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새로운 인연
오후에 파트너십 계약서 체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점심 식사는 대한 그룹 본사 근처에 위치한 식당에서 간단하게 먹기로 결정했다.
윙―
식당으로 이동하던 중에 겨울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오랜만에 입사 동기인 장근호가 보내온 카톡이었다.
― 장근호 : 한 대리님, 내가 잘못 본 건 아니겠죠?
― 겨울 : 뭐가요?
― 장근호 : 뒤를 돌아보세요.
겨울은 재빨리 뒤를 돌았다.
약 20미터 뒤에서 장근호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시간이 허락되면 달려가서 그와 인사를 나눴겠지만, 지금은 송훈석 회장 등과 점심 식사를 위해서 이동하고 있는 중이라서 여의치 않았다.
겨울도 반갑다는 의미로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카톡을 보냈다.
― 겨울 : 오늘은 보시다시피 그렇고, 금요일쯤 뭉칩시다.
― 장근호 : 동기사랑 멤버들한테 단톡 보내 놓을게요.
― 겨울 : 네.
겨울이 카톡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장대산 부사장이 말을 걸어왔다.
“한 부사장님, 무슨 일 있습니까?”
“작년에 신입사원 연수받을 당시의 같은 팀이던 장근호 씨인데, 조금 전에 못 봤어요?”
“네, 못 봤어요.”
“이번 금요일쯤에 뭉치기로 했으니까, 알고 계세요.”
“네? 저도 참석하라고요?”
“장 부사장님은 우리 부릉부릉 팀의 아홉 번째 멤버잖아요.”
“하하, 그렇긴 하죠. 가급적이면 시간을 내 볼게요.”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점심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였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겸한 점심 식사는 끝나는 시간을 좀처럼 종잡을 수 없다.
지금의 경우처럼.
“회장님, 저희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가 있는데, 대한 그룹에서 스카우트해도 되겠습니까?”
“누구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재무담당에 근무하고 있는 이승훈 부장입니다.”
“이 부장을 스카우트 하려는 이유를 내가 알 수 있을까요?”
“장대산 부사장을 보좌할 팀을 구성하고 있는데, 팀장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본인이 원하면 스카우트해 가는 것으로 하세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윙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뜻밖에도 하도진 이사였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지루하던 참이었기에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사는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
겨울이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송훈석 회장이 말을 걸었다.
“한 부사장, 누구 전화인가요?”
“아, 예. 저희 회사의 하도진 이사입니다.”
“하도진 이사라면… 나이지리아 현지에서 연합군과 중국의 협상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긴급 상황일지도 모르니까 빨리 전화를 받아 보세요.”
“네, 회장님.”
그때, 조병석 실장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부사장, 우리도 통화 내용을 들으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겨울이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 이사님, 지금 스피커폰으로 통화 중입니다.”
[부사장님, 주위에 누가 있습니까?]
송훈석 회장과 같이 있다고 하면, 부담 가질 것 같아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이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전화한 이유를 말씀해 보세요.”
[조금 전에 오코사 실장님이 바하리 대통령님과 아침 식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전화를 해 왔습니다.]
겨울은 어떤 상황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바하리 대통령이 겨울이 보낸 음성 파일의 내용을 듣기 위해 급하게 마련한 자리이리라.
“하 이사님, 바라히 대통령님과 아침 식사를 하러 가실 때 음성 파일을 꼭 가지고 가십시오.”
[아…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제가 한 시간 반 전에 오코사 실장님과 통화했습니다.”
[에이, 괜히 긴장했네요.]
하도진 이사의 푸념 섞인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하 이사님, 음성 파일의 가치가 엄청나게 중요한 거 알고 계시죠?”
[중국이 진행하고 있는 일반 프로젝트 리스트를 요구하라는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아차, 중국에서 넘겨받을 운영권 리스트는 한 시간 전에 부사장님께 발송했습니다.]
즉, 하도진 이사는 자료 정리를 위해서 밤을 꼬박 샜다는 얘기였다.
“이사님, 저처럼 팔팔한 20대가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십시오.”
[잔소리하는 솜씨가 꼭 내 마누라 같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바하리 대통령님과 아침 식사를 끝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사장님한테 죽어라 고생하고 있는 중이라고 꼭 어필해 주세요.]
장난은 장난으로 대응하는 것이 순리.
“하 이사님, 사장님 표정을 사진 찍어서 보내 드릴까요?”
[아차차, 스피커폰…….]
뚝.
하도진 이사가 급하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으하하하!”
두 사람의 통화 모습을 지켜보던 송훈석 회장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정명훈 사장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웃음보를 터트렸음은 물론이고.
하지만 웃음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조병석 실장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겨울에게 질문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한 부사장님, 중국으로부터 넘겨받는 일반 프로젝트와 운영권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습니까?”
“아이고.”
겨울이 익살스런 표정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보다 못한 송훈석 회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조 실장, 그 얘기는 내 방에서 해 줄게요.”
“네, 회장님.”
* * *
집무실.
송훈석 회장의 부탁을 받은 겨울은 중국으로부터 연합군이 넘겨받을 운영권과 일반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중국과 협상이 타결되면, 저희 H&J 컨설팅이 가지고 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상태입니다.”
