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88화 (188/328)

[188화] 삼각관계

송지유는 점심 무렵에 호영의 전화를 받았다.

뿌요네 회장과 점심 식사를 끝내고, 루브르 박물관에 갈 예정이라면서 올 수 있는지 물어오는 전화였다.

당연히 승낙했고,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는 하늘을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좋은 일에는 항상 마가 낀다는 말이 맞다는 듯 정말 재수 없는 인간을 로비에서 맞닥뜨렸다.

최준하.

그가 능글능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지유야, 어디 가니?”

“내가 어디를 가는 말든 최준하 씨한테 얘기해 줄 의무가 있을까요?”

“우리 사이에 얘기해 줄 수도 있지 뭘 그래?”

“우리 사이라니요. 최준하 씨와는 대한 그룹 선후배 사이밖에 없어요.”

“너무 쌀쌀맞게 굴지 말고, 나하고 같이 가자.”

송지유는 최준하가 막무가내라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거머리 같은 인간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두 눈에 훤히 보였다.

그때, 정말 우연찮게 구세주가 저 멀리 지나가고 있었다.

송지유는 이때다 싶어 손을 흔들며 큰 목소리로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양 과장님, 여기에요!”

양경운 과장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외사촌 여동생인 송지유가 최준하와 같이 있는 것이 보였다.

신분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해서 회사에서는 절대로 아는 척하지 않던 그녀가 자기를 다급하게 부르고 있다면…….

느낌상 최준하가 그녀를 곤란한 상태로 빠뜨린 것이 분명했다.

빠른 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가니, 송지유가 먼저 말을 건네 왔다.

“과장님, 지금 오시면 어떻게 해요?”

그와 동시에 송지유가 은밀한 신호를 보내왔다.

즉, 그녀의 장단에 맞춰 달라는 의미였다.

“미안해. 바쁜 일을 처리하느라 조금 늦었어.”

“과장님, 최준하 씨도 같이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 그거였구나.’

재빨리 상황 판단을 끝낸 양경운 과장은 최준하와 대화를 시작했다.

“최준하 씨, 우리가 지금 어디 가려는지 알고 있나?”

최준하는 오늘 아침 이후로 무서운 사람이 하나 생겼다.

눈앞의 양경운 과장.

그와 부딪혀 봐야 좋은 일이 없었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저는 송지유 씨가 밖에 혼자 다니면 위험할 것 같아서 에스코트 해 주려고 했습니다.”

“송지유 씨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내 방으로 짐이나 옮겨 놔.”

“과장님이 외출했다 돌아오기 전까지 옮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아직도 나하고 송지유 씨한테 볼일이 남아 있나?”

즉, 빨리 꺼지라는 소리였다.

“…없습니다.”

최준하가 당황한 얼굴로 즉시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송지유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최준하가 어떤 인간이던가.

최성진 부회장의 아들이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입에 올리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인간이 바로 그였다.

오죽하면 설영석 이사까지 발밑에 두고 있었을까.

그런 인간이 양경운 과장에게는 꼬리를 말다니.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인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양경운 과장의 숨겨진 신분을 눈치챈 것이리라.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물었다.

“네 말이 맞아.”

“어쩌다가 알려진 거야?”

“여기서 얘기하기에는 사연이 복잡해. 그나저나 너는 어디 가려고 화사하게 차려입었냐?”

“루브르 박물관에 구경 가려고.”

“혼자서?”

“아니. 오빠까지 포함하면 다섯 명.”

“세 명이라는 뜻이네. 어젯밤에 바에서 같이 술 마신 세 사람인가?”

“오빠는 어떻게 알고 있어?”

“그 얘기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걸어가면서 하자.”

“택시 안 타고?”

“걸어서 10분밖에 걸리지 않아. 날씨도 좋은데, 산책 삼아 걷자.”

“그래.”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양경운 과장은 송지유에게 오늘 아침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이래서 내 신분이 알려진 거야.”

“오빠, 진짜로 한 부사장님이 최준하를 용서해 줬어?”

“술에 만취한 사람을 처벌해서 뭐하냐고 하더라. 그나저나 왜 묻는데?”

