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아하! 그 방법이 있었군요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높다.
지금 겨울은 자신들에게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하도진 부지점장이 촬영한 동영상을 중국과의 협상에 사용한다면, 자신들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전쟁을 박살 낼 수 있었다.
바하리 대통령이 흐뭇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겨울의 설명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반드시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겨울의 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바하리 대통령이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님, 하 부지점장님이 촬영한 동영상을 어떻게 활용하면 되겠습니까?”
“민영 TV 방송사에 동영상을 넘겨주고, 시민에게 제보받은 동영상이라고 하면서 뉴스를 제작해 놓으셔야 합니다.”
“설마 뉴스를 방송하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입니다. 나이지리아 정부 측에서 뉴스를 방송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면서, 천 외교부장을 슬쩍 압박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천 외교부장에게 반대급부를 얻어 내라는 얘기인가요?
“반대급부보다는 심리적인 압박을 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하하,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오코사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한 부사장님, 뉴스 제작을 국영 TV 방송사가 아닌 민영 TV 방송사에 맡기라는 이유가 있습니까?”
“국영 TV 방송사에 맡기면, 중국 측이 의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중국과의 협상과 관련해서 또 다른 팁을 줄만한 것이 있습니까?”
“중국 정부는 협상을 이달 안에 마무리 짓기 위해서…….”
겨울은 프리먼 서기관에게 취득한 정보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협상 타결 시점은 다음 달 15일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습니다.”
“3주 가까이 천 외교부장을 우리나라에 머물도록 만들어 놓아야겠네요?”
“천 외교부장에게 중국인의 만만디[慢慢地] 정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일깨워 주십시오.”
“하하하, 그렇게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겨울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코사 실장이 선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겨울은 아부자 공항에서 느낀 점을 입에 올렸다.
“오코사 실장님, 중국 정부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할지 결정했습니까?”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계약을 파기하고 부채를 전액 탕감해 달라고 요구할 생각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한 부사장님이 저희한테 제안한 게 아니었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미 프로젝트가 완료된 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부자 국제공항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산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중국과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앞으로 30년 동안 공항운영권…….”
오코사 실장이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지 말문을 닫았다.
겨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오코사 실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님, 우리나라가 중국으로부터 공항 운영권을 회수하는 것은 좋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우리나라는 초대형 공항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 문제는 공항 운영권을 국제 입찰에 붙이면, 충분히 해소될 것 같습니다.”
바하리 대통령은 아부자 공항 운영권을 중국에서 회수해서 국제 입찰에 붙이는 방법이 딱 이라고 생각했다.
국제 입찰을 붙이면 공항 이용 만족도도 높아질 뿐 아니라, 자국의 이익도 증대될 것이기 때문에.
“오코사 실장, 한 부사장님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코사 실장은 얼마 전에 읽은 신문 기사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바하리 대통령의 질문에 대답했다.
“대통령님, 굳이 입찰까지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요?”
“전 세계의 모든 공항들 중에서 만족도 1위는 대한민국의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바하리 대통령은 오코사 실장의 의도를 단숨에 알아챘다.
공항 운영권을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대한민국에 넘겨주자는 얘기였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도 있었다.
아이디어를 제공한 겨울에게는 정작 아무런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점에 대해 물었더니, 오코사 실장은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듯 묘안을 하나 꺼내 들었다.
“공항 운영권 선정을 H&J 컨설팅에 의뢰하면 어떨까요?”
“아하! 그 방법이 있었군요.”
사실 겨울은 공항의 운영권을 넘겨받을 목적으로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반면에 두 사람은 공항의 운영권을 H&K 컨설팅에 넘겨주는 것으로 의견 일치를 보고 있었지만.
사양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 내리고 입을 열려는 사이, 정명훈 법인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바하리 대통령님의 결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H&J 컨설팅은 나이지리아의 국익을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인천공항공사 측과 협상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중국으로부터 또 다른 프로젝트의 운영권을 회수하면, 저희에게 의뢰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다른 연합군에도 소식을 전파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오코사 실장은 겨울과 정명훈 법인장을 초대한 이유를 밝힐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했다.
“정 법인장님, 대통령님께서는 중국이 우리나라에서 철수할 때 곱게 철수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고 계십니다.”
정명훈 법인장은 중국이 나이지리아에 어떤 해코지를 벌일 것인지 대충 감 잡고 있었다.
나이지리아의 조치에 앙심을 품은 중국 측이, 진행하고 있는 공사 현장을 파손하고 떠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또한 공사가 중단됨으로 인해서 발생할 수많은 실업자들을 부추겨서 대정부 투쟁에 나서도록 조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불안한 정국이 극도의 혼란 상태로 빠져들 수도 있었다.
바하리 대통령은 이 점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이고.
