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붙어 볼 만한 싸움
FTA팀이 정식으로 출범한 며칠 후.
겨울은 탄자니아 현장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라히디 심바 과장과 통화하고 있었다.
[한 대리님, 지난 연말에 우리나라와 우간다 에너지광물부 장관이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는 작년 11월에 회의 시간에 가쿠타 과장의 입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심바 과장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에 얽혀 있는 복잡한 사연을 듣게 되었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었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동안 관심을 접고 있었다.
그런데 연말에 탄자니아와 우간다 정부가 전격적으로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 협정을 체결했다고 한다.
즉, 복잡하게 얽혀 있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겨울의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심바 과장님, 또 다른 문제점이 돌출돼서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건 아닙니까?”
[저도 그 점이 우려돼서 여기저기에 수소문해 봤는데, 이번에는 확실하게 추진된다고 합니다.]
“으음,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일정은… 송유관 건설 공사를 수행할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 공고를 1월 중에 띄우고, 3월 중에 국제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제 입찰과 관련해서 제가 알고 있어야 할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에 중국의 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적지 않은 지분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겨울은 치솟던 흥미가 급격히 사라졌다.
CNOOC가 지분을 보유했다는 의미는 송유관 건설 공사가 중국의 건설사에게 돌아간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에이, 좋다가 말았네. 아니, 그럼… 국제 입찰에 붙이는 이유는 뭐지? 다른 나라의 건설사들을 위한 요식 행위라는 건가? 그 안하무인 같은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할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자, 겨울은 심바 과장에게 자신의 생각에 대해 물었다.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의 최대주주는 프랑스의 에너지 다국적 기업인 토탈(Total)입니다. 토탈에서 국제 입찰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프랑스는 유럽의 깡패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다른 나라의 얘기를 듣지 않기로 유명하니까.
상부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겨울은 중국 건설사들과 붙어 볼 만한 싸움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30분 내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겨울이 통화를 끝내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가쿠타 과장이 말을 붙여 왔다.
“한 대리님,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고 합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으음, 저희가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면, 1년 농사는 거의 끝날 텐데요.”
“그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고영규 팀장이 겨울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 대리,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나?”
“네. 우간다의 호이마라는 지역에서…….”
겨울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했다.
“…송유관 길이는 1,450㎞ 정도고, 금액은 약 35억 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중국의 CNOOC가 지분을 투자했으면… 흠, 우리가 수주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고영규 팀장도 비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 토탈이 국제 입찰을 주관한다고 하니까, 약간이나마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와 관련한 자료는 받았나?”
“심바 과장이 곧 보내 준다고 했습니다.”
“좋아. 자료를 받으면 법인장님께 같이 보고하러 가자고.”
“네, 팀장님.”
* * *
같은 시각.
관리팀의 오정수 과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들이 본사에 요청한 인원은 모두 일곱 명.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세 명이 초과된 열 명의 인사 기록을 보내온 것이었다.
무언가 착오가 생겼다고 판단을 한 그는 즉시 본사의 인사팀, 유철훈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유를 물었다.
[글쎄? 나도 잘 몰라.]
“설마 그 열 명이 자발적으로 오겠다고 한 겁니까?”
[도대체 그건 왜 묻는 거야?]
유철훈 부장의 목소리에는 불편한 심기가 담겨 있었다.
오정수 과장은 그의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서 재빨리 이유를 이어 붙였다.
“비자발적으로 온 사람들 중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던 사례가 여럿 있어서 그렇습니다.”
[으음, 내가 당사자 한 명, 한 명 직접 면담했는데, 모두 기꺼이 가겠다고 하더라.]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언제쯤 온다고 합니까?”
[잠시만… 어디 보자… 다음 주 월요일부터 아프리카 법인에 근무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그 언저리에 갈 거야 아마.]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낸 메일을 보면 전무님의 코멘트가 있을 거야. 추 이사님께 말씀드려.]
유철훈 부장이 보내온 메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아프리카 법인에 전입해 오는 사람들을 공항에 픽업하러 가지 마라.
“저기… 부장님, 정말로 이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까라면 까야지. 아무튼 나는 분명히 지시받은 내용 전달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유철훈 부장과 통화를 끝낸 오정수 과장은 열 명의 인사 기록을 출력한 서류를 챙겨 추성민 이사를 찾았다.
“오 과장, 무슨 일인가?”
“이사님, 본사 인사팀에서 저희 법인으로 전입해 올 사람들의 인사기록을 보내왔는데, 조금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말인가?”
“그게… 저희가 요청한 인원보다 세 명이나 많습니다.”
“그래? 어디, 줘 봐.”
열 명의 인사기록을 꼼꼼히 확인한 추성민 이사는 오정수 과장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본사 인사팀하고 통화는 해 봤나?”
“네. 유철훈 부장과 통화했는데…….”
아프리카 법인에 전입해 오는 직원들은 남아공이라는 나라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픽업 서비스를 제공해 왔는데, 오장식 전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런 서비스를 아예 금지시켜 버렸다.
추성민 이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혹시 법인장님은 알고 계시려나?”
“네?”
“아니야. 그냥 나 혼자 한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나가서 일 봐.”
“네에… 알겠습니다.”
오정수 과장이 밖으로 나가자, 추성민 이사는 책상에 턱을 괴고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세 명을 추가로 보내는 이유가 뭘까? 오 전무님이 왜 그런 지시를 내렸고? 법인장님은 알고 계시겠지?’
