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네!? 상무라고요?
“서 실장, 박철헌 인사담당 사장에 대한 조사는 모두 끝났나?”
송훈석 회장의 질문을 받은 서동호 실장은 지난 10월 말에 받은 익명의 투서를 기억에 떠올렸다.
투서에는 박철헌 사장과 관련된 사람들이 자행한 각종의 비리에 대한 내용들이 너무나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즉시 송훈석 회장에게 보고하고, 감사팀을 동원해서 은밀하게 조사에 착수했다.
약 3주간의 조사 끝에 어제 조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네, 회장님.”
“투서 내용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박 사장이 지유가 경영권을 물려받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 같나?”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박 사장은 해임 조치해. 그리고 그 자리는 정재엽 연수원장에게 맡기고.”
“알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송훈석 회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제 오후에 급작스럽게 최성진 부회장의 방문을 받은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성진 부회장은 아들인 최준하가 10개월 넘게 자숙했다면서, 대한 그룹에 재입사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한 그룹의 3대 주주의 부탁이기에 못 들어줄 것은 없었으나, 의도를 빤히 알고 있는 상황이라서 쉽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서동호 실장에게 풀어놓은 뒤, 그의 의중을 물었다.
“저는 특채가 아닌 공채의 과정을 거친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입 사원 채용 과정에서 탈락시키자는 얘기인가?”
“굳이 탈락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최 부회장의 의도는 최준하와 지유를 결혼시켜서 우리 회사를 장악하겠다는 것인데, 지유가 최준하를 극도로 싫어하고 있습니다.”
“맞아. 내가 그 생각을 미처 못했네.”
“그리고 최준하는 제가 꾸준히 지켜보겠습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이진호 사장이 도착했음을 보고했다.
“들어오시라고 하고, 따뜻한 커피를 내오세요.”
“네, 회장님.”
이진호 사장이 출력해 온 보고서를 꼼꼼히 읽은 송훈석 회장은 서동호 실장에게 읽어 보라며 보고서를 건네주었다.
“흠, 그래서 이 사장. 한겨울이 VIP들과 어떤 인연을 맺게 됐는지 이유를 파악해 봤나요?”
“정명훈 지점장이 회장님께 보고하려고 지금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얼른 전화해서 바꿔 주세요.”
“네, 회장님.”
짧게 대답한 이진호 사장은 정명훈 지점장과 전화를 연결한 뒤, 핸드폰을 송훈석 회장에게 건네주었다.
“정 지점장, 지금 그쪽은 몇 시인가요?”
[새벽 1시 30분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 시간까지 깨어 있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보고서는 잘 읽어 봤어요. 업무적인 얘기는 나중에 하고, 한겨울이 부투야 실장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송훈석 회장이 꺼낸 얘기는 이진호 사장과 서동호 실장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송훈석 회장의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후후, 어지간히 궁금한가 보네.’
이를 본 송훈석 회장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가라앉히고, 정명훈 지점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정 지점장, 이진호 사장과 서동호 실장을 위해서 스피커폰으로 전환할 테니까, 참고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얘기해 보세요.”
[한겨울 씨가 부투야 실장을 포함한 VIP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열흘 전입니다. 카낭가 시에 살고 있는 무케나 사장을 만나고 돌아오는 도중에…….]
얘기를 모두 들은 송훈석 회장은 겨울의 행동을 천성이라고 결론지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겨울이 생명을 구하는 일에 무모하게 나선 경우가 송훈석 회장이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이번까지 포함해 세 번이나 된다.
모르는 것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릴 때, 송훈석 회장의 귀에 생각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이 들려왔다.
“잠깐. 정 지점장, 브라이언 박사의 이름이 코비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만… 회장님께서 그분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그런 명의를 모르면 되겠습니까? 흉부외과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데. 아무튼 계속 얘기해 보세요.”
[네, 회장님. 생명이 위독한 VIP들과 마을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군들에게 강탈당한 의약품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이후 핸드폰에서는 엄청난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진호 사장은 한겨울의 무모한 용기에 박수를 쳐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희생정신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목숨을 맡기면서까지 반군 기지에 침투하는 것은 무모한 행동임이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 그가 반군들에게 붙잡혀서 죽기라도 했다면, 불어오는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한겨울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생각을 해 봤을 터였다.
그런데도 의약품을 되찾기 위해서 반군 기지에 침투한 한겨울의 머리를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중에 만나면 혼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진호 사장이었다.
그러는 사이, 정명훈 지점장의 보고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겨울 씨 덕분에 VIP들과 마을 주민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 지점장, 한겨울 씨가 의약품을 되찾아 와서 VIP들과 마을 주민들의 생명을 구한 것치고는 선물이 너무 과한 게 아닙니까?”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한겨울 씨가 반군 기지에 침투해서 의약품을 되찾아오지 않았다면, 콩고민주공화국과 앙골라는 전쟁을 치를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10월 말에 앙골라와 국경에 주둔하고 있던 콩고민주공화국 군대의 무기고가 털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은 당시에 벌어졌던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해 나갔다.
[…한겨울 씨가 반군 창고에 쌓여 있는 무기들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두 나라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 뻔했습니다.]
“들을수록 믿기지 않는 일이군요. 이제 업무적인 얘기를 해 봅시다.”
