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53화 (153/328)

[153화] 또다시 등장한 백도어 프로그램

송훈석 회장의 지시를 받은 최홍주 이사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후,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정명훈 사장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최고급 65인치 5만 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컴퓨터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유석균 이사는 큰일 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데스크톱 컴퓨터의 경우에는 대부분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납기가 충분하게 주어지면 모르겠지만, H&J 컨설팅이 발주 받은 컴퓨터 60만 대를 전량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급 불가능한 물량은 토해 내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분위기기 너무 심각해서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유석균 이사가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최홍주 이사의 보고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긴급 대책 회의를 하자고 제안해 놓은 상황입니다.”

“최 이사, 최고급 65인치 TV는 공급 가능합니까?”

“최종 바이어가 요구하는 납기부터 확인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일단 알았어요. 데스크톱 컴퓨터에 사용되는 모니터는 어때요?”

“대부분이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전량 공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모니터와 데스크톱 컴퓨터를 우리나라 공장에서 생산한다고 가정할 경우에 한 달에 최대 몇 대까지 생산 가능합니까?”

“10만 대가 최대입니다.”

“데스크톱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암운이 드리워지는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임용식 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회장님, H&J 컨설팅에 최고급 TV는 공급하고, 컴퓨터는 거절하는 것이 어떨까요?”

“임 사장, H&J 컨설팅이 어떤 회사인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아프리카 법인장이던 정명훈 상무가 퇴직하고 설립한 회사로 알고 있습니다.”

“임 사장이 그 회사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줄게요. 만약에 다음에도 내 앞에서 똑같은 말을 내뱉으면, 사장 자리는 다른 사람이 차지할 거라는 것만 알고 있어요.”

“회장님, 제가 실언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송훈석 회장의 강력한 경고성 발언에 임용식 사장이 고개를 바닥까지 조아리며 사과했다.

“서 실장, H&J 컨설팅이 어떤 회사인지, 임 사장한테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네, 회장님.”

짧게 대답한 서동호 실장은 임용식 사장한테 매서운 눈초리를 쏘아 보낸 후, 입을 열었다.

“H&J 컨설팅은 지난 2월에…….”

* * *

같은 시각.

SH무역의 정상호 사장은 호영의 급한 전화를 받고 대한 그룹 본사로 이동 중에 있었다.

그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원효석 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원 실장, 호영이한테 전화해서 어떤 상황인지 파악해 봐.”

“회사에서 출발하는 즉시, 전화해 달라고 문자를 보내 놓은 상태입니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이유가 뭘까?”

“호영이가 은센기 사장을 태우고 대한 그룹 본사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군,”

윙윙―

그때, 정상호 사장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급하게 발신자를 확인하니, 겨울이었다.

“한 부사장이 웬일이야?”

[호영이가 운전 중이라서 제가 대신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나한테 설명해 줄 수 있어?”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5개국이 최고급 TV, 최신 사양의 데스크톱 컴퓨터, 컵라면, 즉석 밥을 발주한 상황입니다.]

“우리 회사는 컵라면과 즉석 밥을 수출하면 될 것 같은데, 내가 대한 그룹 본사까지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다른 회사가 제조한 최신 사양의 컴퓨터를 SH무역이 공급해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상호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민국에 컴퓨터 제조 업체가 여럿이 있지만, 대한전자보다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제조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겨울에게 이 점을 언급하며 의문을 나타냈다.

[최종 바이어가 발주한 컴퓨터의 물량도 많고,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로워서 납기 안에 전량 공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량과 조건을 얘기해 줄 수 있나?”

[발주 받은 컴퓨터 숫자는 모두 60만 대이고,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은 수입하지 않겠답니다.]

“뭐라고?!”

화들짝 놀란 정상호 사장이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제가 사장님께 연락드린 이유는 다른 회사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최신 사양의 컴퓨터 숫자를 파악해 보기 위함입니다.]

“컴퓨터 제조 회사마다 사양이 조금씩 다른데, 상관없을까?”

[저희가 그 사양대로 최종 바이어한테 견적서를 제공하면 되니까, 큰 문제없을 겁니다.]

“언제까지 알아보면 될까?”

[대한 그룹과 회의를 시작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와야 할 겁니다.]

정상호 사장은 머릿속으로 남아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대한 그룹 본사까지는 끽해야 30분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즉, 그 시간 안에 공급 가능한 컴퓨터 수량을 파악해야 한다는 뜻.

지금 한가하게 겨울과 통화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한 부사장, 일단 알았으니까, 나중에 통화하자고.”

[전화를 끊기 전에 대한 그룹 본사에 언제 도착 가능한지 알려 주세요.]

“30분이면 충분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겨울과 통화를 끝낸 정상호 사장은 급하게 원효석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원 실장, 지금부터 최대한 빨리 최신 사양의 데스크톱 컴퓨터…….”

* * *

대한 그룹 본사가 저 멀리 보이자, 운전대를 잡은 호영이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 나는 우리 회사 사장님을 모시고 가야 하니까, 너는 은센기 사장님하고 먼저 올라가.”

