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54화 (154/328)

[154화] 문제의 TV 진열대

“네, 그렇습니다.”

송훈석 회장의 질문을 받은 장대산은 짧게 대답하고, 설명을 계속 이어 갔다.

“DHS는 기초조사 끝에 작년 7월부터 TCL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최고급 65인치 TV들에 백도어가 설치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비밀리에 제조 번호를 추적하던 끝에 나이지리아의 라고스와 아부자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TV들도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3월 초에 오코사 실장님께 통보해 드렸습니다.”

“두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TV들만 교체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미국 정부도 송 회장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지리아 정부는 의외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나이지리아 정부가 그렇게 결정한 이유를 짧게 유추해 보았다.

오코사 실장은 두 공항에 설치된 TV에서 발견된 백도어 프로그램을 근거로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강하게 클레임을 제기했을 것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TV에 백도어 프로그램이 설치된 사실을 덮기 위해서, 나이지리아의 전국 공항에 설치된 TV들을 교체해 주겠다고 제안했을 것이고.

그는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장대산 부사장한테 물었다.

“중국 정부는 피해 보상을 돈으로 지급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하리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은 돈으로 나이지리아의 전국 공항에 설치된 TV들을 교체하는 것으로 결정한 상태입니다.”

장대산 부사장의 뒤를 이어서 겨울이 한마디 보탰다.

송훈석 회장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은 점이 있었다.

이무리 중국이 피해를 보상해 줬다고 하더라도, 굳이 전국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TV를 교체할 필요가 있는가 여부였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바하리 대통령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해 드리면, 흔적 지우기라고 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겨울과 짧게 대화를 마무리한 송훈석 회장은 장대산 부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장 부사장, TCL이 제조한 TV 중에서 백도어가 설치된 제품은 최고급 65인치 TV밖에 없었나요?”

“추가로 있는지 DHS에서 은밀하게 조사하고 있습니다.”

“DHS는 TCL을 제재할 예정인가요?”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면 제재에 들어갈 겁니다.”

TV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최홍주 이사는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세계 TV 시장은 대한전자, BK전자, TCL이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TCL이 DHS의 제재를 받아서 화웨이처럼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면, 대한전자가 반사이익을 얻어서 MS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유지할 수도 있다.

잘만하면 자신의 앞날에 12차선 고속도로가 뚫릴 수 있는 상황.

최홍주 이사가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송훈석 회장과 장대산 부사장의 대화는 계속 진행됐다.

“TCL이 최고급 65인치 TV에 백도어를 설치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지금 DHS에서 조사하고 있는 사항이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잠시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서 언제 들어왔는지, 서동호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장 부사장님, 오코사 실장님께 바가지를 옴팍 씌우라고 말씀해 주지 그랬어요.”

“저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실제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제일 중요한 납기는 어떻게 됩니까?”

“실장님,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은센기 사장님께 듣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120% 수행한 장대산 부사장이 뒤로 물러났다.

은센기 사장은 본격적인 얘기를 꺼내기 전에 모두들 잊고 있는 점부터 상기시켰다.

“실장님, 이제 실무자들을 부르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합시다.”

잠시 후, 실무자들이 임원 회의실로 들어왔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안정되자, 은센기 사장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납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고급 65인치 TV 5만 대는 나이지리아 도착 기준으로 계약 후 3개월입니다.”

순간, 최홍주 이사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TV 5만 대를 무리 없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최소 70일은 걸린다.

나이지리아의 최대 항구까지의 해운 운송기간은 적어도 45일 정도 소요되고.

운송 기간을 감안하면, 최소 45일 안에 TV 생산을 완료해야 한다는 뜻.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 기간 안에 TV 5만 대를 생산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는 발언권을 요청하고 대한전자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최 이사님, 부피가 작고 고가의 제품들은 배가 아닌 비행기로 운송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차, 제가 그 생각을 하지 못했네요.”

“계속 말씀드리면, TV를 걸어 놓는 스탠드형 진열대까지 같이 공급해 주셔야 합니다.”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진열대를 생각하면 됩니까?”

“네, 그렇습니다.”

“진열대에 대한전자 로고를 삽입할 수 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결제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그 문제는 H&J 컨설팅과 나이지리아 정부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때, 겨울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최 이사님, 저희 회사는 나이지리아 정부와 계약 체결 동시에 선수금을 받기로 했습니다. 저희도 대한전자 측과 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아주 파격적인 조건이네요.”

“모든 비즈니스에는 Give & Take가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가격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제시하라는 의미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어느 정도 얘기가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한 송훈석 회장이 입을 열었다.

“최 이사, 진열대는 우리 회사가 생산하지 않죠?”

“협력 업체에서 공급받고 있습니다.”

“협력 업체가 70일 안으로 진열대 5만 개를 제작할 수 있는지 빨리 알아보세요.”

“네, 회장님.”

최홍주 이사가 핸드폰을 들고 임원 회의실 구석으로 이동해서 통화를 시작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상호 사장이 겨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한 부사장, 내가 스탠드형 진열대를 제작하는 회사를 알고 있는데, 대한전자에 소개시켜 주면 안될까?”

순간, 겨울의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대한전자의 협력 업체가 진열대를 제작하지 못한다고 하면, SH무역에서 진열대 납품을 책임지는 게 어떨까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상도의가 있는데…….”

정상호 사장이 목적한 바가 있다는 듯 끝말을 살짝 흐렸다.

