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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93화 (93/328)

[93화] 어차피 맞을 매 일찍 맞는 것이 낫다

바하리 대통령에게 큼지막한 선물을 건넨 겨울은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에게 준 선물이 제대로 효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어차피 그에게 받을 반대급부는 MTN의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 공사를 수주하는 일이었다.

적당한 시기가 다가올 때까지 반대급부를 아껴 두기로 했다.

“있기는 있습니다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그 시기가 언제쯤일까요?]

“아무리 길어도 6개월 이내에는 대통령님께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험, 내가 들어주기 어려운 선물을 요구하면 곤란합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원하는 선물은 대통령님이 누구를 불러서 저한테 힘을 실어 주시면 되는 겁니다.”

[고작 그거라고요?]

마음의 부담을 덜어 버린 듯 바하리 대통령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상당히 경쾌해졌다.

그도 선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리라.

“네, 대통령님.”

[그런 역할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하하하, 그렇게 할게요.]

바하리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겨울은 마무리에 들어갔다.

“대통령님, 사오 월 경에 크게 조정을 거칠 거라고 합니다. 그때를 슬기롭게 넘기면 탄탄대로를 달릴 겁니다.”

[한 대리님, 아무리 그래도 내가 매수한 가격보다 주가가 밑으로 내려가지는 않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됐습니다. 나중에 통화하십시다.]

“네, 대통령님. 성공투자 하십시오.”

겨울이 전화통화를 끝내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하도진 부지점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한 대리, 화웨이가 이렇게 무리수를 두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의 물음에 겨울은 작년 7월 말에 조병석 실장에게 들었던 얘기와 최근에 벌어진 사건들을 종합해서 말을 시작했다.

“중국은 화웨이를 선봉장으로 내세워서 아프리카 무선통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8월초에 저희한테 제대로 한방 얻어맞은 거고요. 이제 곧 미국이 서방국가들과 손을 잡고 화웨이 제재에 들어간다면, 아프리카 무선통신 시장에서 철수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렇게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에 백도어를 설치한 것 때문에 화웨이는 큰 어려움에 처하겠지?”

“화웨이가 아니라 중국 정부가 큰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계획이 이미 수립되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까?”

“네, 물론입니다.”

중요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들이 타고 있는 자동차는 탄자니아 현지 사무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회의실로 이동한 그들은 김종학 지점장 주재로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내가 오늘 새벽에 법인장님한테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를 받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얘기해 봐.”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탄자니아와 우간다에 공급하는 핸드폰 가격을 내 재량에 맡긴다고 하더라고.”

겨울은 정명훈 법인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두 나라에 줄 선물을 그냥 건네지 말고 생색낼 거 다 내고, 적당한 이익을 챙기라는 뜻이었다.

일단 콩고 지점에서 이익률을 몇 %를 책정해 놓고 있는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지점장님, 가격을 얼마에 책정했습니까?”

“우리가 공급받는 가격 대비 10% 올린 상태야.”

“견적서를 15%와 20% 인상한 것으로 준비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송유관 건설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라도 가격을 인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제가 오늘 새벽에 법인장님께 긴급으로 지시받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 지시 내용은…….”

겨울의 말을 들으면서 김종학 지점장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아쉬운 순간을 뽑아 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지금이었다.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은 겨울의 얘기를 듣는 순간, 숨도 쉬지 않고 오케이 할 것이었다.

겨울이 반대급부로 하늘에 떠있는 달을 요구하면, 당장 따다 준다고 요란법석을 떨 정도로.

문제는 자신들이 요구할 반대급부는 고작 핸드폰 가격을 조금 더 비싸게 받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이, 겨울의 설명이 끝이 났다.

“…지점장님께서 설명하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법인장님은 한 대리한테 설명하라고 지시 내렸잖아.”

“저보다는 지점장님의 말씀이 훨씬 무겁잖아요.”

김종학 지점장은 겨울의 의도를 단숨에 알아챘다.

탄자니아와 우간다의 VIP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들과 안면을 트게 되면 대한 그룹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력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겨울이 진심으로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저는 지점장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법인장님의 아이디어는 오늘이 아닌 나중에 써먹으면 안 될까?”

“왜 그러시는데요?”

“우리가 요구할 반대급부가 너무 약소해서 그래.”

겨울은 나이지리아 바하리 대통령에게 요구한 방법을 두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지점장님, 반대급부를 나중에 사용하면 어떨까요?”

“설마 반대급부로 송유관 건설 공사를 달라고 요구하자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사용하기 적당한 반대급부를 심바 과장이 알고 있습니다.”

겨울이 심바 과장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심바 과장은 생각을 짧게 정리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에서 아슬아슬하게 MS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보다콤이 두 회사들과의 격차를 벌이기 위해서 핸드폰 기지국 증설과 업그레이드를 서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삼 위 업체인 에어텔과 티고도 보다콤의 움직임을 캐치하고 동시에 핸드폰 기지국 증설과 업그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소문의 신뢰성은 어떻게 되는데?”

“적어도 50%는 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입찰 시기가 언제쯤 될 것 같은가?”

“아무리 빨리 진행한다고 해도 사오 월은 되어야 할 겁니다.”

“음, 반대급부를 그때 사용하자는 말이군.”

반면에 하도진 부지점장은 심각한 문제점을 하나 간파했다.

탄자니아 이동통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빅 쓰리 통신회사들은 본사가 외국에 있다.

