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30화 (130/328)

[130화] 예전 버릇을 고치지 못한 대가

같은 시각.

정명훈 법인장과 추성민 이사는 아직도 문준석 지점장과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신임 법인장을 모시고, 나이지리아 지점을 잘 이끌어 줬으면 좋겠어.”

“법인장님은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뜻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할 생각이야.”

“어떤 사업을 시작하실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문 지장은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저도 법인장님이 설립하는 회사에 참여하면 어떨까 해서요.”

“미안하지만, 문 지점장은 우리 회사에 합류할 수 없어.”

정명훈 법인장의 단호한 말에 문준석 지점장은 섭섭함이 밀려왔다.

자기가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발령받았을 당시에 직속 상사로 모신 사람이 바로 정명훈 법인장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허물없이 지내오고 있는 사이였고, 당연히 자신 역시 그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말이라면 1순위로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매몰차게 한 번에 거절한단 말인가.

“법인장님, 정말 섭섭합니다.”

“나도 문 지점장을 데리고 가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올해 문 지점장이 나이지리아에서 수행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아서 그래.”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 대륙은 중국의 앞마당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의 독무대가 될 것이 분명했다.

문준석 지점장은 이대로라면 대한 그룹이 아프리카 시장에서 버티기 어렵다고 진즉에 판단하고 있었다.

그것이 정명훈 법인장이 설립하는 회사에 참여할 생각을 가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런데 그는 자기를 데리고 갈 생각이 없는지, 믿을 수 없는 말만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법인장님,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문 지점장한테 거짓말하는 거 봤어?”

“그건 아니지만…….”

“오늘 바하리 대통령을 만나 보면, 나이지리아에서 수행해야 할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거야.”

“네? 저도 참석해야 하는 겁니까?”

“당연한 걸 왜 묻는데?”

딩동.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 지점장, 뭐해?”

“에이, 키를 가지고 나갈 것이지.”

문준석 지점장이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문도 모르도 문준석 지점장에게 구박당한 겨울과 하도진 부지점장은 조용히 소파에 앉았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정명훈 법인장은 문준석 지점장에게 농담을 가장한 날카로운 말 한마디를 건넸다.

“문 지점장, 두 사람한테 함부로 대했다가 나중에 큰코다칠 수 있으니까, 주의하라고.”

“법인장님, 하 부지점장은 대학교 4년 후배이고, 한 대리는 15년도 넘게 차이나는 입사 후배입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제 코를 때립니까?”

“이 친구야, 두 사람은 나하고 같이 사업할 사람들이야. 한 대리는 부사장, 하 부지점장은 이사라는 직책을 가질 예정이고.”

“그게 뭐 어때서요?”

여전히 삐친 듯 툴툴대는 목소리.

“우리가 설립하는 회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회사가 대한 그룹이고, 카운터파트너가 전략기획실의 조병석 실장님이야. 만약에 두 사람이 조 실장님께 자네의 험담을 늘어놓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회사를 때려 치고, 법인장님이 설립한 회사에 입사해야죠.”

“우리 회사에 입사하면, 한 대리와 하 부지점장이 가만히 내버려 둘 거 같아?”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상황 파악을 끝낸 문준석 지점장이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문준석 지점장의 입을 다물게 만든 정명훈 법인장은 시선을 겨울에게 옮기며 물었다.

“한 대리, 종이 가방에 든 게 오늘 아침에 얘기한 핸드폰인가?”

“네, 법인장님, 개통은 나중에 해야 한답니다.”

한편, 하도진 부지점장은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문준석 지점장은 자기가 4년 전 여름에 아프리카 법인으로 전배되어 왔을 때 대학 후배라며 알뜰살뜰하게 보살펴 준 선배였다.

제일 좋아하는 대학 선배가 정명훈 법인장의 질책을 듣고 잔뜩 의기소침해 있는 모습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서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했다.

“제가 문 지점장님이 제일 싫어하는 중국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해 드릴까요?”

“빨리 얘기해 봐.”

“오늘 공항에서 중국의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천유런 외교부장을 만났습니다.”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니나 다를까, 문준석 지점장이 즉각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도진 부지점장은 그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저를 포함해서 그를 본 사람이 수백 명도 넘습니다. 당연히 법인장님께서도 보셨고요.”

“하 부지점장 말이 맞아.”

정명훈 법인장이 확인 사살해 주었다.

“하 부지점장,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제야 모든 의심을 풀고, 문준석 지점장이 호기심을 보여 왔다.

“천 외교부장은 뭐가 불만인지 …….”

하도진 부지점장은 공항에서 보고 들은 일을 가감 없이 설명해 주었다.

“…제가 천 외교부장이 성질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동영상을 지인에게 보내서 해석을 의뢰한 결과, 그가 열 받은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이유가 뭐였나?”

그때, 추성민 이사가 입을 열었다.

“하 부지점장, 천 외교부장이 열 받은 이유는 나중에 얘기하는 게 어떨까?”

하도진 부지점장은 추성민 이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숨에 눈치챘다.

지금 말고 바하리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소재거리로 삼으라는 얘기였다.

“네, 알겠습니다.”

하도진 부지점장의 입을 막아놓은 추성민 이사는 문준석 지점장에게 말을 건넸다.

“방금 전에 하 부지점장한테 들은 얘기와 오늘 저녁때 바하리 대통령을 만나서 나눌 대화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

“입을 꾹 다물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이곳의 도로 상황은 어떤가?”

“계획도시라서 그런지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스콜이라도 오게 되면 엉망진창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조금 일찍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 * *

대통령 집무실.

