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완벽한 마무리
다음 날 아침.
회사에 출근한 겨울은 가쿠타 부장이 보내온 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출력한 후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특이하게도 그들 모두 대한 그룹에 근무하고 있거나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스펙 또한 나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을 모두 채용하면 어떨까?”
겨울은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들을 결재판에 끼워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실.
커피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정명훈 사장이 겨울에게 말을 걸었다.
“은센기 사장과 가쿠타 부장은 잘 도착했나?”
“네, 사장님.”
“두 사람의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지?”
“오전에 SH무역에서 정수기 수입 건과 관련한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오후에 우리 회사로 건너오기로 했습니다.”
“한 부사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될까?”
“가쿠타 부장이 참석해 있기 때문에 굳이 가 볼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알았어. SH무역과의 파트너십은 언제 체결하는 게 좋을까?”
겨울은 어제 저녁 식사 도중에 정상호 사장에게 그 문제에 대한 얘기를 꺼냈고, 이미 확답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정상호 사장님께서는 이번 주는 바빠서 힘들고, 다음 주는 언제든지 상관없다고 합니다.”
“파트너십 체결은 당장 급한 게 아니니까, 다음 주 후반에 일정을 잡도록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나한테 결재 받을 게 있나?”
“아프리카 무역팀에 배치할 직원들의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입니다. 사장님께서 컨펌해 주십시오.”
“어디 줘 봐.”
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꼼꼼히 읽어 본 정명훈 사장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음, 역시 가쿠타 부장이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군.”
“사장님, 지원자들을 알고 계십니까?”
“나하고 한 번 이상 근무해 본 직원들인데, 모두들 뛰어난 친구들이야.”
“사장님, 이 사람들을 모두 채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정명훈 사장도 지원자들의 능력이 탐나기는 했지만, 열 명 모두를 채용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무리였다.
“한 부사장,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
“나머지 다섯 명은 아프리카에 근무시켰으면 합니다.”
“별도의 사무실을 만들자는 얘기야?”
“아닙니다.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의 각 지점에 한 명씩 배치시키는 게 어떨까요?”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대한 그룹에서 허락해 줄지에 대한 여부였다.
“그 문제는 내가 추성민 법인장하고 상의해서 대답해 줄게.”
“네, 사장님.”
“그건 그렇고, 하 이사한테서 아무 소식이 없었나?”
현재 하도진 이사는 연합군과 중국의 협상에 H&J 컨설팅 대표로 참관 중에 있었다.
겨울은 돌아가는 상황이 궁금해서 어젯밤 늦게 이 협상을 지켜보고 있는 하도진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이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핸드폰 전원이 모두 소진됐나 보다 생각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또다시 전화를 걸어 봤지만 역시였다.
결국 아직까지 통화하지 못한 상태였다.
“핸드폰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그래?”
윙윙―
정명훈 사장이 의문을 표하는 사이,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다행히도 하도진 이사가 걸어 온 전화였다.
겨울은 정명훈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하 이사님.”
[한 부사장님, 매너콜이 들어와 있던데, 저한테 전화하셨습니까?]
“네. 전화가 안 되던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개인적인 일로 콩고민주공화국에 다녀오느라고 전원을 꺼 놓고 있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오늘 예정대로 연합군과 중국이 협정서에 사인합니까?”
[돌발 상황이 발생해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습니다.]
“돌발 상황이라뇨?”
[연합군과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계약을 파기되더라도, 자원 수출입과 관련해서는 예외를 적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겨울은 그 방안이 양측의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는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연합군의 주요 수출품으로는 구리, 다이아몬드, 코발트 등의 광물과 석유 등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연합군이 광물과 석유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되면, 당연히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중국 또한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답게 광물과 석유의 수입이 원활하지 못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따라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그들은 예외를 적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겨울은 그 문제는 돌발 상황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자기의 생각을 밝혔다.
[부사장님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네? 제가요?”
[중국은 기존에 계약한 가격 그대로 자원을 수입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무리할 정도로 아프리카 등의 저개발 국가를 대상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면에는 지배력 강화와 자원 수탈이라는 목적이 컸다.
만약에 연합군이 중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굴복한다면, 절반의 성공만 거두게 되는 셈이었다.
“하 이사님, 연합군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비교적 경제가 탄탄한 나이지리아는 반대하고 있고, 나머지 네 나라는 중국의 제안을 수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원 수출 가격을 인상하면 안 됩니까?”
[당연히 연합군들이 그런 제안을 했지만, 중국이 일언지하에 거절한 상태입니다.]
즉, 중국은 연합군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뜻이었다.
중국의 의도를 분쇄하지 못하면, 연합군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존 가격대로 자원을 수출할 수밖에 없다.
겨울은 좋은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짧게 생각해 봤지만, 당장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 보는 것으로 미뤄 놓고, 하도진 이사와 통화를 이어 나갔다.
“하 이사님, 연합군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 것 같습니까?”
[대안이 없으면, 나이지리아도 결국 연합군들과 동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부사장님,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전화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딸깍.
