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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145화 (145/328)

[145화] 마음 급한 사람들

정명훈 사장은 이수진의 답변 여부에 따라서 당락을 결정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자기가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으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탈락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답변을 꺼내 놓았다.

정명훈 사장은 흡족한 마음으로 그녀와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이수진 씨가 우리 회사에 합격하면, 근무할 부서는 투자 분석 검증팀입니다. 직원들 대부분은 해외 유학파이고, 석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직원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의 80% 이상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비롯한 두세 가지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남아 있는 커피를 마저 마신 후, 말을 이어 나갔다.

“이에 반해서 이수진 씨는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밖에 내세울 게 없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항상 겸손함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수진은 역시 연륜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자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잘났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정명훈 사장은 자기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 보기도 전에 그 점을 정확하게 지적했고, 이에 곁들여 충고까지 해 주었다.

자기에게 뼈와 살이 되는 충고를 해 준 그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사장님의 말씀을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 보세요.”

“저를 채용해 주시면, H&J Investment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수진 씨의 합격 여부는 우리 경영진이 협의해서 별도로 알려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축객령을 받은 이수진이 떠나가자 정명훈 사장은 겨울과 장대산 부사장한테 그녀의 채용여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겨울은 이수진을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났을 당시부터 마음에 들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은근히 뿜어져 나오는 당당함이 멋졌으니까.

그녀를 채용하기를 바랐으나, 결정적으로 자기에는 결정권이 없었다.

“저는 이수진 씨하고 같이 근무하지 않기 때문에 사장님과 장 부사장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장 부사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이수진 씨가 당돌한 면은 있지만,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진호 사장님을 생각해서라도 이수진 씨를 채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은 정명훈 법인장은 잠깐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장 부사장도 얘기했지만, 이수진 씨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한 편이야. 그녀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않으면, 나중에 회사에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어.”

“제가 이승훈 팀장께 얘기해 놓겠습니다.”

“그나저나 이승훈 팀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미 채용하기로 결정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하하, 알았어. 이제 다른 문제를 얘기해 보자고.”

“네, 말씀하십시오.”

“우리 회사를 전반적으로 관리할 부서와 인사를 담당할 부서를 신설해야 할 것 같아.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

겨울도 그 점에 대해서는 정명훈 사장과 생각이 전적으로 같았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던 순간, 장대산 부사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저는 사장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총무팀장과 인사팀장으로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나?”

겨울의 머릿속에 이재성이 떠올랐지만,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한 그룹에 입사한지 1년 갓 지난 그에게 인사팀장 자리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저는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과 장대산 부사장의 말에 정명훈 지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팀장들은 내가 알아서 채용해 볼게.”

“네, 알겠습니다.”

“또 내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있나?”

“오늘 오후에 은센기 사장이 SH무역의 초대를 받고 우리나라에 들어옵니다. 제가 공항에 나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 SH무역의 정상호 사장님은 언제 만나 볼까?”

“제가 오늘 정 사장님을 만나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았어. 또 다른 것은 없나?”

겨울은 어젯밤 늦게 우간다의 마사카 부통령으로부터 난감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송유관 건설 공사를 H&J 컨설팅에서 수주해서 대한 그룹에 넘겨줬으면 하는 속내를 내비쳤다.

이유는 보나마나 빤했다.

5,000만 달러가 넘어가는 커미션에 눈독 들이고 있는 것이리라.

자기도 마사카 부통령과의 우호 관계를 생각해서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었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자신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해서 당사자들인 토탈, 대한 그룹과 상의를 거친 후에 답변해 준다고 결정을 미뤄 놓은 상태였다.

제법 긴 생각을 끝낸 겨울은 정명훈 사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사장님, 어젯밤에 마사카 부통령에게 전화를…….”

겨울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정명훈 사장 또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작부터 마사카 부통령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에.

“한 부사장 생각은 어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그렇다 할 만한 묘안은 생각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알았어.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해법을 찾아볼게.”

지이잉―

그때, 소탁 위에 올려놓은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표시된 전화번호를 확인한 겨울은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부투야 실장님.”

[한 부사장님, 통화 가능합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콩고민주공화국은 새벽 시간 아닙니까?”

[아침에 나이지리아로 출장 가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부투야 실장이 나이지리아로 출장 가는 이유는 보나마나 빤했다.

“실장님, 협상이 타결됐습니까?”

[네. 어젯밤에 협상이 거의 완료됐고, 내일 오전에 협정서에 사인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실장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고마워요. 내가 한 부사장님께 급하게 전화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잉가 3댐 공사 때문입니다.]

작년 10월, 국제 입찰을 실시한 잉가 3댐 건설 공사는 스페인의 ACS와 중국의 CTG 컨소시엄이 140억 달러에 낙찰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1월에 CTG 측이 바통고 대통령 등에게 백도어가 설치된 핸드폰을 선물함으로 인해서, 현재 댐 공사 착공 시기는 하염없이 늘어지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고 있는 ACS와 CTG는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에 댐 공사를 최대한 빨리 착공할 수 있도록 로비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지만,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느낌상 바통고 대통령은 중국과 협상이 타결되는 즉시, CTG와 ACS의 컨소시엄과의 잉가 3댐 건설공사 계약을 파기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겨울은 그들이 토해 낸 공사를 가져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부투야 실장의 얘기에 주의를 기울였다.

