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눈치 게임의 승자
부투야 실장은 겨울이 테슬라 자동차와 관련된 정보를 바통고 대통령을 만난 기념으로 준비한 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겨울이 바통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콩고를 방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따라서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을 위해서 준비한 선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겨울이 어떤 목적으로 선물을 자신들에게 건네려고 한 이유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다가 오후에 겨울과 통화한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맞아! 한겨울 씨는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먼저 꺼냈지? 그렇다면, 한겨울 씨가 준비한 선물이 나를 위한 거라는 뜻인데… 나한테 원하는 게 있나? 혹시… 그것 때문인가?’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론에 도달한 부투야 실장은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겨울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한겨울 씨, 이렇게 엄청난 정보를 우리 말고 다른 사람한테 얘기해 줘도 될까요?”
‘후후후, 부투야 실장님, 드디어 제 의도를 눈치채셨군요.’
마음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은 겨울은 부투야 실장의 질문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극비 정보가 여기저기 퍼져서 좋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주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께는 알려 줘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인들한테 얘기해 봐야 믿지 않을 것 같은데… 한겨울 씨가 직접 만나서 설명해 줄 수는 없나요?”
“으음, 그 지인분이 누구인지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탄자니아의 문두야 부통령밖에 없어요.”
“내일 당장 탄자니아로 넘어가겠습니다.”
대답하는 겨울의 목소리가 한톤 높아졌다.
부투야 실장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는 뜻.
‘하하, 그렇다는 말이죠?’
부투야 실장은 겨울의 마음을 다시 한번 떠보기로 했다.
“아차, 음발리 마사카 우간다 부통령도 알고 있었지!”
“마사카 부통령님도 제가 직접 만나 설명하겠습니다.”
“하하하, 알았어요. 내가 책임지고 만나게 해 줄게요.”
“고맙습니다, 실장님.”
겨울의 힘 있는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은 이번 주 중에 만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줄게요.”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바통고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이제 테슬라와 관련된 정보를 어떻게 취득했는지 알려 줄 수 있습니까?”
“전부 말씀드릴 수는 없고, 제 지인 중 미국에 엄청난 실력자를 부모로 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더 이상 묻지 않을게요.”
“제 곤란한 상황을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봅시다.”
“네? 내일이라뇨?”
“우리한테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알려 주셔야 하잖아요.”
겨울은 바통고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제야 눈치챘다.
라면은 핑계일 뿐, 다시 만나자는 의미였다.
“연락을 주시면, 총알같이 달려오겠습니다.”
* * *
겨울이 일행들과 함께 대통령 관저에서 떠나가자, 바통고 대통령은 부투야 실장 등과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부투야 실장, 마지막에 한겨울 씨가 좋아한 이유가 뭐였습니까?”
“우간다의 유전 지대와 탄자니아의 탕가를 연결하는 송유관 공사의 국제 입찰이 3월에 있을 예정입니다.”
“한겨울 씨가 선물 보따리를 우리한테 푼 것과 송유관 공사의 입찰이 어떤 상관이 있나요?”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에 문두야 부통령이 저를 찾아온 적이 있었고, 그 당시에 한겨울 씨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직접 문두야 부통령에게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저한테 부탁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통고 대통령은 무언가 떠오른 것이 있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부투야 실장 등은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침묵을 유지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바통고 대통령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투야 실장, 나는 우연찮게 한겨울 씨한테 선물을 받았다고 보면 될까요?”
그의 말이 맞았지만,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아닙니다. 한겨울 씨가 코발트와 관련해서 대통령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해서 만남을 주선한 거였습니다.”
“알았어요. 믿어 줄게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부투야 실장은 바통고 대통령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대통령님, 이렇게 근사한 선물을 받았는데, 그냥 넘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싶습니다.”
“그 전에 한겨울 씨가 우리에게 보여 준 보고서 내용의 진위 여부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요?”
지극히 옳은 말이라서 반박할 수 없었다.
“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일 오전까지 진위 여부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보고서 내용이 진짜라고 가정했을 경우에 답례로 줄 만한 게 있을까요?”
“제가 생각할 때에는…….”
바통고 대통령은 살짝 아쉬운 감이 들었다.
부투야 실장이 언급하고 있는 선물은 엄밀하게 따지면 겨울에게 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부투야 실장, 선물은 한겨울 씨한테 받았는데, 답례를 대한 그룹에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한겨울 씨가 대한 그룹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선물할 게 마땅치 않습니다.”
“돈으로 주는 것은 어떨까요?”
“작년 연말이 전별금을 주려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겨울 씨가 뭐라고 하면서 사양했습니까?”
“전별금을 받는 행위는 사규로 금지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회사에서 감사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네요. 한겨울 씨에게 주는 선물은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네, 대통령님.”
* * *
겨울은 대통령 관저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김종학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대리, 어떻게 됐나?]
묻는 목소리에 조급함이 실려 있었다.
“그냥 저녁 식사만 하고 헤어졌습니다.”
[알았어.]
잔뜩 실망한 목소리.
“지점장님, 바통고 대통령에게 선물했던 우황청심원이 남아 있습니까?”
[왜?]
“내일 대통령 관저에 또다시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혹시…….]
김종학 지점장이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끝말을 흐렸다.
겨울이 잠깐 기다려 주자, 살짝 흥분한 듯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운이 좋으면, 내일 선물을 받을 수도 있겠네?]
