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36화 (136/328)

[136화] 시간은 우리 편

“이놈의 서울은 언제나 차가 막히는구나?”

“그러게 우리 회사 근처에서 저녁 먹고 가자고 했잖아.”

겨울이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를 쳐다보며 투덜거리자, 호영이 곧바로 맞대응했다.

“정호영, 내가 싫다고 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냐?”

“우리 회사 사장님과 저녁 먹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웠어?”

“너희 사장님은 상관이 없는데, 청우정수기의 박 사장님까지 같이 먹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어.”

“왜?”

“그냥.”

“에이, 싱거운 놈.”

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수신됐고, 발신자를 확인하니 은센기 사장이었다.

― 한 부사장님, 송금 확인증을 보냈으니까 참고하세요.

국가대 국가의 송금 시스템은 국내 은행들 사이의 온라인 계좌 이체 시스템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은센기 사장이 송금한 정수기 수입 대금 7,300만 달러는 SH무역이 거래하는 은행 계좌로 직접 입금되는 것이 아니었다.

즉, 은센기 사장이 거래하는 은행과 외국환거래 체결을 맺은 중개 은행(Intermediary Bank)으로 입금된다는 뜻.

중개 은행은 정해진 수수료를 받고 SH무역이 거래하는 은행 계좌로 7,300만 달러를 송금하는 절차를 거친다.

따라서 SH무역이 H&E 트레이딩으로부터 정수기 수출 대금을 송금받기 위해서는 최소 2∼3일은 걸리게 되어 있다.

은센기 사장은 이 절차를 고려해서 송금 확인증을 사진으로 찍어서 문자로 보내온 것이고.

첨부된 사진을 확인한 겨울은 호영에게 전송해 주고 이 사실을 알렸다.

“은센기 사장이 정수기 수입 대금 7,300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확인증을 너한테 전달했어.”

“잠깐만 기다려.”

겨울과 대화를 중단한 호영은 즉시 송금 확인증을 정상호 사장에게 문자로 보내 주고, 통화를 완료했다.

“우리 회사 사장님이 신경 써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 달란다.”

“고맙기는 뭘.”

“그나저나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는데, 정수기 수출 대금을 덜커덕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

“그러면 정식 계약서가 아니더라도 간이 계약서 정도는 작성해 놓은 게 어떨까?”

“음, 내일 오전에 사장님하고 상의해 볼게.”

윙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은센기 사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네, 은센기 사장님.”

[한 부사장님, 제가 보내준 송금 확인증을 받았습니까?]

“네. SH무역의 정상호 사장님께 보내 드렸습니다.”

[은행에서 계약서를 요구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렇지 않아도 정호영 씨와 그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내일 중으로 조치를 취해 줄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코사 실장님께 고맙다는 전화를 해 주셨습니까?]

“아차차, 깜빡하고 있었네요.”

[빨리 전화해 주세요.]

“네, 알았어요.”

겨울은 통화 내용을 호영에게 전달해 주고, 곧바로 오코사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한 부사장님.]

“오코사 실장님,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던 저희에게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희가 도움 받은 것에 대해서는 꼭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한 부사장님께 도움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설마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건 아니시겠죠?]

오코사 실장이 어젯밤에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이 불현 듯 떠오른 겨울이었다.

느낌상 그 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은 실장님이 콩고민주공화국에 출장 가신 이유를 알아보려고 연락드린 겁니다.”

[역시 알고 있었군요.]

“실장님이 중국의 천유런 외교부장과 어떤 내용으로 협상을 벌이고 있는지, 하도진 이사가 수시로 정보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아차, 제가 그 점을 깜빡하고 있었네요.]

“이제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사실은 천유런 외교부장이 꺼내놓은 협상안을 연합군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오코사 실장이 중국과의 협상에서 수립해 놓은 전략은 ‘시간은 우리 편’이었다.

때문에 그는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연합군의 요구사항을 일체 언급하지 않고 시간을 끌며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천유런 외교부장이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협상안을 먼저 제시한 모양이었다.

보나마나 간 보기 수준의 협상안일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내용이 없을 테지만.

“실장님, 천 외교부장이 어떤 협상안을 제안했습니까?”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부채를 전액 탕감해 주고, 그와 관련된 계약을 조건 없이 파기해 주겠다고 합니다.]

“네?!”

예상을 한참 빗나간 협상안에 겨울은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저도 천 외교부장에게 협상안을 듣는 순간,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겨울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모든 협상이 그렇듯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카드를 모두 꺼내 놓지 않는다.

상대방과 협상을 벌이다가 벽에 막히거나, 반대급부로 무엇인가를 제공해야 할 때 가지고 있는 카드를 하나하나 꺼내 놓지.

그런데, 예상외로 천유런 외교부장은 처음부터 초강력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혹시… 또 다른 협상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 카드가 뭘까? 맞아! 그 카드가 있었지!’

짧은 생각을 끝낸 겨울은 떠오른 아이디어를 조금 후로 미뤄 놓고, 오코사 실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실장님, 천 외교부장이 처음부터 화끈한 카드를 꺼내 놓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시간을 끌어 봐야 불리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요?]

시간은 연합군 편이었으니까,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였다.

“실장님, 제가 방금 전에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생각났는데, 말씀드려 볼까요?”

[그럼요. 빨리 애기해 보세요.]

“나이지리아가 중국에서 빌린 돈이 모두 얼마입니까?”

[우리나라가 중국에 빌린 돈… 으하! 으하하하!]

오코사 실장의 화통한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오코사 실장은 보통 사람들과 차원이 확실히 달랐다.

그는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는 비상한 두뇌와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실장님,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전략을 알고 계시죠?”

