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82화 (82/328)

[82화] 하얀 거짓말

“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김종학 지점장이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겨울에게 물었다.

“네. 부투야 실장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고?”

겨울은 그 이유를 대충 알고 있었으나, 미리부터 설레발을 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서너 시간 뒤에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

“지점장님을 만나고 싶으신 게 아닐까요?”

“왜?”

“대한 그룹이 콩고민주공화국과 벌이는 프로젝트가 많으니까, 안면을 터놓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건…….”

“에이, 그게 아니라, 한 대리가 준 선물에 대한 답례품과 관련한 대화를 나눠 보자는 거겠지.”

“저도 지점장님과 같은 생각이지만, 김칫국을 먹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아서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도진 부지점장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겨울이었으나,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점장님, 어젯밤에 과식했는지, 속이 더부룩하네요.”

“소화제를 줄까?”

“아닙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알았어. 다녀와.”

사무실 밖으로 나간 겨울은 부투야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아냈다.

“후후, 이제 됐겠지?”

만족감에 젖어 웃음을 짓고 있던 겨울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집에 가서 정장을 가지고 오려면… 아이고,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 아니었구나.”

급하게 사무실로 뛰어 들어간 겨울은 김종학 지점장한테 말을 건넸다.

“지점장님, 혹시 댁에 정장이 있습니까?”

“이미 운전기사에게 정장을 가지고 오라고 집으로 보냈어.”

겨울은 고개를 돌려서 하도진 부지점장에게 말을 걸었다.

“부지점장님, 정장 여벌이 있습니까?”

“왜? 어제 입었던 정장이 지저분해졌어?”

“아니요. 부지점장님이 입어야 해서요.”

“내가 왜 입어야 하는데?”

사실대로 말해 주는 것이 최선이었으나, 듣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해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제가 화장실에 갔을 때 부투야 실장님이 오는 김에 부지점장님도 같이 오라고 하셨거든요.”

하얀 거짓말.

하도진 부지점장은 그 사실을 단박에 눈치챘다.

“한 대리, 나를 위해서 거짓말할 필요는 없어.”

“하하… 눈치채셨어요?”

“당연하지. 그나저나 여벌의 정장이 있나 모르겠네.”

“11시 30분까지 대통령 관저에 도착해야 하니까, 그 전까지 구해야 합니다.”

후다닥.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하도진 부지점장이 급하게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린 겨울이 가쿠타 과장에게 말을 건넸다.

“과장님은 그렇게 입고 바통고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실 건가요?”

“네? 저도요?”

“서기가 회의에 빠지는 거 봤어요?”

“아이고야.”

가쿠타 과장이 탄식을 내뱉으며,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겨울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김종학 지점장이 말을 걸어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야?”

“하 부지점장이 섭섭해하는 것 같아서 부투야 실장님께 별도로 부탁했습니다.”

“배가 아프다는 것도 거짓말이었겠네?”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젯밤에 바통고 대통령님을 만난 사실을 법인장님께 보고했나?”

“아닙니다. 고영규 팀장께만 보고했습니다.”

“알았어.”

짧게 대답한 그는 핸드폰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가서, 정명훈 법인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지점장, 보고할 거라도 있나?]

“법인장님,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어느 것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좋은 소식이 나쁜 소식을 커버할 수 있나?]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그럼 나쁜 소식 먼저 얘기해 봐.]

“저희 회사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두 인간이 콜레라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상태는?]

정명훈 법인장의 목소리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이 잘못되면, 법인장한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전가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구토와 설사만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천만다행이네. 도대체 그 인간들은 어떻게 하다가 콜레라에 걸렸다고 하던가?]

“뭐라고 횡설수설하는데,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언제쯤 퇴원할 수 있다는데?]

“이번 주는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것처럼 얘기했습니다.”

[알았어. 이제 좋은 소식을 얘기해 봐.]

“바통고 대통령님과 오늘 점심 식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통령?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얘기해 봐.]

“한겨울 대리의 작품입니다.”

김종학 지점장은 어제부터 지금까지 발생한 사건을 겨울에게 들은 얘기를 토대로 간략하게 보고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알았어.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말이야, 한 대리가 탄자니아와 우간다 부통령을 만난다는 얘기는 비밀로 해.]

“왜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김 지점장, 송유관 건설 공사 입찰의 주체는 본사고, 우리는 보조하는 입장이야.]

순간, 김종학 지점장의 머릿속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정명훈 법인장은 입사 1년밖에 안된 겨울이 진가를 드러내 보일수록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한 대리한테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주의 주고.]

“아차, 고영규 팀장에게는 보고를 올렸답니다.”

[고 팀장은 내가 별도로 입조심을 시킬게.]

“네, 법인장님. 그럼 바통고 대통령과 식사가 끝난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수고해.]

김종학 지점장이 통화를 끝내고 사무실로 나오니, 겨울은 노트북으로 무언가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다.

“뭐 하고 있나?”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을 검색하고 있었습니다.”

