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체하는 법
사실 부투야 실장 등이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나눈 이유는 리스롱 사장을 의식해서였다.
그가 프랑스어 능력자라는 정보를 장대산 부사장이 미리 알려 줬기 때문에.
이제 리스롱 사장이 자신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천쥐펑 부회장에게 보고할 일만 남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스롱 사장이 천쥐펑 부회장에게 중국어를 사용해서 말을 거는 모습이 부투야 실장의 눈에 포착됐다.
“부회장님, 잠깐 자리를 이동해서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심각한 내용이야?”
“제가 판단하기에는 그렇습니다.”
“알았어.”
천쥐펑 부회장은 부투야 실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창가로 이동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얘기해 봐.”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는 저희가 수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얘기야?”
“지금 세 사람은 도로 확포장 건설공사를 우리 회사에 넘겨주는 것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다는 말이지?”
천쥐펑 부회장이 기쁘다는 듯 입꼬리가 위로 한껏 밀려 올라갔다.
“부회장님, YCM건설과 도로 확포장 공사를 공동으로 시공하는 것은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왈라카 장관은 YCM건설의 시공 능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고 있나?”
“YCM건설이 콩고민주공화국이 발주하는 건설공사를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답니다.”
천쥐펑 부회장은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도로 확포장 공사를 YCM건설과 공동으로 시공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우리가 도로 확포장 공사를 단독으로 수주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제 생각에는…….”
두 사람이 속닥대고 있는 사이에, 최성진 부회장도 프랑스어 능력자인 성진수 실장과 한국어를 사용해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성 실장, 지금 어떤 상황이야?”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저희 YCM건설의 시공 능력에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리고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를 완커건설에 넘겨줄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사 규모는?”
“그런 내용의 대화는 없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성진수 실장과 대화를 중단한 최성진 부회장은 핸드폰으로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 박철헌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박 사장, 무엇을 검색하고 있는 거야?”
“킨샤사와 루붐바시가 얼마나 많이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비행기로 세 시간 넘게 걸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알았어.”
최성진 부회장이 짧게 대답한 후, 임지태 회장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임 회장, YCM건설이 도로 확포장 공사에 참여할 수 있는 여력이 될까?”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포기하자는 말인가?”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체하는 법입니다.”
“할 수 없지. 아깝지만 도로 확포장 공사는 포기하는 것으로 하자고.”
윙―
잠시 후, 마히무 장관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위층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장대산 부사장이 보내온 문자였다.
― YCM건설 포기.
― 고맙습니다.
답장을 보내고 부투야 실장에게 귓속말로 문자 내용을 알려 주었다.
“실장님, 작전 성공입니다.”
“알았어요.”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상의를 끝마친 천쥐펑 부회장과 리스롱 사장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부투야 실장이 말을 건넸다.
“천 부회장님, 리 사장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특별한 내용은 아닙니다.”
“이제부터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서 대화를 잠깐 나눴으면 합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잉가 3댐 건설공사는 작년 10월에 스페인의 ACS와 중국의 CTG가 공동으로 수주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에 CTG에 내부적인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계약이 해지된 상태입니다.”
최성진 부회장이 궁금한 얼굴로 발언권을 요청했다.
“부투야 실장님, ACS가 반발하지 않았습니까?”
“원인을 제공한 CTG와 원만하게 타협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ACS가 잉가 3댐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더 이상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겠네요?”
“물론입니다. 재입찰을 진행했어야 하나,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한 상태입니다.”
“바통고 대통령님은 자국과 특수 관계인 H&J 컨설팅에 잉가 3댐 건설공사를 넘겨주기로 결정한 상태이고, 내일 계약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부투야 실장에 이어서 왈라카 장관이 부연설명 해 주었다.
드디어 의문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H&J 컨설팅이 언급되었다.
“왈라카 장관님, H&J 컨설팅이 콩고민주공화국과 특수 관계라는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바통고 대통령님과 H&J 컨설팅의 경영진은 아주 친밀한 관계라는 사실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회사라는 사실을 내가 모를 것 같습니까?’
속으로 한마디 해 주고,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H&J 컨설팅이 잉가 3댐 건설공사를 실행할 업체를 단독으로 선정할 수 있습니까?”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왈라카 장관은 수립한 계획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최성진 부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결정권은 H&J 컨설팅이 가지고 있겠지만, 바통고 대통령님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실 최성진 부회장은 이와 유사한 답변을 부투야 실장에게 이미 들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질문한 이유는 천쥐펑 부회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목적이 컸다.
“잉가 3댐을 건설하기 위한 예산은 확보된 상태입니까?”
“IBRD에서 140억 달러를 지원받기로 확정된 상태이기는 합니다만…….”
왈라카 장관이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렸다.
최성진 부회장은 그가 말끝을 흐린 이유를 단박에 알아챘다.
