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때로는 필요한 거짓말
병원으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
장대산의 행동을 하나하나 곱씹고 있던 조병석 실장은 그의 정체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가 보여 준 모습은 결코 평범한 일반인들의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보 세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송훈석 회장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회장님, 장대산 씨는 고급 정보를 어떤 경로를 통해서 취득했을까요?”
송훈석 회장 또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는 양아버지인 해리슨 상원의원을 통해 정보를 획득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장대산의 행동을 지켜본 결과, 다른 경로를 통해서 정보를 취득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혹시… 장대산 씨가 CIA 요원은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정말 아쉽네요.”
“뭐가 말인가?”
“장대산 씨가 대한 그룹에 계속 근무하고 있었으면, 고급 정보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었잖아요.”
송훈석 회장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장대산이 퇴사한 순간부터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에 대한 미련은 버리자고.”
“네, 회장님.”
“그나저나 해리슨 상원의원이 나를 다시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뭘까?”
서동호 실장도 그 이유를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다만, 겨울과 관련된 얘기가 아닐까 하는 추측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조병석 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한 대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한 대리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송유관 건설공사 때문이었잖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그 문제는 합의서 체결을 통해서 깔끔하게 정리됐는데, 뿌요네 회장에게처럼 잘 가라는 인사가 없었잖아요.”
“한 대리가 우리 회사 소속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회장님과 해리슨 상원의원의 대화에 한 대리가 동참할 자격이 있을까요?”
“하긴… 조 실장 말이 맞는 것 같네.”
송훈석 회장이 생각에 잠긴 채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렸다.
* * *
같은 시각.
해리슨 상원의원은 점심 식사를 거하게 사고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 중에 있는 뿌요네 회장과 통화하고 있었다.
“뿌요네 회장, 모르는 전화번호인데, 누구 핸드폰으로 전화한 거야?”
[수행비서.]
“왜 전화했는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사실 해리슨 상원의원은 뿌요네 회장에게 부탁할 게 있었다.
그래서 이왕 고맙다는 말이 나온 김에 질러 보기로 마음먹었다.
“병문안 왔다가 엄청난 선물을 받아 가는데, 이대로 입 싹 닦고 말거야?”
[이거 왜 그래? 송 회장한테 5억 달러라는 엄청난 선물을 줬잖아.]
“파바르 전 부회장의 음모를 알게 해 준 거랑 테슬라와 관련한 보답은 어떻게 할 거야?”
[…징그러운 놈.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내 아들하고 한겨울 대리가 조만간에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할 예정이야. 창사 기념 선물로 너희 회사에서 큼지막한 거 하나만 꺼내 줘.”
뿌요네 회장에게서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느낌상 두 회사의 성격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그의 대답을 기다려 주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하여간 저렴한 말투하고는.]
“친구 사이에 뭐 어때? 그나저나 줄 거야, 말 거야?”
[선물 얘기를 하기 전에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예정인지 설명부터 해 봐.]
“간단하게 말하면, 두 회사가 지금의 중국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돼.”
[어린 두 사람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뿌요네 회장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너는 한 대리가 루군다 대통령하고 통화할 때 귀를 닫고 있었냐?”
[하긴…….]
“한 대리가 일을 벌이고 다니면, 정 법인장과 내 아들놈이 깔끔하게 뒷정리를 할 예정이니까 걱정 마라.”
[그럼 큼지막한 선물을 줘야겠네?]
“너희 회사가 아프리카에서 비즈니스를 원활하게 수행하려면, 그럴 필요가 있겠지.”
[조만간에 세 사람을 우리 회사로 초대해서 비즈니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볼게.]
“창사 기념 선물이 신통치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얼씨구, 이젠 협박까지 하네?]
“그만큼 두 회사가 중요하다는 뜻이야.”
[너를 위해서라도 빵빵한 선물을 주도록 할게.]
“고마워.”
[친구 사이에 뭘.]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송 회장님이 오셨나 보다. 나중에 통화하자.”
[알았어.]
전화를 끊자마자 송훈석 회장 일행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활짝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송 회장님, 뿌요네 회장이 식사를 거하게 샀습니까?”
“네. 모처럼 만에 포식한 것 같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해리슨 상원의원은 시선을 장대산에게 옮기며 말을 건넸다.
“대산아, 휠체어에 앉았으면 좋겠다.”
그러자 장대산과 겨울이 양쪽에서 해리슨 상원의원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혔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송훈석 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송 회장님, 보호자 대기실에서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보호자 대기실.