“사장님, TV 5만 대와 진열대를 발주 받은 회사는 대한전자가 아니라, 저희 H&J 컨설팅입니다.”

“그야 그렇지.”

“혹시 모르니까, 진열대 제작 가능 여부와 가격을 미리 알아보도록 하세요.”

겨울의 말을 듣자마자 원효석 실장이 핸드폰을 들고 조용히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협력 업체와 통화를 끝낸 최홍주 이사가 송훈석 회장에게 통화한 내용을 보고했다.

“납기 내에 제작은 가능하다고 하는데, 가격을 너무 비싸게 제시했습니다.”

“협력 업체가 얼마를 제시했습니까?”

“달러로 환산하면, 450달러 정도 됩니다.”

“최 이사는 얼마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비싸도 350달러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은근히 화가 치솟아 올랐다.

협력 업체가 자신들에게 무려 500만 달러를 바가지 씌우려고 하는데, 기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깎아 달라고 요청해 봤나요?”

“깎아서 그 가격입니다.”

“혹시 협력 업체 사장이 우리 회사와 관련이 있는 사람입니까?”

“네. 오성진 전 사장입니다.”

송훈석 회장은 오성진 사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최성진 부회장의 수족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운영하는 회사를 대한전자의 협력 업체로 선정되도록 최성진 부회장이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보스인 최성진 부회장을 믿고, 대한전자에 배짱부리며 TV 진열대를 납품하고 있는 중이고.

성격 같아서는 협력 업체를 당장 바꾸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납기 안에 진열대를 제작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최 이사, 오 사장한테 부탁해서 400달러까지 깎아 보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느새 들어왔는지 원효석 실장이 겨울에게 작은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메모지에 적혀 있는 가격을 확인한 겨울은 이대로 지켜만 볼 수 없었다.

그는 메모지를 정명훈 사장에게 건네주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사장님, 오코사 실장은 의외로 꼼꼼한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제가 드린 메모지를 확인하시면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메모지를 펼쳐본 정명훈 사장은 온몸에 솜털이 곤두섰다.

― TV 진열대 제작 가격 : 대당 300달러.

― 대량 주문과 선수금 조건인 경우에는 250달러까지 가능.

만약에 오코사 실장이 TV 진열대 가격을 조사해서 150달러나 차이 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그야말로 초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자신들로부터 무려 750만 달러나 바가지를 쓰는데, 그것을 알고 가만히 있겠는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자기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우리 회사는 대한전자로부터 TV만 공급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진열대는 어떻게 하고요?”

“저희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SH무역 측에 TV 진열대의 가격을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격이 얼마였습니까?”

“대량 주문과 선수금 조건인 경우에는 대당 250달러에 맞춰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이쿠, 이런…….”

송훈석 회장이 낙담한 듯 탄식을 내뱉었다.

“물론 재료의 종류에 따라서 약간의 가격 차이가 있겠지만, 150달러의 가격 차이는 너무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오코사 실장이 H&E 트레이딩을 통해서 SH무역에 정수기를 발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그는 H&E 트레이딩이 제출한 견적서를 토대로 가격을 조사했습니다. 그의 성격상 이번에도 가격 조사 할 것이 확실합니다. 만약에 TV 진열대의 가격이 150달러나 차이 나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저희뿐만 아니라 대한 그룹의 신뢰에도 금이 갈 것이 확실합니다.”

정명훈 사장과 겨울의 얘기를 들은 송훈석 회장은 창피한 마음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낱 TV 진열대 건으로 오코사 실장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면, 나이지리아에서 진행하는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상황.

나중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사과하는 것이 맞았다.

“정 사장, 한 부사장,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 대한전자는 최고급 65인치 TV만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협력 업체가 진열대의 가격을 250달러까지 낮추지 못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정 사장님,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습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진열대에 우리 회사의 로고를 삽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답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정명훈 사장이 한발 뒤로 물러나자, 그 자리를 원효석 실장이 차고 들어왔다.

“회장님, 제가 진열대 제조업체에 그 점에 대해서 부탁했는데, 흔쾌히 동의해 줬습니다.”

“원 실장님, 그 회사의 사명과 대표이사의 이름을 알 수 있습니까?”

“회사 이름은 CW 앵글이고, 대표이사는 이강진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이번 기회에 대한전자와 거래하고 있는 협력 업체를 교체해 볼 생각입니다.”

“아, 그렇군요. 내일 당장이라도 이강진 사장님께 브로슈어를 가지고 대한전자를 방문하라고 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원효석 실장과 대화를 중단한 송훈석 회장은 임용식 대한전자 사장한테 말을 걸었다.

“임 사장, CW 앵글의 이강진 사장님을 회사로 부르지 마시고, 직접 찾아가도록 하세요.”

임용식 사장은 송훈석 회장의 지시가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연간 매출액 200조가 넘는 초대형 회사를 이끌고 있는 자신에게 듣도 보도 못한 회사의 대표이사를 찾아가서 만나 보라니.

이런 지시를 내리는 송훈석 회장의 의도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회장님, 최 이사를 보내는 건 어떻습니까?”

“내가 임 사장을 CW 앵글에 보내려고 하는 이유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모르겠습니다.”

분위기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한 임용식 사장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성진 사장이 대한전자와 거래하면서 얼마나 많은 폭리를 취했는지 확인해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제 이해했습니까!”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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