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초조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법
“에이, 나쁜 놈들.”
장대산 부사장의 설명을 끝까지 들은 부투야 실장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 내뱉었다.
정명훈 사장도 그들의 무모한 계획에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투야 실장님, 두 회사가 잉가 3댐 건설공사를 수주할 가능성은 제로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도 알고 있지만, 그들의 행태가 너무 괘씸해서 그럽니다. 완커건설에 뜨거운 맛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놈들은 적지 않은 돈을 콩고민주공화국에 기부하게 될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겨울이 느닷없는 말을 꺼냈다.
“부투야 실장님, 킨샤사에서 루붐바시까지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는 언제 착공할 예정입니까?”
“도로 확포장 공사라… 으하하하!”
겨울의 얘기를 곱씹던 부투야 실장은 큰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영문인지 몰라서 멀뚱히 그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부투야 실장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님,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 주세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도로 확포장 공사를 이용해서 완커건설에 뜨거운 맛을 보여 줄 생각입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갑작스럽게 생각해 낸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수정 보완할 점이 있으면 기탄없이 의견을 제안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조금 후에 최성진 부회장한테 전화가 걸려오면…….”
겨울의 계획을 들은 사람들은 30분 가까이 열띤 토론을 벌여 가며 시나리오를 만들어 나갔다.
다행히 장대산 부사장이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다소 미흡하던 계획이 완벽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부투야 실장은 두 사람의 계획이 성공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장대산 부사장한테 말을 건넸다.
“이렇게 귀중한 정보는 어디서 취득했습니까?”
“부투야 실장님, 말씀드릴 수 없다는 거 알고 계시죠?”
“하하, 알았어요.”
“이번 기회에 양아치보다 못한 놈들에게 매운맛을 보여 주십시오.”
“염려 마십시오.”
지금까지 조용히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신지훈 실장이 한마디 보탰다.
“부투야 실장님, 초조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법입니다. 이 점을 잘 이용하면 의외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부투야 실장은 신지훈 실장의 의도를 단숨에 읽었다.
지난달에 중국의 천유런 외교부장과의 협상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전략을 사용해서 엄청나게 큰 성과를 얻은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신 실장님,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윙윙.
그들이 대화를 마무리 짓고 한숨 돌리고 있을 때, 부투야 실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떠 있는 번호를 확인한 그는 모두에게 신호를 보내 주고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최 부회장님.”
[부투야 실장님께 완커건설의 천쥐펑 부회장님을 소개시켜 드렸으면 좋겠는데, 언제가 적당할까요?]
“제가 지금 H&J 컨설팅의 정명훈 사장님과 식사 중이라서 언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점심 식사를 늦게 시작하셨나 보네요?]
눈치 빠른 사람답게 최성진 부회장이 단숨에 미끼를 물었다.
부투야 실장은 모두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말아 보여 준 후, 최성진 부회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식사는 제 시간에 시작했는데, 정 사장님과 이것저것 의견을 조율할 게 제법 있어서 늦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아, 그렇군요. 숙소로 언제 돌아갈지 예상 시간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아무리 늦어도 4시는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시고, 그때 뵙겠습니다.]
“그럽시다.”
* * *
최성진 부회장이 전화를 끊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천쥐펑 부회장이 질문을 던져 왔다.
“부투야 실장이 뭐라고 합니까?”
“H&J 컨설팅의 정명훈 사장과 조율할 게 많다면서 지금부터 두 시간 뒤에 만나자고 합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 말고 또 있다는 뜻인가요?”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때, 리스롱 사장이 은밀하게 천취펑 부회장의 발을 살짝 건드렸다.
‘리 사장이 내 발을 왜 건드렸지? 나한테 할 말이 있다는 뜻인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리스롱 사장의 발을 살짝 밟았다.
그랬더니 그가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천쥐펑 부회장은 알았다는 의미로 은밀하게 신호를 보내 주고, 최성진 부회장과 대화를 계속했다.
“부투야 실장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보면 알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제 점심 식사도 얼추 끝났으니까. 제 숙소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럼 몇 시에 다시 만날까요?”
“부투야 실장이 묵고 있는 숙소가 이곳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걸리니까, 넉넉잡고 3시 30분에 로비에서 만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천쥐펑 부회장과 리스롱 사장이 떠나가자, 박철헌 사장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부회장님, 방금 전에 두 사람이 은밀히 신호를 주고받는 거 보셨습니까?”
“나도 봤어.”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신호를 주고받았을까요?”
“콩고민주공화국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뭐가 있는지 궁금했겠지 뭐.”
최성진 부회장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도 참여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당연한 거 아니야?”
* * *
“빨리 얘기해 봐.”
숙소로 돌아온 천쥐펑 부회장은 소파에 앉기 무섭게 리스롱 사장을 채근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투자를 받아서 수도인 킨샤사와 2대 도시인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의 확포장 공사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도로 확포장 공사는 CTG가 수주할 예정이었습니다만, 백도어 설치건 때문에 쫓겨난 상태입니다.”
“CTG가 도로 확포장 공사를 수주할 수 없는데, 과연 우리나라가 투자를 단행할까?”
“당연히 하지 않을 겁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이 도로 확포장 공사에 투입되는 비용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계획은 말짱 꽝 아니야?”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지만, 저들의 태도로 보아 예산을 확보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도로 확포장 공사비용은 얼마야?”
