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02화 (202/328)

[202화] 연인들의 전용 포즈

“오늘 밤에도 멋진 활약 부탁드립니다.”

딸깍.

전화를 끊은 하도진 실장이 웃으며 겨울에게 보고했다.

“무세베니 실장인데, 모든 일이 저희가 예상한 대로 마무리되었답니다.”

“그거 잘됐네요.”

“최 부회장과의 미팅은 언제가 좋을까요?”

“완커건설의 천쥐펑 부회장과 같이 만나 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월요일 이후로 일정을 잡겠습니다.”

하도진 실장이 겨울의 숙소에서 떠나자,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있던 호영이 입을 열었다.

“겨울아, 우리 공항에 조금 일찍 나가 볼까?”

“왜?”

“호텔에서 뭉그적대는 것보다 그게 나을 것 같아서.”

겨울은 호영의 의도를 대충 감 잡았다.

부투야 실장이 프랑스에 도착 예정 시간은 저녁 6시 30분 무렵.

따라서 약 네 시간 정도 여유가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런 얘기를 꺼낸 배경에는 공항에 가기 전에 파리 시내를 둘러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자.”

외출 준비를 끝마치고 로비로 내려간 겨울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마주쳤다.

봄 날씨와 어울리게 화사하게 차려입은 송지유가 그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겨울은 호영에게 백만 볼트 레이저 광선을 쏘아 보내주고 송지유에게 다가갔다.

“지유 씨, 이제 가실까요?”

“네?”

순간, 겨울은 크게 당황했다.

호영이 송지유에게 파리 시내를 함께 관광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녀의 놀라는 반응을 보아하건대 자기가 잘못 짚은 것이 분명했다.

겨울은 얼른 사과의 말을 꺼내들었다.

“지유 씨, 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한 부사장님, 무엇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지유 씨, 제가 대신 얘기해 줄게요.”

곤란해하는 겨울을 위해서 호영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네, 얘기해 보세요.”

“지금 한 부사장은 지유 씨가 우리와 함께 파리 시내를 관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미안해서 어쩌죠? 저는 양경운 과장님과 파리 시내를 둘러볼 예정이었어요.”

“마침 잘됐네요. 우리 넷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상관없는데, 양 과장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때, 양경운 과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호영이 손을 흔들어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 주자, 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말을 붙여왔다.

“한 부사장님, 어디 외출하십니까?”

“부투야 실장님을 마중하러 공항에 가기 전에 파리 시내를 잠깐 구경해 보려고 합니다.”

“저희도 동행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이제 출발하실까요?”

“부사장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누가 또 오기로 했습니까?”

“파리 시내를 잘 알고 있는 가이드를 불렀습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깔끔한 차림의 남자가 다가왔다.

겨울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작년 8월 초에 콩고민주공화국에서의 핸드폰 기지국 신설과 업그레이드 입찰 당시에 통역 자격으로 출장 온 남선욱이었다.

겨울은 활짝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재회의 인사를 건넸다.

“남 선배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어, 여기서 뵙게 되네요?”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나중에 합류하셨습니까?”

“네. 어젯밤에 도착했습니다.”

“여기 이 친구는 제 고향친구이자, SH무역 직원인 정호영 씨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대한 그룹에…….”

서로 상견례가 끝나자, 겨울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남 선배님, 저희는 아무리 늦어도 7시까지는 공항에 나가 봐야 합니다. 그 점을 고려해서 스케줄을 짜 주십시오.”

“일단 파리에 왔으니 센강에 가서 유람선부터 타도록 하죠. 그다지 멀지 않으니까, 걷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센강의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한 겨울 일행은 허탈한 마음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찾는 도시답게 유람선 관광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겨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남선욱에게 말을 건넸다.

“남 선배님, 저희가 유람선을 타려면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할까요?”

“이 정도 인파면… 최소 한 시간 반 정도는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요.”

“다른 관광지는 어떨까요?”

“이곳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기다렸다가 타도록 하죠.”

“저도 찬성입니다.”

