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77화 (177/328)

[177화]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사람

겨울에게 부투야 실장과의 통화 내용을 전달받은 조병석 실장은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토탈의 뿌요네 회장에게 전화해서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그리 어렵지 않게 도움을 이끌어 냈다.

그와 다음 주에 만나자는 약속을 끝으로 통화를 마무리하고,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한 부사장, 부투야 실장께 전화해서 프랑스에 방문할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해 주세요.”

겨울은 합의된 내용을 부투야 실장에게 전화해 줄까 하다가 멈칫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조 실장님, 부투야 실장 일행의 프랑스 초청 비용은 어떻게 할까요?”

“우리 회사가 전액 부담한다고 하세요.”

조병석 실장보다 송훈석 회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네,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겨울은 부투야 실장에게 전화해서 결정된 내용을 알려 주었다.

[하여간 한국 분들의 스피드는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하하, 고맙습니다.”

그때, 서동호 실장이 메모지를 겨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내용을 읽어 본 겨울은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 뒤, 부투야 실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송훈석 회장님께서 부투야 실장님께 대한 그룹의 전용기를 보내 주신다고 합니다.”

[송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프랑스 출장자 명단은 오늘과 내일 사이에 하도진 실장에게 보내 놓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다른 얘기를 잠깐 했으면 합니다.]

“네. 말씀해 보십시오.”

[중국 대사가 천유런 외교부장의 친서를 가지고 나를 찾아오겠다고 하는데, 혹시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보나마나 빤했다.

중국 정부는 협상 내용을 외부로 유출시킨 범인을 찾기 위해 연합군들을 하나하나 찔러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중국을 어떻게 하면 구석으로 몰까 생각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일단 그 아이디어는 조금 있다가 얘기해 보기로 하고, 부투야 실장의 질문에 답했다.

“협상 내용 유출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 페널티로 100억 달러를 내놓으라는 친서입니다.”

[중국이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까?]

“지난주에 천유런 외교부장으로부터 친서를 받은 오코사 실장님께 물어봤는데,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답니다.”

[우리나라를 찔러 보는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중국 대사가 친서를 가지고 오면 초강수를 두십시오.”

[어떤 내용으로요?]

“만약에 범인이 제3자로 확인되면, 정신적인 피해 보상금을 청구하겠다고 하십시오.”

[중국 정부가 독한 마음을 먹고 조사에 나서면 어떻게 하려고요?]

부투야 실장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중국 정부가 행동으로 나서기 전에 미국이 알아서 조치를 취해 줄 겁니다.”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할까요?]

역시 미국이 대단하긴 대단했다.

방금 전까지 근심 걱정으로 가득하던 부투야 실장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겨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와 통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정확히 모르겠지만, 미국이 소문을 퍼트린 범인이라고 대놓고 자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백이라…….]

부투야 실장이 생각할 것이 있는지 끝말을 흐렸다.

겨울은 그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길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빠른 시간 내에 말을 걸어왔다.

[한 부사장님,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자백할까요?]

“천 외교부장이 본국과 통화할 당시에 미국 정보기관이 우연찮게 감청했다고 하지 않을까요?”

[아하!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다른 연합국들한테도 소식을 전파해 주세요.”

[하하하, 그렇게 할게요.]

딸깍.

겨울이 전화 끊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송훈석 회장이 질문을 던져 왔다.

“한 부사장,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겨울은 오코사 실장, 해리슨 상원의원, 부투야 실장과의 통화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서 실장, 빨리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전화해서 한 부사장의 아이디어를 전달해 주세요.”

“네, 회장님.”

서동호 실장은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5분 정도 지나서 되돌아왔다.

“서 실장, 해리슨 상원의원이 뭐라고 했습니까?”

“한 부사장의 아이디어대로 하기로 이미 정보기관과 얘기가 끝난 상태라고 합니다.”

“연합군들한테 이 소식을 전파해 달라고 부탁했죠?”

“현재는 오코사 실장하고 통화한 상황이고, 네 나라의 VIP들과 곧 통화하겠답니다.”

“수고했어요.”

서동호 실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송훈석 회장은 모두에게 당부의 말을 꺼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이곳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프랑스 출장 일정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봅시다.”

회의 참석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끝에 열흘 뒤에 대한 그룹 전용기를 이용해서 프랑스로 출발하는 것으로 하고, 출장 스케줄은 대한 그룹 측에서 수립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긴급회의를 원만하게 끝내고, H&J 컨설팅 사람들이 모두 돌아갔다.

송훈석 회장은 서동호 실장, 조병석 실장과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서 못다 한 대화를 이어갔다.

“프랑스 출장에 대한 총괄 업무는 조 실장이 맡으라고.”

“네. 회장님.”

“수행원 명단에 지유도 포함시켜. 두 인간들도 꼭 데리고 가고.”

조병석 실장은 송훈석 회장이 송지유를 수행원 명단에 포함시킨 의도를 단숨에 파악했지만, 아는 척을 해 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 부사장이 최준하를 다루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거야.”

“저도 회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의 프랑스 방문 건도 꼼꼼하게 챙기고.”

“네, 알겠습니다.”

잠시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서 서동호 실장이 조병석 실장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조 실장, 부투야 실장이 프랑스에 체류하는 데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거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병석 실장의 대답을 들은 서동호 실장은 송훈석 회장에게 말을 건넸다.

“회장님, 오늘 오전에 SH무역의 정상호 사장하고 통화했는데, 지난 주말에 한 부사장이 이사했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때 집들이에 초대받아 갔는데, 집 안이 텅텅 비어 있었답니다.”