[그럼요. 3월 15일이 임박할 무렵에 카드를 꺼내 놓겠습니다.]

“다른 분들께도 제 아이디어를 전해 주십시오.”

[하하, 그야 물론입니다.]

“실장님, 제가 알려 드린 아이디어와 이번 정수기 건을 퉁치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한 부사장님이 너무 손해잖아요.]

“저는 아이디어만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한 부 사장님,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계시죠?]

“하하, 그런가요?”

[저희가 한 부사장님의 아이디어를 반드시 관철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네.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겨울이 전화를 끊자, 운전석에 앉아 있던 호영이 득달같이 질문을 던져 왔다.

“나이지리아와 중국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래?”

현재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

겨울은 호영이 비밀을 지켜 줄 것으로 믿고 있었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숨기기로 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 알고 있지?”

“알 필요 없다는 얘기지?”

“어. 그러는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내가 살 테니까, 2차는 네가 쏴라.”

“내가 차라리 거지한테 얻어먹는 게 낫지.”

호영이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내뱉었다.

* * *

“오빠, 일어나서 아침 먹어.”

한창 잠에 취해 있는 겨울의 몸을 가을이 흔들어 깨웠다.

“…몇 시냐?”

겨울이 힘겹게 눈을 뜨며 물었다.

“8시.”

“너희 회계 법인은 출근 시간이 늦나보네?”

“어제 오빠한테 얘기해 준 거 벌써 잊어버렸어?”

“뭐야! 진짜로 투자회사에 스카우트된 거야?”

깜짝 놀란 겨울이 침대에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당연하지. 빨리 나와.”

“아, 알았어.”

겨울은 가을과 마주 앉아서 제대로 된 아침밥을 먹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했다.

아프리카에서 아침은 간단히 때우거나 건너 뛴 적이 부지기수였었는데.

겨울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평소 가을의 성격대로라면, 대한 그룹을 퇴사한 이유가 뭐냐,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 등등을 꼬치꼬치 물어보고도 남았을 텐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아직까지 일체의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엉뚱한 것만 물어오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호영 오빠와 술 마신 거야?”

“어.”

“오빠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술은 적당히 마셔.”

“알았어. 그런데 너 오늘 이상하다?”

“뭐가?”

“내가 대한 그룹을 퇴사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

“호영이 오빠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데,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그 녀석이 어디까지 얘기해 줬는데?”

“오빠가 H&J 컨설팅이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들과 비즈니스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얘기까지.”

결국 자기가 해 준 얘기를 가을에게 모두 옮겼다는 뜻이었다.

“그 녀석이 원래부터 입이 가벼웠나?”

“오빠, 주말을 이용해서 시골에 다녀올까?”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지, 가을이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겨울도 시골 부모님께 다녀오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번 주는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이 많으니까, 한가해지면 다녀오자.”

“바쁜 일이 뭐가 있는데?”

“우리, 이사 갈까?”

“뭐? 이사?”

가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벌어 놓은 돈이 제법 되거든. 이 돈이면 서른 평대 아파트는 충분히 살 수 있을 거야.”

“오빠, 서울의 서른 평대 아파트가 얼마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그래 봐야 우리 동네는 10억이 넘지 않겠지 뭐.”

“뭐, 10억?!”

가을이 진심으로 놀랐는지 입을 쩍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썰렁한 농담하지 말고, 진짜로 10억이 있기는 한 거야?”

현재 겨울의 은행 잔고는 30억 가까이 있었고, 다음 주에 은센기 사장으로부터 1,050만 달러를 배분받을 예정에 있었다.

아파트를 매입하고 남은 돈은 모두 테슬라 주식을 매수할 생각이었지만, 가을에게는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통장을 보여 주면 믿겠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아침 먹고 산책삼아 부동산 중개업소를 다녀오자.”

“이왕이면 오빠네 회사 근처에 있는 아파트를 사는 게 어떨까?”

겨울은 아프리카를 출발하기 직전에 장대산 부사장과 통화하면서 H&J 컨설팅이 어디에 소재하고 있는지 주소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장대산은 주소를 모른다고 하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갔다.

자신의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아직까지 H&J 컨설팅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겨울은 가을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언제 알려 줄 수 있는데?”

“나랑 동업하는 사람이 지금 미국에 체류하고 있어. 내일 토요일 밤에 귀국할 예정이니까, 빠르면 일요일쯤에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일요일까지 아파트 알아보는 걸 미뤄야겠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알겠어.”

“아직 피곤해서 그런데, 이제 방에 들어가서 자도 되지?”

“잘 때 자더라도 엄마 아빠한테 인사는 드리고 자.”

“어젯밤에 통화했어.”

윙윙―

겨울이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

가쿠타 부장이 걸어 온 전화였다.

“네, 가쿠타 부장님.”

[부사장님, 난감한 상황이 발생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보세요.”

[오늘 저녁때 저하고 은센기 사장이 불러서 연합군들이 모여 있는 곳에 불려갔습니다.]

“그래서요?”

[VIP들은 부사장님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의미로 선물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겨울은 어제 저녁때 오코사 실장과 통화할 당시에 아이디어 제공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반대급부를 제안해 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VIP들이 어떤 선물을 주겠다고 했습니까?”

[저희보고 결정하라고 한 상태인데, 은센기 사장이 사고를 쳐 버렸습니다.]

“어떤 사고를 쳤다는 말인가요?”

[VIP들한테 정수기를 선물로 달라고 했습니다.]

겨울은 은센기 사장과 가쿠타 부장의 꼼수를 단숨에 눈치챘다.

두 사람은 지금 제사보다 젯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살짝 건드려봤다.

“우리 셋이 이익을 분배하는 것은 정수기 20만 대 수출 건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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