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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103화 (103/328)

[103화] 위기를 기회로

새벽 3시.

핸드폰의 시계를 쳐다보고 있던 겨울은 초조해서 입 안이 바싹바싹 말라 왔다.

브라이언 박사팀이 장대산의 양아버지를 수술하기 시작한 지 벌써 열두 시간이 지났다.

그에게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다는 의미는 수술이 매우 힘들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과 같은 의미였다.

“나도 이렇게 초조해 미치겠는데, 대산 씨의 심정은… 위로 전화라도 해 줘야 하나. 아니지. 정신없을 텐데, 나까지 전화하면… 기다리는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윙윙―

겨울이 이런저런 고민에 쌓여 있는 사이, 드디어 핸드폰이 진동했다.

겨울은 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브라이언 박사님, 어떻게 됐습니까?”

[한겨울 씨, 램버트 교수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교수님, 수술은 잘 끝났습니까?”

[네. 방금 전에 무사히 끝났고, 회복실로 이동했습니다.]

“교수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겨울 씨의 감사 인사를 들으니 힘이 나는 것 같네요.]

“피곤하실 텐데, 이제 푹 쉬십시오.”

[쉴 때 쉬더라도, 브라이언 박사님이 한겨울 씨한테 전해 달라는 말을 얘기해 줄게요.]

“네, 말씀하십시오.”

[고맙답니다.]

겨울은 어안이 벙벙했다.

브라이언 박사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자기였다.

아무리 철석같이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부탁을 선뜻 들어주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브라이언 박사는 거꾸로 자기에게 고맙다고 한다.

‘가만… 나한테 진 빚을 이번에 갚게 돼서 고맙다고 한 건가?’

겨울은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브라이언 박사님께서 저한테 고마워할 이유가 없는데요.”

[한겨울 씨는 환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 않나요?]

“그게… 선출직 공무원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정확한 신분은 모르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분은 선출직 공무원이 맞기는 하지만, 신분이 엄청나신 분입니다.]

“아, 역시… 그렇군요.”

[만약에 그분이 총기 난사 사건으로 별세하셨으면, 우리나라는 큰 슬픔에 빠졌을 겁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겨울은 곧바로 인터넷을 검색해서 어제 저녁에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고를 검색해 보았다.

모든 언론에서 총기 난사 사고를 속보로 내보내고 있었고, 특히 유명 정치인 몇 사람이 사고를 당했다는 뉴스가 심도 있게 다뤄지고 있었다.

겨울은 그들 중에 장대산의 양아버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언론 기사를 면밀하게 검색한 결과,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차기 대선에서 야당 후보 1위를 달리고 있는 토머스 해리슨 상원의원.

장대산이 그의 양아들이 아닐까 생각해 봤지만, 곧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해 버렸다.

해리슨 상원의원은 친자식이 두 명이나 있는데, 굳이 장대산을 입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방금 전에 램버트 교수의 말을 듣는 순간, 장대산의 양아버지가 해리슨 상원의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 장대산 씨의 양아버지가 해리슨 상원의원이십니까?”

[방금 전에 환자의 신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요?]

“인터넷에서 검색한 신문 기사와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찍은 겁니다.”

[이야! 한겨울 씨는 점성술사로 전직해도 되겠는데요?]

“교수님, 해리슨 상원의원님의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수술은 무사히 잘 마쳤는데, 적어도 이삼 일 정도 중환자실에서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교수님, 브라이언 박사님께 꼭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고, 이제 빚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좀 전해 주세요.”

[흐음, 브라이언 박사님께서는 그러시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글쎄요, 이번 일로 과연 박사님께서 만족하실지… 아무튼 저는 듣지 못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뚝.

램버트 교수가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교수님,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국경 없는 의사회의 도움은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그런 말을 꺼낸 겁니다.”

혼잣말을 내뱉은 겨울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차! 대산 씨하고 통화해야지.”

장대산에게 전화를 걸어 볼까 마음먹었다가 괜히 귀찮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장대산에게 전달됐는지, 핸드폰이 진동했다.

양아버지의 수술 결과가 희망적이어서 그런지 침울하던 그의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겨울은 그의 양아버지의 신분을 언급해 볼까 생각했다가, 본인이 밝히기 전까지 묻어 두기로 결정했다.

[한 대리님, 저희 아버지를 도와준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요.]

“충분히 도움 받고 있는데요, 뭘. 은혜는 벌써 갚은 거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언제 갚았다는 건가요?]

“대산 씨 덕분에 테슬라 주식을 매수해서 제법 짭짤하게 재미 보고 있거든요.”

[테슬라와 관련한 일화는 언젠가 제 아버지가 별도로 얘기해 주실 겁니다.]

“네? 왜요?”

[아, 어머니가 부르네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장대산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장대산은 설 연휴가 끝날 때까지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 * *

며칠 뒤.

설 명절을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서 떠난 직원들이 속속 복귀했다.

절간처럼 고요하던 FTA 팀 사무실도 서서히 활기를 되찾아 갔다.

팀원들은 겨울이 FTA 팀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알고 있다는 듯 한국 냄새가 나는 선물을 한가득 건넸다.

겨울은 받은 선물을 가쿠타 과장을 비롯한 현지 직원들과 함께 나눠 가졌다.

언제나 그렇듯 FTA 팀의 매주 월요일 아침은 회의로 시작되었다.