송훈석 회장은 이제야 서동호 실장의 의도를 파악했다.

겨울에게 이사 기념으로 대한 그룹에서 생산하는 가전제품 일체를 선물해 주자는 뜻임을.

“한 부사장이 우리들의 호의를 거부할 가능성은 생각해 보지 않았나?”

서동호 실장도 겨울이 당연히 거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회장님,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깔끔하게 정리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후환이 없도록 하라고.”

“그야 물론입니다.”

* * *

회사로 복귀한 겨울은 김윤중 전무를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김 전무님, 표준 계약서는 셀러와 바이어로부터 컨펌 받았습니까?”

“네. 지난주 금요일 밤에 모두 확답을 받았습니다.”

“셀러와 바이어의 협상은 언제 진행할 예정입니까?”

“이제 FCO를 바이어한테 전송했으니까, 적어도 보름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애매하네요.”

“부사장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저하고 사장님은 잉가 3댐 건설 공사와 송유관 건설공사 계약 때문에 10일 뒤에 프랑스로 출장 갈 예정입니다.”

사실 겨울이 협상 테이블에 반드시 앉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들은 중개인이었기 때문에 셀러와 바이어가 협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움만 주면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존재감.

뭐니 뭐니 해도 이번 협상의 키는 겨울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상념을 거둬들인 김윤중 전무는 겨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부사장님, 협상 일정을 일주일 정도 늦추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도 문제없겠습니까?”

“셀러와 바이어가 조금만 서두르면 7월 1일부터 자원 거래가 가능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협상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요?”

자원은 다른 상품과는 달리 셀러가 갑이다.

따라서 셀러가 지정한 장소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 협상은 셀러가 모두 다섯 개 나라라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셀러와 바이어가 모두 만족할 만한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김윤중 전무는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겨울에게 보고했다.

“하 실장님, 괜찮은 곳이 없을까요?”

겨울의 질문을 받은 하도진 실장은 2년 전에 휴가차 놀러 간 곳이 언뜻 떠올랐다.

“부사장님. 탄자니아에 잔지바르라는 섬이 있는데, 휴양지로 아주 유명한 섬입니다. 그곳을 협상 장소로 선정하면 어떨까요?”

겨울도 잔지바르 섬을 알고 있었지만,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섬은 이슬람문화가 깊게 배어 있기 때문에 조심할 것도 많고, 분위기 이완에 필요한 음주도 불가능하다.

겨울은 하도진 실장에게 이 점을 언급하며 불가 입장을 보였다.

“부사장님, 그렇다면 아프리카 대륙과 인도 중간에 있는 몰디브가 어떻습니까?”

“오히려 그곳이 좋겠네요. 김 전무님은 바이어와 셀러한테 의견을 구해 보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인도 정부가 추가로 수입하고자 하는 자원들의 리스트는 받았습니까?”

“샤르마 장관님과 통화해 봤는데, 아직 취합 중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늦어도 협상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파악해 놓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며칠 뒤.

회사로 출근하는 차 안에서 가을과 겨울은 작은 말다툼을 벌였다.

“한가을, 인테리어는 네가 책임진다고 했잖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휑한 공간과 메아리가 겨울을 반기길 여러 날.

자신감을 내보이던 가을에게 인테리어를 맡겼더니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사실 가을은 발품을 팔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월요일에 전화 한 통을 받은 후부터 생각을 바꿔 먹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 겨울에게 결코 얘기해 줄 수 없었다.

“요즘 우리 팀이 너무 바빠서 그래.”

“내일 휴일이니까, 나하고 백화점이나 다녀오자.”

“백화점 물건이 얼마나 비싼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오빠가 프랑스에 다녀올 때까지 완벽하게 꾸며 놓을 테니까, 불편해도 며칠만 참아.”

“혹시… 내가 모르는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어, 없어.”

“말을 더듬는 것을 보니, 수상한데?”

윙윙―

그때, 정말 공교롭게도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호영이 걸어온 전화였다.

“아침부터 웬일이냐?”

[다음 주에 프랑스로 출장 간다며?]

“어.”

[그럼 5월에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출장 가는 건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되겠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러면 나는 부투야 실장님을 영원히 만나 보지도 못하겠네?]

겨울은 호영의 의도가 빤히 들여다보였다.

그도 프랑스에 따라오고 싶은 것이다.

“원하는 게 뭐야?”

[네가 원한다면 무보수로 아르바이트 해 줄 수 있어.]

“어떤 아르바이트?”

[프랑스어 통역.]

“우리 회사에 프랑스어 능력자가 세 명이나 되는 거 모르냐?”

[너하고 정 사장님이 통역 역할을 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을까?]

겨울은 호영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와 정명훈 사장이 빠지면, 통역은 오로지 하도진 실장의 몫이 된다.

아무리 그가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혼자서 통역을 담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호영을 출장자 명단에 포함시키는 것은 자기가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다.

“사장님께 상의해 보고 연락해 줄게.”

[너희 회사 사장님께서는 이미 오케이 했으니까, 네 의견만 얘기해 주면 돼.]

“어휴, 이 징그러운 놈.”

[고맙다, 친구야.]

“너는 낙동강 오리알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지?”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너의 강력한 연적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됐냐?”

뚝.

겨울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두 사람의 통화를 귀담아 듣고 있던 가을이 입을 열었다.

“오빠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장 부사장님은 강희 언니한테 관심이 없어.”

“그럼 장 부사장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라는 거야?”

“알아맞혀 봐.”

순간, 겨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자가 있었다.

“혹시… 이수진 씨?”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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