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95화 (195/328)

[195화] 밀당의 결과

설영석 이사는 화가 치솟아 올라서 주체할 수 없었다.

두 명의 비서실장과 헤어진 지 두 시간 후, 그는 약속한 시간이 되어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곧바로 로비로 내려오겠다고 말해 놓고 30분이 지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서 늦어지는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아쉬운 사람은 자기였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애간장만 태울 뿐이었다.

“하아… 미치고 팔짝 뛰겠네.”

허공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뱉고 있던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무세베니 실장과 칼리마니 실장이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여간 아프리카 놈들… 동작 굼뜬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휴.”

그는 혼잣말을 남기고 두 사람한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무세베니 실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있는 설영석 이사를 보는 순간, 자신들의 작전이 먹혀들었다고 판단했다.

사실 자기들이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내려온 이유는 하도진 실장의 원한을 조금이나마 갚아 주려는 작은 의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를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럴듯한 변명을 꺼내 놓았다.

“설 이사님, 마사카 부통령님의 긴급한 지시를 처리하느라 늦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당연히 이해합니다.”

“굳이 전화로 얘기해 줘도 되는데,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네놈들한테 뇌물을 주기 위함이다. 됐냐?’

이 말이 식도를 타고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으나, 설영석 이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박철헌 사장님이 두 분께 인사드리기를 원해서 부득불 뵙자고 한 것입니다.”

‘하, 우리가 네놈의 속셈을 모르고 있을 것 같아?’

설영석 이사와 마찬가지로 무세베니 실장도 속마음을 꺼내 놓지 못했다.

“박 사장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호텔에 투숙하고 계십니다.”

“우리보고 그 호텔에 같이 가자는 말씀인가요?”

“네.”

“이것 참…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무세베니 실장은 탐탁지 않은 반응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물론 설영석 이사도 그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아쉬운 사람은 박철헌 사장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가 그들을 만나러 찾아오는 것이 이치에 맞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그가 이곳에 오면 대한 그룹 임직원들과 부딪힐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박철헌 사장이 이곳에 온 사실이 송훈석 회장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 것만은 분명한 사실.

그러니 어쩔 수없이 변명거리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박 사장님이 영국에서 돌아오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독이 덜 풀린 상태입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세베니 실장님, 늦은 우리 잘못도 있으니까 박 사장님을 만나러 갑시다.”

의외로 칼리마니 실장이 설영석 이사의 편을 들어 주었다.

“할 수 없지요. 그렇게 합시다.”

‘휴우… 다행이군, 정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설영석 이사였다.

* * *

박철헌 사장의 스위트룸.

설영석 이사는 빠르게 무세베니 실장과 칼리마니 실장을 박철헌 사장에게 소개시켰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박철헌 사장은 본격적인 안건을 꺼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판단 내리고,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먼저 꺼내 들었다.

“칼리마니 실장님, 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산을 등반해 보는 겁니다.”

“박 사장님은 등산을 좋아하십니까?”

“건강관리를 위해서 꾸준히 산에 다니고 있습니다.”

“한국은 등산하기 좋은 산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하하, 그런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방문하는 날이 오면, 박 사장님과 같이 등산하고 싶네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무세베니 실장은 이 정도면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인 안건을 꺼내 들었다.

“박 사장님, 최성진 부회장님이 문두야 부통령님과 마사카 부통령님을 별도로 만나려고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제부터가 메인 게임이었다.

박철헌 사장은 두 사람 중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럴듯한 답변거리를 생각해 놓은 상태였다.

다시 한번 답변거리를 차분히 되뇌고, 무세베니 실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우리나라에 YCM 그룹이라고 있는데, 알고 계십니까?”

“몇 년 전에 한국 대통령님께서 우리 우간다를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임지태 회장님께서 수행원으로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갑자기 임 회장님 얘기를 꺼낸 이유가 뭡니까?”

“최 부회장님의 부인이 임 회장님의 누나입니다.”

“그렇군요. 계속 말씀해 보세요.”

“YCM 그룹은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성과가 신통치 않은 상태입니다. 최 부회장님은 고전하고 있는 YCM 그룹을 도와주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도중에 문두야 부통령님과 마사카 부통령님이 프랑스에 입국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두 분께 임 회장님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서 지금 프랑스로 날아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칼리마니 실장은 박철헌 사장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들이 속을 수밖에 없도록 거짓과 진실을 교묘하게 섞어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 내고 있었으니까.

만약에 자신들이 정확한 진상을 모르고 있었다면, 거의 높은 확률로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칼리마니 실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YCM 그룹은 어느 분야에 강점이 있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건설 분야의 경쟁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입니다.”

박철헌 사장은 YCM 그룹이 송유관 건설공사에 관심이 많다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중이었다.

무세베니 실장도 눈치 백단이었기 때문에 단숨에 그의 의도를 눈치챘다.

“YCM 그룹이 우리나라, 또는 탄자니아에서 수주한 건설공사가 있습니까?”