양경운 과장부터 송지유까지 유람선 타기를 원했다.

유람선을 타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양경운 과장과 남선욱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선욱 씨, 한 부사장님의 신분을 알고 있나?”

“네. 조 실장님께 들었습니다.”

“회장님도 상당히 어렵게 대하고 있으니까, 선욱 씨도 참고하고 있으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선욱 씨는 한 부사장님을 언제 처음 만났어?”

“작년 7월에 콩고민주공화국에 출장 갔을 당시에 처음 만났습니다.”

“심심한데, 그때의 일을 얘기해 줄 수 있어?”

“저희가 콩고민주공화국에 출장 간 이유는…….”

두 사람과는 달리 뒤에 서 있는 겨울과 호영, 송지유는 다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유 씨, 제가 잘 알고 있는 친구가 솔로인데, 주위에 괜찮은 여자가 있을까요?”

“설마… 한 부사장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 알고 계셨네요?”

“한 부사장님은 여친이 있잖아요.”

겨울은 송지유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오해를 하기 전에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지유 씨, 강희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걔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요.”

“한겨울, 강희와 나를 엮으면 죽는 줄 알아라.”

제 발 저린 호영이 선수 치고 나왔다.

겨울은 송지유에게 호영이라고 정확히 얘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완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누가 뭐래? 너하고 강희는 여사친 사이라며.”

“그렇다면, 장 부사장을 말하는 거야?”

“당연히 아니야.”

“그럼 누구를 말하는 거야?”

“뭐, 있어. 홍길동이라고.”

“죽을래?”

“호호호.”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송지유가 이 상황이 즐거운 듯 선홍색 잇몸을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지유 씨, 제 질문은 언제 대답해 주실 건가요?”

“지금은 딱히 생각나는 여자가 없네요. 나중에 생각나면 고려해 보도록 하죠.”

“겸사겸사 저도 어떻게 안 될까요?”

“너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잖아.”

겨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호영이 송지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후, 관심의 속도를 줄였다.

“너는 농담을 진담으로 받는 버릇은 언제 고칠 예정이냐?”

“농담이었어?”

“어. 나는 빠질 테니까, 너라도 잘해 봐라.”

“네가 빠지면 어떻게 해? 그럼 나도 빠져야 하잖아.”

송지유는 아쉬운 마음에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이 누구를 상대로 대화 나누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을 두 사람한테 밝힐 생각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유치찬란한 티격태격은 계속됐다.

“웬일이야? 단독 찬스를 마다하고?”

“나는 페이스메이커가 같이 뛰어 주지 않으면, 금방 지치는 스타일이거든.”

“내가 페이스메이커로 뛰어 주면, 완주할 수는 있고?”

“완주가 무슨 의미가 있냐? 1등이 중요한 거지.”

“오호라∼ 다시 물어볼게. 1등 할 자신은 있고?”

“자신감 하면 또 나 아니겠냐. 나보다 자신감이 만땅인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어?”

“어, 있어. 홍길동이라고.”

“실존인물이 아니잖아.”

“나하고 내기할래?”

겨울은 호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가 자신감을 보인 이면에는 무언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의 의도를 읽었는데, 내기에 응할 마음은 없었다.

“싫다.”

“에이, 내기에서 이길 수 있었는데.”

“호영 씨, 진짜로 홍길동이 실존 인물이에요?”

송지유가 잔뜩 호기심을 품고 물어왔다.

“네. 프로축구 선수 중에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 선수가 자신감이 충만한가 봐요?”

“네. 운동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감 하나는 타고났거든요.”

“아,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윙윙―

그때, 겨울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꺼내서 발신자를 확인하니, 장대산 부사장이었다.

“네, 장 부사장님.”

[한 부사장님, 유람선 말고, 모터보트를 타시는 것이 어때요?]

“갑자기 모터보트는 왜요?”

[한 부사장님을 경호하고 있는 경호원이 연락을 취해 왔는데, 앞으로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유람선을 탈 수 있을 거랍니다.]

겨울은 유람선을 탔을 경우를 짧게 생각해 보았다.

