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64화 (164/328)

[164화] 일파만파 커지는 사건 (1)

그 시각, 임용식 사장은 대한전자에서 감사를 담당하고 있는 전용수 부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 부사장, 조사해 봤습니까?”

전용수 부사장은 세 시간 전쯤에 느닷없이 임용식 사장에게 호출을 당했다.

그 자리에서 작년 12월까지 마케팅 연구소에 근무한 조강희 씨의 퇴사 이유를 자세히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직속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퇴사 이유를 물었다.

팀장은 능력 부족에 의한 자진 퇴사라고 대답했다.

본인이 능력 부족을 절감하고 퇴사했다고 하는데, 더 이상 조사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는 임용식 사장에게 방금 전까지 조사한 내용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이런 상황입니다.”

감사는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면 엉뚱한 피해자가 발생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공정한 시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임용식 사장은 전용수 부사장한테 조강희가 어떤 사람이라고 밝히지 않고 조사를 지시했다.

그랬더니 전용수 부사장은 조강희 퇴사 사건에 대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조사하고, 허술한 조사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녀의 퇴사 이유를 이대로 덮었다가는 나중에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할 수 없이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 밝힐 수밖에 없었다.

“전 부사장, 혹시 H&J 컨설팅이라는 회사를 들어 봤습니까?”

“아니요. 처음 듣습니다만…….”

윙윙―

그때, 임용식 사장의 핸드폰이 진동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재빠른 동작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실장님.”

[임 사장, 지금 즉시 회장실로 올라오세요.]

잔뜩 굳어 있는 그의 목소리.

틀림없이 조강희 퇴사 사건이 송훈석 회장의 귀에 들어간 것이리라.

“실장님, 전용수 감사담당 부사장과 같이 올라가겠습니다.”

[조강희 씨 사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세 시간 전쯤에 정재엽 사장님께 들었습니다.”

[정재엽 사장은 누구한테 들었답니까?]

“정명훈 사장이 전화해 줘서 알았답니다.”

[알았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 * *

딸깍.

서동호 실장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송훈석 사장이 입을 열었다.

“서 실장, 정재엽 인사담당사장도 불러 올려.”

“네, 회장님.”

잠시 후, 호출 받은 사람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송훈석 회장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재빨리 송훈석 회장에게 목례한 후,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시원한 얼음물을 마시고, 숨을 돌리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짧게 대답한 세 사람은 소탁 위에 놓여 있던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들의 심리 상태가 안정된 것을 확인하고, 송훈석 회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 사장님은 조강희 씨의 퇴사 사건에 대해서 누구한테 소식을 접했습니까?”

“세 시간 반쯤 전에 정명훈 사장한테 전화 받았습니다.”

“정 사장이 뭐라고 했습니까?”

“조강희라는 사람이 H&J 컨설팅에 입사하기 위해서 면접을…….”

정재엽 사장은 정명훈 사장과의 통화 내용을 사실에 입각해서 가감 없이 보고했다.

“…임 사장한테 정확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조치를 취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임 사장은 그 이후에 어떤 조치를 취했습니까?”

송훈석 회장의 질문을 받은 임용식 사장은 어떻게 대답할지 짧게 정리한 후, 침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전용수 감사담당 부사장을 불러서 파악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전 부사장, 조사해 본 결과가 어땠습니까?”

전용수 부사장은 후회가 물밀 듯 몰려왔다.

조강희가 송훈석 회장이 알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조사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밥상은 엎어지고, 그릇들은 산산조각 나 버린 상황이거늘.

그렇다고 거짓으로 보고할 수는 없었다.

“조강희 씨가 근무한 부서의 직속상사에게 물어본 결과,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자진 퇴사 했다고 합니다.”

감사는 경찰 수사 절차와 거의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경찰이 범죄 사실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면, 제일 먼저 사전 조사부터 실시한다.

사전 조사에서 용의자의 범죄 사실이 의심되면, 그제야 정식 수사로 전환해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용수 부사장은 사전 조사는 건너뛰고, 용의자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얘기만 듣고 얼렁뚱땅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감사가 진행될 리 있겠는가.

“전 부사장, 감사 절차에 대해서 얘기해 보세요.”

“…….”

쾅!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송훈석 회장이 손바닥으로 강하게 소탁을 내리쳤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겁을 덜커덕 집어먹고 순간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전 부사장, 당신은 자식이 없어?”

“…….”

“만약에 당신 딸이 1년 가까이 직속 상사와 팀원들한테 괴롭힘을 당했다면, 그 심정이 어떨 것 같은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겁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감사를 허투루 한다는 말인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후우, 언제까지 시간을 주면 되겠는가?”

“넉넉잡고 일주일만 시간을 주시면, 모든 진상을 완벽하게 밝혀내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겠네. 만약에 일주일 동안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하면, 당신이 무능력하다는 걸로 알겠네.”

즉, 대한전자에서 쫓아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나가 봐.”

축객령을 받은 전용수 부사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집무실을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본 송훈석 회장이 임용식 사장에게 남은 화를 쏟아 냈다.

“임 사장, 부하 직원들 관리를 이 정도밖에 못합니까?”

“입이 열 개가 있더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 부사장이 부실한 감사 결과를 보고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것이 제 잘못 때문입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얘기해 보세요.”

