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마사카 부통령의 스위트 룸.
송훈석 회장과 마사카 부통령은 겨울의 소개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대화부터 시작했다.
“마사카 부통령님, 루군다 대통령님은 잘 계십니까?”
“송 회장님께서는 저희 대통령님을 예전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몇 년 전에 우간다를 방문했을 당시에 인사를 나눴고, 두 달 전에는 한 부사장이 연결시켜 줘서 통화까지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부통령님을 찾아온 이유는 저희 회사 직원이 저지른 무례에 대해서 사과하기 위해서입니다.”
송훈석 회장의 사과에 마사카 부통령은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엄밀히 따지면 최준하는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무례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에게 충분히 사과를 받은 상태였다.
때문에 송훈석 회장에게까지 사과 받을 이유는 없는데, 자국의 GDP보다 매출액이 많은 대한 그룹의 총수가 자기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실 저는 송 회장님께서 저를 찾아와서 사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과해 주시니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 회사 직원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럼요. 이제 최준하 씨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를 잠깐해 볼까요?”
“네. 말씀하십시오.”
“우리 우간다는 송유관 건설 공사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언제쯤 송유관 건설공사가 착공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늦어도 6월까지 착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쯤 완공될 것 같습니까?”
“착공 후, 60개월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마사카 부통령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설공사의 착공 시기는 인간이, 완공 시기는 신이 결정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정도로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건설공사는 어렵다는 뜻이다.
건설공사에는 지체보상금 제도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설 회사들은 이 점을 고려해서 완공 시기를 최대한 늦추려고 든다.
송훈석 회장도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 빤한데도, 예상과는 다르게 공사 기간을 60개월이라고 정확하게 제시했다.
이는 중국의 CSCEC가 제시간 공사 기간보다 정확하게 36개월 빠른 것이었다.
쉽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대한 그룹 총수가 내뱉은 말이기 때문에 결코 허언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생각을 끝낸 마사카 부통령은 송훈석 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송 회장님, 정말로 5년 안에 송유관 건설공사를 완료할 수 있습니까?”
사실 송훈석 회장은 대한건설의 문세형 사장으로부터 착공 후 48개월 안에 공사를 완료할 수 있다고 보고받은 상태였다.
대한건설의 우수한 시공 능력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빨리 완공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사카 부통령에게 60개월을 제시한 이유는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우간다와 탄자니아 정부 측에서 저희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 주시면, 공사 기간을 조금 더 앞당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른 말씀해 보세요.”
“저희가 송유관 건설공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정국이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사카 부통령은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자신들은 중국으로부터 모든 부채를 탕감 받은 상태였다.
중국과 체결한 비밀 유지 각서 때문에 지금 당장 국민들에게 협상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비밀이 어디에 있겠는가.
결정적인 시점에 언론에 살짝 정보를 흘릴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루군다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적어도 몇 년간은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게 될 것이고.
“송 회장님,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질 테니까,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이제 탄자니아 정부의 확답을 받으면 되나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송훈석 회장과 대화를 중단한 마사카 부통령은 즉시, 문두야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사카 부통령님, 프랑스는 언제 가셨습니까?]
“어젯밤에 넘어왔습니다.”
[송유관 건설공사 계약을 지켜보러 가셨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도 조금 있다가 프랑스로 출발할 예정이었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것이 아니겠지요?]
“물론입니다. 지금 대한 그룹의…….”
마사카 부통령은 송훈석 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마사카 부통령님, 진짜로 대한건설이 60개월 안에 송유관 건설 공사를 완공할 수 있답니까?]
역시 문두야 부통령도 잔뜩 궁금증을 가지고 물어 왔다.
“송 회장님 말씀으로는 우리나라와 탄자니아의 정국이 안정되면 더 빨리 끝낼 수 있다고 합니다.”
[기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지 송 회장님께 여쭤봐 주실 수 있습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마사카 부통령은 송훈석 회장에게 답변을 들은 후, 문두야 부통령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최대 55개월까지 앞당길 수 있다고 합니다.”
[마사카 부통령님, 탄자니아의 정국 안정은 제가 책임진다고 송 회장님께 말씀드려 주십시오.]
“하하, 알겠습니다.”
딸깍.
통화를 끝낸 마사카 부통령은 문두야 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두 분을 믿고 최대한 공기를 단축시켜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없이 앉아 있던 서동호 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문세형 사장은 송유관 건설공사를 48개월 안에 끝내겠다고 송훈석 회장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송훈석 회장은 불과 5개월을 단축시키겠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는 무언가 카드를 하나 숨겨 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송훈석 회장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의 살짝 발을 밟았다.
‘나한테 어떤 역할을 맡긴 것이 분명한데… 그게 무엇일까? 맞아! 그게 있었지!’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마사카 부통령님, 제가 공기를 조금 더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알려 드릴까요?”
“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송유관 건설공사 현장에 우수한 인력을 투입해 주시면, 48개월 안에 공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사실 마사카 부통령도 송훈석 회장에게 송유관 건설공사에 자국의 인력들을 최대한 많이 채용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서동호 실장이 먼저 그 얘기를 꺼내 들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도 제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오늘 점심을 제가 대접했으면 합니다.”
