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44화 (144/328)

[144화] 세상은 넓고 인재는 모래알처럼 많다

다음 날 아침.

회사로 출근하는 차 안에서 겨울과 가을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을아, 네가 근무하는 부서의 팀명이 투자 분석 검증팀이니?”

“오빠가 어떻게 알고 있어?”

“너는 H&J Investment의 최대 주주가 나라는 사실을 깜빡깜빡하는 것 같다?”

“도대체 뭐가 궁금한 거야?”

“너희 팀 직원들은 모두 몇 명이니?”

“장 부사장님의 말로는 서른네 명이라고 했어.”

팀장 한 명, 파트장 세 명, 나머지 서른 명은 팀원일 것이다.

“지금까지 몇 명이 채용됐는데?”

“스물일곱 명.”

겨울은 문득 궁금했다.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이제 채용하고 있거나, 미국에서 하나둘씩 입국하고 중이었다.

그런데 투자 분석 검증팀은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이 채용된 상태였고,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느낌상 팀원들 대부분이 미국 정부가 미리 채용해 놓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겨울은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가을에게 물었다.

“오빠 말이 맞아. 우리나라에서 채용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어.”

“그렇다면 팀원들 모두 외국 사람이겠네?”

“아니. 스물한 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었어.”

아무리 H&J Investment가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자받았다고 해도, 한국 회사임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겨울은 H&J Investment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외국인보다 한국 사람들이 많기를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이 약 70%에 가까운 직원들을 한국 사람들로 채워 주었다.

겨울은 그들의 치밀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을과 대화를 계속했다.

“너는 어떻게 스카우트 됐는데?”

“재성 오빠가 부사장님께 특별히 부탁한 것 같았어.”

“재성 씨가 왜?”

“내가 이전에 다니던 회계 법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댔거든.”

“팀원들을 만나서 같이 근무해 본 결과는 어때?”

가을은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자신의 실력과 스펙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S대를 수석으로 입학했고, 어렵다고 소문난 공인회계사 시험과 변리사 시험까지 떡하니 합격했으니까.

하지만 어제 팀원들과 상견례를 나누고 나서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일 뿐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팀원들 대부분은 해외 유학파였고, 거의 모두 석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공인회계사 자격증은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나는 실력이 짱짱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어.”

“너보다 실력이 나은 사람이 많다는 말이야?”

“실력은 조금 더 지나 봐야겠는데, 학벌은 나보다 나은 것 같더라.”

“S대를 졸업한 네가 학벌이 딸린다고?”

깜짝 놀란 겨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나는 학사인데 반해서 팀원들 대부분은 석박사 이상이었어.”

“내가 가진 스펙으로는 너희 팀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네?”

“무슨 소리야. 오빠는 우리 회사의 최대 주주잖아. 당연히 팀원들이 어려워할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네 남친은 요즘 잘 지내고 있냐?”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요즘 컨디션이 별로야.”

“스트레스 안 받는 직장인이 어디 있어?”

“재성 오빠는 업무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어.”

겨울은 대한 그룹 인사담당의 분위기가 어떤지 대충 감이 잡혔다.

작년 10월의 투서 사건으로 인해서 대한 그룹 인사담당 팀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박철헌 전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 수십 명이 비리에 연루돼서, 회사에서 쫓겨날 정도였으니까.

부족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다른 계열사에서 임직원들이 수혈됐을 것이고, 이재성이 모시고 있는 직속 상사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을의 말을 들어 보니, 그 상사가 기존에 인사담당에서 근무하고 있던 직원들을 은연중에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

“금요일에 네 남친을 만날 예정이니까, 그때 내가 위로해 주마.”

“꼭 그래 주라.”

윙윙―

그때, 겨울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호영이었다.

“아침부터 웬일이냐?”

[한 부사장, 은센기 사장한테 연락 받았니?]

“아니. 왜?”

[오늘 오후 4시에 우리나라에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공항에 같이 나가자. 2시쯤에 우리 회사로 와라.”

[왜? 네 사무실 구경 시켜 주려고?]

“어.”

[알았어.]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가을이 질문을 던져 왔다.

“오빠, 아파트는 언제 알아볼 거야?”

“바빠서 주말밖에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먼저 알아봐도 되지?”

“네 마음대로 해.”

* * *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이 입주해 있는 DH 빌딩에는 다른 회사들도 입주해 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대의 로비는 항상 혼잡했다.

이런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 빌딩 측에서는 출퇴근 시간에 한해서 회사마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운영 중에 있었다.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아직 많지 않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직원들은 없는 편이었다.

겨울과 가을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단정한 옷차림의 낯선 아가씨가 뒤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공교롭게 35층 버튼을 눌렀다.

35층에는 사장실과 부사장실 두 개, 비서실, 그리고 임원 회의실밖에 없기 때문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드물었다.

겨울은 비서실 직원일 것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껐지만, 가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목에 걸려 있어야 할 사원증이 없었기 때문에.

가을이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저, 실례합니다.”

“네? 왜 그러시죠?”

