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3억 달러에 숨어 있는 깊은 뜻
최성진 부회장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뿌요네 회장을 만나서 담판 지을 생각을 진즉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그와 안면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 프랑스 주재 한국 대사에게 부탁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문두야 부통령이 뿌요네 회장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준단다.
역시 뇌물의 힘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문두야 부통령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럼 내일 오전에 뿌요네 회장을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내일은 주말이라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문두야 부통령은 호기롭게 뿌요네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하필이면 통화 중이었다.
민망함에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에 다행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두야 부통령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방금 전에 누군가와 통화 중이던데, 저 때문에 전화를 끊으신 것 아니십니까?”
[한 부사장님과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마음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사실 문두야 부통령은 마음 한구석에 걱정거리가 남아 있었다.
자신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뿌요네 회장이 제안을 거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울이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듯 뿌요네 회장에게 전화해서 이곳의 상황을 전달한 모양이다.
마음속으로 겨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그와 통화를 이어 나갔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한 부사장님은 저한테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것을 추천했으니까, 참고하십시오.]
문두야 부통령은 겨울의 의도를 단숨에 읽었다.
뿌요네 회장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면서 최성진 부회장의 의심을 잠재우라는 의미였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뿌요네 회장님, 제 일행들을 위해서 스피커폰으로 통화해도 될까요?”
[문제없습니다.]
즉시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뿌요네 회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뿌요네 회장님, 한국의 YCM 그룹을 알고 계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저하고 마사카 부통령님이 지금 YCM 그룹의 임지태 회장님과 미팅하고 있습니다.”
[임 회장님이 두 분을 찾아간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입니다.”
[너무 늦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문두야 부통령은 뿌요네 회장이 이 말을 꺼낸 이유를 단숨에 캐치했다.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송유관 건설공사를 H&J 컨설팅이 수주했다고 은연 중에 밝힌 것이리라.
물론 최성진 부회장은 어떤 영문인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겠지만.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맞장구를 쳐 주기로 결정했다.
“뿌요네 회장님, 송유관 건설공사를 실행하는 업체가 대한건설로 결정됐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정말 미안한 부탁입니다만, 내일 임 회장님을 만나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문두야 부통령님께서 이렇게 임 회장님을 적극 밀어주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저하고 마사카 부통령님이 YCM 그룹 측으로부터 거액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있던 최성진 부회장은 화들짝 놀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뇌물을 받으면 뒤탈을 우려해서 철저하게 숨긴다.
그런데 문두야 부통령은 자신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마치 자랑하듯 떠벌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자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옆에 앉아 있던 임지태 회장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매형, 아프리카는 뇌물 받은 것은 떳떳하게 자랑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까?”
“설마 그러겠어?”
“그럼 저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두 사람의 속닥대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제가 임 회장님께 점심 식사를 대접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뿌요네 부통령님,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보는 눈이 있으니까 12시에 제 집으로 오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딸깍.
뿌요네 회장과 통화를 끝낸 문두야 부통령은 일부러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문두야 부통령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최 부회장님께 선물 받은 것에 대한 몫은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아, 고작 통화 하나 가지고 3억 달러를 꿀꺽 삼키겠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를…….’
최성진 부회장은 속으로 한마디 해 주고, 문두야 부통령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야 물론입니다.”
“뿌요네 회장의 저택 주소는 칼리마니 실장이 알려 줄 겁니다.”
그 통화를 옆에서 지켜본 마사카 부통령은 초조한 마음이 앞섰다.
문두야 부통령은 본인에게 부여된 역할을 120% 수행하고 있는 반면, 자기는 아무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무세베니 실장이 귓속말로 말을 걸어왔다.
“이제 부통령님 차례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전에 한 부사장님한테 문자를 받았는데, 부투야 실장님께서 전화하신답니다.”
“그거 잘됐네.”
윙윙―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문두야 부통령님, 최 부회장님, 잠시 대화를 중단해 주십시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콩고민주공화국의 키부토 부투야 비서실장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얼른 통화해 보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마사카 부통령은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부투야 실장님께서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방금 전에 한 부사장님께 작전대로 진행하라는 내용으로 전화 받았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내일 저녁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습니다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내일 아침 일찍 프랑스로 출발하면, 오후에 도착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내일 저녁 식사를 저희와 같이하실까요?”
[대한 그룹의 송훈석 회장님과 저녁 식사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송 회장님께는 사정이 생겨서 모레 도착한다고 말씀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제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은 한국에서 YCM 그룹의 임지태 회장님께서 프랑스에 입국하셨습니다. 그분과 내일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어떨까 해서 그럽니다.”
