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복잡한 셈법
사실 장대산이 컨설팅 회사에 참여하려는 이유는 모두 세 가지였다.
미국 정부의 의견을 겨울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과 정보기관에서 생성되는 고급 정보의 획득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미국 정부를 대신한 투자자 역할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 이유는 아직 미국 정부로부터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공개하는 것은 부적절했지만, 문제는 승합차의 분위가 너무 침통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장대산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살짝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주십시오. 한 대리님이 설립 예정인 컨설팅 회사는 계열사를 하나 보유할 예정입니다. 그 회사의 사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Investment(투자)라는 단어가 들어갈 겁니다.”
부투야 실장은 겨울이 자력으로 투자 회사를 설립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대산의 입에서 투자 회사 얘기가 언급되었다는 것은 누군가 겨울에게 투자하겠다는 의미였다.
당연이 투자자는 미국 정부일 것이다.
“장대산 씨, 한 대리님이 설립하는 투자 회사가 미국 정부를 대신해서 우리나라에 자본을 투자한다고 보면 됩니까?”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저희 회사에 자본을 투자하는 것으로 모든 역할이 종료됩니다. 즉, 투자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희 회사에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투자 회사가 우리나라에 자본을 투자한다고 가정할 경우에 어떤 요구 조건을 제시할 예정입니까?”
“상황에 따라 다른 조건이 적용되겠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갑자기 승합차 안에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장대산은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뜸 들이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컨설팅 회사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 투자 회사의 이익은 양측이 합의를 통해서 결정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컨설팅 회사가 프로젝트를 실행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컨설팅 회사는 적당한 금액의 이익을 챙기고,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회사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입니다.”
“모든 키는 컨설팅 회사의 수장인 한 대리님이 쥐고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겨울은 부투야 실장이 오해하고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더 이상의 오해가 쌓이기 전에 해소하지 않으면, 뒷수습이 꽤나 힘들어질 것이었다.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재빨리 발언권을 요청했다.
“부투야 실장님, 컨설팅 회사의 CEO는 제가 아니라, 다른 분을 초빙할 예정입니다.”
“그분이 컨설팅 회사의 최대 주주는 아니겠죠?”
즉, 결정권은 겨울에게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저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된 투자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은 전문가인 CEO께 맡길 예정입니다.”
“저희는 한 대리님께 투자 이익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프로젝트에 투자해 달라고 요청하면 되겠네요?”
“그래 주시면 더욱 감사합니다만, 아직 투자 회사 설립 승인은 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 대리님은 승인이 날 것으로 보십니까?”
“미국 정부 측 사람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면, 투자 회사 설립에 동의할 겁니다.”
* * *
같은 시각.
해리슨 상원의원은 병실로 찾아온 대니얼 해인스 상무부 장관, 밀러 루퍼트 국무부 장관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장관님들도 아시다시피 첫 단추를 잘 꿰게 되면,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입지를 상당히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VIP들의 요구를 가급적이면 들어주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해 주십시오.”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 마십시오.”
“투자 회사를 조기에 설립해야 할 것 같으니까, 최대한 빨리 확정해 주십시오.”
“해리슨 상원의원님, 투자 회사를 통하지 않고, 우리나라가 직접 자본을 투자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해인스 장관의 질문을 받은 해리슨 상원의원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덕분에 그 넓은 VIP 병실에는 기계장치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생각을 끝마친 해리슨 상원의원이 턱에 괴었던 손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 나라들은 제국주의 시대 당시에 열강들에게 모진 고난과 수탈을 당한,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강들과 흡사한 방식으로 아프리카 나라들에 접근한 중국이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중국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습니까?”
해인스 장관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대충 감이 잡혔다.
중국 정부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아 오던 사람들의 강력 반발은 쉽게 예상되는 일이었다.
반대로 소외받던 사람들은 이를 격렬하게 환영할 것이고.
‘중국이냐, 미국이냐’와 같은 이분법적 선택으로 상황을 몰아가면, 정국은 혼란한 상황으로 빠져들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
선심 쓰는 척 투자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이 점을 고려해서 우회적으로 아프리카 나라들에 자본을 투자할 생각인 것이리라.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투자 회사에는 자본금뿐만 아니라 투자 업무를 총괄할 인력들도 공급해 주셔야 합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요.”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50대로 보이는 한국 남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그가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차렸다.
겨울과 친분이 두텁다는 정명훈 법인장.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유는 나중에 파악해 보기로 하고, 반갑게 인사말부터 건넸다.
“정명훈 법인장님, 미국 방문을 환영합니다.”
“헉헉… 안녕하십니까, 해리슨 상원의원님.”
“지금 누가 쫓아오고 있습니까?”