[바통고 대통령님께서는 최대한 빨리 잉가 3댐 공사를 시작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내일 오후에 두 회사에 계약 파기 공문을 보낼 예정입니다.]

그때, 겨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실장님, 계약 파기를 선언하면 ACS나 CTG 측에 위약금을 지급해야 하지 않습니까?”

[계약 파기에 따른 원인은 우리가 아니라 CTG 측에서 제공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ACS 측에서 상당히 억울하겠는데요?”

[억울함은 우리가 아니라 CTG 측에 호소해야 할 겁니다.]

“위약금은 얼마입니까?”

[공사 예정 금액의 10%입니다.]

즉, 14억 달러가 위약금이라는 얘기였다.

위약금 문제는 ACS와 CTG 측의 문제였기 때문에 겨울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실장님,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통령님께서는 늦어도 상반기 중에 잉가 3댐 공사를 시작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상반기 중에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전에는 계약서 사인을 끝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잉가 3댐 공사에 대한 타당성 검토조차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겨울이었다.

“실장님, 잉가 3댐에 대한 자료를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이메일로 보내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가쿠타 부장한테 USB를 건네줬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타당성 검토를 끝내고, 계약서에 사인하러 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한 그룹이 잉가 3댐과 관련한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까, 타당성 검토하는 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을 겁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나중에 통화하십시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정명훈 사장이 재빨리 질문해 왔다.

“부투야 실장이 뭐라고 하는데?”

“상반기 중에 잉가 3댐 공사를 착공했으면 좋겠답니다.”

“아이고, 일거리가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구나.”

말은 그렇게 했어도, 정명훈 사장의 입꼬리는 한없이 위로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대한 그룹 측에 연락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 부사장, 은센기 사장이 몇 시에 도착한다고 했지?”

“오후 4시입니다.”

“그럼 시간이 충분하겠군.”

겨울과 대화를 중단한 정명훈 사장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정 사장님.]

“조 실장님, 잉가 3댐 공사와 송유관 건설 공사 건과 관련해서 긴급회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길게는 설명하지 못하고…….”

정명훈 사장은 겨울에게 들은 얘기를 조병석 실장에게 짧게 요약해서 전달했다.

[지금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늦어도 10시 30분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뚝.

조병석 실장이 일방적으로 시간을 통보한 후 전화를 끊었다.

“후후, 어지간히 마음이 급한가 보네.”

* * *

“준비하지 않고 뭐해!”

송훈석 회장이 서동호 실장에게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회장님, 저희만 달랑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세형 사장과 조병석 실장도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아차, 그렇지.”

“10분 뒤에 출발하시면 될 겁니다.”

“서 실장, 협상 타결 예상 시점이 언제라고 했지?”

엉거주춤 서 있던 송훈석 회장이 다시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이번 주 금요일 이후라고 들었습니다.”

“그 사실을 H&J 컨설팅 측도 알고 있을 텐데, 긴급 회의를 하자는 이유가 뭘까?”

“미리미리 준비하려는 게 아닐까요?”

“그러면 긴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겠지.”

“제가 정 사장한테 전화해 볼까요?”

“빨리 해 봐.”

서동호 실장은 즉시 정명훈 사장한테 전화를 걸어서 제법 길게 통화한 후, 전화를 끊었다.

“정 사장이 뭐라고 했어?”

“연합군과 중국과의 협상 타결은 이미 완료됐고, 협정서 사인이 내일로 예정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두 건의 공사는 마사카 부통령과 부투야 실장이 최대한 빨리 서둘러 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답니다.”

“송유관 건설 공사가 H&J 컨설팅과 어떤 상관이 있지?”

“우간다 정부 측에서 H&J 컨설팅과 계약하기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답니다.”

“우리가 싫다고 거부할 수는 없겠지?”

“우간다 정부에 찍혀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았어. 이제 출발하자고.”

H&J 컨설팅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송훈석 회장과 서동호 실장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서 실장, 토탈의 뿌요네 회장이 CNOOC의 텐궈리 회장한테 페널티 10억 달러를 받아 냈나?”

뿌요네 회장과 텐궈리 회장은 작년 12월에 송유관 건설공사를 CSCEC에 주는 조건으로 네 가지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비밀리에 체결했다.

그 합의서에 만약에 CNOOC가 약속한 대로 합의를 이행하지 못하면, 토탈 측에 페널티 10억 달러를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CNOOC는 합의를 이행하지 못했고, 명시돼 있던 대로 뿌요네 회장은 텐궈리 회장에게 페널티를 청구했다.

지금 송훈석 회장은 이 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중이었다.

“3월 초에 받아냈다고 합니다.”

“입찰 취소 공고는 어떻게 됐나?”

“입찰 취소 공고를 띄우면, CNOOC 측에서 냄새를 맡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서 6월로 연기한 상태입니다.”

“그나저나 토탈 측이 CNOOC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을까?”

“조 실장이 어제 뿌요네 회장과 통화했는데, 자신하는 목소리였답니다.”

“알았어. 모잠비크 해상 가스전 지분 인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토탈 측에서 모잠비크 정부 측에 합의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합니다.”

“후후후, 그렇다는 말이지.”

송훈석 회장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유유히 흐르는 한강으로 시선을 돌렸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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