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96화 (196/328)

[196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샤를 드골 국제공항 입국장.

박철헌 사장과 설영석 이사는 최성진 부회장과 임지태 회장을 기다리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장님, 최준하는 언제부터 이렇게 개차반이었습니까?”

박철헌 사장은 최준하를 어릴 때부터 봐 왔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재벌가의 일원으로 건방진 면이 상당히 많았지만, 컨트롤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막나가지는 않았다.

작년 신입사원 연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태어나서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좌절을 겪지 않은 그였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해고를 당하고 회사와 아버지에게 심한 질책까지 들었으니,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최준하는 망나니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엉망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1년 전이라면… 그 사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 그나저나 한겨울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 봤나?”

“프랑스에 출장 오기 며칠 전에 우연찮게 식당에서 만나서 짧게 대화해 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놈이 H&J 컨설팅에서 맡는 역할이 뭐야?”

“부사장입니다.”

“그렇게 어린놈이 부사장이라니… H&J 컨설팅도 별 볼 일 없는 회사겠군.”

박철헌 사장은 쉽게 얘기하고 있었으나, 설영석 이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에 H&J 컨설팅이 별 볼 일 없는 회사였다면, 송훈석 회장이 대놓고 한겨울에게 정성을 들이지는 않았을 거니까.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 박철헌 사장이 짜증낼 것이 빤하기 때문에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저도 사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망나니 놈하고 통화는 해 봤나?”

“스위스에서 잘 놀고 있답니다.”

“쯧쯧, 그놈이 대한 그룹을 제대로 경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설영석 이사는 박철헌 사장의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대한 그룹은 송훈석 회장 쪽의 우호 지분이 50%가 넘는다.

때문에 3대 주주인 최성진 부회장이 대한 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연히 박철헌 사장도 이를 알고 있을 텐데, 최준하가 대한 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진 설영석 이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박철헌 사장의 입에서는 민감한 내용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대한 그룹의 최대 약점은 후계자가 없다는 거야.”

“송지유가 있잖습니까?”

“우리나라 최대 그룹을 송지유가 혼자서 경영할 수 있을 것 같아?”

설영석 이사도 어제까지는 박철헌 사장의 생각과 같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송훈석 회장은 송지유에게 대한 그룹의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서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오고 있었고, 그에 대한 결과물이 양경운 과장이었다.

송지유가 경영 수업을 착실하게 받은 양경운 과장의 보좌를 받는다면, 대한 그룹을 경영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밝혀 봐야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입을 다물기로 했다.

“부회장님은 최준하와 송지유를 결혼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정확히 봤군.”

송훈석 회장은 딸 바보라고 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끔찍이 송지유를 아낀다고 했다.

천하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딸을 망나니 놈과 결혼시키려 하겠는가.

‘사장님, 착각은 자유라는 말을 알고 계십니까?’

그는 마음속으로 한마디 해 주고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사장님, 그런데 송지유가 최준하를 엄청나게 싫어하고 있습니다.”

“자네는 정략결혼이라는 단어를 모르나?”

“송 회장이 뭐가 아쉬워서 정략결혼을 시키려 할까요?”

“나도 그 점이 궁금해서 부회장님께 여쭤봤는데, 방법이 있다고 하셨어.”

“어떤 방법이요?”

“이 친구야, 우리 같은 뱁새가 봉황의 뜻을 어떻게 알겠나.”

잠시 후, 기다리고 있던 최성진 부회장이 임지태 회장 등과 함께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재빨리 다가가서 목례하고 인사말을 건넸다.

“부회장님, 임지태 회장님, 프랑스 방문을 환영합니다.”

“박 사장, 어떻게 됐나?”

지금 최성진 부회장은 문두야 부통령, 그리고 마사카 부통령과의 미팅 약속에 대해서 묻고 있는 중이었다.

“숙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자고.”

“여러 사람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승합차를 준비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알았어. 빨리 출발하자고.”

“네, 부회장님.”

* * *

“박 사장, 이제 얘기해 봐.”

승합차에 오르자마자 최성진 부회장이 채근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미팅이 성사됐습니다만, 자잘한 문제가 두 개 있습니다.”

“뭔지 얘기해 봐.”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은 오늘 밤밖에 시간이 나지 않는답니다.”

“그럼 오늘 밤에 만나면 되잖아. 몇 시에 만나면 되나?”

“밤 9시부터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럼 그 시간에 만나자고 해. 또 다른 문제가 무엇인지 얘기해 봐.”

“미팅장소가 문두야 부통령의 숙소입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는 거야?”

“사실은 송 회장도 그 호텔에 묵고 있습니다.”

“음…….”

최성진 부회장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진심으로 화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덕분에 승합차 내부에는 나지막하게 엔진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난 후, 최성진 부회장이 시선을 차 안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대한 그룹 임직원들의 눈에 뜨이지 않고 문두야 부통령의 숙소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 봐.”

“지하 주차장을 통해서 계단을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문두야 부통령의 숙소는 몇 층에 위치하고 있지?”

“8층입니다.”

“그 정도면 걸어 올라가는 데 큰 문제는 없겠군.”

잔뜩 무거워져 있던 최성진 부회장의 목소리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는 의미이리라.

박철헌 사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변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겠지.”