“내 눈에는 최준하가 만취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거든.”

“장 부사장님도 그런 얘기하더라.”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인간을 용서해 줬다는 건가?”

“네 눈에는 한 부사장님이 보통 사람으로 보이든?”

사실 송지유는 H&J 컨설팅 설립을 정명훈 사장이 주도했고, 겨울과 장대산 부사장이 나중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H&J 컨설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사람은 정명훈 사장으로 알고 있었고.

하지만 어젯밤에 마사카 부통령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그동안 자기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인 송훈석 회장이 겨울에게 공들이고 있는 이유도.

겨울은 이무기가 아니라 승천을 목전에 두고 있는 거대한 잠룡과도 같았다.

생각을 거둬들인 그녀는 양경운 과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우리 아빠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한 것 같아.”

“한 부사장님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겠지?”

“오빠 말이 맞아. 그건 그렇고, 오빠는 한 부사장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어라? 남자와는 담을 쌓아 놓고 사는 녀석이 어쩐 일로 한 부사장한테 관심을 보이지? 혹시… 한 부사장을?’

양경운 과장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며 송지유의 질문에 대답했다.

“오늘 오전에 잠깐 만난 거라 잘 모르지만, 듬직하고 능력 있는 사람 같더라.”

“그렇지?”

“송지유, 오빠한테 솔직히 얘기해 봐. 너, 한 부사장님이 마음에 있지?”

“글쎄… 비밀이야.”

“오빠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잖아. 말해 봐.”

“오빠가 아무리 꼬셔도 얘기해 줄 수 없네요.”

* * *

같은 시각.

루브르 박물관 광장에 먼저 도착한 겨울 일행은 내부로 입장하기 위해 끝도 없이 줄 서 있는 관람객들을 보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겨울이 도끼눈으로 호영을 째려보며 제일 먼저 반응했다.

“정호영 씨, 이런 상황인데도 박물관에 입장하고 싶습니까?”

호영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에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계적인 걸작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데, 한 시간 정도 줄 서는 것은 일도 아니죠.”

“어휴, 아주 잘나셨습니다.”

“흠흠… 한 부사장님, 에펠탑은 여기 있는 줄보다 두 배 이상 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장대산 부사장이 호영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줄이나 섭시다.”

잠시 후, 송지유와 양경운 과장이 겨울 일행과 합류했다.

그때, 놀랄 만한 상황이 발생했다.

하도진 실장이 양경운 과장을 알고 있다는 듯 먼저 말을 건넨 것이다.

“양 대리, 아니, 양 과장이 여기는 웬일이야?”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그나저나 선배님은 여기에 어쩐 일이십니까?”

“그 얘기는 나중에 해 줄게. 이분은 H&J 컨설팅을 책임지고 있는 한겨울 부사장…….”

사실 겨울은 하도진 실장에게 양경운 과장과는 구면이라는 사실을 밝히려 했으나, 양경운 과장은 본인의 신분이 밝혀지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았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언급하는 것은 실례라고 판단 내리고, 처음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행동했다.

“한겨울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 그룹 전략기획실…….”

소개가 끝나자마자, 하도진 실장은 양경운 과장에게 씨익 웃으며 물었다.

“양 과장, 내 신분이 달라진 것 눈치챘지?”

“한 부사장님의 비서실장으로 영전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고마워.”

하도진 실장이 선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양경운 과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저는 하 실장님이 설영석 이사를 혼내 주는 장면을 팝콘 먹으며 지켜보면 됩니까?”

“그렇지. 내가 당한 만큼 반드시 돌려줄 테니까, 지켜보고 있으라고. 아주 재미있을 거야.”

“하하, 알겠어요.”

“이제 송지유 씨와 어떤 관계인지 얘기해 봐.”

“으음, 꼭 말씀드려야 하나요?”

양경운 과장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아꼈다.

“나도 웬만해서는 남의 사생활에 관심 없지만, 이번만큼은 꼭 알아야겠어.”

“이유가 타당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이유를 얘기해 줄 수 없으니까, 저쪽에 가서 얘기해 줄게.”

