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57화 (157/328)

[157화] 또다시 만난 인연

대한 그룹 본사 근처에 위치한 한정식집.

송훈석 회장은 연합군과 중국 사이에 어떤 돌발 상황이 있었는지 겨울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눈 때문에 호기심을 거둬들이기로 결정했다.

자기의 고집으로 인해서 적지 않은 손해를 본 SH무역의 정상호 사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정 사장님, 아까 통 크게 양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컴퓨터는 원래부터 대한 그룹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감사 인사는 저희가 드려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정상호 사장의 립 서비스에 만족한 송훈석 회장이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회장님, 이왕 말이 나온 김에 TV 진열대 5만 대를 화물기로 운송할 때 진열대도 같이 운송했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지요.”

“운송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비용도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역시 화끈하시군요.”

업무적인 얘기를 이어 가는 두 사람과는 다르게 한쪽 구석에서 호영과 겨울이 속닥대고 있었다.

“은센기 사장이 한강공원에서 치킨 먹고 싶다고 하니까, 참고하고 있어.”

“치킨은 어젯밤에 먹었잖아?”

“치킨을 먹는 것보다 한강공원을 가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

“이제 3월 중순인데… 춥지 않을까?”

“일단 나가 보고, 춥다 생각하면 철수하자.”

윙윙―

그때,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꺼내서 발신자를 확인하니, 나이지리아에서 연합군과 중국의 협상을 지켜보고 있는 하도진 이사였다.

어차피 그와는 통화가 한 번 필요했기에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겨울은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네, 하 이사님.”

[부사장님, 방금 전에 오전 협상이 끝났습니다.]

“협상장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연합군의 일방적인 승리였습니다.]

“협정서는 오늘 중으로 사인할 것 같습니까?”

[한국 시간으로 새벽까지 기다려야 할 겁니다.]

“이제 다른 얘기를 잠깐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나이지리아를 포함해서 다섯 개 나라가 저희 회사에 최고급 65인치 TV 5만 대…….”

겨울은 연합군들로부터 발주 받은 내용과 하도진 이사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회사를 대표해서 바이어들과 계약을 끝내고 귀국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부사장님, 수출 금액은 어느 정도 예상하십니까?]

“아직 확실하게 모르지만, 제품 금액만 10억 달러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이야! 엄청나네요.]

“제안서와 견적서는 조만간에 가쿠타 부장이 보내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TV 5만 대와 컴퓨터 40만 대 수입 계약은 아프리카 법인과 체결하셔야 합니다.”

[나머지 컴퓨터 20만 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면과 즉석 밥을 공급할 예정인 SH무역과 체결할 예정이니까, 하 이사님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밖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쿠타 부장과 통화하십시오.”

[네, 부사장님.]

제법 긴 통화를 끝낸 겨울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저녁 식사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자, 호영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르신들은 2차 가기로 했고, 나머지는 한강공원으로 가기로 했어.”

“오, 잘됐네.”

* * *

여의도 한강공원.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로 이것저것 구입하고, 돗자리를 빌린 겨울 일행은 널찍한 장소에 터를 잡고 앉았다.

평일 밤인데다가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그런지 주위에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은센기 사장님, 춥지 않으세요?”

“춥네요…….”

호영의 물음에 은셍기 사장이 격하게 동의했다.

“오늘은 밤 풍경을 감상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한강공원에서 치킨을 배달해 먹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면 어떨까요?”

“언제요?”

“저희가 6월이나 7월경에 은센기 사장님을 다시 한번 초대할게요.”

“하하, 고맙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은센기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살 테니까, 오늘은 여의도 먹자골목에서 시원하게 생맥주나 한잔합시다.”

“네, 좋습니다.”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술로 풀려는 사람들이 많은지, 제법 넓은 생맥주집 안에는 손님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겨우 비어 있는 테이블을 차지한 그들은 생맥주와 적당한 안주를 주문하고, 대화를 이어 갔다.

“가쿠타 부장님은 좋겠네요.”

“뭐가요?”

가쿠타 부장은 은센기 사장의 질문을 질문으로 받았다.

“앞으로 비교적 살기 좋은 한국에서 근무할 거잖아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인정합니다.”

윙―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겨울에게 카톡이 수신되었다.

― 이재성 : 한 부사장님, 오랜만이네요.

겨울은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이재성을 찾았다.

한쪽 구석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이재성이 보였다.

겨울은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재성 씨, 얼굴을 본 게 1년 전인가요?”

“아프리카로 떠나기 직전에 송별식을 했으니까, 그 정도 된 거 같네요.”

“같이 계신 분들을 소개시켜 주실 수 있으세요?”

“아차, 이분은 저희 팀의 선임이신 남우영 차장님이고, 이분은 박기훈 과장님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재성 씨의 입사 동기였던 한겨울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남우영 차장 등과 인사를 나눈 겨울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이재성이 필사적으로 만류하는 바람에 비어 있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남우영 차장은 겨울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종업원을 불러서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정리되자, 박기훈 과장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겨울에게 물었다.

“한겨울 씨는 우리 회사를 퇴사했나 봐요?”

“네. 뜻한 바가 있어서 지난 2월 말에 퇴사했습니다.”

