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09화 (109/328)

[109화] 뜨거운 감자

“대산 씨,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차창 밖을 쳐다보고 있던 겨울이 시선을 차 안으로 옮기며 물었다.

“아프리카에서 오시는 손님을 맞이하러 공항에 가는 거잖아요.”

“공항으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버지가 초청한 손님은 국제공항이 아닌 공군 기지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입국할 예정입니다.”

부투야 실장이 공군기지를 통해서 미국에 입국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비자 문제 때문일 것이다.

“대산 씨, 부투야 실장님한테 미국 비자가 발급이 되지 않았나요?”

“한 대리님, 우리 세계에 대해서 알고 계시면서 왜 그러세요?”

즉, 물어보지 말라는 뜻이었다.

“쩝, 알겠어요. 컨설팅 회사에 참여해도 그쪽 세계에 발을 걸칠 예정입니까?”

사실 장대산은 컨설팅 회사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젯밤에 해리슨 상원의원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난 후, 생각을 바꾸었다.

“제가 겸업하는 것이 우리 회사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요?”

“제가 그 세계와 인연을 끊으면, 고급 정보를 입수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아요.”

겨울이 설립하려는 컨설팅 회사의 주요 고객은 일반인들이 아닌 단체나 국가였다.

따라서 고급 정보는 그들과 비즈니스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하게 뒤따르는 요소였다.

컨설팅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장대산이 정보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 백번 유리했다.

“아,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작년 10월에 대한 그룹 감사실에 박철헌 전 인사담당을 비롯한 수십 명의 비리를 조사해서 투서한 사건이 있었는데, 혹시 대산 씨의 작품이었나요?”

“음, 노코멘트입니다.”

장대산이 잠깐 뜸을 들였다가 대답했다.

“역시. 제 추측이 맞았군요.”

장대산은 대답 대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 * *

워싱턴 D.C. 인근에 위치한 공군기지.

민간인이 군부대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철저한 검문검색도 필수였다.

겨울은 당연히 검문검색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공군기지 측에서는 마치 자신들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출입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잠시 기다리니 경비병이 운전기사에게 다가와 거수경례와 함께 신분증을 요구했다.

운전기사는 당황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경비병에게 건네주었다.

일련의 절차는 그것이 다였다.

운전기사는 익숙하게 기지 내부로 승합차를 운전해 들어갔다.

겨울과 장대산은 본관 현관에 나와 있던 크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대위와 만나서 접견실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손님들이 도착하시면, 모시고 오겠습니다.”

겨울은 크리스 대위의 얘기를 듣는 순간,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국을 방문하는 사람은 부투야 실장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크리스 대위는 ‘손님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미국 방문 명단을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실언했다고 치부할 수도 없었다.

겨울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장대산과 대화를 끝마친 크리스 대위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본 겨울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장대산에게 물었다.

“대산 씨, 미국을 방문하는 사람이 부투야 실장님뿐만이 아닌가 보네요?”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겁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여러 명이 접견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겨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접견실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은 부투야 실장뿐만 아니라, 문두야 탄자이나 부통령, 마사카 우간다 부통령, 이름 모를 50대 남자였기 때문이다.

“한 대리님, 입에 파리 들어가겠습니다.”

부투야 실장이 겨울에게 농담을 건네며 악수를 청해왔다.

“실, 실장님…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부투야 실장과 손을 맞잡은 겨울은 놀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는 것으로 하고, 저희와 동행한 분을 소개시켜 드릴게요. 이분은 케이브 오코사 나이지리아 비서실장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에 소속되어 있는 한겨울 대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부투야 실장님께 소개받은…….”

오코사 실장과 인사를 끝낸 겨울은 우두커니 서 있는 장대산을 네 사람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다소 떠들썩하던 소개가 끝내자마자, 겨울은 즉시 부투야 실장에게 물었다.

“실장님, 이게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부투야 실장은 어제의 일을 기억에 떠올렸다.

미국 출장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서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비밀정보국(ANR)의 무쿰보 국장이 전화를 걸어와서, 중국 대사관에 소속된 직원들이 몰래 뒤따르고 있는 중이라고 알려 왔다.

이 상태로 미국을 방문하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 즉시 ANR 본부로 차를 돌렸다.

그곳에서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고, 30분 정도 지난 후에 대책을 통보받았다.

그는 콩고민주공화국의 공군기지로 미군 수송기를 보내 주겠다는 전언을 전해 왔다.

공군기지에서 미군 수송기를 기다리던 도중에 우연찮게 오코사 비서실장과 통화를 하게 되었고, 그에게 미국 출장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도 미국을 같이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명해 왔고…….

결국 의도치 않게 이렇게 네 나라의 VIP들이 미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판이 커져 버린 것이었다.

부투야 실장은 어제 일어났던 사건을 겨울에게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해서 독일 미군 기지에서 만난 뒤, 수송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한 겁니다.”

