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87화 (187/328)

[187화] 원대한 계획

윙윙―

영양가 없는 대화가 마무리 될 무렵,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무세베니 실장님.”

[한 부사장님, 뿌요네 회장님의 점심 초대 선물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까?]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줄 알고 제가 한 부사장님 것까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뿌요네 회장님께 점심 초대 받았습니까?”

[네. 한 부사장님이 뿌요네 회장님과 통화한 후, 정확하게 20분 뒤에 전화 받았습니다.]

유독 20분을 강조한 무세베니 실장의 말에서 겨울은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자기와 뿌요네 회장은 프랑스어로 통화했기 때문에 무세베니 실장이 통화 내용을 알아들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느낌상 뿌요네 회장 쪽에서 자기가 부탁한 내용을 밝힌 것 같았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물었으나, 그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한 부사장님, 제가 프랑스어에 제법 능숙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죠?]

“이런… 죄송합니다.”

[하하하, 뿌요네 회장님의 저택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하도진 실장이 말을 걸어왔다.

“한 부사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하 실장님은 무세베니 실장님이 프랑스어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파리 정치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실수를 했어요.”

겨울은 마사카 부통령의 스위트룸에서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허공에 제대로 삽질하셨네요.”

겨울에게 삐쳐 있던 호영이 한마디 불쑥 내뱉었다.

겨울이 그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면서 또다시 언쟁이 시작되려는 기미가 보이자, 하도진 실장이 재빨리 말을 꺼냈다.

“한 부사장님, 송 회장님이 마사카 부통령님을 찾아간 이유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겨울은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하고 모범 답안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평소 송 회장님이 마사카 부통령님과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셨어요.”

하도진 실장은 어젯밤에 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그 시간에 자기도 대한 그룹 전략기획실의 옛 동료들과 바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송훈석 회장이 마사카 부통령을 찾아간 이유 또한 대충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겨울은 최준하와 관련된 사건을 키울 생각이 없는지, 거짓말로 둘러대고 있었다.

“부사장님, 최준하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은 아니시겠죠?”

“뜬금없이 그 인간 얘기를 왜 꺼내시는 겁니까?”

“어젯밤에 바에 우리 회사와 대한 그룹 직원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있었고요.”

“아, 그렇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조용히 듣고 있던 장대산 부사장이 대신 대답했다.

“어젯밤에 최준하가 저지른 사건은 송 회장님께서 시말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네? 처벌이 너무 약한 것 아닙니까?”

“한 부사장님이 용서해 준다고 했거든요.”

“그렇게 앞뒤 가리지 못하는 놈은 대한 그룹에서 쫓아내 버리는 게 답인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호영은 두 사람의 생각과 달랐다.

“저는 한 부사장님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도라니요?”

“한 부사장님은 최준하를 해고시켰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우려했을 겁니다.”

장대산 부사장은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짧게 생각했다.

최준하는 자기밖에 모르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가 이번 일을 빌미로 대한 그룹에서 쫓겨난다면 자기 잘못을 겨울에게 돌릴 것이 틀림없었다.

겨울에게 복수한답시고 일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거나, 조폭이라도 동원해서 물리적인 힘을 가해 온다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겨울은 이 점을 고려해서 문제를 키우지 않고 최준하의 잘못을 덮은 것이리라.

그는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겨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물론 장 부사장님의 추측도 일리가 있지만, 저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의도라니요?”

“과연 최성진 부회장이 저와 우리 회사가 승승장구하도록 계속 보고만 있을까요? 언젠가는 크게 덤벼 올 겁니다.”

“그럴 수 있겠네요.”

“그때 저는 최준하를 이용해서 최성진 부회장에게 심한 타격을 입힐 생각입니다. 다시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놈이 대한 그룹에 남아 있는 게 유리합니다.”

* * *

같은 시각.

조병석 실장에게 시말서를 제출하고 자신의 스위트룸으로 돌아온 최준하는 설영석 이사와 같은 내용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설 이사님, 한겨울이 저를 용서해 준 이유가 뭘까요?”

설영석 이사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본 결과, 겨울은 최준하를 발톱에 낀 때 정도로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을 꺼내면 최준하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덤벼들 것이다.

그래 봐야 좋을 것 하나 없었기 때문에 평상시처럼 입에 발린 말을 꺼내 놓았다.

“준하 씨의 막강한 배경을 의식하고 꼬리를 내린 거겠지.”

“역시. 저와 생각이 같네요.”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최준하는 조병석 실장에게 시말서를 제출할 때 개별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원래대로 양경운 과장과 같은 룸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시받은 대로 해야지, 별수 있나요.”

윙윙―

그때, 설영석 이사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박 사장님.”

[설 이사는 도대체 뭐했어!]

박철헌 사장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귀에 쩌렁쩌렁 들려왔다.

그가 성질내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는 설영석 이사는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장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자네한테 부여된 역할이 뭔가?]

“저도 회사일로 출장 온 몸입니다. 제가 준하 씨의 24시간을 어떻게 보살펴 줍니까?”

[어젯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봐.]

“저와 준하 씨는 가볍게 한잔하기 위해서…….”

설영석 이사는 철저하게 자기 관점으로 얘기했다.

[설 이사, 망나니 놈이 사고 치지 못하도록 조금 더 주위를 기울였어야지.]

얘기를 모두 들은 박철헌 사장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상대방이 꼬리를 내렸는데, 강하게 몰아칠 필요는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한겨울 놈이 우간다의 마사카 부통령하고 술잔을 기울였다는 말이 사실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사고뭉치 놈은 어디 있나?]