“두 나라에는 없고, 이집트와 앙골라에서 건설공사를 수주한 경험이 있습니다.”

“마사카 부통령님께 최 부회장님의 의사를 전달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마사카 부통령님이 우간다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정이 모두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무세베니 실장님, 어렵게 시간을 내서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시간을 조금만 만들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희 측에서 와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이 백번 맞았기 때문에 박철헌 사장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인정하고 물러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

이때를 위해서 준비해 놓은 뇌물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차, 제가 두 분께 드리려고 선물을 준비해 두었는데, 깜빡 잊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철헌 사장은 침실에 들어가서 명품 서류 가방 두 개를 가지고 나와 두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박 사장님,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이하 동문입니다.”

무세베니 실장과 칼리마니 실장은 들뜬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열어 보시죠?”

“네? 뭐가 또 있다는 말씀입니까?”

“두 분께서 고국으로 돌아가실 때 기념 선물을 구입해 가시라고 약간의 용돈을 넣어 놓았습니다.”

무세베니 실장은 재빨리 지퍼를 열고 서류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100달러짜리 뭉치가 열 개 들어 있었다.

10만 달러.

사실 자기는 용돈으로 만 달러만 받아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박철헌 사장은 통 크게 열 배나 되는 금액을 안겨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는 사이, 칼리마니 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박 사장님, 성의는 정말 고맙지만, 이 용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만약에 제가 박 사장님께 거액의 용돈을 받은 사실을 문두야 부통령님께서 아시면, 크게 실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박철헌 사장은 칼리마니 실장의 의도를 단숨에 읽었다.

즉, 문두야 부통령에게도 거액의 용돈을 주라는 얘기였다.

그에게는 만남이 성사될 경우 최성진 부회장, 또는 임지태 회장이 알아서 뇌물을 줄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자기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칼리마니 실장님, 10만 달러는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적은 돈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큰돈입니다.”

설영석 이사는 칼리마니 실장의 의도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비즈니스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뇌물이 필수였고, 그 사실은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칼리마니 실장도 뇌물을 많이 받아 봤을 것이고.

그런데 그는 이상할 정도로 추위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문두야 부통령과 최성진 부회장의 만남이 불발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중이리라.

비록 미팅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그와 인연을 맺어 놓으면 득이 되면 되었지, 손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

“미팅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결코 칼리마니 실장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칼리마니 실장은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설 이사님, 제가 문두야 부통령님께 최 부회장님의 의사를 말씀드려 보고 수락하시면 용돈을 받는 게 어떻겠습니까?”

박철헌 사장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만약에 20만 달러를 뇌물로 사용하고 미팅이 불발되면, 최성진 부회장에게 질책들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그것이 노심초사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었는데, 칼리마니 실장이 자기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듯 기막힌 제안을 해 오는 게 아닌가.

기쁜 마음에 당장 오케이하고 싶었지만,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조금의 여지를 남겨 두기로 마음먹었다.

“칼리마니 실장님, 그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시는 것으로 하시고 일단 문두야 부통령님께 의사타진부터 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칼리마니 실장은 문두야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칼리마니 실장, 무슨 일이야?]

“부통령님, 제가 지금 대한 그룹에서 사장까지 역임하고, 정년퇴직하신 박철헌 사장님을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박 사장님을 만나고 있는 이유가 뭐야?]

“지금 한국에서 YCM 그룹의 임지태 회장님과 대한 그룹의 최성진 부회장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입니다.”

칼리마니 실장은 박철헌 사장에게 들은 얘기를 가감 없이 보고했다.

“…임 회장님을 만나 주실 수 있습니까?”

[한 부사장님이 알려 준 작전대로 진행해.]

“부통령님, 내일은 토탈의 뿌요네 회장님을 만나셔야 하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언제가 좋을까?]

“오늘 밤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칼리마니 실장은 문두야 부통령과 3분 정도 더 통화한 후에서야 전화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이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박철헌 사장이 번개같이 질문을 던져 왔다.

“칼리마니 실장님, 문두야 부통령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밤을 제외하고는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임 회장님께 그렇게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미팅은 문두야 부통령님의 숙소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하필이면 문두야 부통령의 숙소라니.

박철헌 사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최성진 부회장과 임지태 회장은 비밀리에 프랑스에 입국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에 두 사람이 문두야 부통령을 만나러 리츠 파리 호텔에 갔다가 대한 그룹 임직원들의 눈에 뜨이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초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두 부통령을 이곳으로 부를 수는 더더욱 없었다.

‘하아, 돌아 버리겠네.’

그때, 설영석 이사가 한국어를 사용해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사장님, 지하 주차장을 통해서 문두야 부통령님의 숙소로 올라가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대한 그룹 임직원을 만나면 어떻게 할 거야?”

“계단을 통해서 걸어 올라가면 어떨까요?”

“일단 부회장님께 말씀드려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설영석 이사와 대화를 마무리한 박철헌 사장은 칼리마니 실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문두야 부통령님께서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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