“정 사장님도 우리와 같은 시간에 도착하실 것 같으니까, 기다렸다가 같이 올라가자.”

“알았어. 그나저나 납기는 어떻게 되는데?”

“TV와 컴퓨터는 계약일로부터 3개월이고, 컵라면과 즉석 밥은 6개월이야.”

“아프리카까지 해운 운송 기간을 감안하면, 시간이 거의 없다고 봐야겠네?”

“TV와 컴퓨터는 어쩔 수 없이 항공으로 운송해야 할 거야.”

“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윙―

그때 문자가 왔는지 은센기 사장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문자 내용을 확인한 은센기 사장은 호영에게 말을 건넸다.

“정호영 씨, 방금 전에 루암바 과장이 정수기 50만 대에 대한 선급금을 송금했다는 송금 확인증을 보내왔습니다.”

“네? 벌써요?”

“어차피 지급해야 할 수입 대금이잖아요.”

이 말과 동시에 은센기 사장이 겨울의 발을 살짝 건드렸다.

그가 어떤 의미로 신호를 보내왔는지 알고 있는 겨울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다.

그러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하여간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송금 확인증을 저한테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지금 보내 드릴게요.”

대한 그룹 로비에서 정상호 사장과 원효석 실장을 만난 겨울 일행은 송훈석 회장을 방문하기 위해서 회장실로 향했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서 회장실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들 모두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겨울과 서동호 실장이 나서서 재빨리 서로를 소개시킨 뒤, 인원이 많은 관계로 임원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임원 회의실.

상석에 앉은 송훈석 회장은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병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은센기 사장님은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오신 거라면서요?”

“9년 전에 콩고민주공화국의 청소년 축구대표 선수로 선발돼서 한국 땅을 밟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겨울 부사장도 만났겠네요?”

“네. 경기장에서 만났는데, 저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다니, 신기한 일이네요.”

“그렇습니다. 작년에 한 부사장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는 아직도 킨샤사에서 택시를 운전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작년에 한 부사장을 만났을 당시를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겨울은 송훈석 회장이 이런 말을 꺼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은센기 사장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은센기 사장은 VIP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인해서 웬만해서는 긴장하지 않는 강심장으로 변한 지 오래라는 점이었다.

겨울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은센기 사장의 입이 열렸다.

“저는 축구 선수로 대성해서 유럽 리그에 진출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6년 전에 축구 경기를 하다가 부상을 심하게 당하는 바람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

은셍기 사장은 부상을 입고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하게 된 얘기와, 택시 운전을 시작하게 된 이유, 겨울을 만나서 일어난 일들을 간단하게 풀어놓았다.

“…제가 영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쳐 주면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은센기 사장님, 이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셨나요?”

‘후후, 회장님을 만날 당시에도 긴장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네. 이제 많이 편안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 다섯 나라의 VIP들로부터 어떤 품목을 발주 받았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먼저 최고급 TV부터 말씀드리면, 나이지리아 정부는 아부자 공항을 비롯한 전국 공항에 최고급 65인치 TV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임용식 사장은 작년의 기억을 소환했다.

작년 11월에 나이지리아의 최대도시인 라고스에 업무 출장차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당시에 라고스 공항 내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TCL(중국 TV 제조 회사)의 65인치 최고급 TV를 확인하고는 배가 아파서 죽을 뻔했다.

TCL의 TV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제조 일자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이 3월이니까, 제조일자는 이제 겨우 7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즉, TV를 교체할 시기가 아니라는 뜻.

하지만 나이지리아 정부는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TCL TV를 교체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 조용히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하고, 당시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질문을 던졌다.

“…7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TV를 교체하려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임용식 사장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은 은센기 사장은 난감했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TV 교체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연합군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모두 오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소문이 밖으로 퍼져나가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장대산 부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회장님, 실무자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민감한 내용임을 암시하는 그의 말에 송훈석 회장은 즉시 화답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까?”

“넉넉잡고 30분이면 충분할 겁니다.”

“실무자들은 회의실 근처에 얼쩡거리지 말고, 사무실에 복귀했다가 올라오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르르.

실무자들이 임원 회의실 밖으로 퇴장하자, 송훈석 회장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서 실장은 비서실 직원들을 시켜서 임원 회의실 근처에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서동호 실장이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임원 회의실 밖으로 퇴장했다.

주변 정리를 신속하게 끝낸 송훈석 회장은 장대산 부사장의 말을 재촉했다.

“장 부사장, 이제 얘기해 보세요.”

“네, 회장님.”

짧게 대답한 장대산 부사장은 시선을 임용식 사장에게 돌리며 말을 걸었다.

“임 사장님, 제가 하는 언급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영원히 비밀로 하셔야 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임용식 사장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묻어났다.

“임 사장님, 혹시 백도어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요즘 언론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백도어 프로그램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셔도 될 겁니다.”

“작년 12월에 미국의 국토 안보부(DHS, United States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는 TCL이 미국에 수출한 최고급 65인치 TV에서 백도어가 설치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장 부사장, 이번엔 TV입니까?”

송훈석 회장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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