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95화 (95/328)

[95화] 세심한 마음 씀씀이

김종학 지점장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문두야 부통령이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 노림수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문두야 부통령님께서는 그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제가 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경제부 장관을 역임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내가 확약서를 써주면 되겠죠?”

가장 큰 고비를 손쉽게 넘었기 때문에 다른 협의는 별다른 이견 없이 쉽게 결론에 도달했다.

마지리 대통령과 루군다 대통령은 시원하게 결론을 내려 주고 화면에서 사라졌다.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은 김종학 지점장과 핸드폰 공급 계약서를 일사천리로 마무리 지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 말이지만,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김 지점장님, 제가 식사를 대접해 드렸으면 합니다만, 중요한 일정이 남아 있습니다.”

“저도 우간다로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식사 자리가 부담스럽던 김종학 지점장은 그들의 말이 몹시 반가웠다.

그렇다고 속마음을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아이고, 이런… 정말 아쉽네요.”

“하하, 다음에 우리나라에 오시면 그때 한 끼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 * *

“후우, 이제야 다 끝났네.”

현지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서 승합차에 탑승한 김종학 지점장은 넥타이를 풀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점장님, 오늘 같은 날은 축배를 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법인장님께 먼저 보고하고, 축배를 들자고.”

“네, 좋습니다.”

김종학 지점장은 즉시 정명훈 법인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지점장, 이제 회의가 끝났나?]

“네, 법인장님.”

[회의 결과를 얘기해 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먼저 핸드폰은 저희가 공급받는 가격 대비 20% 인상해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하하하, 수고했어.]

정명훈 법인장의 좋아하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이익률을 20% 인상했다는 의미를 핸드폰 판매를 2만 대쯤으로 늘렸다는 의미와 같은 뜻이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법인장님.”

[핸드폰은 몇 대를 공급하기로 했나?]

“기존대로 5,000대입니다.”

[그래?]

정명훈 법인장의 목소리에 진한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법인장님, 사실은 탄자니아와 우간다에서 핸드폰을 추가로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보여 왔는데, 한 대리의 제안을 듣고 과감하게 포기했습니다.”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법인장님이 한 대리한테 알려준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두 나라로부터 근사한 선물을 얻어 냈습니다.”

[그 선물이 뭔가?]

묻는 정명훈 법인장의 목소리에 잔뜩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탄자니아의 경우에는 빅 쓰리 이동통신 업체가 있는데…….”

김종학 지점장은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 공사를 수주한 배경에 대해서 간략하게 보고했다.

“…문두야 부통령님이 자필로 서명한 확약서를 작성해 주셨습니다.”

[하하하, 그렇다는 말이지?]

“네.”

[우간다로부터 받은 선물은 없나?]

“탄자니아와 마찬가지로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 공사를 저희한테 주겠다고 마사카 부통령님이 확인서를 작성해 주셨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언제로 예상하는가?]

“아무리 빨라도 하반기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김 지점장,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나?]

“오늘 이곳에서 거하게 한잔하고, 내일 오전에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술은 내가 내일 사 줄 테니까, 오늘 밤에 한 대리랑 이곳으로 넘어와.]

“네? 왜요?”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김 지점장이 사장님께 직접 보고하는 것이 어떨까 해서.]

김종학 지점장은 정명훈 법인장의 의도를 간파했다.

이진호 사장에게 자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세세한 것까지 신경 써 주는 정명훈 법인장이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쑥스러운 마음에 고맙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법인장님, 꼭 그래야 합니까?”

[김 지점장은 이사로 승진하기 싫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내 말대로 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고서는 하 부지점장이 직접 작성하라고 지시하고.]

“하하, 무슨 뜻인지 감 잡았습니다.”

[내일 아침에 보자고.]

“네, 법인장님.”

딸깍.

김종학 지점장이 통화를 끝내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하도진 부지점장이 질문을 던져 왔다.

“지점장님, 법인장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사장님께 직접 보고하라면서, 당장 오늘 밤에 남아공으로 넘어오라네.”

“법인카드나 주고 가십시오.”

“하 부지점장도 오라고 하시던데?”

“네? 제가 왜요?”

“보고서는 반드시 하 부지점장이 작성하라고 지시하셨어.”

하도진 부지점장도 정명훈 법인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부장 승진 대상자인 자신의 존재감을 이진호 사장님께 어필하라는 뜻이었다.

“에이, 비행기에서 잠자기에는 틀린 것 같네요.”

괜히 쑥스러워 툴툴거리는 하도진 부지점장을 향해 겨울이 입을 열었다.

“부지점장님,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 테니까, 보고서를 최대한 빨리 작성하고 휴식을 취해 봐요.”

“그렇게 하자고.”

잠시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서 김종학 지점장이 조수석에 앉아 있는 심바 과장에게 말을 건넸다.

“가장 빨리 남아공으로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확보해 봐.”

“몇 명이나요?”

“심바 과장까지 우리 다섯 명.”

“네? 저도요?”

“하 부지점장이 이곳의 일을 보고서로 작성해야 하는데, 심바 과장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래.”

“네, 알겠습니다.”

심바 과장의 입가에도 미소가 배어 나왔다.

다행히 밤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좌석이 남아 있어서, 일행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시간에 맞춰 출발할 수 있었다.

겨울은 약속대로 하도진 부지점장의 옆자리에 앉아서 보고서 작성을 도와주었다.

“부지점장님, 나이지리아의 바하리 대통령님이 약속해 준 것은 어떻게 할까요?”