잉가 3댐 건설공사를 H&J 컨설팅과 140억 달러에 계약을 체결하면, 바통고 대통령이 챙겨 갈 비자금이 형편없이 줄어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자신들이 기부하는 돈의 일부를 공사비에 포함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공사 금액이 늘어나면, 자신들이 적자를 볼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정말 신박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며, 왈라카 장관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장관님께서는 H&J 컨설팅과 얼마에 계약하기를 원하십니까?”
“아직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서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150억 달러 플러스알파로 계약할 생각입니다.”
천쥐펑 부회장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자신들은 콩고민주공화국에 뇌물 25억 달러를 제공함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적자를, 잉가 3댐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자재를 줄이거나 불량 자재를 사용해서 만회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감리 회사와 짝짜꿍해서 편법을 사용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녹녹치 않다.
특히, 감리 회사가 미국 또는 유럽에 소재하고 있는 회사라면 짝짜꿍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왈라카 장관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뇌물의 일부를 잉가 3댐 건설공사에 사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익을 낼 수 있다.
천쥐펑 부회장이 흐뭇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왈라카 장관님, H&J 컨설팅은 공사를 실행할 업체와 얼마에 계약할 예정인지 알고 계십니까?”
“140억 달러에 계약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한 상태입니다.”
“그나저나 모자라는 공사비는 어떻게 마련할 생각입니까?”
“아직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때, 최성진 부회장의 은밀한 신호를 받은 임지태 회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투야 실장님, 저희가 콩고민주공화국에 기부해 드릴까요?”
“기부는 얼마든지 환영합니다만, 목적이 있는 기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부투야 실장이 만약에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서 방어막을 쳤다.
‘속 보인다, 인간아.’
이 말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입속에 머물렀으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저희가 기부하는 것과 잉가 3댐 건설공사를 결부시키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기부 증서에 그런 내용이 포함된다면, YCM 그룹의 순수성을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그야 물론입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에 얼마를 기부해 주실 생각입니까?”
“25억 달러입니다.”
“네?!”
부투야 실장을 포함한 세 사람이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임지태 회장은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가 더 많이 기부해 드려야 하는데, 미안할 따름입니다.”
“아, 아닙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대답하는 부투야 실장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히무 장관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부투야 실장님, 감사 인사는 기부를 받고 난 후에 하는 게 어떨까요?”
“설마하니 YCM 그룹을 이끌어 가고 있는 임지태 회장님이 허언을 내뱉겠습니까?”
“그것은 아니지만, 매사에 확실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도 마히무 장관님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감사 인사는 기부가 끝난 뒤에 받기로 하겠습니다.”
머릿속으로 시나리오 구상을 마친 임지태 회장은 한껏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알겠습니다. 저희끼리 잠깐 상의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저쪽 테이블에서 대화를 나누도록 하세요.”
윙―
임지태 회장 등이 자리를 옮기자마자, 부투야 실장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겨울이 보내온 문자였다.
― 실장님, 연기력이 끝내주는데요?
― 하하, 고마워요.
―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세요.
겨울과 부투야 실장이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은 기부금에 관련한 대화를 시작했다.
“천 부회장님, 저희가 12억 달러를 책임질 테니까 완커건설에서 13억 달러를 책임져 주십시오.”
“최 부회장님, 잉가 3댐 건설공사와 관련한 우리 회사의 지분이 40%니까, 10억 달러를 책임지면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탄자니아와 우간다에 6억 달러를 기부한 사실을 잊었습니까?”
“그렇다면 송유관 건설공사의 절반을 우리 회사에 배정한다는 뜻이겠지요?”
“물론입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기부 증서는 이미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게 있으니까, 그것을 활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기부 증서는 기부하는 금액만큼 따로따로 작성하는 게 어떨까요?”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겠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기부 증서를 지금 작성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최성진 부회장은 천쥐펑 부회장의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실속이 그저 그런 잉가 3댐 건설공사건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와 관련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 공사만 생각하면 아까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능력이 부족해서 도로 확포장 공사를 포기한 상태이거늘.
그렇다고 알짜배기인 도로 확포장 공사를 그냥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천 부회장님, 만약에 저희가 기부금을 송금하자마자, 기부 증서를 들이밀면 부투야 실장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저희의 순수성을 의심할 것 같지 않습니까?”
최성진 부회장의 말이 백번 옳았기 때문에 천쥐펑 부회장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25억 달러부터 송금하고, 기부 증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최성진 부회장 등이 응접실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부투야 실장이 입을 열었다.
“최 부회장님,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나눴습니까?”
“저희가 가지고 있는 돈이 부족해서 일부를 완커건설이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계좌번호를 알려 주시면, 지금 즉시 기부금을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마히무 장관님, 알려 주세요.”
마히무 장관에게 계좌번호를 전달받은 최성진 부회장과 천쥐펑 부회장은 노트북을 키고, 각각 12억 달러와 13억 달러를 콩고민주공화국 계좌로 송금했다.
두 사람이 핸드폰으로 보내 준 송금 확인증을 확인한 부투야 실장은 감격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 부회장님, 천 부회장님, 바통고 대통령님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기부 증서는 곧 작성해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