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52화 (152/328)

[152화] 문제는 납기

정명훈 사장에게 핸드폰을 돌려받은 은센기 사장은 오코사 실장과 본격적으로 통화를 시작했다.

[은센기 사장님, 최종 발주 물량과 자세한 요청 사항은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발주 물량은 정 사장님께 보여 줘도 상관없지만, 요청 사항은 반드시 구두로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단, 한겨울 부사장님께는 얼마든지 보여 주셔도 됩니다.]

은센기 사장은 오코사 실장이 이와 같이 언급한 이유를 즉각 알아챘다.

가격 및 이익 배분 등과 같이 민감한 내용이 요청 사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한 부사장님께는 제가 이메일로 보내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네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오코사 실장과 통화를 끝낸 은센기 사장은 겨울에게 요청했다.

“한 부사장님, 컴퓨터를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은센기 사장, 내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세요.”

겨울이보다 정명훈 사장의 대답이 먼저 나왔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정명훈 사장의 책상 앞에 앉은 은센기 사장은 오코사 실장이 보내온 이메일을 열어 첨부 파일의 내용을 확인했다.

― 최고급 65인치 TV 및 설치대 : 50,000대

― 최신 사양의 컴퓨터 : 600,000대

― 컵라면 : 3,000,000개

― 즉석 밥 : 3,000,000개

발주서를 확인한 은센기 사장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으로 떠나오기 전에 오코사 실장 등에게 발주 받은 품목들 중에서 TV를 제외한 컴퓨터와 컵라면, 즉석 밥의 숫자가 크게 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요청 사항을 클릭하고,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바이어들이 요구한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후, 겨울에게 이메일을 보내 놓고 발주서 세 부를 인쇄했다.

발주서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오니, 겨울이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은센기 사장님, 표정이 많이 어두워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VIP분들이 발주한 품목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그럽니다.”

“얼마나 많은데요?”

“발주서를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은센기 사장한테 발주서를 건네받아서 읽어보던 정명훈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TV를 제외하고 하나같이 만만한 품목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호영은 밀려오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들이 H&E 트레이딩에 공급해야 할 컵라면과 즉석 밥은 숫자는 엄청나게 많지만,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수출 금액이 1,000만 달러도 안 됐기 때문이다.

‘정호영, 정신 차려! 아무 노력 없이 1,000만 달러 정도의 컵라면과 즉석 밥을 수주 받았으면,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

호영이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사이, 은센기 사장이 입을 열었다.

“발주서를 모두 읽어 보셨을 것으로 알고, VIP들이 요청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일 먼저 중국에 소재한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은 수입이 불가합니다.”

정명훈 사장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많은 종류의 TV와 컴퓨터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자신의 추측이 맞다면, 발주서대로 바이어한테 TV와 컴퓨터를 수출하는 데는 적잖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 확실했다.

일단 자신의 예상이 맞는지 확인해 보는 게 급선무였다.

“은센기 사장, 내가 급하게 확인할 게 있으니까, 설명을 잠시 멈춰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곧바로 대한전자에서 TV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최홍주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사장, 아주 귀국했나 봐?]

“최 이사, 급하게 물어볼 게 있어.”

[응? 얘기해 봐.]

잔뜩 긴장한 최홍주 이사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최고급 65인치 TV 5만 대를 나이지리아에 수출할 예정인데,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은 수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야.”

[납기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최고급 TV의 경우는 우리나라 공장에서 생산하니까 괜찮아.]

“그렇다면 다행이고.”

[납기를 포함한 기타 정보를 알려 줄 수 있어?]

“다른 급한 건부터 처리하고, 조금 있다가 전화해 줄게.”

[수출해야 할 품목이 또 있어?]

“최신 사양의 컴퓨터 60만 대를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다섯 개 나라에 수출해야 해. 조건은 TV와 동일하고.”

[뭐라고?!]

최홍주 이사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겨울에게도 들릴 정도였다.

“왜 이렇게 놀라는데?”

[모니터는 TV 공장에서 생산하잖아.]

“아차, 내가 그 점을 깜빡했네. 그나저나 컴퓨터를 우리나라 공장에서 생산해서 공급할 수 있을까?”

[납기를 1년 정도 주면 가능할 거야.]

즉,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컴퓨터의 경우에는 매년마다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납기 1년은 터무니없는 얘기였다.

정명훈 사장은 짧게 해법을 궁리한 후, 최홍주 이사와 통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면 모니터도 공급이 불가능하다고 봐야겠네?”

[당연한 걸 왜 묻는데? 지금 어디야?]

“왜?”

[대책 회의 해야 하잖아.]

“우리가 너희 회사로 가는 편이 빠를 것 같다.”

[품목은 TV와 컴퓨터뿐이지?]

“어.”

[긴급회의를 소집해 놓을 테니까, 한 시간 정도만 시간을 줘.]

“알았어.”

뚝.

마음 급한 최홍주 이사가 전화를 먼저 끊었다.

정명훈 사장은 시선을 은센기 사장에게 옮기며 말을 건넸다.

“대한전자에서 대책 회의를 갖기로 했습니다. 그때 자세한 수입 조건을 얘기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조용히 앉아 있던 호영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은센기 사장님, 컵라면과 즉석 밥 수출 건에 대해서는 내일 따로 만나서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내일 오전에 전화하겠습니다.”

호영이 마무리를 짓고 일어나려고 하자, 정명훈 사장이 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호영 씨, 사장님한테 전화해서 대한 그룹 본사로 최대한 빨리 오시라고 하세요.”