정명훈 법인장은 조금 전의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자기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해리슨 상원의원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겨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부투야 실장이 전화를 받았고, 모두들 해리슨 상원의원의 병실에 있다면서 최대한 빨리 올라오라고 요청해 왔다.
급한 마음에 뛰다시피 해서 병실에 도착해 보니, 낯익은 얼굴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명훈 법인장은 대답 대신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물었다.
“헉헉… 상원의원님, 한겨울 대리는 어디 있습니까?”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해리슨 상원의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정 법인장님, 한 대리님이 평소에도 장난을 잘 칩니까?”
“그것은 아닙… 네? 제가 속았다는 말씀입니까?”
정명훈 법인장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한 대리님은 지금 아프리카에서 오신 손님들을 모시러 공항에 갔습니다. 이제 곧 도착할 때가 됐습니다.”
“저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죽어라고 달려왔네요.”
“하하하, 여기 계신 분들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먼저 이분은…….”
해리슨 상원의원이 해인스 장관과 루퍼트 장관을 정명훈 법인장에게 소개시켜 주는 사이, 병실 문이 열리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VIP 병실이 넓다고 하더라도 열 명의 사람들이 들어차니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겨울과 장대산이 나서서 서로를 소개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을 무렵, 해리슨 상원의원이 겨울에게 농담을 건넸다.
“한 대리님, 정 법인장님이 화가 많이 나 있는 거 알고 계십니까?”
사실 겨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한 일이라고는 정명훈 법인장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옆에 앉아 있던 부투야 실장이 핸드폰을 달라고 손을 내밀기에 아무 생각 없이 건네줬을 뿐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부투야 실장이 정명훈 법인장에게 이와 같은 장난을 친 것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오해를 살 것 같은 생각에 사실을 밝히려는 순간, 부투야 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해리슨 상원의원님, 한 대리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실은 정 법인장님이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고 일만 하는 것 같아서, 제가 일부러 운동시켜 드린 겁니다.”
“하하하, 저는 그런 숨은 사연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장난의 대상이 된 정명훈 법인장은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부투야 실장이 자신에게 장난을 걸어왔다는 의미는 친근감의 표시였으니까.
아프리카 대륙에 빵빵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그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명훈 법인장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부투야 실장의 입에서 놀랄 만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제가 정 법인장님께 사과하는 의미로 적당한 선물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정 법인장님의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조건 그럴 겁니다.”
대화가 길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자, 장대산이 입을 열었다.
“제가 여러분께 의견을 여쭤볼 게 하나 있습니다.”
“네, 말씀해 보세요.”
“호텔로 이동해서 짐을 풀고 이곳에 다시 모일까요, 아니면 미팅을 끝낸 후에 호텔로 이동할까요?”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할 필요 있을까요?”
“좋습니다. 이곳에서 이러지 말고 병원 측에 요청해서 3층에 위치한 VIP 회의실을 임대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곳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VIP 회의실.
루퍼트 국무장관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눈 맞춤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투야 실장님, 알제리도 연합군에 가담하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알제리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중국 정부에서 알제리에 특사를 파견한 상태입니다.”
“화웨이 직원들이 체포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까?”
“그 이유보다는 데이터 센터 건설을 조기에 확정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알제리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연합군에 가담한 이상, 데이터 센터 건설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할 겁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겨울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운이 따라 준다면, 데이터 센터 건설 건도 자신들이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명훈 법인장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 왔다.
“침 닦아.”
“법인장님, 데이터 센터 건설 공사도 우리가 가지고 올 수 있겠죠?”
“당연히 가져와야지.”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사이에도 루퍼트 장관과 부투야 실장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이곳에서 합의된 내용을 알제리에 통보해 주실 예정입니까?”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루퍼트 장관은 예열은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인 안건을 꺼내 들었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은 반드시 비밀을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네, 물론입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모두 알고 계실 것 같으니까, 개략적인 설명과 문제점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현재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70개이고, 투자한 프로젝트는 1,590개에 금액은 약 1조 9,000억 달러(약 2,250조)입니다. 중국은 투자 재원을 무역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흑자를 통해서 조성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이 과거처럼 높은 성장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국을 포함한 서구권 국가들의 견제로 인해서 점점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루퍼트 장관이 숨이 찬지 말을 잠깐 끊었다가 이어 나갔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자금을 점점 줄여 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한 여파로 중국으로부터 신규 자금을 지원받지 못한 일부 국가들이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나라들이 디폴트를 선언하면, 여러분의 전략에도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루퍼트 장관님, 저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저는 최대한 빨리 행동에 나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체 행동하는 편이 좋을까요, 아니면 각자 행동하는 편이 좋을까요?”
“단체 행동이 훨씬 파급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