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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159화 (159/328)

[159화] 공돈은 빨리 써 버려야 하는 법

이재성은 남우영 차장, 박기훈 과장과 함께 면접을 보기 위해서 H&J 컨설팅이 소재하고 있는 DH빌딩으로 이동 중에 있었다.

모두들 잔뜩 긴장하고 있는 탓인지, 승용차 내부에는 엔진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창밖을 내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남우영 차장이 한참 만에 이재성에게 말을 걸었다.

“재성 씨, H&J 컨설팅에서 우리를 채용해 줄까?”

이재성은 어젯밤에 겨울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기억에 떠올리며 질문에 대답했다.

“제가 한 부사장에게 두 분에 대해서 강력하게 어필했기 때문에 면접에서 실수만 하지 않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재성 씨는 한 부사장님과 친한가?”

“신입사원 연수 시절부터 같은 팀원이었기 때문에 제법 친한 편입니다.”

“다행이네. 그런데 H&J 컨설팅의 파격적인 복리후생 제도가 사실일까?”

지금 남우영 차장은 성과급 제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도 그 점이 궁금해서 한 부사장과 장 부사장한테 집중적으로 물어봤는데, 사실이랍니다.”

“인사팀은 프로젝트 수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까, 성과급을 받지 못하겠지?”

“수주 성과급은 받지 못하더라도 별도로 성과급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과급을 받기 위해서는 H&J 컨설팅이 충분한 이익을 내야 하는데, 가능할까 모르겠네.”

제조 회사의 경우, 손익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매출원가이고, 그 다음이 판매 관리비이다.

이에 비해 컨설팅 회사는 인건비를 포함한 판매 관리비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이유로 제조 회사와 컨설팅 회사가 똑같이 1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면, 컨설팅 회사의 손익이 월등히 많을 수밖에 없다.

이재성은 어젯밤에 겨울에게 H&J 컨설팅이 수주했거나, 수주 예정인 일감이 어느 정도 되는지 들은 상태였다.

때문에 자세한 언급이 없었어도 순이익이 얼마 정도 되는지 대충 계산이 되었다.

“차장님, 한 부사장은 영업 이익이 최소 1조는 넘는다고 했습니다.”

“컨설팅 회사는 매출 원가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순이익은 최소 몇 천억은 넘는다는 말이네?”

“네, 그렇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반드시 H&J 컨설팅으로 이직해야겠군.”

운전석에 앉아 있던 박기훈 과장이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재성 씨, 한 부사장님께 아프리카 법인으로 쫓겨난 홍성훈 부장과 신대환 차장에 대한 소식을 물어봤어?”

이재성은 얼마 전 부임한 인사팀장으로부터 자신들이 왕따 취급당하는 이유는 홍성훈 부장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비리를 저질러서 권고사직 받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팀장이었기 때문에.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인간들만 아니었다면, 우리의 신세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지 않았을 텐데…….”

“저도 과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심경이 복잡해진 이재성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H&J 컨설팅, 임원 회의실.

면접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겨울은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대한 그룹에 입사하기 전까지 제법 많은 회사의 문을 두드렸고, 그중에 몇 번은 운 좋게 면접 단계까지 도달한 적도 있었다.

회사에 합격하기 위해서 면접시험 당시에 잔뜩 허세를 부린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상황이 180도 바뀌어서 면접관 자격으로 지원자들을 평가하고 있다니.

‘후후… 한겨울, 너도 많이 컸구나. 이럴 때일수록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해야 하는 거 알지?’

겨울은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눈앞의 지원자들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어느새 면접이 일상이 되어 버린 정명훈 사장은 지원자들에게 거침없이 질문을 던졌다.

“백종훈 차장, 영어 구사 능력은 어떻게 됩니까?

“능수능란하지는 않지만, 외국인과 기본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죠?”

“그렇기는 합니다.”

“H&J Investment에 근무할 예정인 직원들의 경우에는 90% 가까이가 외국인입니다. 때문에 영어 사용은 필수입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시간을 주면, 영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늦어도 4월을 넘기지 않겠습니다.”

“믿어 보겠습니다.”

백종훈 차장과 면접을 끝낸 정명훈 사장은 다른 파트장 후보에게 질문을 던졌다.

“장천수 차장, 본인이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저는 장교로 군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면접 위원이나 지원자들은 면접에 집중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핸드폰 전원을 꺼 놓는다.

하지만 겨울은 오코사 실장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서 예외로 핸드폰 전원을 켜 놓고 있었다.

단, 무음으로.

장천수 차장의 대답을 귀담아 듣고 있던 겨울의 핸드폰 액정에 전화번호가 표시됐다.

즉시 정명훈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들고 회의실 밖으로 나가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오코사 실장님.”

[한 부사장님, 방금 전에 협정서의 단어를 수정하고 사인 완료했습니다.]

겨울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실 자기는 연합군들이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단어를 수정하는 대가로 적지 않은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했다.

천유런 외교부장은 그들의 요구를 깎으려고 버티기 작전으로 돌입할 것으로 예상했고.

그런데 협상 시작 다섯 시간 만에 협정서를 수정하고 사인까지 완료했다고 한다.

느낌상 연합군 측이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예상보다 적은 보상을 요구한 것 같았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 저희는 이미 얻어 낸 것이 많기 때문에 더 보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천 외교부장이 협상 테이블에 앉자마자, 저희가 예상하고 있던 보상금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제시했습니다.]