“부투야 실장님, 중국 대사관에서 실장님을 감시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제가 며칠 전에 중국 대사와 심하게 다퉜더니만, 그때부터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핸드폰에 설치된 백도어 때문은 아니겠지요?”

“물론입니다. 다른 문제 때문입니다.”

그 말과 함께 부투야 실장이 입을 닫았다.

본인이 대답하기 싫어하는데, 계속 묻는 것은 실례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잠시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서 장대산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해리슨 상원의원께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머지 얘기는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네, 그럽시다.”

“여러분의 방문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부득불 승합차를 준비했습니다. 이동하는 데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윙윙―

그들이 해리슨 상원의원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이동하던 도중,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법인장님.”

[한 대리, 어디로 가면 되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부투야 실장님께 아무 얘기 듣지 못했어?]

“전혀요.”

[부투야 실장님이 나보고 옵저버 자격으로 협상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어. 그래서 지금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상태야.]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라대 나라의 협상에 민간인이 참관인 자격으로 참여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숨은 내막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그 문제는 통화부터 끝내고, 천천히 파악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았습니다. 볼티모어에 위치한 존스 홉킨스 병원으로 오시면 됩니다.”

[알았어. 그곳에 도착해서 전화할게.]

정명훈 법인장과 통화를 끝낸 겨울은 부투야 실장에게 궁금하게 생각되는 점을 물었다.

“정 법인장님은 제가 초청한 게 아니라 해리슨 상원의원께서 하신 겁니다. 저는 말만 전달해 줬을 뿐입니다.”

겨울은 해리슨 상원의원의 의도를 단숨에 알아챘다.

그는 컨설팅 회사에 참여할 정명훈 법인장의 됨됨이를 파악해 보기 위해서 이 자리를 빌미 삼아 초청한 것이리라.

옵저버라는 말도 안 되는 자격을 부여해서.

하지만 정명훈 법인장이 VIP들과 교류를 쌓아서 딱히 나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장님, 저는 모르는 척 하면 됩니까?”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 대리님, 미안한 얘기지만, 다른 분들께 해리슨 상원의원님과 협상한 내용을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부투야 실장의 부탁을 받은 겨울은 어떻게 설명해 줄까 차분하게 정리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리슨 상원의원님은 미국 정부가 연합군의 손을 들어 주는 조건으로 저한테 한 가지 요구를 하셨습니다.”

“한 대리님, 반대급부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소 성격이 급한 마사카 우간다 부통령이 이의를 제기했다.

“마사카 부통령님, 해리슨 상원의원님은 연합군이 아닌 저한테 요구를 하셨습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마사카 부통령의 사과를 쿨하게 받은 겨울이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사실 저는 몸담고 있던 대한 그룹에서 퇴사한 후, 컨설팅 회사를 설립할 예정입니다. 해리슨 상원의원님은 저와 장대산 씨가 미국을 도와서 궁극적으로 중국의 야욕을 분쇄시켜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부투야 실장은 해리슨 상원의원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미국으로부터 도움받은 대가를 겨울이 설립하는 컨설팅 회사에 몰아주라는 뜻임을.

자기의 뜻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동안 겨울에게 퇴사를 은근슬쩍 강요한 것이었다.

“여러분, 해리슨 상원의원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대충 감 잡으셨죠?”

“그야 물론입니다.”

“저희도 그런 눈치는 있습니다.”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은 즉시 화답해 줬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이지리아의 오코사 비서실장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부투야 실장이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코사 실장님, 걱정거리가 있습니까?”

“저는 실리가 밝기로 소문난 미국이 저희 연합군에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그 이유를 한 대리님한테 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부투야 실장이 뜨거운 감자를 겨울에게 던졌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겨울에게 몰렸음은 당연지사.

겨울은 또다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코사 실장님도 알고 계시다시피 미국의 최대 적국은 중국입니다. 만약에 중국이 연합군에 의해서 뒤통수를 얻어맞게 되면, 소문이 안 나겠습니까?”

“당연히 나겠죠.”

“그렇게 되면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나라들이 연합군과 똑같은 행동에 나설 겁니다. 그에 대한 결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약화될 겁니다. 이것만큼 큰 반대급부가 어디 있습니까?”

겨울의 얘기를 들은 오코사 실장은 궁금한 것이 생겼다.

“한 대리님, 우리 연합군들의 요구를 중국이 들어줄 때, 중국 측에서 비밀 유지 각서를 요구하지 않을까요?”

“비밀 유지 각서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소문은 미국이 퍼트릴 건데.”

“하하하,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오코사 실장이 만족한다는 듯 큰 웃음을 터트렸다.

곧이어 문두야 부통령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한 대리님, 우리나라가 중국 정부와 등을 돌리면, 중국 자본이 투입돼서 진행되고 있던 각종 프로젝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돈 많기로 소문난 미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아마도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이 수탈해 가던 자원을 미국이 대신하는 꼴이잖아요.”

겨울은 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알고 있었으나, 자기가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장대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문두야 부통령님, 저희 미국은 연합군에 직접 자본을 투자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는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두야 부통령이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 대책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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