“제 옆에 있습니다.”

[나를 바꿔 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최준하는 박철헌 사장이 자기와 통화하려는 이유를 단숨에 알아챘다.

그와 통화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으나, 핸드폰은 이미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네, 박 사장님.”

[준하 씨, 부회장님의 전화를 피한 이유가 뭔가?]

‘욕을 잔뜩 얻어먹을 것이 빤한데, 전화를 받고 싶겠어요?’

그러나 최준하는 차마 자신의 속마음을 밝힐 수는 없었다.

“시말서를 작성하고 있는 도중이라서 전화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알았어. 부회장님께 전화해서 잘못했다고 말씀드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중에 통화하자고.]

‘휴우, 겨우 넘어갔네.’

핸드폰을 설영석 이사에게 되돌려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최준하였다.

* * *

콩고민주공화국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다.

프랑스와 교류가 활발한 탓인지, 프랑스산 와인도 제법 많이 수입되고 있다.

덕분에 겨울도 콩고 지점에 근무할 당시에 가격이 저렴한 프랑스산 와인을 많이 접해 봤고, 와인의 종류에 대해서도 제법 많이 알고 있는 편이었다.

방금 전에 마사카 부통령에게 건네받은 1998년산 빈티지 와인은 적어도 1만 유로(약 1,350만 원)가 넘는 상당히 비싼 와인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마사카 부통령님, 고작 식사 초대 선물로는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지난 3월, 마사카 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당시에 뿌요네 회장에게 점심 식사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뿌요네 회장은 한 병에 무려 5만 유로가 넘는 1978년산 빈티지 와인을 꺼내 놓았다.

그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빈티지 와인인데, 부담스러워할 리 있겠는가.

마사카 부통령은 당시에 겪었던 경험을 가감 없이 설명해 주면서 겨울을 안심시켰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주인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이제 안으로 들어갑시다.”

“네, 부통령님.”

뿌요네 회장의 저택은 정문에서 본관까지 차를 타고 5분 정도 걸릴 정도로 엄청난 넓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정원에는 잘 가꿔진 조경수들이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길가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승합차 앞 유리창으로 보이는 본관은 바로크 양식을 본떠서 건축했는지, 역동적인 남성미가 느껴질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차에서 내린 겨울 일행은 현관에 마중 나와 있던 뿌요네 회장과 반갑게 재회의 인사를 나누고, 본관 내부로 입장했다.

다이닝 룸 내부에는 점심 식사에 초대된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겨울은 마사카 부통령이 준비해 준 빈티지 와인을 뿌요네 회장에게 건넸다.

“한 부사장님, 이렇게 훌륭한 와인을 선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겨울은 짧게 딜레마에 빠졌다.

자기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마사카 부통령이 준비해 줬다는 사실을 밝힐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그러나 괜한 분란을 일으켜서 좋은 분위기를 망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회장님의 마음에 들었다니, 저도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뿌요네 회장에게 선물 증정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오니, 호영이 작은 목소리로 물어 왔다.

“뿌요네 회장에게 얼마짜리 와인을 선물한 거냐?”

“정확히는 모르지만 1만 유로가 조금 넘을 거야.”

“우와! 장난이 아니구나.”

“뿌요네 회장님 입장에서는 그다지 비싼 와인은 아닐 거야.”

“하긴…….”

“우리가 오늘 점심때 마시는 와인의 가격도 장난 아니게 비쌀 걸.”

“한 모금도 남겨서는 안 되겠네?”

“당연하지.”

그들이 속닥대는 사이, 웨이터들이 식전 음식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겨울은 프랑스식 정찬의 경우 세 시간 넘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느릿느릿한 속도로 음식을 먹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호영이 소곤거리며 물어왔다.

“왜 그래? 속이 안 좋아?”

“너무 빨리 음식을 먹으면 주인에 대한 실례이기 때문에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는 거야.”

“아, 무슨 말인지 감 잡았다.”

“너도 가급적이면 천천히 음식을 먹도록 해.”

“알겠어.”

상석에 앉은 뿌요네 회장이 마사카 부통령에게 조용히 안건을 꺼내 들었다.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중국이 우간다에 페널티로 100억 달러를 요구한 건은 어떻게 해결됐습니까?”

“중국이 자국에 정신적인 피해 보상금으로 10억 달러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한 부사장님이 중국의 요구를 역이용하는 방법을 저희에게 알려 주었고…….”

뿌요네 회장은 연합군들이 겨울을 애지중지 다루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들 나라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 주고 있는데, 어떻게 예뻐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다.

마사카 부통령의 설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뒤로 미뤄 놓았다.

“…이렇게 해서 10억 달러를 정신적인 피해 보상금으로 받게 된 겁니다.”

“중국은 연합군만 생각하면 치를 떨겠네요.”

“하하하, 아마도 그럴 겁니다.”

마사카 부통령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뿌요네 회장은 심중에 담아 놓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마사카 부통령님, 중국과 등을 돌리면 자원 수출길이 막히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 연합군들은 6월 말일자로 중국에 자원 수출을 중단하기로 한 상태입니다.”

“남아도는 자원들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해리슨 상원의원님과 H&J 컨설팅의 도움을 받아서 인도에 전량 수출하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인도가 그렇게 많은 자원을 수입할 수 있답니까?”

“오히려 부족하다면서 추가로 자원들을 수출해 달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음, 그렇다는 말이죠?”

대답하는 뿌요네 회장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 빛났지만,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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