즉, 아무리 탄자니아 정부에 공을 들여 봐야 소용없다는 뜻.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종학 지점장에게 물었다.

“하 부지점장, 입찰을 내일 당장 할 것도 아닌데, 걱정을 사서 할 필요가 있을까?”

“저는 무슨 말씀인지 잘…….”

“우리가 탄자니아 정부에 숙제를 던져 주면, 그들이 알아서 해결방안을 가지고 오지 않을까?”

김종학 지점장의 말에 하도진 부지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 완벽하게 감 잡았습니다.”

“우간다에는 어떤 반대급부를 요구할지 오리취 과장하고 상의해 봐.”

“네, 지점장님.”

“이제 점심 먹고, 두 분의 부통령님들과 딜을 벌이러 출발해 보자고.”

* * *

탄자니아 정부청사 문두야 부통령 집무실.

일찌감치 모인 두 명의 부통령이 겨울의 일행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사카 부통령님, 한겨울 대리가 왜 그런 부탁을 해 왔을까요?”

겨울이 30분 전쯤에 전화를 걸어와서, 자신의 일행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테슬라와 관련된 얘기를 언급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

마사카 부통령도 그게 낫다고 판단해 즉석에서 동의해 주었다.

지금 문두야 부통령은 겨울의 말에 의문을 달고 있었지만.

“비밀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오래 지켜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것뿐이면 상관이 없겠지요.”

“그건 그렇고, 남는 핸드폰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부투야 실장한테 고민거리를 털어놨더니만, 간단한 해결방안을 얘기해 주더군요.”

“해결방안이 무엇입니까?”

“마지리 대통령님의 생신 때 주요 지지자들에게 핸드폰을 선물로 주랍니다.”

“맞아! 그 방법이 있었군요!”

마사카 부통령도 묘안이라고 생각했는지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한 대리가 오기 전에 루군다 대통령님께 빨리 컨펌받아 놓으세요.”

“그래야겠네요.”

하지만 마사카 부통령은 루군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겨울이 일행들과 함께 집무실로 들어왔기 때문에.

겨울은 두 명의 부통령에게 김종학 지점장과 하도진 부지점장을 차례로 소개시켜 주었다.

상견례가 끝난 후, 비서가 내온 차를 마시며 가볍게 대화를 시작했다.

“김 지점장님은 새벽부터 움직이셨겠네요?”

“네. 어떻게 하다가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김종학 지점장은 어차피 맞을 매 빨리 맞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빙빙 돌리지 않기로 했다.

핸드폰과 관련한 비즈니스는 가격을 제외하고 모든 결론이 내려져 있는 상태.

가격 결정권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탐색전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빨리 핸드폰과 관련한 대화를 마무리 짓고 잠이나 한잠 늘어지게 잤으면 좋겠습니다.”

문두야 부통령은 긴장하지 않고 할 말을 다하는 김종학 지점장에게 진한 호기심을 느꼈다.

아무리 탄자니아가 소국이라고 해도 자신은 부통령이었다.

자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립 서비스를 날려줄 법도 하건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이유가 궁금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핸드폰 가격을 결정하느라 제가 모시고 있는 직속상사인 정명훈 법인장님과 의견 차이를 좁히느라고 밤을 꼬박 샜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정 법인장님은 핸드폰 판매이익을 최소로 하라고 했고, 저는 프리미엄을 붙여서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핸드폰 가격을 굳이 비싸게 주고 수입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문두야 부통령의 목소리에 살짝 냉기가 실리기 시작했다.

김종학 지점장은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제 생각을 들어보시면, 충분히 이해가 되실 겁니다.”

“얘기해 보세요.”

“탄자니아와 우간다 정부는 화웨이 핸드폰 사건과 관련해서 손해배상을 누구에게 청구할 생각이십니까?”

“원인을 제공한 CNOOC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원인을 제공한 측은 CNOOC가 아니라 화웨이, 정확하게 말해서 중국 정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유가 있겠죠?”

방금 전까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던 두 명의 부통령들이 급 흥미를 보이며, 몸을 김종학 지점장 쪽으로 기울였다.

“송유관 건설 공사는 이미 CSCEC에게 주기로 결정된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NOOC 측에서 화웨이 핸드폰에 백도어를 몰래 설치해서 두 나라의 고위급 인물들에게 선물로 제공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이제부터 범인이 중국 정부인 이유를 설명해 드릴 예정입니다만,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종학 지점장이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밑밥을 깔았다.

“우리가 가려서 들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은 명목상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들을 경제발전을 시켜 준다면서 막대한 돈을 뿌려 가며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실제 목적은 지배력 강화와 자원 수탈입니다.”

“큼, 우리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문두야 부통령님,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기분 나빠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마음속으로 한마디 내뱉은 김종학 지점장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중국 정부는 각 나라의 고위급 인사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뿌려 가면서, 불평등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제 말이 틀리지 않겠지요?”

“…맞습니다.”

문두야 부통령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겁니까?”

“각 나라의 깨어 있는 식자층들이 중국과 불평등 계약을 체결했다면서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중입니다. 특히, 탄자니아와 우간다의 경우가 제일 심한 편입니다.”

“그, 그럼… 중국 정부에서 우리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서 백도어가 설치된 화웨이 핸드폰을 선물했다는 겁니까?”

묻는 문두야 부통령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다른 이유가 있으면, 말씀해 보십시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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