“네? 이유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 회사가 발주 받은 컴퓨터 60만 대는 대한전자가 전량 공급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즉, 잔여 물량은 SH무역을 통해서 공급받겠다는 의도였다.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시무룩하던 호영의 표정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최홍주 이사는 대한전자의 임용식 사장을 찾아가서 정명훈 사장과 통화한 내용을 보고했다.

“긴급회의를 소집해야 할 것 같습니다.”

“H&J 컨설팅이라…….”

최홍주 이사의 보고를 끝까지 들은 임용식 사장은 혼잣말을 내뱉으며 소파의 팔걸이를 손끝으로 건드렸다.

타다닥, 타다닥.

최홍주 이사는 그가 어떤 생각하고 있는지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했다.

장고에 들어가 있던 임용식 사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최 이사, H&J 컨설팅이 어떤 회사인지 나한테 얘기해 줄 수 있나?”

최홍주 이사는 지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지난 2월 말에 정명훈 사장이 대한 그룹을 그만둔다는 얘기를 입사 동기인 핸드폰 마케팅의 하공식 이사한테 전해 들었다.

회장님의 총애가 한창인 그였기에 회사를 그만둘 리 없다고 치부하고 가볍게 흘려 넘겼으나, 혹시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정명훈 사장은 이미 H&J 컨설팅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상태라고 하면서, 구체적인 사업계획까지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아쉽다기보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을 정도로 사업 계획이 너무 엄청나서 진심으로 축하 박수를 보낸 기억이 났다.

짧게 생각을 끝낸 최홍주 이사는 임용식 사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H&J 컨설팅은 아프리카 법인장이던 정명훈 사장이 지난 2월 말에 설립한 회사로…….”

임용식 사장은 최홍주 이사의 얘기가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정 사장이 최 이사한테 허풍 친 게 아닐까?”

“사장님, 정 사장은 그런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확실해?”

“서동호 실장님, 또는 이진호 사장님이 정 사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봐.”

최홍주 이사와 대화를 중단한 임용식 사장은 즉시 서동호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 사장이 웬일입니까?]

“실장님, 긴급하게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혹시 H&J 컨설팅이라는 회사를 알고 계십니까?”

[임 사장이 그 회사를 어떻게 알고 있는데요?]

즉, 서동호 실장도 H&J 컨설팅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방금 전에 TV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최홍주 이사한테 들었습니다.”

[최 이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H&J 컨설팅이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들로부터…….”

임용식 사장의 설명을 듣고 있던 서동호 실장이 급하게 말을 걸어 왔다.

[임 사장, 지금 당장 최 이사와 컴퓨터 마케팅을 담당하는 임원과 함께 회장실로 올라오세요.]

“네, 실장님.”

뚝.

서동호 실장이 전화를 먼저 끊었다.

일이 점점 커진다는 생각이 들은 임용식 사장은 재빨리 최홍주 이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최 이사, 컴퓨터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지?”

“유석균 이사입니다.”

“유 이사한테 전화해서 조금 있다가 회장실 입구에서 만나자고 해.”

“네, 사장님.”

* * *

임용식 사장과 통화를 끝낸 서동호 실장은 송훈석 회장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노크와 함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 실장, 무슨 일이야?”

“앉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뭔데 그래?”

서동호 실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임용식 사장한테 보고받은 내용을 언급했다.

“…지금 집무실로 부른 상황입니다.”

“서 실장,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니야?”

예상한 대로 송훈석 회장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바이어가 납기를 촉박하게 요구하면,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왜?”

“최고급 TV의 경우에는 생산하기 무섭게 판매되고 있는 상태이고, 최신 사양의 컴퓨터의 경우에는 중국 공장에서 대부분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

“바이어가 ‘Made in China’는 수입 불가하다고 못 박은 상태라고 합니다.”

“아이고, 이런… 납기는 어떤데?”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정 사장한테 빨리 전화해 봐.”

“네, 회장님.”

짧게 대답한 서동호 회장은 급하게 정명훈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방금 전에 대한전자 임용식 사장한테 보고 받았습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대답해 줄 수 있습니까?”

[네, 말씀해 보십시오.]

“TV와 컴퓨터의 납기는 어떻게 됩니까?”

[H&E 트레이딩의 은센기 사장이 알고 있는데, 지금 저희 뒤에 따라오고 있습니다.]

즉, 모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어디 가고 있는 중입니까?”

[대한 그룹 본사에 긴급 대책 회의 하러 가는 중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까?”

[넉넉잡고 4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일단 회장실로 먼저 오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딸깍.

서동호 실장이 전화를 끊자, 송훈석 회장이 득달같이 질문을 던져 왔다.

“정 사장이 우리 회사에 오고 있는 중인가?”

“네. 긴급 대책 회의를 하러 오고 있답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임용식 사장이 찾아왔음을 보고했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이진호 사장과 조병석 실장을 빨리 부르세요.”

“네, 회장님.”

임용식 사장과 최홍주 이사, 유석균 이사가 송훈석 회장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임 사장, H&J 컨설팅과 긴급 대책 회의는 어디서 할 겁니까?”

임용식 사장은 아차 싶었다.

송훈석 회장에게 불려오는 바람에 회의 준비하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보고할 수는 없었다.

“회장님께 보고하고, 장소를 정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참석해야 하니까, 임원 회의실로 정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옆에 있던 최홍주 이사가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급하게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통화를 끝낸 최홍주 이사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송훈석 회장의 부름을 받고 급하게 온 이진호 사장과 조병석 실장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착석하자, 생각에 잠겨 있던 송훈석 회장이 입을 열었다.

“최홍주 이사, 정명훈 사장과 통화한 내용을 설명해 보세요.”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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