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같은 공간, 다른 생각
최성진 부회장과 임지태 회장은 천쥐펑 완커건설 부회장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하는 자동차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매형, 완커건설이 콩고민주공화국에 기부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죠?”
최성진 부회장은 중국 건설사들의 행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비즈니스 수단은 시공 능력 등의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오로지 돈이었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을 포함한 저개발 국가가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특히 더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건설업계에서 닳고 닳은 천쥐펑 부회장도 당연히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자신들이 할 일은 완커건설에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의 지분을 얼마나 나눠 줄지에 대해서 걱정하는 일이었다.
“처남, 기부와 관련된 문제는 내가 천 부회장과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저는 매형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YCM건설은 잉가 3댐 건설공사를 어느 정도까지 시공할 수 있을까?”
“YCM건설이 송유관 건설공사까지 시공하게 되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절반 정도는 완커건설에 넘겨주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완커건설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으니까, 60% 정도는 YCM건설이 시공하도록 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요.”
두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박철헌 사장은 자신들이 두 개의 공사 모두 수주하지 못할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공사와 관련한 결정권은 H&J 컨설팅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에 자신들이 두 개의 공사를 수주하지 못하면, 3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돈을 허공으로 날리는 셈.
하지만 최성진 부회장은 그 점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이런 얘기를 언제 꺼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그 문제와 관련한 대화가 오가고 이었다.
잘됐다 생각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회장님, 완커건설에 송유관 건설공사를 일부 나눠 주는 것이 어떨까요?”
“음…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군.”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완커건설에게 배분받는 공사만큼 기부금을 청구했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그리고 이 말씀은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보험을 들어 놓을 필요는 있을 겁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얘기해 봐.”
“송유관 건설공사와 잉가 3댐 건설공사는 H&J 컨설팅이 수주한 상태입니다. 세 나라 대통령 및 뿌요네 회장의 권유를 거절하고, 대한건설과 계약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H&J 컨설팅 측과 접촉조차 못하고 있지만, 송훈석 회장은 그들과 수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박 사장, 우리가 어떤 보험을 들어 놓는 게 좋을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박철헌 사장은 미리 생각해 놓고 있던 계획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좋겠군.”
짧게 대답한 최성진 부회장은 머리가 복잡한지 입을 닫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 * *
무사히 입국 심사까지 끝마친 천쥐펑 부회장은 수족인 리스롱 사장과 대화를 나누며 입국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리 사장, CTG가 계약파기 당한 이유를 파악했나?”
“정부 당국의 지시를 받고 백도어가 설치된 핸드폰을 바통고 대통령 등에게 선물한 것이 발각됐답니다.”
“그렇다는 말이지?”
“부회장님,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절대로 안 된답니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그나저나 우리가 잉가 3댐 건설공사를 단독으로 실행할 수 있을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저희가 독식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후후, 돈이면 되지 않을까?”
천쥐펑 부회장이 묘한 웃음을 흘리며 저 멀리 보이는 최성진 부회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 부회장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럼요. 제 일행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제 처남이자…….”
간단하게 상견례를 마친 그들은 곧바로 공항을 빠져나와 준비되어 있는 차를 타고 호텔로 출발했다.
“천 부회장님, 오늘 점심 식사는 제 숙소에서 룸서비스를 시켜서 먹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불편하게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천쥐펑 부회장이 싫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했다.
최성진 부회장은 그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천 부회장님을 대접하려고 진귀한 와인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진귀하다는 말씀입니까?”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생산된 라타슈 와인입니다.”
천쥐펑 부회장은 비즈니스를 위해서 와인을 종종 마셨기 때문에 라타슈 와인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생산된 지 70년이 넘었기 때문에 가격 또한 만만치 않게 비싸다는 것도.
그렇게 비싼 와인을 맛보게 해 준다는데, 그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가격이 장난 아니게 비싸겠네요?”
“한 병당 30만 유로를 조금 넘게 주고 구입했습니다.”
천쥐펑 부회장은 최성진 부회장의 말에서 커다란 힌트를 하나 얻어 냈다.
만약에 와인을 한 병을 가지고 있다면, ‘한 병당’이 아니라 ‘한 병에’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와인을 여러 병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한 병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흐흐흐, 운이 좋으면 라타슈 와인을 선물 받을 수 있다는 소리네.’
속으로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최성진 부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정말 비싸군요.”
최성진 부회장이 천쥐펑 부회장을 알게 된 지 20년.
적어도 1년에 서너 번 이상 만나서 교분을 나눴기 때문에 그가 어떤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라타슈 와인을 여러 병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를 살짝 비췄더니, 예상대로 그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는 즉, 라타슈 와인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뜻.
‘흐흐흐, 내 작전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군.’
