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말썽쟁이를 어찌해야 할지
하도진 실장은 겨울이 송훈석 회장에게 설명한 아이디어와 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겨울의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님, YCM건설 측에 굳이 정공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 실장님, 만약에 YCM건설이 두 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셨나요?”
하도진 실장은 겨울의 의도를 단숨에 읽었다.
송유관 건설공사와 잉가 3댐 건설공사는 YCM건설이 절대로 수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들에게 해코지를 가해 올 가능성이 높다.
겨울은 그 점을 고려해서 정공법을 사용할 생각인 것이다.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하도진 실장과는 달리 호영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한 부사장님, 정공법을 사용할 경우에 YCM 그룹이 속지 않을 가능성도 있잖아요?”
“나는 그들이 속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려 줄 수 있겠죠?”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이 있어요.”
“아, 알았습니다.”
호영의 의문을 한마디로 가라앉힌 겨울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한 부사장님.]
“부투야 실장님, 프랑스에 언제 입국하실 예정입니까?”
[일요일 오전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설마 그것을 물어보려고 전화한 것은 아니겠죠?]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부투야 실장의 센스는 보통 사람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고 겨울은 생각했다.
“사실은 잉가 3댐 공사를 노리는 회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겨울은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과 함께 행동 요령을 일러 주며 정중하게 부탁했다.
[한 부사장님,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죠?]
“실장님이 그들에게 사실대로 얘기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근거 자료는 반드시 받아 놓으셔야 할 겁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죠.]
“일요일 저녁때 뵙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떠 있는 전화번호를 확인하니 문두야 부통령이었다.
“문두야 부통령님, 프랑스 방문을 환영합니다.”
[하하, 고마워요.]
“언제쯤 이곳에 도착하실 예정입니까?”
[늦어도 20분 안에 갈 것 같습니다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두야 부통령은 저녁 7시에 프랑스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입국 수속과 이곳까지의 이동거리를 감안하면 적어도 9시는 넘어야 도착할 것인데, 20분 안에 도착한다니.
이제 8시가 갓 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입국 수속을 빨리 끝마쳤다는 건데… 아차, 문두야 부통령은 정치인이었지?’
어차피 그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재빨리 립 서비스를 날려 주었다.
“부통령님과 저녁 식사를 같이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호텔에 도착해서 전화 주시면, 부통령님의 숙소로 가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딸깍.
문두야 부통령과 통화를 끝낸 겨울은 하도진 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사카 부통령님과 사장님이 저녁 식사를 했는지 물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하도진 실장은 즉시 정명훈 사장과 마사카 부통령에게 전화 걸어서 겨울의 말을 전하고, 답변을 보고했다.
“사장님은 이미 식사하셨고, 마사카 부통령님은 문두야 부통령님과 같이 식사하려고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렇다는 말이죠?”
이 말과 함께 겨울은 핸드폰을 들어서 정명훈 사장에게 전화 걸었다.
[한 부사장, 무슨 일 있나?]
“사장님, 밤참 드실 수 있죠?”
[문두야 부통령님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말이지?]
“네.”
[알았어. 문두야 부통령님이 도착하면 연락해.]
* * *
숙소에 여장을 푼 문두야 부통령은 곧바로 겨울과 마사카 부통령에게 도착 사실을 알려 주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속속 그의 스위트룸에 모여들었다.
대부분 안면 있는 사이였기 때문에 편안하게 인사를 나눴으나, 호영과 신지훈 실장은 이들과 초면이었다.
하도진 실장은 재빨리 호영과 신지훈 실장을 문두야 부통령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상견례가 끝나자, 문두야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칼리마니가 사람 수에 맞도록 룸서비스를 주문했다.
그가 주문을 끝내자 겨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현재 대한건설 말고 송유관 건설공사를 노리고 있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미 게임 끝난 것을 노려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문제는 그 회사는 게임이 끝나지 않은 것이라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부터 제가 두 분의 행동 요령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일 오후에 대한 그룹의…….”
겨울의 아이디어를 듣고 있던 마사카 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알려 준 행동 요령대로 한다면, 박철헌 사장이 절대로 속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겨울의 말을 들어서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르다 보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에 토를 달지 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두 분은 박철헌 사장한테 긍정적으로 대답해 주시면 절대로 안 됩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그리고 문두야 부통령님은 추가로 수행해 주셔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YCM 그룹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발주한 잉가 3댐 건설공사도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부투야 실장님과의 친분 관계를 마음껏 자랑해 주십시오.”
“부투야 실장에게 미리 알려야 하겠는데요?”
“이미 통화를 완료한 상태입니다.”
그때, 마사카 부통령이 궁금한 게 있는지 발언권을 요청했다.
“한 부사장님, 박철헌 사장한테 받게 될 선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우간다의 발전을 위해서 사용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많이 받아 내야 하겠네요?”
“원하는 대로 하셔도 괜찮지만, 절대로 먼저 요구하시면 안 됩니다.”
“그야 당연한 말씀입니다.”
* * *
같은 시각.
송훈석 회장은 자신의 스위트룸에서 서동호 실장, 조병석 실장, 문세형 사장과 함께 내일 열릴 협상과 관련해서 대책 회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회장님,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내일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한 협상을 힘들게 진행하는 게 어떨까요?”