바하리 대통령은 겨울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오코사 비서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천유런 외교부장이 우리나라에 의전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가 뭐야?”

사실 오코사 실장은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기분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작년 10월에 있었던 아부자 국제공항 신청사 준공식 당시에 그가 중국 대표로 참석했다.

그 당시에 얼마나 목을 빳빳하게 들고 재수 없게 굴던지, 그냥 중국으로 내쫓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그가 이번에 협상 대표로 온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밀린 스트레스를 풀어 버릴 생각에 들떠 있는데, 어제 저녁때 그가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고압적인 목소리로 협상단을 이끌고 갈 예정이라면서, 도착 시간만 알려 주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의 말은 즉, 알아서 자신들을 영접하라는 뜻이었다.

중국에 도움받은 것이 많았기에 당연히 의전을 갖춰서 영접하는 것이 타당했으나, 자신들은 곧 중국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앞두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그들을 영접할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제법 긴 생각을 끝낸 오코사 실장은 바하리 대통령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예전 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 아니야?”

“저도 대통령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놈한테 따끔한 맛을 보여 주지 그랬어?”

“그렇지 않아도, 오늘 공항에서 개망신을 당했다고 보고받았습니다.”

“자세히 얘기해 봐.”

“별거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입국하는 일반인처럼 똑같이 대해 주라고 했을 뿐입니다.”

“하하하, 그렇다는 말이지?”

똑똑.

그때, 노크와 함께 수행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겨울이 도착했음을 보고했다.

“접견실로 모셔.”

“네, 대통령님.”

* * *

접견실.

오코사 실장과 겨울이 순발력을 발휘해서 양측 일행을 정식으로 소개시켜 주었다.

상견례가 끝난 후, 상석에 앉은 바하리 대통령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님, 우리나라를 방문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겨울은 호텔에서 대통령 관저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공항의 입국 심사관이 본인의 이름을 기억해 달라는 이유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서 그녀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결정했다.

“제일 먼저 입국 심사대에서 저를 친절하게 맞이해 준 심사관의 아름다운 미소가 인상 깊었고, 공항이 웅장하고 깨끗한 것도 인상이 깊었습니다.”

바하리 대통령은 겨울이 자신에게 립 서비스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공항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돈만 밝힌다는 사실을 자기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부사장님, 없는 얘기를 지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대통령님께 진실만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입국 심사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데 그러십니까?”

“사실 저는 입국심사를 편하게 받으려고, 여권에 사이에 10달러를 끼워 넣고…….”

겨울은 공항에서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설명해 주었다.

“…입국 심사관의 이름은 비올라 오바다 씨였습니다.”

오코사 실장은 조용히 핸드폰을 들고 접견실 밖으로 나갔다.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만약에 겨울의 말이 단순한 립 서비스로 밝혀지는 순간, 이후의 분위기는 엉망진창으로 변해 버릴 것이기 때문에.

약 5분 정도 지난 후, 오코사 실장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접견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다소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던 집무실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180도 변해 버렸다.

“오코사 실장, 어떻게 됐나요?”

“공항 측에 확인해 본 결과, 한 부사장님의 얘기가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한 부사장님께 좋은 인상을 심어 준 오바다 씨한테 대통령님이 금일봉을 하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대통령님, 나머지 얘기는 저녁 만찬을 즐기면서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합시다.”

만찬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바하리 대통령이 오코사 실장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진실을 얘기해 봐.”

“제가 공항에 한 부사장님 일행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오바다 씨는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120% 수행한 겁니다.”

“어찌됐든 한 부사장님한테 좋은 인상을 심어 준 건 사실이네?”

“네, 그렇습니다.”

“알았어. 계획대로 금일봉을 지급하도록 해.”

만찬장에서의 저녁 식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대통령님, 한 부사장님이 공항에서 천유런 외교부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한 부사장님, 정말입니까?”

오코사 실장의 얘기를 귀담아들은 바하리 대통령이 겨울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네, 사실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저보다는 하도진 부지점장에게 얘기를 듣는 편이 더욱 생생할 겁니다.”

겨울이 하도진 부지점장에게 발언할 기회를 넘겨주고, 뒤로 물러났다.

하도진 부지점장은 겨울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낸 뒤,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님과 수하물을 찾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저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화가 났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올라있었고…….”

하도진 부지점장은 당시에 보고들은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고, 일부는 감추는 센스를 발휘했다.

“…제가 천 외교부장이 수행원들을 질책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놓았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알려 줄 수 있습니까?”

“저희 일행 중에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모릅니다.”

“음, 그렇다는 말이지요?”

센스 빠른 오코사 실장이 급하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통령님, 통역을 대기시켜 놓을까요?”

“그렇게 하세요.”

저녁 만찬을 끝내고 다시 접견실로 돌아온 바하리 대통령 등은 하도진 부지점장이 촬영한 동영상을 대형 TV를 통해서 시청했다.

[왕 국장, 나이지리아 놈들이 스스로 꼬리를 내린다며? 당신 눈에는 이게 그놈들이 꼬리를 내린 거로 보여!]

[…죄송합니다.]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는 없어도 된다며? 돈이면 다 된다고 얘기한 사람이 누구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내가 입국 심사관한테 개망신을 당할 때, 당신들은 뭐 했어!]

10여 분 가까이 재생된 동영상에는 천유런 외교부장이 수행원들을 일방적으로 질책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동영상 재생이 끝나고 통역이 밖으로 나가자, 겨울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대통령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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