최성진 부회장은 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하면서 입가에는 겸손한 미소를 유지했다.
“오랜 친구를 대접하는 데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잘 마시겠습니다.”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끝내고 부투야 실장을 만나러 가십시다.”
“최 부회장님, 부투야 실장에게 건네줄 뇌물 액수를 결정했습니까?”
“이것저것 감안해서 25억 달러로 결정한 상태입니다.”
천취펑 부회장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건설공사를 수주할 때, 평균적으로 제공하는 뇌물의 액수는 공사 금액의 3∼5% 정도였다.
그래야 설계 변경을 통해서 공사비를 늘리는 데 수월하니까.
그런데 최성진 부회장은 공사 예정 금액인 140억 달러 대비 18%에 가까운 25억 달러를 뇌물로 제공할 생각이라고 한다.
어찌어찌해서 설계 변경으로 공사비를 최대 10억 달러까지 늘린다고 하더라도, 15억 달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최 부회장님, 뇌물 금액이 너무 많습니다. 줄이는 방법은 없습니까?”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사실은 저희가 우간다에서 탄자니아까지 연결하는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
천쥐펑 부회장은 바보 같은 최성진 부회장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이미 게임 끝난 상황이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잉가 3댐 건설공사에 참여하는 방법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확실히 어리석은 짓이었다.
“최 부회장님, 저희는 뇌물 금액을 10억 달러까지 줄이지 않으면 잉가 3댐 건설공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 있던 리스롱 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회장님, 제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빨리 얘기해 보세요.”
“잉가 3댐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자재를 줄이거나 불량 자재를 사용하면, 15억 달러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겁니다.”
“리 사장, 감리 회사 눈은 어떻게 속일 생각입니까?”
“뇌물을 몇 푼 쥐어 주면, 모른 척하고 눈감아 줄 겁니다.”
“하하, 알았어요.”
“이제 최 부회장님과 대화 나누십시오.”
역할을 120%이상 수행한 리스롱 사장이 한발 뒤로 물러났다.
“최 부회장님, 리 사장 얘기 들었죠?”
“네, 들었습니다.”
“우리가 잉가 3댐 건설공사를 수주한다면, 우리 회사에 어느 정도 공사를 나눠 줄 생각입니까?”
“40%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예상한 대로 천쥐펑 부회장이 강하게 반발했다.
“천 부회장님, 모자라는 10%는 저희가 따로 챙겨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요?”
“송유관 건설공사의 일부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불만 없습니다.”
“그리고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해 보세요.”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 6억 달러를 이미 기부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완커건설도 공사를 나눠 가는 비중만큼 저희에게 기부해 주셨으면 합니다.”
천쥐펑 부회장은 최성진 부회장의 얘기가 타당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공사와 관련해서 제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또 있습니까?”
최성진 부회장은 지금이 제일 중요한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자기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이후의 분위기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리 구상해 놓았던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린 후, 천쥐펑 부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두 공사 모두 H&J 컨설팅이라는 회사와 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그 회사는 또 뭡니까?”
“길게는 설명드릴 수 없고, 세 나라가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회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H&J 컨설팅은 세 나라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중요한 순간이었다.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서 도망갈 틈을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으니까.
“저희가 세 나라에 집중적으로 로비를 벌이는 이유를 생각하면, 대충 감이 잡힐 겁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이번에 부투야 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기부가 이뤄져야 할 겁니다.”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닙니까?”
“부투야 실장이 오늘 저녁때 대한 그룹의 송훈석 회장을 만날 예정입니다. 그전에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으면,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이용해서 임지태 회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최 부회장님, 천 부회장님, 의논할 일이 많은 것 같은데 오늘 점심 식사는 간단하게 해결하고 저녁을 푸짐하게 먹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그게 낫겠네요.”
* * *
같은 시각.
정명훈 사장을 포함한 H&J 컨설팅 사람들은 부투야 실장과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실장님, 정말로 정수기 150만 대를 발주해 주실 생각입니까?”
“우리나라의 물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정 사장님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SH무역과 협의해서 최대한 빨리 정수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윙윙―
그때, 장대산 부사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을 확인하자마자,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얘기해 보세요.”
[두 회사가 콩고민주공화국에 기부하는 금액은 25억 달러로 확정됐습니다.]
장대산 부사장은 예의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가락 두 개와 다섯 개를 차례로 펼쳐 보였다.
사실 부투야 실장은 지금까지 겨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공사 금액의 17%에 해당하는 24억 달러를 기부 받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우려를 불식시키듯 장대산 부사장은 기부 금액이 24억 달러보다 1억 달러가 늘어난 25억 달러라고 알려 주었다.
기쁜 마음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체면상 그럴 수는 없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부투야 실장이 흐뭇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장대산 부사장과 미지의 인물과의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