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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180화 (180/328)

[180화] 모두가 열매를 나눠 먹는 방법

회의실.

상석에 앉은 송훈석 회장은 회의 참석자들을 주욱 둘러본 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 실장, 시작하세요.”

“네, 회장님.”

굳은 얼굴로 대답한 조병석 실장은 서슬 퍼런 목소리로 주의 사항부터 전달했다.

“우리들은 프랑스에 여행 가는 것이 아니라 업무 때문에 출장 간다고 사전에 충분히 공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직원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만약에 프랑스에서도 오늘처럼 해이한 모습을 보인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토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전략적 파트너인 H&J 컨설팅의 임직원들과 같이 갑니다. 그분들을 대할 때 항상 예의를 갖춰 주시기 바랍니다.”

한편, 최준하는 호기심이 치솟아 올라서 참을 수 없었다.

회의실이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에 수행원들 대부분은 서 있거나, 보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원수 놈이 송훈석 회장의 맞은편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저 새끼가 저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우리 회사를 퇴사하고, H&J 컨설팅으로 이직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H&J 컨설팅은 어떤 회사일까?’

최준하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조병석 실장의 당부는 계속됐다.

“…수행원들은 출장이 끝날 때까지 핸드폰 전원을 꺼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상으로 공지사항을 마치고, 송훈석 회장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흠흠.”

가벼운 헛기침을 통해서 잠긴 목을 푼 송훈석 회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프랑스에 출장 가는 이유는 두 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함입니다. 그 프로젝트들을 무사히 수주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설영석 이사는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왔다.

송훈석 회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대한 그룹은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수주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결정적으로 자기는 어떤 프로젝트인지 모르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이번 회의가 끝나면 최준하는 최성진 부회장한테 쪼르르 전화 걸어서 두 건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언급할 것이 확실하다.

최성진 부회장은 또 다른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물어올 것이 빤하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의문의 그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파악해 놓는 것이 시급했다.

하지만 송훈석 회장에게 제대로 찍힌 상태였기 때문에 섣불리 손을 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설영석 이사가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송훈석 회장의 말이 끝났다.

“H&J 컨설팅의 정명훈 사장님도 한 말씀하시죠?”

송훈석 회장의 요청을 받은 정명훈 사장은 생각을 짧게 정리한 후,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우리 H&J 컨설팅은 대한 그룹과 협력해서 두 건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 이제 시간이 됐으니까, 출발하도록 하십시다.”

짤막한 회의가 끝나자마자, 최준하는 조용한 공간으로 이동해서 최성진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버지는 해외 출장을 위해서 비행기에 타고 있을 때를 제외하곤 핸드폰의 전원을 꺼 놓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설영석 이사가 물어왔다.

“준하 씨, 무슨 일이야?”

“아버지 핸드폰의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설영석 이사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최준하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지금 시간이면 비행기에 탑승해 계시겠네.”

“네? 비행기라뇨?”

“부회장님이 오늘 제주도에 가신다는 얘기 못 들었어?”

“아, 그렇군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빨리 전용기에 탑승하러 가자고.”

* * *

전용기라고 해서 좌석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

VIP들이 앉는 자리는 퍼스트 클래스 수준이었지만, 수행원들이 앉는 자리는 일반석보다 형편이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전용기에 탑승하던 최준하는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겨울이 송훈석 회장 등과 함께 VIP 석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새끼, 정체가 도대체 뭐야?’

그가 의문을 품는 사이,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최준하 씨,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생각 안 하나?”

“죄, 죄송합니다.”

얼른 사과한 후, 전용기 뒤쪽의 배정된 자리로 이동했다.

한편, 그런 최준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겨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너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냐?”

“나하고 좋지 않은 일로 엮여 있는 인간이야.”

호영은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챘다.

대한 그룹 신입사원 연수 당시에 겨울에게 해코지를 가하려다, 장대산 부사장한테 되치기를 당해서 해고당한 인간.

“아, 저 인간이 최준하였구나?”

“네가 저 인간을 어떻게 알고 있어?”

“작년에 연수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강희한테 들었거든.”

“저 인간하고 부딪혀 봐야 도움 될 게 하나도 없으니까, 똥이라고 생각하고 신경 끊어라.”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될까 모르겠다.”

호영이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듯 한마디 내뱉고 작은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대한 그룹 전용기는 활주로를 힘차게 박차 올라서 프랑스 파리를 향해 출발했다.

안전고도에 도달하고 전용기의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 겨울이 뒷좌석에 앉아 있는 하도진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하 실장님, 우리끼리 간단하게 회의했으면 하는데, 괜찮은 장소가 없을까요?”

“전용기 내의 회의실을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서 실장님께 부탁해 보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하도진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호영이 말을 걸어왔다.

“오코사 실장님과 통화한 내용을 설명해 줄 생각이야?”

“어.”

“그렇다면 나도 회의에 참석해야겠네?”

“왜?”

“의약품과 관련해서 우리 회사 사장님께 지시받은 게 있어서 그래.”

