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저희는 양아치가 아닙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들이 잉가 3댐 프로젝트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는 부투야 실장과의 술자리가 필수였다.
그가 내일 저녁때 송훈석 회장을 만나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술자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그가 지금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한발 빼고 있는 중이었다.
“부투야 실장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탔기 때문인지 몸이 정말 피곤하네요.”
최성진 부회장은 100% 거짓말이라고 판단 내렸다.
콩고민주공화국과 프랑스는 시차가 없다.
더구나 부투야 실장은 분명히 일등석에 앉아 왔기 때문에 술자리에 어울리지 못할 만큼 피곤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까지 의욕을 보이던 술자리를 거부하고 있으니.
자기가 모르고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그와 이렇게 헤어지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
쪽팔림을 무릅쓰고 한 번 더 부탁했지만,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최 부회장님, 저를 빼고 다른 분들과 같이 마시면 안 될까요?”
“호스트가 술자리에서 빠지면 무슨 흥이 나겠습니까?”
그때,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문두야 부통령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두 분 모두 조금씩 양보하시는 게 어떨까요?”
“좋은 묘안이 있습니까?”
“부투야 실장님 숙소에서 룸서비스를 시켜서 마시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부투야 실장님은 술자리가 끝나자마자 바로 휴식을 취할 수 있잖아요.”
최성진 부회장은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자기는 부투야 실장과 술 마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잉가 3댐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좋다고 옳다구나 반응하면 속보인다는 얘기를 들을 가능성이 있었다.
“크리용 호텔이 저희들이 마실 만한 술을 보관하고 있을까요?”
“그 호텔에도 바와 레스토랑이 있기 때문에 보관하고 있을 겁니다.”
“아, 제가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네요.”
“최 부회장님, 제 의견에 동의하시는 겁니까?”
“…어쩔 수 없네요.”
“자, 이제 저녁 식사도 얼추 끝났으니까 일어나실까요?”
“네, 좋습니다.”
* * *
“부투야 실장이 우리와의 술자리를 거부한 이유가 뭘까?”
박철헌 사장은 저녁 식사 시간 동안 대화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부투야 실장, 마히무 산업부 장관, 왈라카 수자원 장관의 표정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저녁 식사가 끝을 향해 달려갈 무렵에 부투야 실장과 마히무 장관이 작은 목소리로 짧게 대화를 나눴고, 그때부터 분위기가 급속도로 바뀌었다.
두 사람이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나눴을까 추측하다가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 놓은 상태였다.
“부회장님, 저는 부투야 실장이 삐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얘기해 봐.”
기분이 상했다는 듯 최성진 부회장의 목소리가 지극히 냉랭해졌다.
박철헌 사장은 그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가난하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투야 실장은 부회장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저녁 식사 값으로 500만 유로를 넘게 지출하는 무리수를 뒀습니다.”
“그가 비싼 와인을 사면서 내 환심을 사려고 했다는 얘기인데… 이유가 뭘까?”
잔뜩 화나 있던 최성진 부회장의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회장님이 우간다와 탄자니아 정부에 통 크게 3억 달러씩 기부한 사실을 부투야 실장도 알고 있잖아요.”
최성진 부회장은 부투야 실장이 삐친 이유를 이제야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는 자기에게 기부금을 최대한 많이 받아 낼 목적으로 500만 유로가 넘는 돈을 사용한 것이리라.
그의 의도도 파악하지 못하고 저녁 식사 시간 동안에 기부금 얘기를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제 원인을 파악했으니,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박 사장, 내가 부투야 실장한테 얼마를 찔러 주는 게 적당할까?”
“계산상으로는 24억 달러입니다만, 25억 달러 정도를 찔러 주면 좋아할 겁니다.”
“하아…….”
어마어마한 금액이 언급되자, 심경이 복잡해진 최성진 부회장이 차창 밖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회장님, 설마 25억 달러를 혼자서 부담하실 생각은 아니겠지요?”
“맞아! 완커건설이 있었지?”
“오늘은 기부금에 대해서 살짝 운만 띄워 놓고, 내일 천쥐펑 부회장과 3자 미팅 때 금액을 결정하는 게 어떨까요?”
“3자 미팅이라면… 부투야 실장을 또 만나자는 거야?”
“그가 송 회장을 만나기 전까지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확답을 받아 놓으셔야 하잖아요.”
“무슨 말인지 알았어.”
윙윙―
그때, 임지태 회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크리용 호텔 비즈니스 룸에서 무세베니 실장, 칼리마니 실장과 함께 기부 증서를 작성하고 있는 성진수 실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성 실장, 무슨 일인가?”
[회장님, 기부 증서 작성이 완료됐는데, 어떻게 할까요?]
“내가 지금 크리용 호텔로 가고 있는 중이니까 30분 정도 후에 로비에서 만나자고.”
[이곳은 왜 오시는 겁니까?]
“부투야 실장의 숙소에서 한잔하기로 했거든.”
* * *
같은 시각.
겨울도 문두야 부통령과 통화 중에 있었다.
“언제쯤 이곳에 도착할 예정입니까?”
[30분 정도 걸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칼리마니 실장한테 전화 받았는데, 기부 증서 작성이 완성됐다고 합니다.]
“이제 임지태 회장의 사인만 남은 상태인가요?”
[네. 술자리를 시작하기 전에 기부 증서를 받을 생각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제 옆에 부투야 실장이 앉아 있는데, 한 부사장님과 통화하고 싶답니다.]