“미팅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두 부통령의 비서실장들한테 명품 서류 가방과 각각 10만 달러를 뇌물로 지급했습니다.”

“부통령들한테 그보다 더 많은 뇌물을 지급하라는 뜻인가?”

“네, 그렇습니다.”

“알았어. 그리고 부통령들과 미팅할 때 준하도 참석시킬 수 있도록 해 봐.”

드디어 최성진 부회장의 입에서 최준하가 언급되었다.

박철헌 사장은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보고했다.

“부회장님, 준하 군은 미팅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왜?”

“내일과 모레가 휴일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스위스에 놀러 갔습니다.”

“그놈이 나를 피해서 도망친 것은 아니고?”

“저도 회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설 이사, 당신의 역할이 뭐야!”

결국 화살이 설영석 이사에게 날아들었다.

설영석 이사는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상해 놓은 변명거리를 꺼내 들었다.

“준하 씨를 잘 보살피는 겁니다.”

“그놈이 스위스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았어야지.”

“두 나라의 부통령들과의 미팅을 추진하느라 준하 씨를 감시하는 데 소홀한 점이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쯧, 하는 수 없지. 그놈은 언제 돌아온다고 하는데?”

“아무리 늦어도 일요일에는 복귀해야 할 겁니다.”

“하아, 아들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최성진 부회장의 한숨 소리가 바닥을 뚫고 길바닥에 흩어졌다.

* * *

그 시각, 겨울은 숙소에서 호영, 장대산 부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부통령님과 최성진 부회장과의 미팅 시간은 확정됐습니까?”

“방금 전에 칼리마니 실장한테 전화 받았는데, 예상대로 9시에 시작하는 것으로 확정됐답니다.”

“최 부회장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그때, 장대산 부사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부사장님, 제가 나서 볼까요?”

그의 말은 문두야 부통령의 숙소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겠다는 뜻이었다.

“최 부회장 측에 발각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저희의 능력을 너무 낮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호영은 장대산 부사장이 최준하 등이 식사하는 레스토랑에 침투해 대화 내용을 녹음해 온 것을 보고 이미 그를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그의 얘기를 듣는 순간,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라는 표현은 그를 돕는 조력자가 있다는 뜻.

즉, 장대산 부사장은 레스토랑에서 직접 침투해서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이 아니라 조력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란 뜻이었다.

‘장 부사장님을 돕는 조력자가 누구지?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걸로 봐서는 비밀 경호원일 거 같은데… 그럼 겨울이에게도 비밀 경호원이 붙어 있으려나?’

호영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실시간으로 대화 내용을 지켜볼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어디서 지켜보는 게 좋을까요?”

“정명훈 사장님의 숙소 아래층이 문두야 부통령님의 숙소입니다.”

“문두야 부통령한테 의사타진부터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장대산 부사장이 숙소 밖으로 나가자, 호영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겨울아, 장 부사장님의 또 다른 신분이 뭐냐?”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

“대답해 주기 싫다는 뜻이겠지?”

“어.”

“알았다. 더 안 물어볼게.”

“잘 생각했어.”

문두야 부통령한테 허락을 받은 장대산 부사장은 즉시 정명훈 사장을 찾아가서 겨울의 의도를 전달했다.

“장 부사장, 발각되지 않을 자신 있지?”

“물론입니다.”

“세팅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넉넉잡고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송 회장님도 초대하는 게 맞겠지?”

“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들만 초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장대산 부사장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정명훈 사장은 신지훈 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송 회장님, 서 실장님, 조 실장님을 초대하고,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과 안주를 준비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 * *

“정 사장, 우리를 초대한 이유를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송훈석 회장이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회장님의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같이 술 한잔하자고 부른 것이 아니라요?”

“술은 이벤트를 보면서 마시기 위해 준비한 겁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장 부사장이 자세하게 설명해 줄 겁니다.”

정명훈 사장이 장대산 부사장한테 발언할 기회를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이벤트는 최성진 부회장과 두 명의 부통령들이 미팅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겁니다.”

“그럼 최 부회장이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에 찾아온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믿기 어려운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심성 많은 사람이 이곳에 나타날 생각을 했다니.

그는 당연히 제3의 장소에서 미팅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반대로 대한 그룹 임직원들이 쫙 깔려 있는 이곳을 찾아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 부사장, 최 회장이 우리 회사 직원들한테 발각될 것을 각오하고 이곳에 오는 이유를 알고 있나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입니다.”

“하긴…….”

송훈석 회장이 인정한다는 듯 끝말을 흐리자, 서동호 실장이 곧바로 질문 대열에 뛰어들었다.

“최 부회장이 우리 회사 직원들한테 발각되지 않고, 문두야 부통령의 숙소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지하 주차장을 통해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을 계단에는 얼씬거리지 말라고 해야겠네요?”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호영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대화에 끼어들 군번은 아니기 때문에 벌렸던 입을 다시 다물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일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호영이었다.

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송훈석 회장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호영 씨,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세요.”

“8시 40분부터 9시까지 대한 그룹 직원들을 아예 숙소에 머무르게 하는 게 어떨까요?”

“으하하하!”

호영의 의도를 파악한 송훈석 회장이 화통한 웃음을 터트렸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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