“제가 오늘 바통고 대통령님께 근사한 선물을 건네줬기 때문에 답례품이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알았어. 자세한 얘기는 내일 아침에 따로 하자고.]
“지점장님, 제가 드린 질문은 언제 해 주실 건가요?”
[세 박스 정도 남아 있을 거야.]
“이거 야단났네요.”
[왜? 많이 필요해?]
“이번 주 중에 탄자니아 부통령과 우간다 부통령을 만나기로 했거든요.”
[…….]
예상한 대로 김종학 지점장에게서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농담하지 말라면서 껄껄 웃어넘겼을 테지만, 자기가 바통고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못하는 것이었다.
[설마 농담은 아니겠지?]
“부투야 비서실장님이 그분들을 책임지고 만나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려는 이유는 송유관 건설 입찰 때문인가?]
“그 목적이 가장 큽니다.”
[한 대리가 필요로 하는 우황청심원은 내가 책임지고 수요일까지 확보해 놓을게.]
“저한테 방법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내 마누라하고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해서 수요일에 킨샤사에 오기로 했거든.]
순간, 겨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지점장님,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뭔지 얘기해 봐.]
“사모님께 말씀드려서 고급 홍삼 선물 세트 열 개만 구입해 달라고 하십시오.”
[오케이. 그렇게 할게.]
* * *
다음 날, 아침.
콩고 지점 사무실로 출근한 겨울은 직속 상사인 고영규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젯밤의 일들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테슬라와 관련된 얘기는 비밀을 요하는 일이라서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이런 상황입니다.”
[한 대리가 보고한 내용을 법인장님께 말씀드려도 될까?]
“탄자니아와 우간다의 부통령과의 만남이 불발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확정되면 다음 주에 종합적으로 보고를 드리는 게 어떨까요?”
[알았어. 그렇게 하자.]
“팀장님, 그건 그렇고 우황청심원과 홍삼 선물 세트 구입비용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내가 김 지점장님과 알아서 처리할게.]
“네, 알겠습니다.”
[가끔 중간보고 해 주는 것 잊지 말고.]
“네, 팀장님.”
통화를 끝내고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온 겨울의 눈에 씩씩대고 있는 김종학 지점장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확인해 보려는 순간, 하도진 부지점장이 말을 붙여왔다.
“홍성훈 부장과 신대환 차장이 오늘도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저러시는 거야.”
“이번에는 어떤 핑계를 댔습니까?”
“콜레라에 걸려서 빅토리아 폭포 인근에 위치한 리빙스턴의 병원에 입원해 있대.”
겨울은 핑계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콩고 지점에 발령받기 전에 남아공에서 콜레라 예방 주사를 맞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밝혔더니만, 하도진 부지점장은 다른 얘기를 꺼내들었다.
“콜레라 예방 주사 후, 최소 3일 동안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데, 매일 술에 찌들어 살았다고 하더라고.”
즉, 예방 효과가 떨어져서 콜레라에 걸렸다는 얘기였다.
“상태는 어떻답니까?”
“그나마 약효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
“병문안이라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격리돼서 면회가 금지됐을 텐데, 가 봐야 뭐하게.”
“하긴 그렇겠네요.”
그때, 김종학 지점장이 다가오며 말을 건네 왔다.
“한 대리, 회의실에서 잠깐 얘기 좀 할까?”
“네, 좋습니다.”
회의실.
아만다가 서빙해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김종학 지점장이 말문을 열었다.
“한 대리, 바통고 대통령에게 건네줬다는 근사한 선물이 우황청심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겨울은 정말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테슬라와 관련된 얘기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함부로 언급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라면이 근사한 선물이라고 둘러댈 수도 없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일부만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바통고 대통령님께 전기 자동차와 관련해서 따끈따끈한 정보를 건네줬습니다.”
“따끈따끈한 정보가 무엇인지 얘기해 줄 수 있나?”
“전기 자동차 점유율 1위 업체인 테슬라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해서 전기자동차 시장의 크기를 더욱 늘린다는 정보였습니다.”
“그 정보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하, 그런가요?”
겨울이 겸연쩍다는 듯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순간, 김종학 지점장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판단했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굳이 겨울을 곤란한 상황에 빠트릴 필요는 없었다.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를 해 보자고.”
“네, 말씀하십시오.”
“바통고 대통령이 한 대리를 또다시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뭘까?”
“제가 어제 선물로 드린 라면을 끓이는 법을 알려 달라고 하셨는데, 아마 저한테 정보를 얻은 대가로 답례품을 주시려는 것 같아요.”
“답례품이라…….”
드르륵―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겨울은 김종학 지점장한테 양해를 구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부투야 실장님.”
[한겨울 씨, 오전 11시 30분까지 대통령 관저로 오셨으면 합니다.]
“실장님, 대통령님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해야 하는 겁니까?”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알려 주셔야 하잖아요.]
“네? 대통령님께서 농담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농담하신 거 아닙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오실 때 콩고 지점장님도 같이 모시고 오세요.]
김종학 지점장과 답례품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차! 라면, 정말 고마워요.]
어제, 대통령 예방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부투야 실장한테 건네받은 주소를 은센기한테 주면서 오늘 중에 라면을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벌써 라면을 받은 모양이었다.
겨울은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어젯밤 늦게 퇴근하는데, 은센기 씨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하여간, 은센기 씨의 실행력 하나만큼은 알아 줘야 한다니까요.”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