“천 외교부장이 얼마나 제시했는지 제가 알 수 있습니까?”

[10억 달러입니다.]

“네?!”

겨울이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우리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천 외교부장이 파격적인 제안을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협상을 조기에 끝내려는 목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하, 고마워요. 이제 내가 한 부사장님께 전화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한 부사장님의 아이디어 덕분에 저희는 적지 않은 공돈이 생겼잖아요. 이 돈을 어떻게 사용했으면 좋겠습니까?]

겨울은 오코사 실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숨에 눈치챘다.

그들은 보상금의 일부를 자신에게 나눠 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그들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중하게 거절하기로 결정했다.

보상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실장님, 우리나라의 우스갯소리 중에 공돈이 생기면 최대한 빨리 써 버려야 좋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공돈을 국민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게 어떨까요?”

[설마… 국민들에게 돈을 나눠 주자는 얘기는 아니겠지요?]

“당연히 아닙니다.”

[공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방법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1년 남짓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모기나 식수로 인한 전염병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전염병 치료제를 무상, 또는 염가로 공급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오, 아이디어 끝내주는데요?]

오코사 실장의 감탄하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제가 전염병 치료제 샘플들을 구입해서 은센기 사장한테 건네도록 하겠습니다.”

[샘플은 샘플대로 보내고, H&J 컨설팅 측이 우리한테 제안서를 보내 주는 것이 어떨까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제안서는 아무리 늦어도 이달 말까지 보내 주셔야 합니다.]

“실장님, 너무 서두르시는 거 아닙니까?”

[공돈을 최대한 빨리 써 버리라고 하신 분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아이고, 제가 제 발등을 찍었네요.”

[저는 한국 사람들의 스피드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여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겨울은 이참에 갑자기 생각난 얘기를 꺼내 들었다.

“아, 실장님. 이번에 발주하신 품목 중에서 컵라면과 즉석 밥은 종류가 상당히 많습니다. 은센기 사장이 귀국할 때 두 상품의 샘플들을 구입해 갈 예정입니다. 시식해 보시고, 입맛에 맞는 상품을 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이제 나중에 통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딸깍.

통화를 끝낸 겨울은 면접장으로 들어가려다가 주춤했다.

의약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가쿠타 부장이 보름 안에 제안서를 작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부딪혀 보면 어떻게든 해법을 찾겠지.”

겨울이 일말의 걱정을 날려 버리고 면접장 문을 열고 들어가 조용히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자 정명훈 사장이 말을 걸어 왔다.

“오코사 실장인가?”

“네, 사장님.”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지는 조금 있다 들어 보는 것으로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겨울과 짧은 대화를 종료한 정명훈 사장은 파트장 후보자들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을 계속했다.

“이승훈 팀장한테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투자분석 검증팀은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본인들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면서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셔야 할 겁니다.”

“네, 사장님.”

“파트장과 부파트장은 우리들이 협의를 통해서 내일까지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질문 있으면 받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언제부터 투자분석 검증팀에 근무해야 합니까?”

“늦어도 다음 주 중에는 근무해야 할 겁니다.”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한 그룹 측에 양해를 구해 놨기 때문에 퇴사는 쉽게 처리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 주에 만납시다.”

축객령을 받은 지원자들이 퇴장하자, 정명훈 법인장이 이승훈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이 팀장, 밖에 나가서 인사팀 지원자들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 줬으면 좋겠어.”

“네, 사장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이승훈 팀장이 밖으로 나가자, 겨울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협정서 단어를 수정 완료하고 사인까지 끝냈다고 합니다.”

“벌써?”

“네. 사장님. 천 외교부장은 협상을 최대한 빨리 종결…….”

정명훈 사장은 천유런 외교부장이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을 제시한 이유가 다른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저지른 실책을 덮기 위해서.

당연히 본국에는 연합군들이 말도 안 되는 보상을 요구했다고 거짓으로 보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깔끔하게 결론내서 땅속에 묻어 버린 이유를 굳이 파내서 헤집을 필요는 없었다.

정명훈 사장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겨울의 설명이 끝이 났다.

“전염병 치료제와 관련한 제안서를 이달 말까지 보내 줘야 합니다.”

“일감을 수주해 오는 한 부사장의 능력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구먼.”

“저도 사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장대산 부사장이 활짝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사장님, 가쿠타 부장이 보름 안에 제안서를 작성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하겠지.”

“그럼 어떻게 하죠?”

겨울의 우려 섞인 질문을 받은 정명훈 사장은 핸드폰의 전원을 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정 사장님.]

“조 실장님, 내일 오전 중에 긴급회의를 가졌으면 합니다.”

[안건이 무엇인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묻는 조병석 실장의 목소리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저희 회사가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5개국에 전염병 치료제를 공급해야 하는데, 제안서를 이달 말까지 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예산이 어느 정도 됩니까?]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라마다 10억 달러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고… 장난이 아니네요.]

“저희 회사에서 오전 10시에 뵙겠습니다.”

[네, 정 사장님.]

조병석 실장과 통화를 끝낸 정명훈 사장은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SH무역도 긴급회의에 참석해야 할 거야.”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대한제약이 50억 달러 상당의 전염병 치료제를 생산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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