“확정되지 않은 내용을 보고서에 포함시키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을까?”

“하긴… 부지점장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한 대리, 내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지금 하도진 부지점장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발주한 덤프트럭 1,000대 건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겨울은 부투야 실장과 통화한 내용을 떠올리며 하도진 부지점장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다.

“부지점장님, 덤프트럭 수주 건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들어 보실래요?”

“얘기해 봐.”

“지점장님과 부지점장님이 콩고민주공화국의 발전을 위해서 바통고 대통령님께 조언했던 것을 기억하세요?”

“며칠이나 지났다고 기억하지 못할까.”

“그 당시에 부지점장님께서 충성심이 높은 특수부대를 국경에 배치해서 밀수 조직을 소탕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셨잖아요.”

“맞아. 그랬지.”

“그 아이디어를 부투야 실장님께서 매우 신선하다고 판단하시고, 덤프트럭 발주 숫자를 500대에서 1,000대로 늘렸다고 하더라고요.”

하도진 부지점장은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덤프트럭 1,000대를 발주한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겨울이 바통고 대통령에게 제공한 테슬라와 관련된 고급 정보 때문인 것을.

그 사실을 알고도 겨울이 이런 엉뚱한 소리를 내뱉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자기가 부장 승진 대상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겨울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진심으로 고마운 하도진 부지점장이었다.

“한 대리, 동네방네 소문내 줄 거지?”

“우리 회사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사내 게시판에 비하인드 스토리도 띄워 드릴게요.”

“진짜로?”

“부지점장님, 저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아이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점점 더 능청스러워지는 겨울을 보면서 하도진 부지점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FTA 팀 회의실.

겨울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고영규 팀장에게 호출을 받았다.

아마도 콩고민주공화국과 탄자니아에서의 일을 보고받기 위함일 거라고 추측하면서 그의 앞에 앉았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고영규 팀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한 대리를 따로 부른 이유는 법인장님의 지시를 받아서야. 한 대리가 콩고민주공화국과 탄자니아에서 만났던 VIP들과 관련해서 다른 직원들한테는 절대로 언급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겨울도 잘난 척을 해 봐야 적을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조언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법인장님 사무실로 가서 보고하도록 하자고.”

정명훈 법인장은 김종학 지점장, 하도진 부지점장과 면담 중에 있었다.

당연히 관리팀장인 추성민 이사와 마케팅 지원팀장인 이용수 부장이 양옆을 차지하고 있었다.

“김 지점장, 수고 많이 했어.”

“저는 한 대리가 벌여 놓은 일을 수습했을 뿐입니다.”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 건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신경 써 줘.”

“법인장님, 그 건은 FTA 팀이 관여하는 거 아닙니까?”

“계약 체결 이후의 기자재 공급 업무는 콩고 지점이 수행해야 하잖아.”

“아, 제가 깜빡했습니다.”

똑똑.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고영규 팀장과 겨울이 도착했음을 보고했다.

“얼른 들어오라고 하고, 커피를 두 잔 내오세요.”

“네, 법인장님.”

고영규 팀장과 겨울은 정명훈 법인장에게 목례하고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고 팀장, 한 대리한테 내 지시사항을 전달했나?”

“네, 법인장님.”

“수고했어.”

정명훈 법인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 팀장, 탄자니아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한 대리한테 보고받았나?”

“아직입니다.”

“김 지점장, 우리를 위해서 서비스해 줄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저께 자정 무렵에 갑자기 하 부지점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김종학 지점장은 그때부터 어제 오후까지 있었던 일들을 시간상으로 간략하게 보고했다.

“…해서 무사히 핸드폰 공급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지점장님,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 공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윙윙―

정말 중요한 질문이었으나, 정명훈 법인장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고영규 팀장의 질문은 유야무야 사라져 버렸다.

“네, 사장님.”

[보내 준 보고서는 잘 읽어 봤습니다. 회장님께서 통화를 원하시니 준비하세요.]

“사장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지 얘기해 보세요.]

“김종학 콩고 지점장이 지금 제 옆에 앉아 있습니다. 회장님께 당사자가 직접 보고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뒤늦게 정명훈 법인장의 의도를 파악한 김종학 지점장은 더럭 겁부터 났다.

이진호 사장만 해도 엄청나게 어려운데, 대한 그룹 총수인 송훈석 회장님이 웬 말인가.

만약에 송훈석 회장과 통화하다가 말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등줄기를 따라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미 활은 시위를 떠나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김종학 지점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두 사람의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회장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송훈석 회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정 법인장, 이 사장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김 지점장을 바꿔 주세요.]

“네, 회장님.”

핸드폰을 건네받은 김종학 지점장은 경직된 목소리로 인사부터 했다.

“회장님, 저는 아프리카 법인 콩고 지점을 맡고 있는 김종학이라고 합니다.”

[김 지점장, 하도진 부지점장이 작성한 보고서는 잘 읽어 봤어요.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 하문하십시오.”

[콩고 지점에서 제안한 핸드폰 가격을 탄자니아와 우간다 정부가 아무 불만 없이 수용했습니까?]

“더 높게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만, 나중을 위해서 20%에 만족한 것입니다.”

[나중이라면…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 공사를 말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가지고 올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두 나라의 부통령이 자필 서명해 준 확약서를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두 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한겨울 대리를 해결사로 투입해서 약속을 지키도록 만들겠습니다.”

“허허허, 어느새 한겨울이 해결사가 된 모양이네요.”

흙수저 성공 신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