“이런… 뿌요네 회장님과 선약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하죠?”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요.”
겨울은 마사카 부통령이 잔뜩 실망하는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들이 우간다에서 비즈니스를 원활하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재빨리 궁리한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내고, 몰래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윙윙―
불과 1분이 지나지 않아서 당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를 확인한 겨울은 마사카 부통령에게 말을 걸었다.
“부통령님, 뿌요네 회장님께서 전화를 걸어왔는데, 잠깐 통화해도 되겠습니까?”
“얼른 통화하세요.”
마사카 부통령의 양해를 받은 겨울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뿌요네 회장과 통화를 시작했다.
“네, 뿌요네 회장님.”
[갑자기 프랑스어를…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군요?]
역시 뿌요네 회장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가 프랑스어를 사용한 것 하나만으로 이곳의 상황을 정확하게 추리해 냈으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을 점심 식사에 초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분이 누구인가요?]
아무리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통화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면, 당사자가 눈치챌 가능성이 있었다.
겨울은 짧은 생각 끝에 적당한 대답을 하나 생각해 냈다.
“빅토리아 호수에서 오신 분입니다.”
[한 부사장님, 마사카 부통령님은 오늘 저녁때 우리나라에 오시기로 한 게 아니었나요?]
역시 센스 만점의 뿌요네 회장이었다.
“일정을 하루 앞당겨서 어젯밤에 오셨습니다.”
[제가 마사카 부통령님께 직접 전화해서 점심 식사에 초대하면 되겠죠?]
“그래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지금 전화하시면 눈치채실 수 있으니까, 20분 정도 지난 후에 연락해 주십시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사카 부통령이 질문을 던져 왔다.
“뿌요네 회장님이 한 부사장님께 전화한 이유가 뭔가요?”
“점심 식사에 늦지 말라는 전화였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제 송 회장님과 대화 나누십시오.”
겨울이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 후, 2선으로 물러났다.
“송 회장님, 생각난 김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송유관 건설이 완성되면 석유를 수출해야 하는데, 대한오일에서 수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대한오일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뿌요네 회장님과 이미 합의가 끝난 상태입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저희가 부통령님의 시간을 많이 빼앗은 것 같습니다.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송훈석 회장 일행이 떠나가자,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무세베니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부통령님, 외출할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에펠탑이라도 관광하게?”
마사카 부통령이 뚱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아니라, 뿌요네 회장님이 부통령님을 점심 식사에 초대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데?”
“한 부사장님은 제가 프랑스어 능력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뭐야! 한 부사장이 나 때문에 뿌요네 회장과 통화했다는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한 부사장님이 누군가에게 몰래 문자를 보낸 후, 불과 1분이 지나지 않아서 뿌요네 회장님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무세베니 실장과 대화를 중단한 마사카 부통령은 창가로 이동해서 팔짱을 낀 채 방돔 광장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무세베니 실장은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다 식어 버린 커피를 마시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윽고 생각을 끝낸 마사카 부통령이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앉아 무세베니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한 부사장한테 선물할 것을 찾아봐.”
“네, 알겠습니다.”
“점심 식사 초대 선물로 뿌요네 회장에게는 어떤 것을 주면 좋아할까?”
“빈티지 와인 어떨까요?”
“흐음, 좋아. 두 병을 구입하도록.”
* * *
겨울 일행은 뿌요네 회장의 점심 식사 초대에 응하기 위해 승합차에 올랐다.
파리의 고풍스러운 거리를 잠자코 내다보고 있던 호영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한 부사장님, 점심 식사 끝나고 루브르 박물관에 한번 가 볼까요?”
오후의 일정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 잠시 짬을 내 머리를 식히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겨울은 루브르 박물관보다 가 보고 싶은 곳이 따로 있었다.
“프랑스에 왔는데 랜드 마크인 에펠탑에 올라 가 보는 게 낫지 않아요?”
“에펠탑은 야경이 예쁘다고 하니까, 밤에 갑시다.”
“저녁때 탄자니아의 문두야 부통령님께서 이곳에 오시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럼 내일이나 주말에 구경하는 것으로 하든지요.”
“정호영 씨, 루브르 박물관에 꼭 가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만 얘기해 보세요.”
호영은 주먹을 겨울에게 내보이고, 말을 이어 나갔다.
“레오나르도 다비치의 모나리자와 니케의 비너스 상,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같은 유명한 작품을 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알았어요. 친구가 그렇게 원하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갑시다.”
“송지유 씨도 동행시키는 게 어떨까요?”
“진짜로 송지유 씨가 마음에 있는 겁니까?”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하도진 실장이 깜짝 놀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 실장님, 한 부사장님이 지어낸 얘기니까,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하 실장님, 어젯밤에 네 명이 바에서 가볍게 한잔했는데, 정호영 씨가 송지유 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기는 했습니다.”
장대산 부사장의 말에 호영이 얼른 대꾸했다.
“장 부사장님, 없는 얘기 지어내지 마세요.”
“한 부사장님, 제 말이 틀렸나요?”
이 기회를 틈타 겨울은 호영이를 놀리는 데 기쁘게 동참했다.
“남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주 뜨겁던데요?”
“이야!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너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