“뜻한 바가 있었다면… 혹시 창업이라도 한 건가요?”

“네. 운 좋게 회사를 설립해서 부사장으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번창하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그때, 종업원이 생맥주를 내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중단됐다.

겨울은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바닥이 드러난 맥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이재성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 부사장님, 갈증이 많이 났나 보네요?”

“아, 네. 저녁을 조금 짜게 먹었더니, 갈증이 나네요.”

“저쪽에 앉아 있는 일행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데, 누구입니까?”

“장대산 부사장은 알고 계실 거고, 나이 많은 외국인은 우리 회사의 직원이고, 젊은 사람은 바이어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제 친구고요.”

“컨설팅 회사를 창업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무역도 병행하고 있어요.”

잠시 대화가 중단되자, 남우영 차장이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님, 창업한 회사의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H&J 컨설팅입니다.”

남우영 차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즘 대한 그룹의 직원들 입에 제일 많이 오르내리고 있는 회사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도 H&J 컨설팅으로 이직하기 위해서 지원서를 제출한 상태였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모집 인원에 비해서 지원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H&J 컨설팅의 부사장이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동명의 회사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살짝 건드려 보기로 했다.

“한 부사장님, H&J 컨설팅은 우리 회사와 같이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혹시 하고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역시였다.

남우영 차장은 인생에서 찾아오는 세 번의 기회 중에 한 번이 바로 지금이라고 판단 내렸다.

천운이 따라 준다면, 지옥 같은 대한 그룹의 인사담당을 탈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겨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혹시, H&J 컨설팅에 비어 있는 자리는 없습니까?”

“인사팀을 신설할 예정이기 때문에 자리는 있기는 합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겨울은 남우영 차장의 의도를 진즉에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사실은 저도 H&J 컨설팅으로 이직하기 위해서 지원서를 제출한 상태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요.”

박기훈 과장과 이재성도 질세라 한마디 보탰다.

“남 차장님, 저희 회사로 이직하려는 이유를 제가 알 수 있을까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별수 있습니까?”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기본적으로 입이 무거워야 한다.

겨울은 그런 점을 감안해서 남우영 차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 본 것이다.

그는 인사팀에서 잔뼈가 굳은 베테랑답게 자세한 언급을 꺼려 했다.

마음속으로 그에게 합격점을 주면서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물론 저에게도 여러분을 선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시고 있는 사장님께 정식으로 컨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가타부타 결정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저한테 보내 주시면, 사장님과 상의해서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제 이메일 주소는…….”

남우영 차장에게 이메일 주소를 알려 준 겨울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이재성의 발을 살짝 건드렸다.

반면, 이재성은 겨울이 어떤 의도로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왔는지 몰라서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그러던 와중에 겨울의 입이 열렸다.

“이런… 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네요. 이제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하! 그 뜻이었군요.’

겨울의 의도를 뒤늦게 간파한 이재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차장님, 제가 한 부사장님을 따라가도 될까요?”

이 말과 함께 이재성이 남우영 차장에게 은밀하게 신호를 보냈다.

남우영 차장은 그의 의도를 단숨에 알아챘다.

자기들을 겨울에게 어필할 생각인 것이리라.

가지 않겠다고 해도 등 떠밀어 보낼 판인데, 잘됐다 싶었다.

“그렇게 해.”

“내일 뵙겠습니다.”

이재성은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서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하고 겨울의 일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겨울의 일행에게 다가간 이재성은 특유의 쾌활한 성격답게 셀프 소개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떠들썩한 소개가 끝나자마자, 호영이 가볍게 한마디 했다.

“이재성 씨, 저한테 잘 보여야 하는 거 알고 계시죠?”

“네? 왜요?”

“가을이네 부모님은 제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고 계시거든요.”

이재성은 호영의 말을 허풍으로 여기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겨울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우리 부모님이 제 말보다 호영 씨의 말을 더 신뢰하긴 하죠.”

“아이고,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역시 태세 전환이 빠른 이재성이었다.

“가을이와 연애가 잘 풀리지 않으면, 제가 지원 사격해 줄게요.”

“그래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하하, 이제 한 부사장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세요.”

호영이 웃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겨울은 이참에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물었다.

“재성 씨, 가을이가 그러던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중이라면서요?”

“맞아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상관없는데…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견디기 힘드네요.”

“남우영 차장님과 박기훈 과장님도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입니까?”

“네. 저보다 몇 배는 더 심하게 받고 있을 겁니다.”

“이유가 뭔데요?”

이재성은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한 부사장님, 나중에 본인들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겨울은 이재성이 인사팀 소속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재성 씨, 방금 전에 한 질문은 기억 속에서 지워 주세요.”

“네, 알았어요.”

“재성 씨는 두 분들과 어떤 사이입니까?”

“남 차장님은 대학교 같은 과 직속 선배이고, 박 과장님은 같은 대학 선배입니다.”

“그분들의 능력은 어떻습니까?”

“남 차장님은 실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리더십을 겸비하고 있어서 따르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그리고 박 과장님도 남 차장님 못지않은 실력파고요.”

“재성 씨, 남 차장님이 우리 회사 인사팀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

“당연히 ‘Yes’입니다.”

이재성은 눈을 반짝이며 깊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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