식당 개도 3년이면 라면을 끓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날 정도로 한국 사람들에게 라면은 익숙하다.

이에 반해서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음식이었다.

당연히 바통고 대통령의 요리사도 라면 조리법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겨울은 이 점을 우려해서 라면 끓이는 법을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요리사한테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복잡한 방법 말고, 간단하게 끓일 수 있는 방법을 USB에 담아 가.”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리고 말이야, 법인장님께서 가능한 조용하게 움직이라더군.”

김종학 지점장에게 정명훈 법인장의 당부를 전해 들은 겨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대통령 관저 접견실,

겨울은 김종학 지점장과 하도진 부지점장을 바통고 대통령을 비롯한 부투야 실장, 카손가 부총리, 카반구 장관에게 차례로 소개시켜 주었다.

상견례가 끝나자, 바통고 대통령이 푸근한 목소리로 김종학 지점장한테 말을 건넸다.

“김 지점장님은 우리나라에 근무해 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아프리카 법인장으로 영전해 간 정명훈 법인장의 전임자가 저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네요?”

“많이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발전을 위해서 나한테 조언을 한 마디 해 줄 수 있습니까?”

김종학 지점장은 바통고 대통령이 이런 말을 꺼낸 의도를 단숨에 알아챘다.

시험.

자신이 어떻게 대답하는 가에 따라서 이후의 분위기가 결정될 터였다.

그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후에 대답했다.

“대통령님, 저는 콩고민주공화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가 신인도를 높여서 외국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군요.”

바통고 대통령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김종학 지점장은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콩고민주공화국의 국가 신인도가 오르지 않는 이유는 반군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완전하게 소탕해서 치안을 안정시키는 방법이 최고지만, 어렵다면 반군들의 활동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 지점장님은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방법은 간단합니다. 반군들의 밥줄을 끊어 버리면 됩니다.”

“어떻게요?”

바통고 대통령이 흥미를 느꼈는지 상체를 김종학 지점장에게 기울이며 물었다.

“반군들은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광물들을 외국으로 밀수출해서 번 돈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경의 검문검색과 치안을 강화하면, 반군들의 활동이 상당부분 위축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이유는 국경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과 경찰이 반군 및 밀수 조직과 커넥션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놈들의 커넥션을 깨트릴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까?”

“근본적으로는 국경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과 경찰이 비리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처우를 개선해 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자주 근무지 이동을 시키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 같습니다.”

“저는 충성심이 높은 특수부대를 배치해서 국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밀수 조직을 일시에 소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종학 지점장의 말을 이어서 하도진 부지점장도 한 마디 보탰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은 바통고 대통령은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들어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바통고 대통령이 부투야 실장에게 말을 건넸다.

“부투야 실장, 두 분의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실 김종학 지점장이 제안한 아이디어는 이미 실행하고 있었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하도진 부지점장의 아이디어는 시도해 볼 만했다.

그러나 부투야 실장은 굳이 이 안건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자리는 반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는 두 분의 의견을 모두 적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산이 제법 많이 들어가지 않을까요?”

“반군들과 밀수조직에서 압수한 광물들을 수출해서 번 돈으로 충당하면 문제없을 듯합니다.”

“국방부 장관과 경찰총장과 협의해서 대책 방안을 마련해서 보고하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부투야 실장에게 지시를 내린 바통고 대통령은 다시 따뜻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두 분과 한겨울 씨, 모두 우리나라를 위해서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의 아이디어로 인해서 콩고민주공화국이 더욱더 발전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바통고 대통령의 옆에 앉아서 시계를 쳐다보고 있던, 부투야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대통령님, 한겨울 씨가 선물한 라면을 맛보러 가실 시간이 됐습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네, 대통령님.”

“한겨울 씨, 우리한테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알려 주시겠지요?”

“네. 물론입니다.”

“그럼 식당으로 이동해 보실까요?”

식당으로 들어선 겨울은 메인 요리사한테 동영상을 보여 주고 라면을 끓이는 법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동영상을 끝까지 시청한 그는 충분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겨울에게 부탁했다.

“이제부터 제가 라면을 끓여 볼 테니까, 옆에서 지켜봐 주십시오.”

잠시 후, 무콤보 요리사가 라면을 끓여서 내왔다.

이미 맛을 알고 있는 바통고 대통령과 부투야 실장은 거침없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반면에 라면을 처음 맛보는 카손가 부총리와 카반구 장관은 조심스럽게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입에 가져갔다.

“오오! 라면이 이런 맛이었군요!”

카손가 부총리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더니 빠른 속도로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 식사가 끝나가자, 바통고 대통령이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한겨울 씨, 오랜만에 라면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겨울과 대화를 끝낸 바통고 대통령은 부투야 실장에게 은밀히 신호를 보냈으나, 아직이라는 듯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바통고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음을 인식하고, 김종학 지점장에게 말을 건넸다.

“김 지점장님, 라면이라는 근사한 선물을 받았으니, 우리도 답례를 해야겠지요?”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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