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69화 (69/328)

[69화] 새로운 인연

대한 그룹의 임원 인사 발표는 전통적으로 한국 시간으로 오후 3시에 발표하곤 했다.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출근한 추성민 팀장은 임원 인사 발표 시간만 기다리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미 자신이 이사로 승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직속상사로 모셔야 할 법인장이 누구인지 확인해 보고자 함이었다.

남아공 시간으로 오전 8시 정각.

드디어 사내 게시판에 대한 그룹 임원 인사가 게시됐다.

“음… 어, 어?!”

임원 인사를 확인하던 추성민 팀장은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새롭게 임명된 아프리카 법인장이 다름 아닌 정명훈 지점장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사가 아닌, 상무로 두 계단 승진하기까지.

그는 얼른 핸드폰을 들어서 정명훈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자신보다 한발 빠른 사람들이 있었는지 ‘통화 중’이라는 신호만 돌아왔다.

윙윙―

곧이어 자신의 핸드폰에도 불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와 직원들의 축하 인사를 받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같은 층과 아래층에 근무하는 직원들 모두가 축하 인사를 건네왔는데, 유독 민경진 팀장만은 잠잠했다.

‘임원 승진에 탈락해서 속이 쓰린가 보네.’

추성민 팀장은 마음속으로 속 좁은 인간이라고 욕을 퍼붓고는 신경을 꺼 버렸다.

* * *

같은 시각.

정명훈 법인장은 이진호 사장과 상당히 무거운 내용으로 통화 중에 있었다.

[…안정혁 전 법인장과 민경진 관리팀장의 비리도 같이 발견된 상태입니다.]

정명훈 법인장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안정혁 전 법인장은 오늘 날짜로 해임되었기에 상관없지만, 아프리카 법인 소속의 민경진 팀장에 대해서는 징계 절차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민 팀장의 비리가 많이 심각합니까?”

[법인의 공금을 빼돌려서 안 전법인장과의 유흥비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빼돌린 금액이 많습니까?”

[지금까지 파악한 금액만 30만 달러가 넘는 상황입니다.]

안정혁 전 법인장은 아프리카 법인장으로 정확하게 2년 6개월 동안 근무했다.

그러니 두 사람은 매월 평균적으로 1만 달러(약 1,200만 원)를 빼돌려서 유흥비로 사용했다는 뜻이었다.

한국에서의 유흥비 1,200만 원은 그다지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남아공에서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이 정도 액수의 공금 유용이면, 징계 수준의 최하가 해고였다.

“사장님, 민 팀장의 징계처리는 어떻게 할까요?”

[민 팀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는 본사에서 진행하기로 했으니까, 정 법인장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보다 이번에 공적을 세운 한겨울 씨에 대해서는…….]

이진호 사장은 겨울에게 줄 보상에 대해 말을 꺼냈다.

정명훈 법인장은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금전적인 보상은 일시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이진호 사장이 언급한 보상은 겨울이 대한 그룹에 재직하고 있는 동안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스펙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겨울 씨의 보상에 대한 아이디어는 내가 아니라 회장님께서 내신 겁니다. 나중에 회장님과 통화할 일이 있으면, 고맙다고 말씀드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식으로 발표 날 때까지는 정 법인장과 한겨울 씨 정도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하세요.]

“네, 사장님.”

[그럼 나중에 통화합시다.]

뚝.

이진호 사장과 통화를 마친 정명훈 법인장은 급하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법인장님.]

“추 이사, 전화했었나?”

[네. 축하드리려고 전화했는데, 통화 중이셨습니다.]

“조금 있다가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야. 오후에 법인에 도착할 예정이니까, 그때 보자고.]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정명훈 법인장이 비행기를 타고 남아공으로 날아가는 동안, 겨울은 은센기와 함께 부투야 실장, 카손가 부총리, 카반구 보건장관을 병문안했다.

“은센기 씨의 희생이 아니었더라면, 큰일 났을 겁니다. 아마 지금쯤 땅속에 묻혀 있었겠죠.”

카손가 부총리가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그렇지 않아도 조심스럽던 은센기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사실 그는 운전기사 역할만 수행하는 것으로 알고 반군 기지로 출발한 것이지, 겨울과 같은 희생정신을 가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겨울이 램버트 교수가 의약품에 욕심이 상당히 많다는 이유 때문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분명 차에 남아 겨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손가 부총리의 호감을 사기 위해 당시의 상황을 조금 각색해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마음속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양심이란 놈을 무시할 수 없어 사실 그대로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부총리님, 저는 반군 기지에 약을 되찾으러 갈 때…….”

은세기의 설명을 끝까지 들은 카손가 부총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은센기 씨, 여차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그 정도도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만약에 은센기 씨가 반군 기지에서 의약품을 챙겨오지 않았더라면… 저를 포함한 마을 주민들은 수술을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겠죠.”

“은센기 씨는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한 일을 해냈어요. 그러니까 겸손해할 필요는 없어요.”

카손가 부총리부터 부투야 실장까지 돌아가며 칭찬의 수위를 높였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할 말이 없네요.”

겸연쩍다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은센기를 푸근한 표정을 지켜보던 카손가 부총리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뭐라도 주고 싶은데… 혹시 받고 싶은 선물이 있나요?”

은센기는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솔직히 돈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은센기는 저변에 깔린 욕망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실장님께서 지난번에 주셨습니다.”

“고작 1,000달러로 만족한다는 말인가요?”

“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때, 겨울이 급히 말문을 열었다.