[제가 그분을 무슨 이유로 만나야 됩니까?]
“YCM 그룹에서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사카 부통령의 통화를 들으면서 박철헌 사장은 역시 뇌물의 힘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오늘 오후에 무세베니 실장과 칼리마니 실장을 만난자리에서는 송유관 건설공사에 대해서만 살짝 언급했지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사카 부통령은 3억 달러의 뇌물이 부담스러웠는지, 자신들에게 잉가 3댐 프로젝트를 넘겨주기 위해서 스스로 비즈니스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송훈석 회장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면서까지.
박철헌 사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저도 YCM 그룹의 임 회장님을 만나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제 숙소가 리츠 파리 호텔입니다.]
“부투야 실장님과 수행원들의 숙소는 임 회장님께서 파리에서 제일 비싼 호텔을 예약해 주실 겁니다.”
[그나저나… 마사카 부통령님이 YCM 그룹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다름이 아니라, 임 회장님이 우리나라와 탄자니아에 각각 3억 달러씩 기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두 인간들이 자기에게 정부 계좌를 건네준 목적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자기가 두 인간들에게 각각 3억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뇌물을 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계획대로 YCM건설이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하지 못할 경우, 두 인간들의 목을 졸라서 반대급부를 받아 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자신의 구상이 한순간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두 인간들은 뇌물이 아니라 기부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고 주장할 것이 빤했다.
게다가 예금주까지 정부 계좌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이 먹혀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두 인간들과 안면을 튼 것과 뿌요네 회장을 만나도록 해 준 대가로 6억 달러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버스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저 멀리 떠나 버린 상태인데.
최성진 부회장이 속 쓰려 하는 사이, 두 사람의 유쾌한 통화가 끝이 났다.
“하하하, 그럼 하루 일찍 들어가겠습니다. 내일 저녁때 뵙겠습니다.”
딸깍.
마사카 부통령이 통화를 끝내자, 무세베니 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부통령님, 부투야 실장님께 전화해서 수행원 명단을 받아 주십시오.”
“왜요?”
“임 회장님이 호텔 객실을 예약하는 데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렇게 사소한 문제는 무세베니 실장이 성진수 실장과 알아서 해결하세요.”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무세베니 실장과 대화를 종료한 마사카 부통령은 푸근한 표정으로 최성진 부회장에게 말을 건넸다.
“최 부회장님, 저도 선물 받은 것에 대한 몫은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성진 부회장은 속 쓰려서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게임 끝난 일이었다.
나중을 위해서 쿨하게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설영석 이사는 최성진 부회장이 화가 잔뜩 났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의 화를 조금이나마 풀어 주지 않으면, 오늘밤은 매우 긴 밤이 될 터였다.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저는 선물의 가치에 비해서 마사카 부통령님이 역할을 100% 수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계속 얘기해 보세요.”
순간, 문두야 부통령의 스위트룸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설영석 이사는 마사카 부통령의 이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내일 저녁, 임 회장님이 부투야 실장님을 만나서 식사할 때 마사카 부통령님께서 수행해야 할 역할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YCM 그룹이 잉가 3댐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도록 나보고 바람을 잡아 달라는 얘기인가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아하, 난 또 뭐라고. 그 정도 역할은 내가 얼마든지 수행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사카 부통령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
같은 시각.
정명훈 사장의 스위트룸에서 아래층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송훈석 회장은 화가 치솟아 올랐다.
대한 그룹에 소속된 설영석 이사가 YCM 그룹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이적 행위를 하고 있는데,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 일 터였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서동호 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서 실장, 우리나라로 복귀하는 즉시 설 이사를 잘라 버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때, 하도진 실장이 조심스럽게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회장님, 제가 설 이사한테 쌓인 원한을 갚아 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도 하 실장과 같은 생각입니다.”
겨울이 한마디 거들었다.
“한 부사장도 저 인간한테 쌓인 원한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 실장한테 들었는데, 설 이사는 기회주의자의 표본이라고 합니다. 그를 제대로 이용하면, 최 부회장 측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겨울의 제안을 들은 송훈석 회장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조병석 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 실장, 저 인간을 제대로 활용할 방안을 강구해 보세요.”
“네, 회장님.”
조병석 실장과 짧은 대화를 끝마친 송훈석 회장은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한 부사장, 저는 임 회장이 대놓고 날뛰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수가 없을까요?”
“제가 문두야 부통령님께 임 회장의 주머니를 거덜 내 보라고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네? 그게 가능합니까?”
“뿌요네 회장님은 와인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으하하하!”
겨울의 의도를 간파한 송훈석 회장이 화통한 웃음을 터트렸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