모두 소파에 앉자, 해리슨 상원의원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최대 적국은 중국입니다. 그동안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답게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차곡차곡 국력을 키워 왔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등과 무역을 통해서 얻은 막대한 무격수지를 이용해서 2013년부터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숨이 찬지, 말을 잠깐 끊었다가 이어 나갔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목적은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중국은 우리나라를 견제하기 위해서 프로젝트의 수혜를 입은 나라들에 친중 정권이 들어설 수 있도록 적극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우리나라는 중국의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작전에 돌입했고, 그 첫 스타트가 아프리카 대륙이었습니다. 그 나라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적임자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제야 송훈석 회장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련의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해리슨 상원의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장대산을 통해서 겨울에 대한 정보를 취득했고, 작년 8월, 핸드폰 기지국 증설과 업그레이드 입찰 당시에 그를 한 번 시험해 보았다고 했다.
천운이 닿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겨울의 뛰어난 활약으로 대한 그룹은 화웨이를 당당하게 물리치고 입찰에 성공했다.
그 일이 해리슨 상원의원이 겨울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그러던 중, 작년 11월에 겨울이 부투야 실장을 포함한 VIP들의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미국 정부에 겨울의 존재에 대해 알렸고, 지난 1월에 테슬라와 관련한 정보를 겨울에게 전달해 주며 겨울의 역량을 시험하기 위한 최종 테스트에 돌입했다.
겨울은 이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120%의 능력을 발휘해서 미국 정부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송훈석 회장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해리슨 상원의원의 설명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우리 미국은 한 대리님을 적임자로 결정을 내려놓고, 내부적으로 준비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3월경에 한 대리님을 우리나라로 정식으로 초대할 생각이었는데, 제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스케줄이 꼬여 버린 상황입니다.”
“해리슨 상원의원님, 한 대리가 동의했습니까?”
그의 질문에 겨울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당연히 아닙니다. 한 대리님은 대한 그룹에서 끝을 보기로 했다면서 완강하게 거부하더군요.”
“음, 그렇군요.”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대산이가 한 대리님과 정명훈 법인장님, 네 나라의 VIP를 우리나라에 몰래 초대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네 나라의 VIP들이 미국을 방문한 목적은 합의서 체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겉으로는 그렇지만, 실상은 한 대리님을 설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겨울은 해리슨 상원의원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유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자신과 정명훈 법인장의 퇴사에 명분을 실어주기 위함이리라.
사실이 아니라고 바로잡는 게 옳았지만, 그렇게 되면 해리슨 상원의원이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린다.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겨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저하고 루퍼트 국무장관, 해인스 상무장관, 네 나라의 VIP들까지 합세해서 한 대리님을 설득한 끝에 겨우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송훈석 회장은 깊은 흥미를 느꼈는지, 상체를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가까이하며 물었다.
“정 법인장님이 상무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 퇴직을 강력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도 퇴직해야 하는 상황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수립해 놓은 계획에는 한 대리님과 대산이가 컨설팅 회사와 투자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둘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중심을 잡아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 대리님까지 합세해서 겨우 정 법인장님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성공한 상태입니다.”
“하하하, 하여간 회사에 대한 두 사람의 애정은 알아 줘야 한다니까요.”
송훈석 회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자신의 거짓말이 완벽하게 먹혀 들어갔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이제 컨설팅 회사와 투자회사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예정인지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네, 경청하겠습니다.”
“빠르면 이달 안에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다섯 개 나라들이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송 회장님도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이번 전쟁으로 중국이 완패하고 다섯 나라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문제는 중국이 못된 짓을 벌인 나라가 다섯 개가 넘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향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상해 보았다.
미국의 도움을 받게 되는 순간, 다섯 나라 외의 나라들도 중국과의 전쟁에 합류할 가능이 있었다.
지은 죄가 있는 중국은 눈물을 머금고 그 나라들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것이고.
문제는 중국 자본에 의해서 지탱해 오던 경제가 엄청나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를 감당할 능력을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서 미국밖에 없었다.
‘아, 컨설팅 회사와 투자회사의 설립 목적이 바로 이거였구나.’
송훈석 회장은 고민하지 않고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물었다.
“해리슨 상원의원님, 컨설팅 회사와 투자회사가 중국이 퇴출되는 나라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보면 됩니까?”
“절반은 맞았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컨설팅 회사와 투자회사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두 회사는 미국과 전혀 상관없다는 뜻이다.
“해리슨 상원의원님, 그 나라들에 미국이 직접 지원하면 되지 않나요?”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친중 정권이 들어서 있는 나라들이 상당히 많은 상태입니다.”
“투자회사가 투자 재원은 어떤 방법으로 확보할 예정입니까?”
“우리 미국이 투자하는 것으로 결정된 상태입니다.”
“아, 이제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두 회사의 역할에 대해서 이해했을 것으로 믿고, 부탁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해 보십시오.”
“두 회사가 조기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대한 그룹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