하도진 실장은 양경운 과장을 데리고 몇 발자국 벗어난 뒤, 조용히 말을 꺼냈다.

“사실은 송지유 씨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만약에 양 과장이 송지유 씨와 사귀는 사이면, 그 사람이 마음 아파하지 않겠어?”

“선배님, 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설마… 불륜은 아니겠지?”

“불륜이요? 지유는 제 사촌 여동생입니다.”

“뭐, 사촌? 이제 보니 양 과장도 로열패밀리였구나?”

“그나저나 선배님, 우리 지유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함부로 밝힐 수는 없지.”

“그럼 저기 있는 세 사람 중에 있다는 소립니까?”

“그건 왜 물어 보는데?”

“우리 지유도 셋 중에 한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럽니다.”

“후후, 그렇다는 말이지?”

“웃지만 마시고, 제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당연히 Yes야.”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한 겨울 일행은 폐관 시간인 6시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는 궁전을 개조해서 만들었기 때문인지 그 규모와 화려함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작품 또한 마찬가지.

교과서에서나 보던 작품들이 양쪽 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겨울과 호영은 그림들을 짧게 감상하면서 모나리자가 전시되어 있는 드농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답게 드농관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인파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모나리자가 있는 드농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상징하는 그림답게 모나리자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많은 관람객들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어찌어찌해서 모나리자 앞으로 다가간 겨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계적인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나리자가 소박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크기가 너무 아담했기 때문이다.

호영도 깜짝 놀랐는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겨울에게 말을 걸어왔다.

“모나리자가 원래 저렇게 작았나?”

“글쎄다.”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인파에 깔려 죽겠다. 얼른 사진 찍고 나가자.”

“그러자.”

겨울과 호영은 모나리자를 배경으로 힘들게 사진을 찍고 인파를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송지유와 양경운 과장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호영이 반색하며 겨울의 옷을 잡아당겼다.

“겨울아, 지유 씨와 같이 사진 찍자.”

“하여간 너도 정성이다.”

“너는 송지유 씨에게 관심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되냐?”

“누가 관심이 없대?”

“엉큼한 놈.”

이 말을 남기고 호영은 송지유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지유 씨, 우리 기념사진이나 같이 찍읍시다.”

“좋아요.”

흔쾌하게 허락하는 송지유의 대답에 호영의 입꼬리가 저절로 위로 말려 올라갔다.

그도 그럴 것이 송지유가 거절할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양경운 과장이 슬쩍 빠져서 사진사 역할을 자처했다.

“지유 씨가 가운데 서고, 두 분이 양옆에 서세요. 네, 좋습니다. 자, 찍습니다. 하나둘…….”

찰칵.

사진 촬영이 끝나고 이동하려는 순간에 호영이 송지유를 잡아끌었다.

“지유 씨, 저하고 둘이서 한 번 더 찍어요.”

“저도요.”

이에 질세라 겨울도 한마디 보탰다.

“호호, 좋아요.”

결국 송지유는 세 사람과 사진을 다시 한번 더 찍었다.

기분 좋게 사진 촬영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 이동하던 도중, 두 사람은 또다시 말싸움을 시작했다.

호영이 뒤틀어진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런 놈을 친구로 삼고 있었다니.”

“뭔 소리야?”

“내가 지유 씨와 잘되는 게 그렇게 부러웠냐?”

“네가 송지유 씨한테 사진 찍자고 얘기 꺼낼 때 멈칫하는 모습을 못 봤어?”

“봤다. 그게 뭐 어때서?”

“송지유 씨가 거절하지 못하게 너를 지원 사격해 준 거잖아.”

“어, 어어? 그런 거였어? 친구야, 미안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네가 사.”

“하하, 그 정도야… 아니, 잠깐. 오늘 저녁때 문두야 부통령님이 오신다고 하지 않았어?”

“저녁 7시쯤에 도착하실 예정이니까, 우리 호텔에 오시면 적어도 9시는 돼야 할 거야.”

“휴우, 다행이네. 그럼 내가 쏠게.”

한편, 멀어지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양경운 과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삼각관계인 건가?”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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