회의실.

고영규 팀장은 팀원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 후,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 연휴 기간 동안에 사건 사고는 없었습니까?”

“네,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각 지점에서 추진하고 있는 업무를 하나하나 점검해 봅시다. 먼저 남아공 지점을 담당하고 있는 안진환 과장부터 얘기해 보세요.”

안진환 과장부터 겨울까지 각 지점에서 추진하고 있는 업무를 자세하게 보고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잉가 3댐과 우간다, 탄자니아의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 공사는 비밀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송유관 건설 공사 입찰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송유관 건설 공사는 중국의 CSCEC와 정면 승부를 벌인다고 보면 되나요?”

“우리나라의 BK 건설을 포함한 여러 건설 회사들로 입찰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피 튀기는 입찰이 될 것 같네요.”

“저도 팀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자, 이제 한겨울 대리만 남고, 모두 나가서 업무 보세요.”

“네, 팀장님.”

팀원들이 밖으로 나가자, 고영규 팀장은 종이컵에 들어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한 대리, 콩고민주공화국 상황은 어때?”

“최종적으로 CTG 축에서 화웨이 핸드폰 600대를 선물받았는데, 전부 백도어가 설치되어 있었답니다.”

“나이지리아는?”

“지금 은밀하게 조사하고 있는 중인데, 현재까지 38대의 핸드폰에서 백도어가 발견된 상황입니다.”

“네 나라가 언제쯤 행동으로 옮길 것 같나?”

“아무리 빨라도 3월은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윙윙―

민감한 얘기가 오고가는 사이, 고영규 팀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상대방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한 대리, 법인장님께서 오라고 하니까, 같이 가지.”

* * *

법인장실.

정명훈 법인장이 남아 있는 커피를 모두 마시고, 겨울에게 말을 걸었다.

“한 대리, 내가 조금 전에 알제리의 황진욱 지점장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어젯밤에 알제리 정보국이 화웨이 직원 세 명을 스파이 혐의로 전격 체포됐다고 하더라고.”

겨울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만약에 그들의 체포 이유가 백도어와 연관이 있다면, 콩고민주공화국을 비롯한 네 개 나라의 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일단 그들의 체포 이유부터 파악해 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법인장님, 그들이 어떤 스파이 행위를 저질렀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직 알려진 것이 없어. 한 대리가 알아봤으면 좋겠는데.”

“네,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겨울은 재빨리 부투야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한 대리님.]

“실장님, 긴급으로 여쭤볼 것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어젯밤에 알제리 정보국이…….”

겨울은 정명훈 지점장에게 들은 얘기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최대한 빨리 확인해 주십시오.”

[한 대리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뚝.

부투야 실장이 다급했는지 전화를 얼른 끊었다.

하지만 10분, 20분이 지나도록 겨울의 핸드폰은 마치 잠자듯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한 대리,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추성민 이사가 답답한 마음을 실어서 한마디 내뱉었다.

윙윙―

그 순간,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겨울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실장님, 어떻게 됐습니까?”

[한 대리님의 정보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즉, 화웨이 직원들이 백도어 설치 혐의로 체포됐다는 뜻이었다.

“그놈들을 어떻게 처리하기로 했습니까?”

[알제리 정부도 연합군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전격 체포된 놈들은 스파이 혐의가 아니라 뇌물 공여 혐의로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화웨이 직원들이 누구의 핸드폰에 백도어를 설치하려고 했습니까?”

[카멜 지투니 정보통신 장관으로 확인됐습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화웨이가 알제리에 데이터 센터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투니 장관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희도 본격적인 행동을 최대한 빨리 앞당기기로 했습니다.]

겨울은 운만 따라준다면, 송유관 건설 공사 입찰과 이번 일을 연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속보이는 행동인 것 같아서,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부투야 실장님,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럼요.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겨울은 부투야 실장과 통화를 종료하고, 정명훈 법인장 등에게 통화 내용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한 대리, 송유관 건설 공사도 우리가 가지고 올 수 있겠지?”

역시 사람의 생각은 거기서 거기라는 듯 이용수 팀장이 겨울이 하고 싶던 말을 대신했다.

이 상황에서 겨울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윙윙―

또다시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부투야 실장이 아니라, 일주일 가까이 연락이 없던 장대산이 걸어온 전화였다.

겨울이 회의 중이라는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정명훈 법인장이 말했다.

“한 대리, 누구야?”

“장대산 씨입니다.”

“급한 전화일 수도 있으니까, 통화해 봐.”

“네,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겨울이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대산 씨.”

[한 대리님, 며칠 동안 전화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아버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어제까지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오늘 저녁때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이제 생명에는 문제가 없다고 봐도 되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제가 급하게 전화한 이유는 아버지께서 한 대리님을 만나 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에요.]

“네? 저를요?”

[네. 가급적이면 이번 주에 뵙기를 원하십니다.]

해리슨 상원의원이 자기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했으나, 테슬라와 관련된 얘기 말고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대산 씨, 팀장님께 보고해서 허락을 받은 후에 다시 전화해 줄게요.”

[네, 그렇게 하세요.]

겨울은 장대산과의 통화 내용을 정명훈 법인장 등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병문안을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울의 얘기를 들은 정명훈 법인장이 고영규 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고 팀장, 한 대리가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워도 문제없겠지?”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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