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14화 (114/328)

[114화] 유리한 조건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송훈석 회장이 수행원들과 함께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마중 나와 있던 장대산이 얼른 다가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미국 입국을 환영합니다.”

“장대산 씨, 오랜만이네요. 우리 악수나 한 번 합시다.

“네, 회장님.”

장대산과 악수를 끝낸 송훈석 회장은 서동호 비서실장과 조병석 전략기획실 실장을 차례로 소개시켜 주었다.

“회장님, 이곳은 혼잡하니까, 주차장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럽시다.”

송훈석 회장은 차에 오르자마자 장대산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산 씨, 아버지는 어때요?”

“병원 측에서는 늦어도 다음 달에는 퇴원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네요.”

“저도 회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서동호 실장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산 씨, 오보를 낸 언론사들한테 사과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실장님, 언론사는 오보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진짜로 생명이 위독했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한겨울 대리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제 아버지는 운명하셨을 겁니다.”

또 ‘한겨울’이었다.

중요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가 엮여 있는 이유가 진심으로 궁금한 서동호 실장이었다.

“대산 씨,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장대산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동호 실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괴한에게 피격당한 아버지는 가까운 병원으로 후송돼서 긴급수술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술이 중단됐습니다.”

“이유가 뭐였습니까?”

“총알들이 장기에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서 수술하던 도중에 쇼크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아이고…….”

서동호 실장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가친척들한테 연락해서 아버지 장례에 대해서 논의하려고 꺼 놓은 핸드폰을 켰는데, 수십 통의 매너콜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한 대리의 매너콜도 있었습니다.”

“한 대리가 전화한 이유가 뭔가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나중에 물어봤는데, 설 명절을 잘 보내라는 안부 전화였답니다.”

“한겨울 대리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는 거네요?”

“제가 아버지 신분을 얘기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계속 얘기해 보세요.”

“한 대리한테 전화를 걸어서 제법 긴 시간 동안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에 한 대리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누군가의 핸드폰 번호였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흥미를 느낀 세 사람이 조수석에 앉아 있는 장대산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물었다.

“한 대리님한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본 결과, 흉부외과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코비 브라이언 박사님의 전화번호였습니다.”

“세상에…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급하게 브라이언 박사님께 전화를 걸어서 제 아버지의 상태와…….”

장대산은 해리슨 상원의원이 브라이언 박사팀에 의해서 수술을 받게 된 모든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해서 열두 시간 가까이 수술한 끝에 겨우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대산 씨, 바쁘기로 유명한 브라이언 박사님이 아버님의 수술에 선뜻 응해 준 이유를 알고 있나요?”

“브라이언 박사님이 한 대리한테 큰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작년 11월에 국경 없는 의사회가 겨울에게 도움 받은 것에 대한 보답 차원일 것이었다.

“대산 씨는 나중에 한 대리한테 한턱내야겠네요.”

“그럴 예정입니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 송훈석 회장이 장대산에게 다른 내용의 질문을 던졌다.

“대산 씨, 갑자기 우리 회사를 퇴사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장대산은 겨울과 같이 사업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으나, 아직은 공개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에둘러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내가 도와 줄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세요. 힘껏 도와주도록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이왕 이곳으로 온 김에 해리슨 상원의원을 만나러 아프리카에서 온 VIP를 만나보기를 원했다.

그와 안면을 터서 나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대산 씨,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요?”

“네, 말씀해 보십시오.”

“아프리카에서 오신 VIP와 인사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분들은 회장님이 도착하시기 한 시간 전에 본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송훈석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명훈 법인장에게 들은 정보로는 어제 오후에 연합군 대표와 미국 정부 대표가 만나서 합의서에 사인한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연합군 대표는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장대산은 여러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커뮤니케이션상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그는 진실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연합군에 가담한 다섯 개 나라 중에 알제리 대표만 제외하고 모두 참석하셨습니다.”

“그분들을 만나보지 못한 게 정말 아쉽네요.”

송훈석 회장의 아쉬워하는 표정과는 달리, 조병석 실장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대산 씨, 한 대리도 아프리카로 돌아갔나요?”

“아닙니다.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물러 있기로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한 대리님이 송유관 건설 공사 입찰을 담당한다고 들었습니다.”

“송유관 건설 공사 입찰은 연기되거나 무산된 게 아닙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장대산이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췄다.

* * *

“송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병상에 일어나 앉은 해리슨 상원의원은 밝은 표정으로 송훈석 회장을 맞이했다.

“해리슨 상원의원님, 상태는 어떻습니까?”

“보시다시피 매일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네요.”

“제 아들한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겨울 대리가 저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송훈석 회장은 이곳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그 내용을 장대산에게 모두 들어 알고 있었다.

겨울이 장대산에게 브라이언 박사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알려 줬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겨울이 해리슨 상원의원을 살렸다는 얘기는 과장돼도 한참 과장되었다.

