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더 이상의 궁금함은 사치
“…2월의 매출은 전년 대비 30% 신장할 예정이고, 이익률은 40% 신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상으로 콩고 지점의 업무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김 지점장, 2월 달에 정말 수고 많이 했어요.”
“감사합니다, 법인장님.”
“직원들은 모두 나가서 업무 보시고, 김 지점장과 하 부지점장은 자리에 남아 있도록 하세요.”
“네, 법인장님.”
현지 직원들이 회의실 밖으로 나가자, 정명훈 법인장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생수병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신 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 지점장, 하 부지점장,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가급적 비밀을 지켜 줬으면 좋겠어.”
“네, 알겠습니다.”
“나는 이달 말에 대한 그룹을 퇴직할 예정이야.”
“네?!”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김종학 지점장이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김 지점장,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얘기가 그렇게 놀라웠나?”
“12차선으로 뻥 뚫려 있는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흙먼지 폴폴 일어나는 비포장도로를 달리겠다고 하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비포장도로일지 아닐지는 어떻게 알고 있나?”
“상무로 승진하신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았잖아요.”
“내가 어떤 사업을 시작할지 들어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도대체 어떤 사업을 하시려고…….”
“일단 들어 봐. 나는 한겨울 대리와 함께…….”
정명훈 법인장의 얘기를 들은 김종학 지점장은 그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작년 연말에 정명훈 법인장이 만년 부장을 벗어나 상무로 승진할 때에도 지금처럼 부럽지는 않았다.
충분히 상무로 승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고 인정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가 진심으로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겨울이 벌이는 일만 제대로 마무리해 주면 부와 명예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사실 자기도 겨울과 같이 사업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겨울이 비즈니스 파트너로 정명훈 법인장을 선택했는데.
이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한 그룹을 떠나는 두 사람의 사업이 번창하도록 빌어 주는 것밖에 없었다.
김종학 지점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정명훈 법인장의 설명이 끝이 났다.
“미국에서 회장님을 만나서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로 합의서를 작성한 상태야.”
“법인장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얘기해 봐.”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에서 근무할 직원들은 어떤 방법으로 모집할 예정입니까?”
정명훈 법인장은 두 회사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인원 충원 방법을 비롯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얘기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그 결과, 김종학 지점장이 이런 질문을 던져온 것이지만.
동시에 그의 의도 또한 확실하게 읽혀졌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두 회사에 참여하고 싶은 속셈이라는 것을.
사실 자기도 김종학 지점장을 영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의 능력과 일하는 스타일이 자기와 맞았기 때문에.
하지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대한 그룹에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대한 그룹을 동시에 그만두면, 콩고 지점의 업무는 마비될 것이 분명했다.
그 점을 방지하고자 추성민 이사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우리 회사에 근무할 직원들은 내가 알아서 채용할 테니까, 김 지점장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저를 스카우트 해 주시면 안 됩니까?”
“미안하지만, 김 지점장은 우리 회사에 당장 스카우트 할 수는 없어.”
“선배님, 사랑하는 후배를 험한 이곳에 팽개치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아무리 인정에 호소해도 영입 불가의 입장은 변함이 없어.”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더 이상 조르지 않겠습니다.”
“자네와 하 부지점장이 동시에 대한 그룹을 그만두면, 콩고 지점은 어떻게 할 건데?”
“네? 저를요?”
그들의 대화를 듣던, 하도진 부지점장이 놀라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하고 한 대리가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나라들을 커버할 수는 없어.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을 보조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이고, 나는 두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
사실 하도진 부지점장은 정명훈 법인장에게 두 회사에 대한 설명을 듣는 순간, 김종학 지점장이 아닌 자신에게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공항에서 이곳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겨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표현하지 못하고 있던 이유는 찬물도 위아래가 있듯이 김종학 지점장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명훈 법인장은 김종학 지점장을 영입할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기에 놀란 척 가장하고 대화에 끼어든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법인장님과 한 대리를 보조하도록 하겠습니다.”
“하 부지점장, 김 지점장과 대화를 먼저 끝냈으면 좋겠네.”
“네, 알겠습니다.”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한 하도진 부지점장이 물러났다.
“H&J 컨설팅에 김 지점장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으니까, 새로 임명되는 부지점장한테 업무를 최대한 빨리 넘겨주도록 하라고.”
“하하, 알겠습니다.”
“이제 두 사람이 우리 회사에 영입됐다고 가정하고, 당부 사항 등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네, 말씀하십쇼.”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의 최대 주주는 한 대리이고, 직위도 부사장이야. 두 사람이 우리 회사에 영입되는 순간부터는 위아래 구분을 확실하게 해 줬으면 좋겠어.”
“그야 물론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김 지점장의 직위는 상무이고, 하 부지점장의 직위는 이사야.”
김종학 지점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까지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에 합류하기로 결정된 사람들은 자기를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
그중에 무려 다섯 명이 임원이라는 소리였다.
친분 관계를 이유로 요직을 나눠먹는다고 하더라도, 직위 인플레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법인장님, 손바닥보다 작은 회사에 임원들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김 지점장, 두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이 몇 명 정도 될 것 같은가?”
“글쎄요?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 모두 많아야 열 명 정도 되지 않을까요?”
“현재까지 영입이 확정된 직원은 H&J 컨설팅이 100명이고, H&J Investment는 200명이야.”
“네? 그렇게나 많습니까?”
예상한 대로 김종학 지점장이 물음표를 던져 왔다.
