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이제는 놓아줄 때
한편, 송훈석 회장은 지난 1월에 정명훈 법인장에게 보고받은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만약에 그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뿌요네 회장은 10억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불로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는 게 먼저였지만.
“뿌요네 회장님, 제가 확인해 볼 게 있는데, 한 대리를 불러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송훈석 회장은 겨울을 호출하고자 보호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그 사이, 잠시 피로를 회복한 해리슨 상원의원이 침대 등받이를 올려 달라고 뿌요네 회장에게 부탁했다.
그때, 송훈석 회장이 겨울과 함께 병실로 돌아왔다.
모든 사람들이 모이자, 송훈석 회장이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한 대리,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듣고 탄자니아, 또는 우간다의 대통령님께 전화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가 지난 1월에 정 법인장한테 보고받기로는…….”
겨울은 당시에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따라서 두 명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으나, 송훈석 회장의 지시를 어길 수는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루군다 우간다 대통령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마치 전화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신호가 한번 울리자마자 루군다 대통령이 바로 받았기 때문이다.
[한 대리님이 웬일이십니까?]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그의 목소리가 상당히 밝고 경쾌했다.
“루군다 대통령님, 저는 지금 미국 출장 중에 있고, 해리슨 상원의원님과 대한 그룹의 송훈석 회장님, 그리고 토탈의 뿌요네 회장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분들께 제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겨울은 루군다 대통령의 의견을 세 사람한테 전달하고 동의를 받아 냈다.
“대통령님, 세 분과 간단하게 인사라도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할게요.]
“먼저 해리슨 상원의원과 통화하십시오.”
겨울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해리슨 상원의원은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루군다 대통령과 통화를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핸드폰은 송훈석 회장, 뿌요네 회장에게 차례로 넘어갔다.
약 10분이 소요된 후에 다시 겨울의 손으로 돌아왔다.
“대통령님, 이제 스피커폰으로 전환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원하는 대로 하세요.]
겨울은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본격적으로 통화를 시작했다.
[한 대리님, 통화 요금이 많이 나와서 어떡합니까?]
농담은 농담으로 받는 것이 순리였다.
“송 회장님께서 통화 요금을 전액 부담해 주실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하, 알았어요.]
“저희는 지금 송유관 건설공사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한 미팅 중에 있습니다.”
[오오! 그렇습니까?]
진심으로 기뻐하는 루군다 대통령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통해서 생생하게 들려왔다.
“네, 그렇습니다. 미팅 도중에 궁금한 게 하나 생겨서, 대통령님께 확인해 보려고 연락드렸습니다.”
[뭔지 얼른 얘기해 보세요.]
“CNOOC가 지난 1월 말까지 대통령님께 선물을 주기로 약속했다고 들었습니다. 선물을 받으셨습니까?”
[5,000만 달러를 얘기하는 것 같은데, 1월 말에 텐궈리 회장이 나를 찾아와서 선물 얘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하고 되돌려 보냈습니다. 내가 왜 그랬는지 한 대리님은 알고 계시죠?]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화들짝 놀란 겨울이 재빨리 대화 내용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대통령님, 탄자니아의 마지리 대통령님께 전화해서 여쭤볼 필요가 없겠지요?”
[아… 내가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나하고 똑같이 되돌려 보냈다고 했습니다.]
루군다 대통령이 겨울의 의도를 눈치채고, 대화에 동참했다.
반면, 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있던 송훈석 회장의 마음은 착잡했다.
이제는 겨울을 놓아줘야 할 때임을 자각했기 때문에.
비록 자신이 대한민국의 재계 1위 그룹의 총수이기는 하지만, 일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허물없이 교류해 본 적은 없었다.
이에 반해 겨울은 비록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이라고 하지만, 4개국의 대통령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해리슨 상원의원까지 겨울에게 깊은 호감을 보이고 있고.
이렇게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재를 대한 그룹이라는 창틀 속에 가두어 놓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였다.
정말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겨울이 넓은 세상을 마음껏 휘젓고 다닐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송훈석 회장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두 사람의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루군다 대통령님, 시간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한 대리님, 잠깐만요.]
전화를 끊으려는 겨울을 루군다 대통령이 불러 세웠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마사카 부통령에게 보고받았습니다. 연말 안에 테슬라의 주가가 800달러가 넘을 거라면서요?]
결국 우려한 대로 루군다 대통령이 거하게 사고를 쳐 버렸다.
테슬라와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송훈석 회장과 뿌요네 회장은 당연히 모르고 있을 터였다.
가만히 있다가는 더 큰 사고를 칠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에 겨울은 재빨리 위험신호를 보냈다.
“대통령님, 지금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이고, 미안해요.]
뚝.
당황한 루군다 대통령이 급하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당황하기는 겨울도 마찬가지.
아니나 다를까, 돈 냄새를 맡은 송훈석 회장과 뿌요네 회장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한 대리, 테슬라라면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 아닙니까?”
“한 대리님, 루군다 대통령님의 말씀이 사실인가요?”