“네, 바꿔 주세요.”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부투야 실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한 부사장님, 최 부회장한테 잉가 3댐 건설공사는 H&J 컨설팅과 계약할 거라고 통보했습니다.]
“최 부회장의 반응을 체크해 보셨나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덤덤한 반응이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최 부회장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큰 선물을 안겨 줄까요?]
겨울은 조금 전에 장대산 부사장과 나눈 대화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부투야 실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최소 24억 달러라고 합니다.”
[네?! 뭐라고요!]
깜짝 놀라 소리치는 부투야 실장의 목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24억 달러는 탄자니아와 우간다가 기부 받은 금액과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의 규모에 의해서 결정됐다고 합니다.”
[최 부회장이 적자를 감수하면서 그런 무모한 결정을 내린 이유가 뭘까요?]
“콩고민주공화국에 기부한 금액만큼 설계 변경을 통해서 공사비를 늘릴 생각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반대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정말 죄송스럽게도 콩고민주공화국은 반대하실 자격이 없습니다.”
[왜요?]
“잉가 3댐 건설공사를 감독할 권리는 H&J 컨설팅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으하하하!]
겨울의 의도를 이해했다는 듯 부투야 실장이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실장님, 제 귀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치료비를 제가 부담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할 말이 없네요. 기부 금액은 완커건설의 천쥐펑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알았어요. 나는 그때까지 모른 척하고 있을게요.]
“오늘 밤에 임지태 회장의 지갑을 탈탈 털어 주십시오.”
[하하, 염려 말아요.]
딸깍.
겨울이 통화를 끝내자, 송훈석 회장이 말을 걸어왔다.
“한 부사장, 우리도 한잔하면서 지켜보는 게 어떨까요?”
“오늘 밤에 진귀한 와인을 맛보시려면, 조금만 마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겨울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눈치챘다.
최성진 부회장이 룸서비스로 주문한 와인 일부를 가로채서 마실 생각인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겨울에게 물었다.
“회장님, 저희는 양아치가 아닙니다.”
“진귀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묘안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요?”
“네, 물론입니다.”
“하하, 알았어요.”
* * *
부투야 실장 스위트룸.
임지태 회장은 성진수 실장 등이 작성해 온 기부 증서에 큼지막하게 자필 서명을 한 후,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에게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두 부통령님, 저희 회사의 선행을 널리 알려 주십시오.”
“다음 주에 기사화 될 수 있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우리 탄자니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투야 실장이 부러운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두 분은 정말 기분이 좋겠네요?”
“하하, 이를 말씀입니까?”
최성진 부회장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부투야 실장님, 제가 콩고민주공화국에도 기부해 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언제까지 기다리면 될까요?”
“중국에 본사를 둔 완커건설의 천쥐펑 부회장이 내일 정오 무렵에 프랑스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천 부회장이 이곳으로 오는 이유는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 때문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내일 점심 식사를 천 부회장과 같이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말 미안합니다만, 내일 점심은 H&J 컨설팅의 정명훈 사장님과 예약되어 있습니다.”
“하는 수 없군요. 제가 내일 천 부회장을 만나서 상의한 후, 기부 금액을 결정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이용해서 뿌요네 회장이 입을 열었다.
“최 부회장님, 비즈니스 얘기는 조금 있다가 나누고, 이제 술을 주문하도록 할까요?”
“네, 좋습니다.”
잠시 후, 알렝 뒤르프라는 이름을 가진 수석지배인이 뿌요네 회장의 호출을 받고 달려왔다.
“뿌요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룸서비스로 와인을 주문할까 하는데, 적당한 와인이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이분께서 와인을 주문할 예정이니까, 친절하게 조언해 주세요.”
뿌요네 회장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임지태 회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손님, 어떤 와인을 준비해 드릴까요?”
임지태 회장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최성진 부회장과 와인을 어떻게 주문할지 얘기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이 호텔에서 제일 비싼 와인을 모두 가져다주세요.”
“손님, 와인 한 병에 30만 유로가 조금 넘는데… 상관없습니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한 병 씩 마신다고 가정하면… 안주까지 400만 유로면 충분하겠지.’
재빨리 암산을 끝내고 뒤르프 수석지배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VIP 분들과 마시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죠.”
“안주는 어떻게 준비해 드릴까요?”
“조금 전에 저녁 식사하고 왔으니까, 배부르지 않은 것으로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룸서비스 비용은 체크아웃 할 때 계산하면 되겠죠?”
“네, 물론입니다.”
약 20분 정도 지난 후.
임지태 회장은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웨이터들이 카트에 실어온 와인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절대로 마실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뒤르프 수석지배인과 대화를 시작했다.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저희는 손님께서 주문한 대로 가지고 왔을 뿐입니다.”
방금 전에 뒤르프 수석지배인과 나눈 대화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제일 비싼 와인을 ‘모두’ 가져다 달라고 했다.
임지태 회장은 자신의 입을 꿰매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100% 자기 과실이기 때문에 그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뒷수습에 신경을 집중할 때였다.
“그나저나 모두 몇 병입니까?”
“50병입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마시지 못하면, 반납이 가능합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병에 부착되어 있는 상표가 훼손되면 반납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 마시기 전에 반납해도 되겠네요?”
“반납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그 방법이 좋을 듯싶습니다.”
반면에 최성진 부회장은 마음이 불안 초조했다.
부투야 실장이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임지태 회장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라도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 주면 안 된다.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와인을 마시지 못해서 남기더라도 와인 값은 모두 계산해 줄게요.”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