법인장실.
추성민 이사의 예상과 달리, 정명훈 법인장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추 이사, 오 전무님과 통화해 봤나?”
“법인장님께서 알고 계실 것 같아서 따로 전화는 하지 않았습니다.”
“흐음…….”
“그리고 오 전무님께서 공항 픽업 서비스까지 금지하셨습니다.”
“응? 왜?”
“오정수 과장이 유철훈 부장한테 이유를 물어봤는데, 전무님의 지시사항이랍니다.”
“전무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고?”
“그렇습니다. 사장님께 전화를 드려 보는 건 어떨까요?”
“알았어.”
짧게 대답한 정명훈 법인장은 즉시 이진호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법인장, 안 그래도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사장님, 이 세 명은 어떻게 된 겁니까?”
[아프리카 법인에서 요청한 일곱 명은 기존에 계획한 곳에 배치하고, 한 명은 FTA팀에 배치하세요. 그리고 인사담당 출신 두 사람은 지점에 배치하되, 제일 업무가 많은 곳에 배치하시고요.]
“혹시 제가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FTA팀에 인원을 배치하라고 한 것은 회장님의 아이디어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실 FTA팀에 필요한 한국 직원은 다섯 명이 아니라, 여섯 명이었다.
FTA팀 리더에게 지점까지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의 마음을 송훈석 회장이 정확히 꿰뚫어 보고 충원을 결정한 듯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인사담당 출신인 두 사람은 박철헌 전 사장의 비리와 관련 있는 사람들입니다. 퇴사를 권유했는데도 계속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사장님, 혹시 그 두 사람이 계속 버티는 이유가 마땅한 호구지책이 없어서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감사팀에서 파악한 결과, 두 사람은 재산을 꽤나 보유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명훈 법인장은 그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최성진 부회장이 떠올랐다.
“최성진 부회장님이 자신들을 구제해 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거는 아닙니까?”
[정재엽 사장님도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어요. 아무튼 두 사람은 최대한 빨리 퇴사시켜야 하니까, 인정사정 봐주지 마세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공항 픽업 서비스를 금지한 이유도 두 사람 때문입니다.]
“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군요.”
[어쩔 수 없지요. 나중에 통화합시다.]
“네, 사장님.”
정명훈 법인장이 통화를 끝내자, 추성민 이사가 질문을 던져 왔다.
“법인장님, 사장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장님께서는…….”
정명훈 법인장의 설명을 듣고 있던 추성민 이사는 이제야 의문이 완벽하게 해소되었다.
그저 인사담당 출신 두 사람으로 인해서 애꿎은 직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법인장님, 그 두 사람은 어디에 배치시키면 좋을까요?”
“우리 법인에서 제일 업무가 많은 곳이 어느 지점이지?”
“그야 당연히 콩고 지점이죠.”
“그럼 그렇게 해.”
“김종학 지점장에게도 미리 언질을 주겠습니다.”
“됐어. 내가 할게.”
그 말과 함께 정명훈 법인장이 김종학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 서비스 불가 지역에 가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통화가 불가능한 곳에 있는 것 같아.”
“그런 지역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대한텔레콤에서 기지국을 많이 증설하고 있으니까, 점차 나아지겠지.”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고영규 팀장과 겨울이 찾아왔음을 알렸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법인장님.”
고영규 팀장과 겨울이 비어 있는 소파에 앉자마자, 정명훈 법인장이 활짝 웃으며 농담부터 건넸다.
“이봐, 한 대리. 누구 입은 입이고, 내 입은 주둥이인가?”
겨울은 정명훈 법인장이 어떤 의도로 이 말을 꺼냈는지 단숨에 알아챘다.
며칠 전, 시무식에서 무려 10만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포상금을 받은 일 때문이리라.
당연히 거액의 포상금을 받도록 힘써 준 정명훈 법인장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으나, 정작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일개 대리 주제에 법인장에게 식사를 같이하자고 먼저 제안할 수는 없었으니까.
“죄송합니다, 법인장님.”
“흐음, 다른 사람들한테는 거하게 쐈으면서 나한테만 입을 싹 닦는 이유가 뭔가?”
“그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어려워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렵다고? 내가?”
정명훈 법인장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법인장님.”
“왜? 내가 불편하게 대한 게 있었나?”
“그게 아닙니다. 그저… 대리인 제가 어떻게 법인장님께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그제야 정명훈 법인장은 겨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콩고 지점에서는 지점장과 부지점장은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관계였지만, 이곳에서는 하는 일도 다르고 지켜보는 사람들 눈도 있으니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았네. 업무가 끝나면 계급장을 뗄 테니 오늘 거하게 한잔 쏘게.”
“알겠습니다. 제가 근사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때, 추성민 이사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법인장님, 저도 숟가락 좀 얹어도 됩니까?”
“허허, 추 이사. 오히려 자네가 먼저 사야 하는 거 아니야?”
“2차는 제가 쏘겠습니다.”
“하하하! 알겠네.”
정명훈 법인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고영규 차장에게 말을 걸었다.
“고 차장, 모른 척 해 줄 거지?”
“물론입니다.”
“그래. 아무튼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가?”
“한겨울 대리가 법인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윙윙―
그때, 공교롭게도 정명훈 법인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 탓에 고영규 차장의 보고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