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32화 (132/328)

[132화] 대한 그룹에서의 마지막 날

“하아…….”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한 고영규 FTA 팀장은 허탈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어젯밤에 입사 동기인 하도진 부지점장과 통화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FTA 팀의 에이스인 겨울이 오늘 날짜로 대한 그룹을 퇴사한다니.

그가 퇴사하면 FTA팀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이 확실했다.

잉가 3댐 건설공사를 비롯해서 탄자니아, 우간다, 나이지리아에서 진행할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 공사까지…….

겨울이 퇴사한다면, 프로젝트들을 자신들이 수주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부투야 실장을 포함한 VIP들은 대한 그룹이 아니라 겨울에게 일감을 몰아준 것이기 때문에.

하도진 부지점장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 겨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원이 꺼져 있다는 기계음만 들려왔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회사에 출근해서 초조한 마음으로 겨울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겨울이 출근했다.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그에게 말을 건넸다.

“한 대리, 회의실에서 얘기 좀 할까?”

겨울은 고영규 팀장이 자기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자신의 퇴사 소식을 하도진 부지점장에게 전해 들은 것이리라.

회의실.

종이컵에 들어 있는 커피를 마시고, 고영규 팀장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리, 퇴사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야?”

“네, 사실입니다.”

“퇴사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

직속 상사의 질문이기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이치상 옳았으나, 정명훈 법인장에게 지시받은 것이 있어서 시원스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팀장님, 조금만 기다리시면 모든 전말을 알게 되실 겁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설마… 우리 회사를 퇴사하고 BK 그룹으로 이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절대로 아닙니다.”

겨울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럼 퇴사해서 뭐 할 거야?”

윙윙―

그때, 천만다행으로 고영규 팀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상대방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한 대리, 법인장님께서 오라고 하니까, 같이 가자고.”

* * *

법인장실.

정명훈 법인장은 남아 있는 커피를 모두 마시고,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고영규 팀장에게 말을 걸었다.

“고 팀장, 피곤해 보이는데… 무슨 일 있나?”

“어젯밤에 잠을 설쳤더니만, 그런 것 같습니다.”

“왜? 한겨울 대리가 퇴사하는 소식 때문에?”

“네, 그렇습니다.”

“그 소식은 누구한테 들었나?”

“콩고 지점의 하도진 부지점장한테 들었습니다.”

“하 부지점장이 내가 퇴사한다는 얘기는 안 했나 보네?”

“네?!”

이용수 마케팅 지원팀장과 고영규 팀장이 동시에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정명훈 법인장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웠다.

“두 사람은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네, 말씀하십시오.”

“두 사람은 모르고 있겠지만, 지난 1월에 콩고민주공화국의 부투야 실장이 한 대리의 처우에 대한 불만을 품고, 나하고 회장님께 공식으로 클레임을 제기했어.”

“클레임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한 대리가 교류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최하 대통령 비서실장 이상인데, 직위가 대리가 뭐냐는 거였어. 부투야 실장은 회장님께 한 대리를 임원으로 승진시켜 달라고 요구했고, 회장님은 형평성을 고려해서 불가 입장을 표명했어. 그때부터 한 대리의 고민이 시작됐고…….”

정명훈 법인장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 중에서 중요한 내용만 추려서 입에 담았다.

물론, 민감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철저하게 숨겼다.

“…현재 서울에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라는 회사가 설립되어 있는 상태야. 이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법인장님, 저희 FTA 팀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FTA 팀은 조직 규모가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커질 예정이고, 지휘는 추 법인장과 H&J 컨설팅에서 동시에 받도록 되어 있어.”

“저희 FTA 팀이 참여해서 수주하는 프로젝트는 대한 그룹이 실행하는 것으로 봐도 됩니까?”

“가급적 그렇게 할 생각이야.”

“네? 가급적이 무슨 뜻입니까?”

고영규 팀장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웬만하면 정명훈 법인장도 FTA 팀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대한 그룹에 몰아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 오전에 나이지리아의 오코사 실장한테 넘겨받은 USB에 저장되어 있는 프로젝트 리스트를 확인하는 순간, 대한 그룹이 모든 일감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 내렸다.

즉시, 송훈석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설명해 주고 양해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우리 H&J 컨설팅에서 수주 예정인 일감이 너무 많아서, 대한 그룹에서 모두 소화할 수 없어.”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다른 회사에 일감을 넘기더라도 모두 FTA 팀의 실적으로 잡아 주기로 했으니까, 고 팀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그렇다면 저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고 팀장도 알다시피 조직에서 나이는 참고 사항일 뿐이야.”

고영규 팀장은 정명훈 법인장이 이런 말을 꺼낸 이유가 한겨울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내일부터 겨울은 대한 그룹 소속이 아닌 H&J 컨설팅의 부사장이라는 소리였다.

사석에서는 모르겠지만, 공석에서는 겨울에게 반말을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관계.

눈치 없이 반말을 사용했다가 겨울의 눈밖에라도 난다면, 대한 그룹에서의 직장 생활은 온통 가시밭길일 것이다.

“한 대리한테 존댓말을 사용하면 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라고 봐야겠지.”

“네, 알겠습니다.”

고영규 팀장과 대화를 끝낸 정명훈 법인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용수 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이 팀장한테까지 비밀로 해서 정말 미안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 팀장이 우리 H&J 컨설팅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면, 내가 책임지고 연말에 임원으로 승진시켜 줄게.”

이용수 팀장은 정명훈 법인장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올해 아프리카 법인에서 임원 승진 대상자는 자기, 김종학 콩고 지점장, 황진욱 알제리 지점장 세 명이다.