‘지금이 3시 30분이니까, 두 시간을 기다리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7시까지 공항에 도착할 수 없었다.

모터보트를 타는 문제는 자기 혼자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일행들의 의사를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장 부사장님, 끊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알았어요.]

겨울은 일행들에게 장대산 부사장의 제안을 전달하고 의사를 물었다.

줄을 서는 게 싫던 모양인지, 일행들 모두 모터보트를 타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장 부사장님, 오케이했습니다.”

[선착장으로 내려오시면, 모터보트에 승선해 있는 제가 보일 겁니다.]

“알았어요. 지금 출발할게요.”

부앙∼

모터보트가 힘찬 엔진소리를 토해 내며, 센강 선착장을 박차고 나갔다.

겨울은 센강의 상쾌한 바람과 강 양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고풍스러운 풍경을 보고 넋을 잃어버렸다.

생머리를 휘날리며 센강의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 송지유도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유 씨, 무섭지 않아요?”

“괜찮아요. 한 부사장님 덕분에 센강에서 모터보트도 타 보고, 정말 고마워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저 말고 모터보트를 운전하고 있는 장 부사장한테 고맙다고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하, 그렇죠.”

잠깐 대화가 중단된 틈을 호영이 비집고 들어왔다.

“한 부사장, 장 부사장님은 도대체 못하는 게 뭐냐?”

“나도 잘 모르겠다. 너도 장 부사장한테 고맙다고 인사해라.”

“알았다.”

힘찬 야생마처럼 센강을 힘차게 달리던 모터보트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정지했다.

시동을 끈 장대산 부사장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일행들에게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온답니다.”

“아, 그렇군요.”

에펠탑이 보이도록 카메라를 들고 서로를 찍어 주던 도중에 양경운 과장이 한마디 꺼내들었다.

“지유 씨, 총각들 옆에 서 봐요. 시커먼 남자들만 화면에 나오네.”

“그럴까요.”

송지유가 몸을 움직이자 호영이 순발력을 발휘해서 그녀를 자기 쪽으로 잡아끌었다.

“지유 씨, 저랑 사진 찍어요.”

송지유와 단독 투샷을 찍는 데 성공한 호영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겨울과도 단둘이 찍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몰아갔다.

“한겨울, 송지유 씨 옆에 서 봐. 네가 언제 이렇게 예쁜 아가씨와 사진을 찍어 보겠냐?”

겨울은 군말 없이 송지유 옆에 섰다.

호영의 말대로 송지유와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을 기회가 언제 또 있겠는가.

겨울이 송지유와 나란히 서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양경운 과장은 화면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쯧쯧, 각목이 따로 없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어떻게요?”

“한 부사장님은 왼손으로 지유 씨의 어깨를 감싸고, 지유 씨는 오른손으로 한 부사장님의 허리를 두르세요.”

겨울은 난감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양경운 과장이 말하는 포즈는 연인들의 전용 포즈가 아닌가.

자기는 얼마든지 응해 줄 용의가 있었지만, 송지유가 싫어할 수도 있었다.

즉시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나중에 추억도 되고 좋을 것 같은데요?”

싫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한 겨울은 과감하게 왼손으로 송지유의 어깨를 감쌌다.

그러자 송지유도 자연스럽게 겨울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이 광경을 본 호영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두 분 표정이 너무 굳어 있잖아요. 신혼여행 온 부부처럼 활짝 웃어 봐요.”

“정호영, 그러다 죽는다.”

겨울의 위협에 끄떡도 하지 않고 호영의 장난은 계속 이어졌다.

“표정이 너무 밋밋하니까, 남은 손으로는 하트를 만드는 것이 어때요?”

“오오, 아이디어 죽이는데요?”

이번에는 장대산 부사장까지 장난 대열에 합류했다.

“장 부사장님까지 왜 그러세요?”

“그러기 싫으면 행복한 표정을 취하시든가요.”

“험, 알았어요.”

두 사람의 표정이 부드러워지자, 기다리고 있던 양경운 과장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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