이런 점을 언급했더니, 그의 입에서 놀랄 만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송 회장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제가 모르고 있는 사연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브라이언 박사님은 한 대리의 전화를 받기 직전에 아주 중요한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답니다. 만약에 한 대리가 그에게 조금만 늦게 전화했으면, 저는 이미 죽어서 땅속에 묻혔겠죠.”

브라이언 박사가 환자를 수술하는 도중에 겨울이 전화를 걸었다면, 당연히 통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설령 통화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수술 중에 집도의를 교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해리슨 상원의원의 수술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결국 해리슨 상원의원이 골든타임을 놓쳐서 사망에 이르렀을 것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린 송훈석 회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해리슨 상원의원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상원의원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무거운 얘기는 그만하고, 같이 온 분이나 소개시켜 주세요.”

“하하, 그럴까요? 서동호 실장은 알고 계실 것이고…….”

송훈석 회장이 재빨리 동행한 조병석 실장을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소개를 받자마자, 해리슨 상원의원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 실장님, 작년 8월에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화웨이를 박살 낼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제가 대한 그룹에 몸담은 이래로 중국과 셀 수 없이 부딪혔는데, 그때만큼 짜릿한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없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네요.”

“오늘 상원의원님을 만날 줄 알았으면 당시의 상황을 촬영해 놓았을 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입찰 장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금 말씀해 주시면 되잖아요.”

“하하, 그럴까요? 저희는 일부러 제일 늦게 입찰 장소에 도착했고…….”

조병석 실장은 당시의 사건을 마치 TV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중계했다.

“…궈징페이 부사장의 허망해하는 표정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하하, 정말 짜릿했겠네요.”

해리슨 상원의원이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선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와는 반대로 조병석 실장은 궁금증이 치솟았다.

아무리 중국이 미국의 최대 적국이라고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의 관계였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는 친중파 정치인들도 상당히 많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해리슨 상원의원은 이상하리만치 중국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제 할아버지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 장교로 참전하셨다가, 중국군에 포로로 잡혔고, 포로수용소에서 의문사를 당했습니다.”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있습니까?”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알려진 사실인데, 중국군이 제 할아버지에게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고문을 가하다가 쇼크사시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집안은 중국을 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과거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이미 지난 일인데요, 뭐.”

해리슨 상원의원은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 잠시 눈을 감았다.

송훈석 회장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아니라고 판단 내리고, 이쯤에서 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해리슨 상원의원님, 피곤하신 것 같으니 이만 쉬시고, 내일 오전에 다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

“아닙니다. 제가 송 회장님을 뵙자고 한 이유를 지금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송유관 건설 공사 입찰 때문입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상원의원님께서 송유관 건설 공사 입찰에 이렇게 신경 쓰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겨울이 대한 그룹에 가지고 있는 마음의 부담을 쉽게 털어 내도록 도와주기 위함이었지만, 뜻한 바가 있었기에 지금 언급할 수 없었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켜서 그럴 듯한 대답거리를 생각해 냈다.

“제가 한겨울 대리한테 생명을 구원받은 것을 보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송유관 건설 공사에 자본을 투입하는 회사는 프랑스의 토탈과 중국의 CNOOC입니다. CNOOC는 탄자니아와 우간다의 대통령을 비롯해서 고위급 인사들에게 화웨이 핸드폰에 백도어를 설치해서 선물한 범인이기 때문에 송유관 건설 공사에서 곧 퇴출될 예정입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숨을 고르기 위해서 말을 한 번 끊었다가 계속 이어 나갔다.

“CNOOC가 퇴출됨으로 인해서 송유관 건설 공사는 또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회장님을 뵙자고 한 겁니다.”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제가 원하는 것은 모두 두 가지입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CNOOC의 지분을 대한 그룹이 인수해 주시고, 석유도 수입해 주십시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송유관 건설 공사는 수의계약으로 대한 그룹 품에 안겨 드리겠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가슴이 거칠게 뛰었다.

해리슨 상원의원이 언급한 조건은 깊게 따지지 않아도 모든 면에 있어서 자신들에게 훨씬 유리했다.

즉석에서 승인하고 싶었지만, 자기는 아마추어 비즈니스맨이 아니었다.

“해리슨 상원의원님,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좋습니다. 저한테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말씀해 보십시오.”

“해리슨 상원의원님께서 저희한테 말씀하신 제안을 토탈 측에서 알고 있습니까?”

“송 회장님께서 제 제안을 수용하시면, 토탈 측에 얘기를 꺼낼 생각입니다.”

“만약에 토탈 측에서 반대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토탈의 장 뿌요네 회장은 제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토탈의 뿌요네 회장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라고 하더라도 해리슨 상원의원의 말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차기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그가 제일 가까이 가 있기 때문에.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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