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의도가 무엇일까요?
약속 시간보다 먼저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 도착한 장대산 부사장과 하도진 실장은 다른 일행들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부사장님, CNOOC가 토해 낸 우간다 유전의 지분을 대한 그룹이 인수하는 데 문제가 없겠죠?”
“지금쯤이면 별다른 이견 없이 계약을 체결했을 겁니다.”
하도진 실장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CNOOC가 토해낸 우간다 유전의 지분 금액은 15억 달러.
점심 식사를 끝내고 오후 3시부터 지분 거래 협상을 시작했다고 가정할 경우, 이제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지분 거래를 종료했다고 하면, 어느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장대산 부사장은 허언하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가 계약 체결을 확신하는 이유가 있다고 여기고 무엇인지 물었다.
“토탈과 대한 그룹은 지난 2월부터 지분 거래와 관련한 협상을 진행해 왔습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그럼 저희는 내일부터 바빠지겠네요?”
하도진 실장의 얘기와는 달리 장대산 부사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송유관 건설공사는 토탈 컨소시엄이 대한 건설과 직접 계약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간다 측의 강력한 요청으로 토탈 컨소시엄은 H&J 컨설팅과 계약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중간에 H&J 컨설팅이 끼어듦으로 인해서 공사를 실행해야 할 대한 건설의 이익이 줄어들게 되었지만, 우간다에서의 원활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예상외로 바쁘지 않을 수 있어요.”
“어려움 없이 송유관 건설 공사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네, 그래요.”
“제가 모르고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까?”
“사장님이 지난 2월에 미국에 출장 갔을 당시에 기막힌 아이디어를 뿌요네 회장님께 전달해 줬습니다. 이로 인해서 토탈은 CNOOC에서 10억 달러를 페널티로 받아 냈습니다. 그 돈의 일부를 송유관 건설공사에 사용하면, 우간다 정부가 요구하는 커미션을 지급할 수 있을 겁니다.”
“빨리 진행되면 주말에 자유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네요?”
“아마도 그렇게 될 겁니다.”
“그건 그렇고, 이쯤 되니 동네북이 된 중국이 불쌍하다는 느낌마저 드네요.”
“하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장대산 부사장이 큰 목소리로 웃으며 동의를 나타냈다.
그때,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온 겨울이 다가오며 물었다.
“장 부사장님,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하 실장님이 재미있는 말씀을 하셔서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여기저기서 얻어터지는 중국이 불쌍하답니다.”
“흐흐, 중국은 앞으로도 얻어터질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떡하죠?”
“그러게 말입니다.”
잠시 후,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끝마친 송지유와 양경운 과장이 합류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겨울이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은 정호영 씨가 쏘기로 했습니다.”
“호영 씨, 잘 먹을게요.”
“저도요.”
장대산 부사장부터 양경운 과장까지 모두 겨울의 말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송지유까지 찬성표를 던지자, 심드렁하던 호영의 입가가 활짝 벌어졌다.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괜찮은 레스토랑이 있는데, 그곳에서 식사를 하시죠.”
호영의 뒤를 따라가던 양경운 과장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걸어가는 방향은 자신들의 숙소가 위치한 호텔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자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 옆에 걸어가고 있던 송지유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오빠, 호영 씨가 얘기한 레스토랑이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의 레스토랑은 아니겠지?”
양경운 과장은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했다.
숙소인 호텔에서의 저녁 식사는 회사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공짜였으니까.
“아니길 바라야지.”
두 사람의 대화를 귀담아 듣고 있던 겨울은 즉시 호영에게 한마디 했다.
“호영 씨, 만약에 우리 호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쏠 생각이면, 오늘이 제삿날이라고 알고 있어요.”
“하하, 이거 왜 이러십니까, 한 부사장님. 저는 자린고비가 아닙니다. 호텔 근처의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곳에 유명 레스토랑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어요?”
“검색도 해 보고, 블로그도 좀 뒤져 보고, 이래저래 찾아봤습니다. 궁금한 게 많으시네요?”
“흠흠, 예약은 했고요?”
“레스토랑의 면적이 상당히 넓기 때문에 자리는 충분히 있을 겁니다.”
“일단 알았어요.”
호영이 장담한 대로 레스토랑은 호텔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호영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예약하고 나올 테니까,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왜요?”
“한 부사장님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불편하지 않아요?”
겨울은 호영의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자신들은 지금 뿌요네 회장의 점심 식사 초대에 참석하느라고 정장을 입고 있었으니까.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구두와 옷을 입고 저녁 식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호텔로 돌아가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자는 말입니까?”
“호텔이 멀지 않으니까,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합시다.”
겨울의 동의를 얻어 낸 호영은 식사를 예약하기 위해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겨우 30초 정도 지났을 뿐인데, 들어갔던 호영이 뛰다시피 급하게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예약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대산 부사장이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호영 씨, 무슨 일이 있습니까?”