“조강희 씨가 한겨울 부사장과 친밀한 관계라는 사실을 전 부사장한테 밝혔더라면, 부실하게 조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 조강희 씨의 퇴사 사건을 인지하기 전에 급하게 마무리 지으려고 한 저의 조급함이 한몫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이를 밝히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감사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음… 그럴 수 있겠네요.”

정재엽 사장은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조강희가 능력이 부족해서 자진 퇴사한 것을 겨울과의 관계 때문에 자신들이 과잉 대응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서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조강희 씨가 실제로 능력이 없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 사장님, 조강희 씨는 작년에 신입사원 연수에서 2등을 차지할 정도로 우수한 인재였습니다.”

정재엽 사장은 1년 전의 신입시원 연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동호 실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실장님, 조강희 씨가 우수한 성적을 기록할 수 있던 이유는 점수가 1,000점이 걸려 있었던 체육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한몫 차지했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사실 여부를 검증해 볼 필요는 있겠네요.”

“조강희 씨를 제일 많이 알고 있는 한겨울 부사장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알았습니다. 제가 전화해 보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서동호 실장은 스피커폰으로 겨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한 부사장, 지금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조강희 씨의 퇴사 건과 관련한 내용입니까?]

“네, 그래요. 조강희 씨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십시오.]

“조강희 씨가 보유한 능력은 어떻습니까?”

[어떤 의도로 질문하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사실은…….”

서동호 실장은 겨울에게 방금 전까지의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강희 씨는 지필 테스트 성적도 송지유 씨에 이어서 2등이었습니다.]

“신입사원 연수 성적이 우수해도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실장님께서는 조강희 씨의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겨울의 날카로운 질문에 서동호 실장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고 판단 내렸다.

자신의 대답 여부에 따라서 앞으로의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있었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겨울의 질문에 대답했다.

“내가 조강희 씨와 직접 근무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직속 상사의 말을 참고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세요. 나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서동호 실장은 말하고 나서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이래서는 마치 겨울의 말을 믿지 못하니 우리 쪽 인원의 말을 토대로 조사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가.

“다른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얘기해 보세요.”

[그 전에 조강희 씨가 근무하던 부서의 직원들 숫자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임용식 사장이 재빨리 메모지에 직원들 숫자를 적어서 서동호 실장에게 건네주었다.

“모두 열여섯 명이라고 하네요.”

[대한 그룹의 경우에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신입사원에게 수습 기간을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한 부사장의 말이 맞아요.”

[그런데 들은 바로는 제대로 된 수습 기간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신입사원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업무도 맡기고요. 그 정도로 연구소의 인력이 그렇게 부족하진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건…….”

[네. 어디까지나 저도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죠. 그 부분도 직속 상사의 말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부사장, 미안합니다.”

[솔직히… 이번 일로 나름 죄송한 마음도 있었습니다만, 이젠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군요. 조강희 씨의 능력 부족을 이유로 퇴사를 정당화하려는 실장님, 아니, 대한 그룹의 태도에 실망했습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뚝.

순간, 집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분위기가 너무 엄중해서 어느 누구 하나 말을 선뜻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화를 삭이려는 듯 송훈석 회장이 창가로 이동해서 팔짱을 낀 채 어둑어둑해지는 서쪽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지은 죄가 있는 서동호 실장과 정재엽 사장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나마 죄가 가볍다고 생각한 임용식 사장은 송훈석 회장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이윽고 생각을 끝낸 송훈석 회장이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서동호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서 실장, 그룹 감사담당을 동원해서 조강희 씨의 퇴사 사건에 대해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명명백백하게 밝히도록 하세요.”

“네, 회장님.”

“그리고 지유한테 전화해서 동기 모임 장소가 어디인지 물어보세요.”

“저…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한 부사장한테 사과해야 하잖아!”

결국 화가 치밀어 오른 송훈석 회장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네, 알겠습니다.”

“후우, 정 사장하고 임 사장도 원인 제공자들이니까, 따라오세요.”

“네, 회장님…….”

“후우우…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송훈석 회장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 * *

삼겹살집.

디자인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근호는 며칠 전에 경험한 일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동기 여러분, 제가 동기 모임을 긴급 소집한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한겨울 부사장이 뭉치자고 했잖아요.”

이재성 대리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재성 씨, 한 대리를 부사장이라고 부릅니까? 뭔가 제가 모르는 재밌는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헌기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헌기 씨가 정보가 늦네. 한 부사장님이 대한 그룹을 퇴사한 사실은 알고 있어요?”

“네? 퇴사요? 언제요?”

“지난 2월 말에 퇴사했고, 지금은 H&J 컨설팅이라는 회사의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참고로 저도 오늘 날짜로 퇴직원을 제출했고, 다음주부터 H&J 컨설팅에 근무할 예정이고요.”

“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컨설팅 회사 말인가요?”

“넓은 의미로 보면, 그럴 수 있겠네요.”

그때,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겨울이 장대산 부사장, 조강희와 함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이 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라고 있던 이재성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어 위치를 알렸다.

세 사람은 입사 동기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송지유를 비롯한 부릉부릉 멤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다소 어수선한 시간이 지난 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겨울을 향해 이재성 대리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음… 한 부사장님, 기분이 별로인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습니까?”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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