[네, 말씀하십시오.]
“부투야 실장이 제안한 대로 SUV 자동차를 공급하면, 우리 회사의 이익은 어떻게 됩니까?”
[저희가 처음에 콩고민주공화국 내무부에 제안서를 제출할 때에는 매출 이익을 5%를 책정했었습니다만, 부투야 실장과 담판을 질 때 매출 이익을 10%로 올렸습니다. 이로 인해서 약 1,150만 달러의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물로 받는 코발트에 대한 이익은 별도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코발트로 인해서 얻는 이익은 약 2,900만 달러 정도 됩니다.]
그때, 이진호 사장이 미리 작성해서 가지고 있던 메모지를 송훈석 회장에게 건네주었다.
― 수출 금액 : 1억 9,250만 달러.
― 매출 이익 : 자동차 115만 달러, 코발트 2,887만 5,000달러. 합계 4,812만 5,000달러.
― 매출 이익률 : 25%.
메모를 확인한 송훈석 회장은 이진호 사장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낸 뒤, 정명훈 지점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정 지점장, 우리가 콩고민주공화국으로부터 코발트를 대물로 받을 경우에 물량이 얼마나 됩니까?”
[코발트 국제 시세가 워낙 들쑥날쑥해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7,500톤 정도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 지점장, 대한자동차와 대한화학에서 연간 수입하는 코발트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습니까?”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양은 모르겠습니다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수입하는 양은 9,000톤 정도 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동호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회장님, 두 회사가 수입하는 코발트의 양은 평균 1만 5,000톤 정도 됩니다만, 전기자동차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판단됩니다.”
“알았어요.”
짧게 대답한 송훈석 회장은 정명훈 지점장과 대화를 계속했다.
“이제 전염병 전문 치료 병원 설립 프로젝트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봅시다. 프로젝트의 개요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전국에 만연하고 있는 전염병을 전문으로 치료할 목적으로…….]
정명훈 지점장의 보고를 듣고 있던 송훈석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중국이 노리고 있던 프로젝트를 자신들이 빼앗아 왔다고 하는데, 기분 좋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정 지점장, 중국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저도 그 점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다른 프로젝트를 하나 주기로 했답니다.]
“그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모릅니까?”
[부투야 실장한테 물어봤는데, 대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알았어요. 그나저나 프로젝트의 규모는 얼마 정도 됩니까?”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40억 달러를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정밀 검증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 후에도 송훈석 회장은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물어봤고, 정명훈 지점장은 막힘없이 성실하게 대답했다.
“정 지점장, 부투야 실장에게 병원 설립 프로젝트는 우리가 진행하겠다고 얘기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흐음, 큰 선물을 선사한 VIP들에게 답례를 했으면 좋겠는데… 뭐가 좋을까요?”
“회장님, VIP들에게는 한겨울 씨가 이미 생명이라는 선물을 줬기 때문에 별도로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셔야 하겠다면, 이 나라 사람들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기초 의약품을 기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송훈석 회장은 정명훈 지점장의 입에서 돈이라는 얘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뇌물이 보상이라는 단어로 포장되는 것이 빈번했기 때문에.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기초 의약품을 선물로 주자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나쁘지 않은 의견이었지만, VIP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었다.
그는 이 점을 거론하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제가 부투야 실장을 만나서 의사를 먼저 타진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만약에 기초 의약품을 선물로 준다면 어떤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 나라 보건부에 일정량의 기초 의약품을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제일 적당한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부투야 실장한테 의견을 물어보고 나한테 알려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무케나 사장의 코발트 광산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 보내 준 자료를 최대한 빨리 검토해서 실무진들을 보내겠다고 얘기를 전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에게 매번 도움을 주고 있는 은센기 씨에게 보상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희가 500달러를 지급했고, 무케나 사장한테 판매하는 트럭 금액의 1%를 커미션으로 지급하기로 약속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커미션 금액이 얼마 정도 될까요?”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10만 달러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정 지점장, 다른 얘기 좀 잠깐 합시다.”
[말씀하십시오.]
“정 지점장이 아프리카에서 근무한 지 몇 년 됐죠?”
[올해로 15년차입니다.]
“그럼… 아프리카 법인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겠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 지점장, 아프리카 법인을 훌륭하게 이끌어 갈 자신이 있습니까?”
[…….]
예상한 대로 정명훈 지점장의 입에서 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송훈석 회장도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잠시 기다려 주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잔뜩 상기된 정명훈 지점장의 목소리가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왔다.
[…회장님, 아프리카 법인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상무로 두 단계 특별 승진시킬 예정입니다.”
[네!? 상무라고요?]
정명훈 지점장이 진심으로 놀란 목소리가 집무실을 울렸다.
“축하해요, 정 상무.”
[가, 감사합니다, 회장님!]
“발표가 날 때까지 비밀인 거 알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피곤할 텐데 푹 쉬고 나중에 통화합시다.”
[네, 회장님! 들어가십시오.]
딸깍.
송훈석 회장은 이진호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이 사장, 한겨울에 대한 보상이 너무 적은 것이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사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죠.”
송훈석 회장은 고개를 돌려 서동호 실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임원 승진 인사는 예정대로 발표하는 것으로 하세요.”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