“한 부사장님, 운영권에 어떤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하도진 이사가 보내온 자료를 살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이지리아의 경우에는 아부자 공항, 라고스 항구, 라고스에서 아부자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 관리 운영권 등이 있습니다.”
“운영권은 어떻게 처리할 예정입니까?”
“저희 회사가 알아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그 업무도 상당히 많겠네요?”
정명훈 사장은 조병석 실장이 운영권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 오는 이유를 어느 정도 감 잡았다.
그는 자신들이 넘겨받을 운영권에 대해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어차피 자신들은 운영권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위탁해야 하는 상황.
대한 그룹이 적당하기는 했지만, 전권을 넘겨줄 수는 없었다.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조 실장님, 운영권과 관련해서 우리 회사와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 주신다면 저희는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태스크 포스 구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로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야 물론입니다.”
그때, 겨울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조 실장님, 나이지리아의 바하리 대통령님의 말씀을 잠깐 언급해 드리면, 아부자 공항 운영은 우리나라의 인천공항공사가 맡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중국이 철수하면 곧바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희 전략기획실에서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아부자 공항 운영권에 대한 자료는 넘겨받는 즉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고홍석 고문 변호사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파트너십 계약서가 완성됐음을 보고했다.
계약서 내용을 읽어 본 송훈석 회장과 정명훈 사장은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곧바로 계약서에 교차 사인을 완료했고, 고홍석 고문 변호사가 증인란에 서명했다.
모든 계약 절차가 완료되자, 서동호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회장님, 정 사장님,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 촬영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찰칵!
사진 촬영이 끝나자, 송훈석 회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 대한 그룹과 H&J 컨설팅은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첫발을 디뎠을 뿐입니다. 우리는 H&J 컨설팅이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보조하도록 하겠습니다. H&J 컨설팅도 일감을 배분해 주실 때 우리 대한 그룹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 사장님, 한 말씀 하십시오.”
정명훈 사장은 송훈석 회장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목례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문을 틔웠다.
“재차 강조 드리지만, 연합군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비밀 협상은 세상에 드러나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따라서 저희가 나눈 대화 내용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명훈 사장의 뒤를 이어서 장대산 부사장이 이어 말했다.
“저희가 연합군들로부터 각종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면, 반드시 중국의 경계 대상으로 떠오를 겁니다. 저희가 수주할 일감을 제일 많이 수행하게 될 대한 그룹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회장님과 서 실장님, 그리고 조 실장님께는 조만간에 도감청이 불가능한 핸드폰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저희와 통화할 때에는 반드시 그 핸드폰을 사용해 주십시오.”
“그렇게 할게요.”
“H&J 컨설팅의 최대 주주인 한 부사장님도 한 말씀하시죠?”
조병석 실장의 말에 겨울은 짧고 굵게 한마디 했다.
“저는 모든 비즈니스의 바탕에는 신뢰가 깔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송훈석 회장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윙윙―
진지한 분위기를 깨는 겨울의 핸드폰 진동음이 들렸다.
액정에 표시되어 있는 핸드폰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겨울은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네, 바하리 대통령님.”
[한 부사장님, 방금 전에 하도진 이사한테 건네받은 음성 파일을 모두 들었습니다. 장대산 부사장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세요.]
“대통령님, 장 부사장이 제 옆에 있는데, 통화하시겠습니까?”
[그래 주시면 나야 고맙지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겨울은 장대산 부사장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기 전에 메모지에 바하리 대통령의 풀 네임을 적어서 건네주었다.
장대산은 겨울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 주고, 바하리 대통령과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통화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통화를 지켜보고 있던 겨울의 눈에 송훈석 회장의 아쉬워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회장님께도 기회를 드릴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겨울이 속으로 한마디 내뱉는 사이, 두 사람의 짧은 통화가 끝이 났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겨울은 바하리 대통령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대통령님, 저희 H&J 컨설팅과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한 회사가 있습니다.”
[어느 회사입니까?]
“대한민국 재계 1위 회사인 대한 그룹입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지금 대한 그룹의 송훈석 회장님과 같이 있습니다. 바하리 대통령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어 하시는데, 통화가 가능하십니까?”
[그럼요. 얼마든지 통화 가능합니다.]
송훈석 회장은 아프리카 대륙의 맹주국인 나이지리아의 바하리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차였다.
이 기회가 대한 그룹이 한 단계 올라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따라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겨울에게 통화를 부탁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듯 겨울이 바하리 대통령과의 통화를 제안해 왔다.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넘겨 달라는 의미로 손부터 불쑥 내밀었다.
‘후후, 어지간히 급하셨나 보네요.’
겨울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송훈석 회장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모하두 바하리 대통령님. 저는 대한 그룹의…….”
송훈석 회장 또한 바하리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통화를 끝마쳤다.
그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겨울은 그제야 바하리 대통령과 본격적인 통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바하리 대통령님, 하도진 이사께 건네받은 USB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물건입니다.”
[곧바로 폐기할 테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중국과 협상이 타결되는 즉시 연락해 줄게요.]
“하하, 알겠습니다.”
[우리나라가 도움 받은 만큼, H&J 컨설팅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