단정한 옷차림의 아가씨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겨울은 지금까지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꽤나 많이 만나 봤다.

공교롭게도 주위에 있던 여자들 모두 한 미모 하는 바람에.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아가씨는 그녀들만큼이나 외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가슴이 뛰지 않는 남자가 몇이나 있겠나.

겨울의 심장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이 아가씨의 남친은 정말 좋겠네.’

겨울이 이런저런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 두 미녀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에 근무하시는 직원이 맞나요?”

“아닙니다. H&J Investment의 장대산 부사장을 만나러 가는 중입니다.”

순간, 겨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혹시… 이진호 사장님의 따님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장대산 부사장님 되시나요?”

“아닙니다. 저는 H&J 컨설팅의 한겨울이라고 합니다.”

이수진은 어젯밤에 아버지인 이진호 사장으로부터 겨울이 어떤 사람인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의 최대주주이면서, 두 회사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는 능력자라고.

게다가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들의 대통령들과 미국 정계 실력자들과 끈끈한 인연을 구축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문제는 겨울이 나이가 서른도 안 돼 보이는 훤칠한 젊은 남자라는 얘기까지는 듣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한겨울 부사장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진호 사장님의 외동딸인 이수진이라고 합니다.”

“아, 이수진 씨였군요?”

“부사장님, 같이 계신 분은 누구신지 소개시켜 주실 수 있나요?”

“제 여동생인 한가을이라고 합니다. 이수진 씨가 H&J Investment에 입사가 확정되면, 같은 부서에 근무할 예정이기도 하고요.”

“한가을 씨, 잘 부탁드립니다.”

이수진이 가을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가을은 느닷없는 그녀의 인사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우리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친하게 지내요.”

딩동.

그러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34층에 도착했다.

“오빠, 침 닦아.”

가을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겨울에게 한마디 쏘아 붙이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어휴, 내가 저걸 그냥…….”

“호호호.”

35층에 도착한 겨울은 이수진에게 장대산 부사장의 사무실을 알려 주고, 자신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말 예쁘네.”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온 겨울은 혼잣말을 내뱉으며, 양복저고리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었다.

그가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는 순간,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사장님, 커피 한 잔 타 드릴까요?”

“사장님 방에서 먹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겨울의 예상대로 장대산 부사장은 이수진과 함께 정명훈 사장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장 부사장, 같이 오신 분은 누구인가?”

“이진호 사장님의 따님인 이수진 씨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H&J 컨설팅…….”

간단하게 소개를 마치자마자 정명훈 사장이 사내 전화로 비서를 불렀다.

“한 부사장을 오라고 하고, 커피는 사람 수에 맞게 서빙해 주세요.”

“네, 사장님.”

잠시 후, 겨울이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비서가 커피 네 잔을 내왔다.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정명훈 사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은 이수진 씨와 별도로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되겠지?”

“네, 물론입니다.”

겨울과 짧은 대화를 나눈 정명훈 사장은 시선을 이수진에게 옮기며 물었다.

“이수진 씨,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네, 여기 있습니다.”

이수진은 가지고 온 가방에서 클리어 파일을 꺼내 정명훈 사장에게 건네주었다.

정명훈 사장은 어젯밤 늦게 이진호 사장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아침에 딸을 면접 보러 보낼 테니까, 가급적이면 채용해 달라는 청탁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다.

이렇듯 이진호 사장이 적극성을 보이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는데,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읽어보는 순간 확실하게 깨달았다.

자신의 딸에 대해서 철철 넘치는 자부심을 가질 만큼 그녀의 이력은 화려했으니까.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장대산 부사장한테 넘겨주고, 이수진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수진 씨는 국책 연구소를 그만 두고, 우리 회사에 입사하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와 H&J Investment라는 투자회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호기심인지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신설 회사에 불과한 H&J Investment이 어떻게 미국 정부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자 받았는가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정명훈 사장은 살짝 기분이 상했다.

이수진이 자신의 회사를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강한 자신감을 피력하는 전략일 수도 있었으나, 자만심 있는 성격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말이었다.

만약 후자라면 인생 선배로서 그녀의 생각을 바꿔 줄 필요가 있었다.

“이수진 씨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수진은 지금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자기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당락이 결정될 것이다.

그녀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정명훈 사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는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을 경영하는 경영진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답변은 50점밖에 안 됩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까, 솔직하게 대답해 보세요.”

사실 이수진도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답한 이유는 정명훈 사장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정답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나왔다.

이제는 솔직하게 대답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겨울 부사장님과 장대산 부사장님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부사장 때문입니다. 한 부사장이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 대통령들과 인맥을 맺지 않았으면, 우리 회사는 탄생할 수 없었으니까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수진 씨는 본인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스펙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그녀는 또다시 갈림길에 섰다.

사실 이수진은 자신의 스펙이 남들보다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정명훈 사장의 질문에는 자신의 스펙이 그저 그렇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괜히 잘난 척을 해 봐야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약간 뛰어난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세상은 넓고, 인재는 모래알처럼 많기 때문입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