겨울은 즉시 통화 내용을 정명훈 사장에게 전했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특단의 대책이라…….”
정명훈 사장은 끝말을 흐리며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이와 동시에 겨울도 묘안을 찾기 위해서 두뇌를 극한까지 회전시켰다.
‘연합군의 자원을 대신 수입해 줄 국가를 찾으면 될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가 작아서 안 되고… 일단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말이나 꺼내 봐야겠다.’
결심을 굳힌 겨울은 생각에 잠겨 있는 정명훈 사장에게 말을 건넸다.
“사장님, 제가 해리슨 상원의원과 통화해 볼까요?”
“빨리 해 봐.”
겨울은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연합군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자세하게 전하고 대처 방안에 대해 물었다.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한 부사장님, 그 문제는 우리 미국이 책임질 테니까, 과감하게 지르라고 하세요.]
“상원의원님, 묘안이라도 있습니까?”
[작년도 G20(세계 주요 20개국을 회원으로 하는 국제기구)국가 중에서 경제 성장률 1위인 국가가 어디인지 알고 있나요?]
해리슨 상원의원의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린 겨울은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저는 중국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인도입니다.]
겨울은 해리슨 상원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인도를 이용해서 중국을 압박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만약에 인도가 연합군이 수출하는 광물과 석유를 수입하겠다고 나선다면, 중국은 지금처럼 그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연합군이 중국에 수출하는 광물과 석유의 가격 또한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고.
겨울은 자신이 추측한 것이 맞는지 그에게 물었다.
[한 부사장님의 추측은 50점밖에 안 됩니다.]
“제가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우리 미국의 목표는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 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국이 원자재를 수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도록 만들어 주는 방법도 하나입니다.]
“상원의원님의 말씀은 이해했지만, 연합군들이 자원을 수출하지 못하면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중국 대신 인도가 수입하게 만들어 주면 되잖아요.]
역시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생각하는 범위가 달랐다.
“아, 무슨 말씀인지 이제 감 잡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전면에 나서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그 역할은 H&J 컨설팅에서 수행하셔야 할 겁니다.]
“연합군이 인도에 자원을 수출한다고 가정할 경우에 가격은 어떻게 책정해야 합니까?”
[H&J 컨설팅의 협상 능력에 달려 있겠지만, 국제 가격보다 약간 할인해 주면 협상이 금방 끝날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만간에 인도 정부 측에서 한 부사장님께 연락이 갈 겁니다.]
“네, 상원의원님.”
[나중에 통화하십시다.]
겨울이 전화를 끊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정명훈 사장이 말을 걸어 왔다.
“한 부사장, 이 얘기를 빨리 오코사 실장님께 전화해 줘.”
“사장님, 나이지리아는 이제 새벽 2시입니다.”
“지금 오코사 실장님이 마음 편하게 잠을 자고 있을 것 같나?”
겨울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오코사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명훈 사장의 예상대로 그는 신호가 한 번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네, 한 부사장님.]
“오코사 실장님, 이 시간까지 뭘 하시느라 주무시지 못하는 겁니까?”
[한 부사장님이 하도진 이사와 통화할 때 우리도 같이 있었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연합군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뜻이었다.
겨울은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오코사 실장님, 스피커폰으로 전환해 주실 수 있습니까?”
[해법을 찾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내 말이 맞겠지요?]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오코사 실장의 수를 읽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는 ‘스피커폰’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하하하, 잠깐만 기다리세요.]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웅성거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한 부사장님, 이제 말씀해 보세요.]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자원을 수출할 수 없다고 통보하십시오.”
[네?!]
깜짝 놀란 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성거리는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자원을 중국에 수출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미국에서 전적으로 책임져 주기로 했습니다.”
겨울은 해리슨 상원의원과 통화한 내용을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국제 시세보다 조금 저렴하게 수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조만간에 여러분과 인도 정부 사이에 협상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한 부사장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중국과의 협상을 완벽하게 마무리하십시오.”
[암요. 그렇게 해야죠.]
“충분하게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하하,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잘 생각입니다.]
“나중에 통화하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오코사 실장과 통화를 끝내자, 정명훈 사장이 말했다.
“인도와의 협상 테이블에는 누가 앉아야 하지?”
겨울은 정명훈 사장의 속마음을 단숨에 눈치챘다.
“사장님밖에 더 있습니까?”
“한 부사장, 나한테 일거리가 잔뜩 쌓여 있는 거 모르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우, 알았어.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짬을 내 볼게.”
“이러다가 저희가 먼저 과로사 할 것 같습니다. 무언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 그래도 우리 일을 분담해 줄 사람들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야.”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대한 그룹에서 이승훈 팀장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장 부사장도 부르도록 하세요.”
“네, 사장님.”
이승훈 팀장은 정명훈 사장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이 팀장,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가지고 왔나?”
“네.”
“파트장 역할을 수행할 세 사람의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도 가지고 왔겠지?”
이승훈 팀장이 머뭇거리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그게… 조금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