“레스토랑에서 최준하가 두 사람과 함께 저녁 식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두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 사람은 설영석 이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모른 사람이었어요. 제법 나이가 많아 보이기는 했는데.”
“송 회장님 수행원들 중에 한 사람 아닙니까?”
“아닙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겨울은 최준하와 저녁 식사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급 호기심이 생겼다.
바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최준하의 눈에 뜨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빤히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일행들을 안으로 들여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행들 모두 최준하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다.
겨울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안에 손님들이 많습니까?”
“평일이라서 그런지 제법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알겠습니다.”
호영과 대화를 끝낸 장대산 부사장은 시선을 겨울에게 옮기며 말을 걸었다.
“한 부사장님, 오늘 이곳에서 저녁 식사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호텔에 돌아가서 기다리시면, 최준하가 누구와 식사를 하는지,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파악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호영은 궁금증이 일었다.
장대산 부사장은 체구가 크기 때문에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면 백발백중으로 최준하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발각되지 않을 것처럼 자신 있는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었지만.
겨울 또한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고.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겨울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서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멀어져야 할 때였다.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장 부사장님, 저희는 한 부사장님의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겨울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곤혹스러웠다.
송지유와 양경운 과장이 본인들의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스위트룸으로 따라 들어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하도진 실장이 눈치껏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그들 앞에 놓았다.
“음료수밖에 대접할 것이 없네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양 과장, 이제 우리를 따라온 이유를 말해 봐요.”
사실 양경운 과장은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송지유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녀를 이곳에 혼자 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도 얼떨결에 뒤따라 온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어서 재빨리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생각해 내고, 하도진 실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스위트룸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러 왔습니다.”
“양 과장, 구경 다 했으면 이제 돌아가서 쉬셔도 됩니다.”
“실장님, 소파에 엉덩이 붙인 지 이제 1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거짓말하지 말고 정확한 이유를 얘기하세요.”
윙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자마자 겨울은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장 부사장님, 누구인지 알아냈습니까?”
[작년 11월에 대한 그룹에서 쫓겨난 박철헌 전 사장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사람이 최준하를 만난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했습니까?”
[저희 정보국 요원들이 레스토랑 안에 투입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입수하는 즉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하도진 실장이 질문을 던져 왔다.
“부사장님, 미지의 인물이 누구입니까?”
“대한 그룹 인사를 책임지고 있던 박철헌 전 사장이라고 합니다.”
송지유는 최성진 부회장의 최측근인 박철헌 전 사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프랑스에 직접 날아왔다는 의미는 최성진 부회장한테 중요한 임무를 지시받았다는 뜻이었다.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핸드폰을 손에 쥐고 먼저 겨울에게 허락을 구했다.
“한 부사장님, 박철헌 사장이 이곳에 방문한 사실을 회장님께 보고해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고마워요.”
짧게 대답한 송지유는 송훈석 회장에게 전화 걸어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한 부사장님, 회장님께서 지금 뵙자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가 봐야죠.”
* * *
“회장님, 지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서동호 실장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박철헌 전 사장이 최준하와 설영석 이사를 만나고 있다더군.”
“그놈이 이곳에 온 이유를 물어보셨나요?”
“장 부사장이 이유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야.”
“하여간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네요. 나가서도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그러게 말이야.”
잠시 후, 겨울을 포함한 다섯 명이 송훈석 회장의 스위트룸을 찾아왔다.
호영과 겨울은 레스토랑 안에서 목격한 내용과 장대산 부사장과 통화한 내용을 차례로 설명해 주었다.
“…장 부사장이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한 부사장, 박 전 사장이 이곳에 날아온 이유가 짐작되는 게 있나요?”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때, 하도진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회장님, 제가 어제 전용기에서 설영석 이사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전략기획실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지금 보니 박 전 사장이 이곳에 온 이유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나눴는지 알고 있습니까?”
“워낙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듣지는 못했습니다.”
양경운 과장은 설영석 이사가 전용기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회장님, 제가 알고 있습니다.”
“뭔지 빨리 얘기해 봐.”
“설 이사는 저희 대한 그룹이 수주할 두 건의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상당히 궁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략기획실 임원 정도라면 송훈석 회장의 프랑스 출장 목적을 당연히 알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그런데 하도진 실장과 양경운 과장의 얘기를 들어 보면, 설영석 이사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겨울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됐다.
“양 과장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나?”
“설 이사가 저한테도 물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해 줬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알았어.”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겨울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던 점에 대해 물었다.
“내가 대답해 줄게요.”
서동호 실장이 대답을 자처하고 나섰다.
“우리는 설영석 이사가 최성진 부회장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았어요.”
“설 이사가 두 건의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요?”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