송훈석 회장은 문세형 사장과 생각이 달랐다.
“토탈 컨소시엄과 H&J 컨설팅의 계약은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하고, H&J 컨설팅과 대한건설의 협상을 최대한 어렵게 진행해야 할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H&J 컨설팅과의 협상은 내일 오후부터 진행하는 것으로 하고, 협상 테이블은 이 호텔에 마련하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조병석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회장님, 토탈 컨소시엄과 H&J 컨설팅의 계약은 언제 시작할까요?”
송훈석 회장은 조병석 실장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핸드폰을 들어 뿌요네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 회장님께서 이 시간에 웬일입니까?]
“뿌요네 회장님, 내일 아침 식사를 제가 대접했으면 하는데, 시간이 괜찮습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사실은…….”
송훈석 회장은 뿌요네 회장에게 민감한 내용까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송 회장님, 그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시겠죠?]
“한 부사장이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제가 몇 시까지 송 회장님께 가면 됩니까?]
“아침 7시까지 오시는데, 변호사를 데리고 오셨으면 합니다.”
[이유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가급적이면 내일 오전에 송유관 건설공사 계약을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서두르시는 건 아닐까요?]
뿌요네 회장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송훈석 회장도 35억 달러가 넘는 송유관 건설공사 계약을 반나절 만에 마무리하는 것은 무리수가 따른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 오전 중에 계약을 끝내 놓지 않으면, 겨울이 수립해 놓은 계획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저도 뿌요네 회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만, 최성진 부회장과 YCM건설을 물 먹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음…….]
뿌요네 회장이 생각할 것이 있는지 끝말을 흐렸다.
송훈석 회장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잠시 기다렸다.
잠시 뒤, 조금 전보다 더 차분해진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송 회장님, 이왕 이렇게 된 거 시간을 앞당기는 게 어떨까요?]
“좋습니다. 저희가 어디로 몇 시까지 가면 좋겠습니까?”
[다른 사람들 눈에 띄어 봐야 좋은 일이 하나 없으니까, 제 집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은 오늘 밤 11시 정도가 어떨까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럼 제 집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딸깍.
송훈석 회장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서동호 실장이 급하게 말을 걸어왔다.
“회장님, 협상에 참여하는 인원은 어떻게 구성할까요?”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 네 명하고 고홍석 변호사만 참석하는 것으로 하십시다.”
“실무자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음, 지유하고 양경운 과장을 데리고 가는 것으로 합시다.”
“통역은 어떻게 할까요?”
“H&J 컨설팅 측에 능력자들이 많으니까, 우리는 데리고 갈 필요가 없을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마사카 부통령과 문두야 부통령도 협상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한 부사장,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냐?”
뿌요네 회장의 저택으로 출발하기 위해서 급히 옷을 갈아입으면서 호영이 툴툴거렸다.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한 협상을 오늘 밤 11시부터 시작한단다.”
“굳이 내가 가지 않아도 되잖아.”
“혹시 네가 프랑스에 출장 온 이유를 망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뿌요네 회장님은 영어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데, 굳이 내가 필요할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군말하지 말고 따라와.”
“알았어. 그런데 오늘밤에 잠을 자기는 글렀다고 봐야 하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준비 끝났으면 내려가자.”
생각보다 일찍 술자리를 끝낸 최준하는 설영석 이사와 함께 호텔로 돌아오다가, 로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서성이는 겨울과 호영을 발견했다.
“설 이사님, 저 새끼들이 이 시간에 어디 가려고 정장을 차려입었을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
설영석 이사가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 저 멀리 송지유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최준하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저년이 나를 두고 또 바람을 피우네!”
그 말과 함께 최준하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설영석 이사는 그가 사고치지 못하도록 저지했어야 하나,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술자리에서 그에게 당한 무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불끈불끈 치솟았기 때문이다.
“네놈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 번 당해 봐야 해.”
설영석 이사는 그렇게 혼잣말을 남기고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최준하는 송지유에 다가가서 다짜고짜 시비를 걸었다.
“송지유, 저 새끼들과 어딜 가려고 그렇게 옷을 차려입은 거야?”
“…새끼?”
송지유보다 호영의 반응이 빨랐다.
“이 새끼는 또 뭐야?”
호영은 최준하를 묵사발 내 버리고 싶었지만, 술에 잔뜩 취했다는 사실 때문에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꾸했다.
“최준하 씨, 술에 취했으면 숙소에 올라가서 잠이나 자세요.”
“싫다! 이 새끼야.”
최준하가 소리를 버럭 지르고 노려보고 있을 때, 느닷없이 뒤쪽에서 불호령 소리가 들려왔다.
“최준하, 지금 뭐하는 짓이야!”
화들짝 놀라 뒤로 돌려보니, 송훈석 회장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최준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영이 자기의 무례를 송훈석 회장에게 고자질이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초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이 난감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술이 너무 많이 취해서 실언했습니다.”
“정호영 씨한테 사과하고 빨리 방으로 올라가!”
호영에게 어물쩍 사과를 끝낸 최준하는 재빨리 도망쳐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송훈석 회장이 혀를 끌 찼다.
“쯧쯧. 저 말썽쟁이를 어찌 해야 할지.”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