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23화 (123/328)

[123화] 기분 좋은 날

추성민 이사는 아무리 정명훈 법인장이 자기를 낙점했다 하더라도 아프리카 법인장으로 임명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아프리카 법인의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이사가 법인장으로 임명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자기는 올해 초에 이사로 갓 승진한 신참내기가 아닌가.

이 점에 대해서 정명훈 법인장에게 말했더니, 예상치 못한 대답을 꺼내 놓았다.

“추 이사는 작년에도 몇 달 동안 부장 직위로 법인장 역할을 수행했잖아.”

“그건 대행이었잖아요.”

“그럼 사장님께 추 이사를 또다시 법인장 대행으로 임명해 달라고 말씀드려 줄까?”

“에이, 법인장님. 사랑하는 후배한테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추성민 이사가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감투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러게, 왜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한 번 정도는 사양하는 게 한국인의 미덕이잖아요.”

“아, 됐고. 사실 나는 추 이사를 컨설팅 회사에 영입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아프리카 법인에 우리와 손발이 맞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잠시 보류한 상태고.”

“법인장님, 저는 언제든지 컨설팅 회사로 이직할 수 있다는 겁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고, 아프리카 법인장을 3년 정도 훌륭하게 수행해 주면, 우리 회사로 영입하도록 할게.”

“선배님과 저 사이에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까?”

“대한 그룹에서 경험을 더 쌓으라는 말이잖아.”

“에이, 선배님. 농담도 못합니까?”

추성민 이사가 투덜댔다.

“하하하, 알았어. 이제부터 회장님과 합의한 내용을 얘기해 줄 테니까, 참고하고 있어.”

“말씀하십시오.”

“FTA 팀은 내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고, 인원도 충분하게 충원해 준다고 약속해 주셨어.”

“네, 알겠습니다.”

“아프리카 법인에서 한두 명을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 할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누구를 스카우트 하실 생각인데요?”

“아직 본인 의사를 물어보지 못했으니까, 다음에 얘기해 줄게.”

윙윙―

그때, 정명훈 법인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떠 있는 전화번호를 확인하니, 이진호 사장이었다.

느낌상 송훈석 회장한테 자신의 퇴직과 관련한 얘기를 전해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는 거쳐야 할 관문이었기에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사장님.”

[정 법인장, 방금 전에 회장님께 연락받았습니다. 창업을 축하하고, 우리 회사에 일감을 많이 몰아줬으면 좋겠네요.]

“네, 물론입니다. 제가 힘닿는 데까지 밀어주도록 하겠습니다.”

[퇴직 시기는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있습니까?]

“2월 말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고작 열흘도 남지 않았네요?]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회장님께 자세한 얘기를 들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신임 법인장은 언제까지 나한테 낙점해 줄 생각인가요?]

“지금 추성민 이사와 그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추 이사를 신임 법인장으로 발령 내면 되겠죠?]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 법인장과 한 대리한테 밥 한 끼 사고 싶은데, 귀국하면 꼭 연락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추 이사한테는 3월 1일에 법인장으로 발령 낸다고 얘기해 주세요.]

“네, 사장님.”

[우리나라에서 봅시다.]

전화를 끊은 정명훈 법인장은 통화 내용을 추성민 이사한테 전달해 주었다.

“…2월 말까지는 비밀을 지켜 달라는 의미인 것 같았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우리 후배 중 금융 쪽에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없을까?”

“왜요?”

“장대산 씨를 보좌할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 * *

“한 대리, 투자회사와 우리 회사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

고영규 팀장의 질문을 받은 겨울은 난감했다.

그에게 투자회사에 대해서 얘기해 주면, 자신과 정명훈 법인장의 퇴사 건도 자연스럽게 언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극히 일부 사실만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팀장님, 나중에 알게 되시겠지만,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예정입니다.”

“예정이라니?”

“아직 투자회사가 설립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차, 그렇지.”

“팀장님은 지금보다 더욱 바빠질 것만은 확실합니다.”

겨울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VIP들로부터 일감과 관련해서 확실한 언질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FTA 팀의 올해 목표를 초과 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는 예정대로 부장으로 승진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겨울에게 궁금한 게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으나,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얘기를 떠올리고 이쯤에서 호기심을 접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

“법인장님이 FTA 팀원도 충원시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하하, 알았어.”

고영규 팀장은 인원을 늘려 준다는 얘기가 특히 반가웠다.

팀원이 늘어난다는 말은 과부하가 걸린 업무량을 줄여 준다는 뜻.

겨울은 그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것을 눈치채고, 이때다 싶어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팀장님, 제가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그러는데, 오후에 반차를 낼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외근 나간 거로 처리해 줄 테니까, 푹 쉬도록 해.”

“넵,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겨울은 고영규 팀장에게 꾸벅 인사하고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본 고영규 팀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 흘렸다.

“한 대리한테 처제를 소개시켜 줄까?”

* * *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겨울은 가쿠타 과장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외근 나갈 건데, 같이 나갈까요?”

“당연한 말씀이죠.”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커피전문점에 자리 잡은 두 사람은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가쿠타 과장님, 정수기 수출 건은 조금 있다가 얘기하고, 컨설팅 회사와 관련한 얘기를 먼저 나눴으면 해요.”

“네, 말씀해 보십시오.”