“어떤 지시를 받았는데?”

“가급적이면 한 번에 끝내는 게 어떨까?”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너한테 지금 얘기해 주면, 회의참석자들한테 또 설명해야 하잖아.”

“그것도 그러네. 쏘리.”

회의실.

겨울은 회사 사람들에게 오코사 실장과 통화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저희가 프랑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언론을 통해서 발표될 예정입니다.”

“과연 중국이 정신적인 피해 보상금으로 10억 달러를 지급할까?”

예상한 대로 정명훈 사장이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저도 사장님과 똑같이 물었는데, 오코사 실장은 묘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묘안인데?”

“중국이 배 째라고 드러누우면, 중국인들이 투자한 자산을 모두 몰수하겠답니다.”

“이야! 화끈하네요.”

신지훈 실장이 놀랐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서동호 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 사장님, 신 실장의 감탄사가 밖에까지 들리던데,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감이 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일감인지 얘기해 주실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회장님을 모시고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송훈석 회장이 서동호 실장 등과 함께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뭐가 그리 급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부터 던졌다.

“정 사장, 어떤 일감입니까?”

“일감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전에 연합군들과 중국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어 보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그들 사이에 아직도 정산할 게 남아 있습니까?”

“천유런 외교부장이 연합군에 친서를 보낸 건이 남아 있습니다.”

“아차, 그게 있었죠?”

“한 부사장이 자세하게 설명해 줄 겁니다.”

정명훈 사장의 지시를 받은 겨울은 오코사 실장과 통화한 내용을 또다시 설명했다.

“오코사 실장은 중국 대사를 불러서…….”

송훈석 회장은 어느 순간부터 겨울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50억 달러 상당의 의약품 발주 건을 자신들이 가지고 오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 온통 신경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납기를 늘리는 방법이 최선이었지만, 자신들의 요구를 바이어들이 들어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대한제약의 생산 시설을 늘리는 방법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고.

제약 회사를 인수하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급하게 추진할 경우 무리가 따르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송훈석 회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겨울의 설명이 끝이 났다.

그와 동시에 서동호 실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부사장, 의약품 추가 발주 건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입니까?”

“이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납기를 내년으로 늘리는 방법은 어떨까요?”

“저도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도 저도 방법이 없을 때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호영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님, 의약품 추가 발주 건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빨리 얘기해 보세요.”

“의약품 생산을 다른 나라에 의뢰하는 것은 어떨까요?”

“오오! 그 방법이 있었군요!”

송훈석 회장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호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어 나갔다.

“참고적으로 복제 약을 제일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인도라고 합니다.”

순간, 정명훈 사장의 머릿속에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재빨리 아이디어를 체계화하고, 입을 열었다.

“멀지 않은 장래에 다섯 개 나라와 인도는 몰디브에서 TTM(Table Top Meeting, 최고 수뇌부 미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TTM 의제는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자원 거래 관련 건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의약품 추가 발주 건은 인도 정부에 의뢰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 방법이 최선인 것 같네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겨울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제가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대답해 주십시오.”

“얘기해 보세요.”

“인도 제약 회사들과 우리나라 제약 회사의 의약품 생산단가는 얼마나 차이 날까요?”

“인도의 인건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니까, 80%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제부터 제 의견을 말씀드릴 테니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얘기해 보세요.”

“의약품 수출 건과 관련해서 저희 회사가 이익을 제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은 인도 제약 회사들과 직접 거래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저희 회사의 전략적 파트너인 대한 그룹과 SH무역이 섭섭해할 겁니다.”

“그야 당연하지요.”

“우리 모두 열매를 나눠 먹는 차원에서 저희 회사는 대한 그룹과 SH무역에 의약품 발주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이후의 업무 프로세스는 별도로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되겠죠?”

조병석 실장은 겨울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인도의 제약 회사들로부터 의약품을 수입한 후, H&J 컨설팅에 공급하라는 얘기였다.

의약품은 인도에서 아프리카 국가로 직접 운송될 것이기 때문에 서류상으로 한 단계를 거칠 뿐 시간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유통 단계가 한 단계 늘어남으로 인해서 이익률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손가락을 빨고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않은가.

그는 얼른 생각을 거둬들이고, 겨울의 질문에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다른 아이디어는 없습니까?”

“그 방법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발주 금액을 어떻게 배분할까요?”

겨울이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호영이 재빨리 손을 들었다.

“한 부사장님, 최초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을 고려해 주십시오.”

즉, SH무역에 의약품 발주를 더 달라는 얘기였다.

호영의 결기 어린 표정을 지켜보고 있던 송훈석 회장이 느닷없이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음은 물론이었다.

한참 만에 웃음을 거둬들인 송훈석 회장은 겨울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한 부사장, 우리는 30%만 발주 받아도 충분하니까, 나머지 물량은 SH무역에 발주 주세요.”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호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송훈석 회장에게 정중한 자세로 인사했기 때문이다.

“회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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