리츠 파리 호텔에 먼저 도착한 로제 샹바르 VINCH건설 사장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페키르 회장을 맞이하며 물었다.
“이 호텔에서 대한 그룹의 송 회장을 만날 예정입니다.”
샹바르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 자신들과 대한 그룹과 관련되어 있는 건은 잉가 3댐 건설공사밖에 없다.
그것은 오늘 저녁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부투야 실장이 입국한 상태였기 때문에 모레 오전에 같이 만나서 해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밤에 갑자기 대한 그룹의 송훈석 회장을 만난다고 한다.
‘부투야 실장과 단순히 술 한잔하자고 우리를 부른 것인가?’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돌직구성 질문을 던졌다.
“그게 아니라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를 우리 회사와 같이 시공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그 공사는 중국의 CTG가 가져가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잖습니까?”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송 회장님은 대한 건설이 수주할 것처럼 얘기했습니다.”
“회장님, 저희가 모르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는 말인가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도대체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송 회장님을 만나서 물어봅시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