“컨설팅 회사의 이름은 H&J 컨설팅으로 결정했습니다. 법인장님이 대표를 맡기로 했고, 저는 부사장으로 결정됐습니다. 컨설팅 회사가 수행할 업무는 …….”

사실 가쿠타 과장은 겨울이 퇴사하면 은센기가 설립한 H&E 트레이딩에 합류할 것이라 예상했다.

어느 누가 봐도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웠으니까.

그런데 VIP들과 정명훈 법인장이 급하게 미국으로 출장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판단했다.

그 후, 은센기와 통화하다가 겨울이 컨설팅 회사를 창업한다고 얘기를 들었고, 오히려 그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큰물에서 노는 편이 겨울에게도 훨씬 이득이니까.

하지만 그럼으로 인해서 문제는 자기에게 생겨 버렸다.

자기는 무역 관련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지만, 컨설팅 분야는 아는 게 전무한 상태였다.

괜히 겨울을 쫓아갔다가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 컨설팅 회사가 수행할 업무 중에서 자기가 담당할 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겨울의 설명에 더욱더 주의를 기울였다.

“…해서 H&J 컨설팅은 한국에 설립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죠?”

아프리카가 아닌 대한민국이란다.

가쿠타 과장은 실망감이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사실 대한민국은 아프리카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꿈과 같은 나라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입국하려면 반드시 비자가 있어야 하고, 이를 발급받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단순히 관광 비자를 발급받는 데도 까다로운데, 취업 비자를 발급받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겨울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에게 취업 비자를 발급시켜 준다는 말인가.

가쿠타 과장은 잔뜩 실망한 얼굴로 겨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한 대리님, 제가 한국에서 근무하려면 취업 비자가 필요한데, 발급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입니다.”

“가쿠타 과장님, 취업 비자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한국에서 근무하고 싶은지 아닌지만 말씀해 주세요.”

“당연히 근무하고 싶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가쿠타 과장과 대화를 중단한 겨울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한 대리님.]

“대산 씨, 한국에 입국하셨나요?”

[네. 오늘 오전에 입국했습니다.]

“부탁이 있는데, 하나만 들어줄 수 있습니까?”

[얘기해 보세요.]

“제 직장 동료가 콩고민주공화국 국적입니다. 그분을 H&J 컨설팅에 합류시켜야 하는 상황인데, 취업 비자 발급이 어렵다고 하네요.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 당장은 어렵고,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이 설립되면, 취업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고 얘기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법인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서류는 언제 보내줄 건가요?]

법인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서류는 임원의 인감도장,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본이다.

문제는 이 서류들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직접 동사무소를 찾아가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물론, 대사관을 통해서 발급받을 수는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겨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정명훈 법인장과 상의한 상태였고, 이미 해답을 받아 놓았다.

“필요 서류와 관련해서 법인장님의 지시 사항을 전달해 줄게요.”

[얘기해 보세요.]

“대산 씨가 단독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저하고 법인장님은 한국으로 들어가서 변경등기 하자고 하십니다. 변호사한테 그렇게 얘기해 주면 알아들을 거라고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법인 설립이 완료되면 연락 주세요.”

[당연히 그럴 예정입니다.]

겨울은 장대산과 몇 마디 대화를 더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이들의 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가쿠타 과장이 즉시 물었다.

“한 대리님, 장대산 씨가 뭐라고 했습니까?”

“취업 비자 발급 문제는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네요.”

“네, 알겠습니다.”

“가쿠타 과장님이 H&J 컨설팅에서 수행해야 할 업무는 저를 보조하는 역할입니다.”

“네? 무역 업무를 수행하는 게 아니고요?”

“그 업무도 저를 보조하는 업무잖아요.”

“하하, 알겠습니다.”

“가쿠타 과장님이 H&J 컨설팅에 합류하는 것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또 있나요?”

사실 가쿠타 과장은 겨울에게 정말 궁금한 게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실례될 것 같아서 참고 있었다.

그런데 겨울은 마치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물어보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라 판단하고, 그는 과감하게 묻기로 마음먹었다.

“한 대리님, 제가 H&J 컨설팅에 합류하면 연봉은 얼마를 책정해 주실 생각입니까?”

“대한 그룹과 동등하거나 조금 높게 책정해 줄 생각입니다.”

가쿠타 과장은 실망감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물가 수준이 남아공보다 훨씬 높은 한국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많이 받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대한 그룹과 동등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이라니.

그렇다면 굳이 모국을 떠나 한국에서 근무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겨울에게 내뱉은 말이 있어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

“…알겠습니다.”

가쿠타 과장이 잔뜩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쿠타 과장님, 무언가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제 말을 끝까지 들어 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현지 직원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띠라서 가쿠타 과장님은 한국인과 똑같은 조건으로 연봉과 복리후생이 적용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쿠타 과장님은 H&J 컨설팅에 합류하는 즉시, 부장의 직위가 부여될 예정입니다.”

대한 그룹에서 부장급이 받는 연봉은 7만 달러 수준.

가쿠타 과장은 가슴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현재 받는 연봉보다 일곱 배가 늘어난다고 하는데, 흥분하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복리후생까지 감안하면, 최하 8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수령하는 꼴이었다.

“충성을 다해서 한 대리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가쿠타 과장님, 충성의 대상은 제가 아니라,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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