매년 한 명, 또는 두 명을 임원으로 승진시켜 주는데, 자기가 그 사이에 낀다는 보장이 없었다.

김종학 지점장은 콩고 지점의 실적이 워낙 좋기 때문에 무조건 임원으로 승진할 것이고, 남은 한 자리를 가지고 자기와 황진욱 지점장이 다퉈야 한다는 뜻.

결정적으로 황진욱 지점장은 자기보다 입사 선배였다.

따라서 일찌감치 꿈을 접고 있었는데, 정명훈 법인장은 고요히 잠자던 가슴에 불씨를 당겼다.

그는 허튼 소리를 내뱉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무언가 대책을 세워 놓고 이런 말을 꺼낸 것이 분명했다.

이용수 팀장은 조금은 기대하는 목소리로 대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김종학 지점장이 상반기 중에 퇴사해서 우리 회사로 이직할 예정이야.”

“네? 임원 승진에 목숨을 걸고 있는 김 지점장님이 퇴사한다고요?”

“김 지점장은 우리 회사에서 상무의 직위를 받을 예정이야. 이사보다는 상무가 낫지 않아?”

“법인장님도 참… 손바닥보다 작은 회사의 상무보다는 대한 그룹의 이사가 백번 낫죠.”

“자산이 1,000억 달러가 넘는 투자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회사가 손바닥보다 작으면, 이 팀장의 손은 얼마나 큰 거야?”

“네?! 천, 천억 달러라고요!”

예상한 대로 이용수 팀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투자회사 자산과 관련한 내용은 알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니까, 이 팀장도 비밀로 해 줬으면 좋겠어.”

“네, 알겠습니다.”

정명훈 법인장의 경고가 담긴 발언에 이용수 팀장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정명훈 법인장은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추 법인장, 내 송별식은 언제 해 줄 거야?”

“내일 저녁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기대하고 있어도 되겠지?”

“영원히 잊지 못하는 송별식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내일은 또 얼마나 술을 마셔야 하는지.”

정명훈 법인장이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넋두리를 내뱉었다.

* * *

FTA 팀 사무실로 복귀한 겨울은 가쿠타 과장과 함께 미리 작성해 놓은 퇴직원을 직속 상사인 고영규 팀장에게 전송했다.

두 사람한테 퇴직원을 전송받은 받은 고영규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회의실로 모두 모여 주십시오,”

회의실.

고영규 팀장은 팀원들을 한 번 둘러보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께 안타까운 소식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우리 팀에서 근무하던 한겨울 대리와 가쿠타 과장이 오늘 날짜로 우리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네?!”

전혀 예상치 못한 소식이라는 듯 모든 팀원들이 입을 쩍 벌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 대리, 우리 회사를 떠나는 소감과 향후 계획에 대해서 팀원들한테 간략하게 설명해 줄 수 있겠지?”

“네, 팀장님.”

자리에서 일어난 겨울은 팀원들한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팀원 여러분, 갑작스럽게 퇴사 소식을 전해서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는 대한 그룹에 뼈를 묻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의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 감으로 인해서 부득이하게 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저로 인해서 우리 회사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아 주십시오.”

“한 대리는 결코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서 우리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님을 밝혀 드립니다.”

고영규 팀장이 겨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한마디 거들어 주었다.

겨울은 고영규 팀장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부터는 향후 계획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대한 그룹을 퇴사하더라도 여러분과 계속 비즈니스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겨울은 FTA 팀원들에게 H&J 컨설팅의 설립 배경과 역할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계열사인 H&J Investment에 대해서는 팀원들이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다.

“…저희 H&J 컨설팅과 FTA 팀이 윈윈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대리는 H&J 컨설팅에서 직위는 어떻게 됩니까?”

“염치없게도 부사장직을 수행할 예정입니다.”

“제가 만약에 H&J 컨설팅으로 이직을 결심하면, 받아줄 생각이 있습니까?”

“저희는 안진환 과장님을 얼마든지 영입할 수 있습니다만, 팀장님께서 결사반대하실 것 같습니다.”

겨울이 고영규 팀장에게 뜨거운 감자를 던져 버렸다.

“안진환 과장, H&J 컨설팅으로 이직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어.”

“그게 뭡니까?”

“올해 1년 동안은 무조건 FTA 팀에서 근무해야 하고, 인사고과가 A 이상이어야 해.”

즉,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내라는 의미였다.

“팀장님, 조건이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닙니까?”

“안 과장, H&J 컨설팅은 아무나 근무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나 정도나 되면 모를까.”

“팀장님도 H&J 컨설팅으로 이직하시게요?”

“농담이야.”

FTA 팀원들 중에서 고영규 팀장의 말을 농담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 이제 가쿠타 과장의 소감을 들어 보자고.”

자리에서 일어난 가쿠타 과장은 겨울과 마찬가지로 팀원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고의 순간은 작년 4월 초에 한겨울 부사장님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한 부사장님 덕분에 작년에 콩고 지점은 어마어마한 성과를 달성했고, 지금은 한 부사장님을 쫓아서 H&J 컨설팅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H&J 컨설팅으로 이직하실 때를 대비해서 제가 열심히 터를 닦아 놓고 있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가족처럼 대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가쿠타 과장이 자리에 앉자, 고영규 팀장이 매조지 발언을 했다.

“오늘은 한 대리와 가쿠타 과장의 송별식을 거하게 해 줄 예정이니까, 일찍 업무를 마무리합시다.”

“팀장님, 굳이 저녁때까지 기다릴 필요 있습니까? 점심때부터 달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가 원하던 바입니다. 오늘 술 마시고 죽어 봅시다.”

“아이고.”

겨울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탄식을 내뱉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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