“부총리님, 은센기 씨는 대한 그룹에서 별도로 선물을 챙겨 줄 예정입니다.”

“어떤 선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저희가 무케나 사장님과 코발트 광산을 공동으로 개발할 때…….”

겨울의 설명을 듣고 있던 부투야 실장은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겨울 씨, 은센기 씨한테 커미션을 주는 것보다 평생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부투야 실장은 겨울에게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실장님의 아이디어에는 저도 찬성합니다만, 이 문제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무케나 사장님은 제가 책임지고 설득해 볼 테니까, 한겨울 씨는 정 지점장님께 말씀드려 보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폭풍같이 밀어붙이는 이들의 행동에 정작 당사자인 은센기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만약 부투야 실장의 아이디어가 현실화가 된다면…….

자신의 앞날은 탄탄대로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하는데, 주는 선물을 덥석 받아먹을 수는 없었다.

“부투야 실장님, 한겨울 씨, 저를 위해서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감사의 인사는 모든 것이 확정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은센기의 일을 일단락 지은 부투야 실장은 시선을 옮겨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한겨울 씨는 회사에서 어떤 보상을 해 준답니까?”

겨울도 그 점이 무척 궁금하기는 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포상금 얘기가 나오고도 남았겠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분위기에서 사실 그대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연말에 성과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과급이라면… 한 10만 달러 정도 받습니까?”

“아, 아닙니다.”

겨울이 엄청난 거금에 놀라 손을 황급히 내저었다.

“그럼 얼마를 받는다는 말인가요?”

“잘 모르겠지만, 만 달러 정도 받을 것 같습니다.”

“네? 너무 적은 거 아닙니까?”

“저는 만 달러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노크 소리와 함께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겨울은 부투야 실장 등을 병문안하러 온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는 이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갈 때 가더라도 제 친구와 인사는 나누고 가세요.”

부투야 실장을 병문안 하러 온 사람은 라시트 문두야라는 이름을 가진 탄자니아 부통령이었다.

그는 부투야 실장과 함께 프랑스 파리의 정치대학에서 같이 공부한 동창으로, 부투야 실장이 다쳤다는 얘기를 듣고 비공식적으로 면회를 온 것이었다.

문두야 부통령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겨울과 은센기는 적당한 기회를 틈타서 어려운 자리를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상황은 이상하게 꼬이기만 했다.

갑자기 부투야 실장이 두 사람의 영웅담을 문두야 부통령에게 언급하는 것이었다.

“문두야 부통령, 카손가 부총리님과 카반구 보건장관님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알아요?”

“뭔가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었던 겁니까?”

“네, 그래요. 국경 없는 의사회의 브라이언 박사님이…….”

부투야 실장은 당시에 있었던 사건을 사실에 입각해서 자세하게 늘어놓았다.

“…여기 있는 두 분이 반군 기지에서 수술에 필요한 의약품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면, 부총리님과 장관님은 사망했을 거고, 저는 다리 한쪽을 잘라 내야 했을 거예요.”

문두야 부통령은 제삼자에 불과한 겨울이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반군 기지에서 의약품을 가지고 온 이유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자기가 물어볼 입장은 아니었지만,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 이유를 솔직하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 겁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뇨?”

“저희는 반군 기지의 경계가 삼엄하면 철수할 생각으로 그곳에 갔습니다. 그런데 철조망은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고, 폭우가 내려서인지 경계병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침투했고, 필수 의약품을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부통령님.”

겨울의 말에 부투야 실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문두야 부통령님, 한겨울 씨의 말은 50%만 믿으면 됩니다.”

“또 뭐가 남아 있습니까?”

“브라이언 박사님의 말로는 한겨울 씨의 눈에 결기가 서려 있었답니다.”

“그럼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처음부터 반군 기지에 침투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까?”

“네, 그렇다니까요.”

“허허, 한겨울 씨가 부투야 실장님의 신분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브라이언 박사님이 우리의 신분을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에 겨울 씨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결정적으로 한겨울 씨와 은센기 씨는 우리한테 보상 얘기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거꾸로 한겨울 씨한테 보상을 해 줬지요.”

“어떤 보상을 해 줬는데요?”

“내무부가 발주한 SUV 자동차 5,500대와 전염병 전문 치료 병원 설립 프로젝트를 넘겨줬어요.”

“아니, 한겨울 씨가 그 프로젝트를 어떻게 수행한다는 말입니까?”

부투야 실장은 아차 했다.

겨울을 문두야 부통령에게 소개시켜줄 때 소속되어 있는 회사를 얘기해 주지 않았음을 그제야 알아챈 것이었다.

“문두야 부통령님, 한겨울 씨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가 한국의 대한 그룹입니다.”

“오오, 그렇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네요.”

문두야 실장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겨울은 이때다 싶어서 문두야 부통령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의 본분이 비즈니스맨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었다.

“부통령님, 탄자니아도 저희 콩고 지점에서 관할하고 있습니다.”

문두야 부통령은 겨울이 어떤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 단숨에 알아챘다.

“대한 그룹에 줄 수 있는 일감이 있으면 달라는 얘기겠죠?”

“민망하지만, 그렇습니다.”

“하하, 민망할 게 뭐 있습니까. 아무튼 그러기 위해서는 연락처를 주고받는 것이 필수겠죠?”

이 정도 진척률이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문두야 부통령과 전화번호를 교환한 겨울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뒤, 병실을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던 부투야 실장이 문두야 부통령에게 말을 건넸다.

“정말 배짱이 대단한 것 같지 않습니까?”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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