정명훈 법인장은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오코사 실장에게 물어 확인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제가 생각해 놓은 것이 있는데,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빨리 말씀해 보세요.”
“만약에 중국이 공사현장을 파손한 사실이 확인되면, 국교단절과 동시에 나이지리아에 산재하고 있는 중국의 자산을 모두 몰수해 버리겠다는 강수를 두십시오.”
“이야! 화끈한데요!”
“그 초강수 정도는 돼야 중국이 꼼짝 못할 겁니다. 그리고 공사가 중단된 현장에는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미리 준비해 놓으십시오.”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현황을 파악해서 저희한테 자료를 넘겨주십시오. 그러면 저희는 중국이 철수하는 즉시 다른 건설사를 투입시켜 드리겠습니다.”
문준석 지점장은 정명훈 법인장이 호텔에서 자기에게 한 말을 이제야 완벽하게 이해했다.
중국의 건설사들이 진행하고 있던 공사 대부분을 대한 그룹이 떠맡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되면 나이지리아 지점은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낼 것만은 분명했다.
연말쯤에는 자연스럽게 선배들을 제치고 임원 승진 대상으로 올라설 수도 있을 것이고.
문준석 지점장이 자기만의 상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정 법인장님, 저희가 언제까지 리스트를 넘겨줘야 합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중국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셔야 할 겁니다.”
“우리나라는 프로젝트가 제법 많은데, H&J Investment에서 전액 투자해 줄 수 있습니까?”
“그 문제 때문에 오늘 새벽에 해인스 상무부 장관하고 통화했습니다만, 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해인스 상무부 장관님과 직접 통화해서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정명훈 법인장은 오코사 실장의 의도를 단박에 알아챘다.
근심 걱정에 쌓여있는 바하리 대통령을 안심시켜 주라는 의도라는 사실을.
“네,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정명훈 법인장은 해인스 상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법인장님, 나이지리아는 어떤 일로 가셨습니까?]
“바하리 대통령님의 초대를 받아서 왔습니다.”
[지금 바하리 대통령님과 같이 계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해인스 장관님과 통화하는 내용을 바하리 대통령님께 들려 드리고 싶은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시겠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정명훈 법인장은 스피커폰으로 전환한 후, 해인스 장관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바하리 대통령님께서는…….”
정명훈 법인장은 바하리 대통령 등과 나눈 대화 내용을 해인스 장관에게 자세하게 전했다.
“…지금 H&J Investment의 자금 부족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정 법인장님, 확실한 근거 자료를 남기기 위해서 윌리엄 애덤스 대통령님이 바하리 대통령님께 친서를 보내 드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정명훈 법인장은 시선을 바하리 대통령에게 옮겼고, 그는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해인스 장관님, 바하리 대통령님께서 동의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애덤스 대통령님께 말씀드려서 최대한 빨리 친서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왕 친서를 보내 주시는 김에 연합군에 소속된 대통령님들께도 친서를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추성민 이사가 발을 툭 건드렸다.
정명훈 법인장은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에게 알았다는 신호를 은밀하게 보낸 뒤, 해인스 장관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이참에 바하리 대통령님과 직접 통화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저야 영광입니다.]
바하리 대통령은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상무부 장관이 자신과 통화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하는데, 기분 나쁠 리가 있겠는가.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정명훈 법인장에게 말을 건넸다.
“정 법인장님, 전화를 바꿔 주세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명훈 법인장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바하리 대통령은 해인스 장관과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통화를 이어 갔다.
[애덤스 대통령님께서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연합군에 소속된 나라를 방문하고 싶어 하십니다. 초청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야 물론입니다.”
[중국과 일전이 마무리되는 즉시 방문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이제 정 법인장과 통화하십시오.”
바하리 대통령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정명훈 법인장은 해인스 장관과 몇 마디 대화를 더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그와 동시에 바하리 대통령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 법인장님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코사 실장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즉시 발언권을 요청하고, 겨울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님, 지난 1월에 바하리 대통령님께 원하는 선물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 선물이 무엇인지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오코사 실장의 요청을 받은 겨울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나이지리아 이동통신 시장에서 MS 1위를 차지하고 있는 MTN이 상반기 중에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을 위한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공사를 저희가 가지고 왔으면 합니다.”
“MTN이 우리의 말을 들으려고 할까요?”
“지금과 똑같은 사례가 지난 1월에 탄자니아에서 있었습니다. 당시에 문두야 부통령님께서는 이동통신 사업자 허가권이 탄자니아에 있다는 점을 적절하게 이용할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하, 그 방법이 있었군요.”
오코사 실장보다 바하리 대통령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도 선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리라.
지금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하도진 부지점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대통령님, 지난달에 문두야 부통령님께서는 저희한테 확약서를 써 주셨습니다.”
“내가 직접 확약서를 써 주면 될까요?”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하하하, 알았어요.”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