겨울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테슬라와 관련한 정보를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해리슨 상원의원이었다.
전문가가 눈앞에 버젓이 앉아 있는데, 두 사람의 질문에 넙죽넙죽 대답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이도저도 못하는 겨울의 상황을 눈치챈 해리슨 상원의원이 재빨리 대화의 주도권을 낚아챘다.
“한 대리님, 테슬라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자리로 돌아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살았다는 표정으로 겨울이 꾸벅 인사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해리슨 상원의원이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시죠?”
“이를 말씀입니까?”
“길게 얘기하지 않을게요. 지금 테슬라의 주식을 매입해 두면, 연말 즈음에는 주당 800달러가 넘어갈 겁니다.”
송훈석 회장은 그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차기 미국 대통령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그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해리슨 상원의원님, 좋은 정보를 알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나도 고마워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 대신, 비밀을 지켜 주셔야 하는 거 알고 계시죠?”
“그럼요. 무덤까지 가지고 들어가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송훈석 회장과 뿌요네 회장의 말에 웃음으로 답한 해리슨 상원의원은 말을 이어 갔다.
“송 회장님, 확인해 보실 것은 모두 확인했습니까?”
“아차, 제가 깜빡하고 있었네요. 뿌요네 회장님, CNOOC의 텐궈리 회장에게 페널티로 10억 달러를 청구하십시오.”
뿌요네 회장은 송훈석 회장의 의도를 단숨에 눈치챘다.
합의서에서 텐궈리 회장은 1월 말까지 우간다와 탄자니아 대통령에게 뇌물로 각각 5,0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겨울을 통해 알아본 결과, 2월 중순이 되도록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CNOOC 측에 페널티 10억 달러를 청구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 충족된 셈이었다.
“하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탄자니아와 우간다가 중국에 전쟁을 선포하면, 자칫하다가는 10억 달러를 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서두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암요. 그렇게 해야겠지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해리슨 상원의원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뿌요네 회장, 송 회장님이 엄청난 선물을 줬는데, 답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답례라…….”
끝말을 흐린 뿌요네 회장이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생각을 정리했는지 그가 눈을 떴다.
“송 회장님, 저희가 모잠비크 정부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해상 가스전의 지분 20%를 매입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합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제가 자료를 보내 드릴 테니까, 천천히 타당성 검토를 해 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참고로 하나 더 말씀드리면, 저희가 매각하려는 금액보다 5억 달러를 할인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최대한 빨리 검토해서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러모로 얻어가는 게 많은 날이네요.”
송훈석 회장은 그 중심에 유난히 운이 좋은 겨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1월에 탄자니아에 출장 가서 송유관 건설과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획득하지 못했다면, 페널티 10억 달러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백도어 프로그램과 관련한 의문을 품지 않았더라면, 파바르 전 부회장의 엉큼한 수작을 결코 알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조금 전 루군다 대통령과도 통화하지 않았다면, 테슬라와 관련한 정보도 취득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복덩이를 품에서 놓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많이 쓰렸다.
그렇게 송훈석 회장이 오만 가지 잡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합의서 작성을 끝낸 사람들이 병실로 들어왔다.
합의서 내용을 읽어 본 뿌요네 회장과 송훈석 회장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곧바로 합의서에 교차 사인을 완료했고, 어느새 기운을 차린 해리슨 상원의원이 위트니스(증인, Witness)란에 서명했다.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진 한 장 찍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의 제안에 모두들 흔쾌히 동의했다.
찰칵!
사진 촬영이 끝나자, 매조지 발언을 위해서 해리슨 상원의원이 입을 열었다.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이제 첫발을 디뎠습니다. 최종 계약 단계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관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주실 뿌요네 회장님은 CNOOC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각별히 주의해 주십시오.”
“그야 물론입니다.”
“재차 강조 드리지만, 이곳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뿌요네 회장님은 안녕히 돌아가시고, 송 회장님은 점심 식사 후에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은 해리슨 상원의원의 의중을 단숨에 파악했다.
송훈석 회장에게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에 대해서 언급할 생각인 것이리라.
긴장됐지만, 어차피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점심 식사는 뿌요네 회장님이 거하게 살 겁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하하, 알았어요.”
* * *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 식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송훈석 회장이 입을 열었다.
“뿌요네 회장님, 회사로 복귀하시면, 핵심 임직원들의 핸드폰을 은밀히 조사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송유관 건설 공사 입찰을 준비하고 있는 회사들을 생각해서라도, 가급적 이른 시간 내에 입찰이 취소됐다고 공고해 주십시오.”
“CNOOC 측에 페널티로 10억 달러를 요구하는 즉시 공고해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장대산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뿌요네 회장님, 이번 기회에 대한전자 핸드폰으로 바꾸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았어요. 프랑스로 귀국하자마자 바꾸도록 할게요.”
“제가 오늘 중으로 토탈에 근무하고 있는 파바르 전 부회장의 추종 세력들 명단을 발송해드리겠습니다. 그들을 면밀히 조사해서 회사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하루빨리 퇴출시키도록 하십시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