“김 지점장, 140억 달러짜리 잉가 3댐을 우리 회사가 수주한다고 가정할 때, 그 업무에 몇 명을 투입해야 할까?”
“아무리 적어도 50명은 투입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까지 우리 회사가 확보한 일감은 210억 달러 정도이고, 알제리의 데이터 센터 건까지 포함하면 240억 달러 정도야. 추가로 확보할 일감까지 감안하면, 100명도 적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법인장님의 말씀이 맞는 거 같습니다만, 고작 투자 업무만을 수행하는 H&J Investment는 인원이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처음에 정명훈 법인장도 김종학 지점장과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주에 해인스 상무부 장관과 통화하고 난 후에 생각을 바꿔먹었다.
“김 지점장, H&J Investment는 각 나라에 투자만 집행하는 게 아니라, 회수하는 업무까지 수행해야 해. 거기에다 미국 정부로부터 2차, 3차 투자금액이 입금되면, 인원이 부족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1,000억 달러도 많은데, 추가 투자가 이어진다고요?”
“중국이 6년 동안에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얼마를 쏟아 부었는지 알고 있나? 무려 1조 9,000억 달러야. 1,000억 달러가 많다고 할 수 있을까?”
“법인장님은 H&J Investment가 운용하는 자산을 얼마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우리가 비즈니스 영역을 어디까지 넓히는가에 따라 달려 있겠지만, 최소 5,000억 달러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아.”
“와우! 엄청나네요.”
“이제 직원 숫자에 대한 의문은 모두 풀렸지?”
“네, 법인장님.”
“이제 제일 궁금하게 생각할 연봉과 복리후생 제도에 대해서 얘기해 줄게.”
“네, 말씀해 주십시오.”
“연봉은 대한 그룹보다 조금 많게 책정할 예정이고, 성과급 제도를 크게 운영할 생각이야. 복리후생 제도는 대한 그룹과 동일하게 적용할 예정이야.”
하도진 부지점장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 그룹에서 받고 있는 연봉은 6,000만 원 수준.
대한 그룹의 이사 연봉은 1억 5,000만 원이 넘어간다.
H&J 컨설팅에 합류함으로 인해서 지금보다 연봉이 무려 150% 인상된다는 뜻.
추가로 성과급 제도까지 운영한다고 한다.
정말 운이 좋다면, 연간 2억 원 넘게 수령해 갈 수 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복리후생 제도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러다가 갑자기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그는 조용히 손을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법인장님, 대한 그룹에 준하는 연봉과 복리후생을 제공하려면, 우리 회사가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뜻인데… 가능할까요?”
“우리 회사가 확보한 일감을 200억 달러라고 가정해 보자고. 우리는 대한 그룹을 포함한 다른 회사들에 일감을 넘겨줄 때 이익을 몇 퍼센트 정도 붙일까?”
“아무리 적어도 5% 마진은 붙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우리 회사의 이익이 10억 달러인데, 수주하는 데 투입된 비용을 제외해도 8억 달러 이상은 남지 않을까?”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이 1년에 사용하는 비용은 1,000억 원이 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약 7,800억 원이 남는다는 소리였다.
여기에 추가로 일감을 수주하게 되면, 이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확실한 상황.
더 이상의 궁금함은 사치에 불과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성과급 제도를 추가로 설명하면, 노력해서 프로젝트를 수주할 경우 건별로 커미션을 지급할 예정이야. 커미션 비율을 0.1% 정도 생각하고 있어.”
즉, 1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10만 달러의 커미션을 지급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국책 프로젝트는 10억 달러가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100만 달러 이상의 커미션은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건별 지급이라고 했으니까…….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법인장님, 커미션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개인이 아니라 팀에게 주는 것이니까, 그렇게 많다고는 볼 수 없을 거야.”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 부지점장은 3월 중에 H&J 컨설팅에 합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윙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겨울은 발신자를 확인하고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부투야 실장님, 한겨울입니다.”
[한 대리님, 우리나라에 오셨다면서요?]
겨울은 지난주의 일을 기억에 떠올렸다.
사실 추성민 이사가 콩고 지점과 나이지리아 지점을 방문하는 계획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명훈 법인장과 동행한 이유는 자신의 아이디어 때문이었다.
신임 법인장이 부투야 실장을 포함한 VIP들과 안면을 트는 것이 여러 모로 이득이었으니까.
이곳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은센기 사장한테 전화를 걸어서 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한다고 살짝 귀띔해 놓았다.
기대한 대로 은센기 사장은 자신의 방문 사실을 부투야 실장에게 알려 주었고, 결국 이렇게 통화가 연결된 것이다.
[오늘 저녁때 한잔해야지요?]
“이를 말씀입니까?”
[하하하, 알았어요. 약속 장소와 시간을 나중에 알려 줄게요.]
“실장님, 제가 모시고 온 분들과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신임 법인장님도 같이 오셨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만나보고 싶었다고 전해 주세요.]
“네, 실장님. 그럼 저녁때 뵙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추성민 이사가 질문을 던져 왔다.
“한 대리, 부투야 실장님이 뭐라고 하셨어?”
“법인장님을 만나 뵙기를 기다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김종학 지점장이 화들짝 놀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대리, 추 이사님이 신임 법인장님이야?”
“김 지점장은 내가 법인장으로 임명된 것이 싫은가 봐?”
겨울이보다 추성민 이사가 먼저 반응했다.
“조금 그런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왜?”
“추 이사님은 법인장님보다 손이 훨씬 작잖아요.”
“하하하.”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