“2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리 사장, 200억 달러가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이야?”
“킨샤사와 루붐바시는 비행기로 세 시간 넘게 걸릴 정도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음…….”
끝말을 흐린 천쥐펑 부회장은 창가로 이동해서 팔짱을 낀 채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에 갈증을 느낀 리스롱 사장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의 물을 꺼내 소리 없이 마셨다.
창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천쥐펑 부회장이 고개를 돌리며 리스롱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리 사장, 나도 물을 가져다줘.”
“네, 부회장님.”
물병을 받아 든 천쥐펑 부회장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창가에 기대서서 리스롱 사장과 대화를 시작했다.
“리 사장, 콩고민주공화국이 도로 확포장 공사와 관련한 예산을 확보했다 가정하고 대화를 나눠 보자고. 우리가 부투야 실장한테 얼마를 찔러 주면 도로 확포장 공사를 가지고 올 수 있을까?”
“보통의 경우에는 공사비의 5%인 10억 달러면 충분하지만, 최 부회장이 부투야 실장의 눈높이를 잔뜩 올려놓는 바람에 가늠하지 못하겠습니다.”
“잉가 3댐 건설공사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뇌물을 건네줘야 하지?”
“35억 달러입니다.”
“너무 많은데… 우리가 35억 달러를 투자했을 경우에 이익은 낼 수 있을까?”
“잉가 3댐 건설공사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천쥐펑 부회장은 리스롱 사장의 말을 단숨에 이해했다.
잉가 3댐은 댐 공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자재를 줄이거나 불량 자재를 사용하는 데 제약이 많이 따른다.
이에 반해 도로 확포장 공사는 공사 구간이 길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자유롭다.
게다가 감리 회사와 손발을 제대로 맞춘다면, 리스롱 사장 말처럼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도 있다.
“하하하, 알았어.”
“YCM건설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리 사장은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싶어?”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최 부회장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반발하겠지.”
“그렇다면 저희가 아예 송유관 건설공사와 잉가 3댐 건설공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요?”
천쥐펑 부회장은 최성진 부회장을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 순간, 절대로 미련을 보이지 않고 뒤돌아설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보란 듯이 자신들의 최대 경쟁자인 헝다건설을 파트너로 끌어들일 것이다.
그 후, 자신들과 헝다건설을 교묘하게 이간질시키며 싸움을 유도하려 들 것이고.
만약을 가정했지만, 정말 운이 없다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를 눈뜨고 헝다건설 놈들한테 빼앗길 수는 없었다.
“리 사장, 최 부회장은 생각보다 잔인한 인간이야. 그와 등을 돌려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어.”
“그럼 어떻게 하죠?”
“이제부터 고민해 봐야지.”
천쥐펑 부회장이 또다시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최성진 부회장은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투야 실장과의 미팅 시간은 6시까지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와 만나서 30분이 지난 지금까지 잉가 3댐 공사와 관련한 얘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화를 그쪽으로 유도하면, 마히무 장관과 왈라카 장관이 귀신같이 눈치채고 제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부투야 실장과 천쥐펑 부회장의 한가한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천 부회장님, 우리나라에 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천쥐펑 부회장 또한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 시간 반 안에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와 도로 확포장 공사에 대한 대화를 마무리하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때문에 대화 분위기를 두 건의 프로젝트 쪽으로 여러 번 유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상태.
자신들은 갑이 아닌 을의 상태였기 때문에 섣불리 대화 분위기를 이끌어 나갈 수도 없었다.
마음속에 참을 인자 세 개를 욱여 넣고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6년 전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바통고 대통령님을 만나 보셨습니까?”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대답하는 천쥐펑 부회장의 목소리에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부투야 실장이 천쥐펑 부회장과 30분 가까이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이유는 사전에 계획된 작전의 일환이었다.
이 정도면 이들을 충분히 초조하게 만들었다 자평하고 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천 부회장님, 우리나라에서 발주한 공사 중에서 완커건설이 수주한 것이 있습니까?”
“네. 여러 건의 공사를 수주했습니다.”
“그중에서 공사 규모가 가장 큰 것을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3년 전에 완공한 마타디에서 킨샤사까지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를 저희가 수주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천쥐펑 부회장과 대화를 중단한 부투야 실장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마히무 장관에게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말을 걸었다.
“완커건설이 도로 확포장 공사를 성실하게 시공했습니까?”
당연히 아니었지만, 사전에 계획한 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예정된 준공 날짜보다 조금 늦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무난하게 시공했습니다.”
“완커건설이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를 시공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여러 건의 공사를 시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곧바로 왈라카 장관도 그들의 대화에 합류했다.
“실장님, 저도 마히무 장관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YCM건설은 어떨까요?”
“YCM건설은 우리나라에서 발주하는 건설공사를 수주한 실적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들에게 도로 확포장 공사를 맡기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완커건설과 YCM건설이 공동으로 도로 확포장 공사를 시공하면 가능하겠네요?”
“천 부회장이 생각보다 욕심이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완커건설이 단독으로 도로 확포장 공사를 시공하는 것은 무리수 아닐까요?”
“천 부회장의 능력이라면, 어떻게든 해법을 찾아낼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