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초미의 관심사
윙―
주머니 속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짧게 한 번 울리는 것을 보아 하니, 누군가 문자를 보낸 것 같았다.
정명훈 지점장은 문자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기에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VIP들은 만나봤습니까?]
“방금 전에 헤어졌어.”
[그래서 그 VIP들의 신분이 어떻게 됩니까?]
“알아맞혀 봐.”
[아, 선배님… 궁금해 죽겠습니다. 애태우지 마시고 빨리 얘기해 주십시오.]
“알았어. VIP들의 정체는…….”
정명훈 지점장은 VIP들의 정체와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세상에… 선배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는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놨는데 뭘.”
[네? 이번에도 우리의 호프가 개입되어 있습니까?]
“당연한 것을 왜 묻나?”
[허어, 그래서 한겨울이 부투야 실장과 어떤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까?]
“나도 몰라.”
[아, 옆자리에 한겨울이 있군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추성민 팀장이었다.
“맞아.”
[알겠어요. 다른 얘기를 해 볼까요.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사장님께 보고하셨습니까?]
“코발트 광산 건을 제외하고, 모두 보고했어.”
[제가 따로 보고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글쎄…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라도 보고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선배님, 임원 승진은 이미 결정됐고, 발표만 남았다고 합니다.]
“추 팀장은 어떻게 될 것 같아?”
[반반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같이 승진했으면 좋겠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화를 끊은 정명훈 지점장은 겨울에게 지시를 내렸다.
“부지점장, 회사에 복귀하면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나한테 보내 줘.”
“USB에 들어 있는 내용은 어떻게 할까요?”
“그것도 첨부 파일로 보내 주고.”
회사에 복귀한 정명훈 지점장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가쿠타 과장이 겨울에게 말을 건네왔다.
“부지점장님, 반투야의 정체가 비밀정보국의 고위 관리가 맞았습니까?”
“아, 가쿠타 과장님. 아닙니다. 바통고 대통령님의 비서실장인 키부토 부투야라는 분이었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가쿠타 과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렇더라고요. 나머지 두 분은 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이신 부쿠타 카손가라는 분과 보건장관인 루하카 카반구라는 분이었습니다.”
“세상에나… 그렇게 엄청난 분들을 만나 보시다니, 정말 영광이셨겠네요.”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가쿠타 과장의 표정을 본 겨울은 장난기가 샘솟았다.
“제가 부투야 비서실장을 만나게 해 드릴까요?”
“네? 어떻게요?”
“내일 부투야 실장님을 만나러 갈 일이 있는데, 같이 갈래요?”
“아, 아닙니다. 부담스러워서 싫습니다.”
“지점장의 지시를 어길 생각은 없겠죠?”
“그렇다면… 할 수 없이 따라가야겠네요.”
가쿠타 과장은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과장님, 제가 USB를 하나 드릴 테니까, 다운로드 받아서 저한테 전송해 주세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킨샤사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에 전염병 전문 치료 병원을 설립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가쿠타 과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프로젝트는 몇 년 전부터 중국이 공을 들이고 있었고, 조만간 그들이 수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프로젝트가 자신들의 손에 떨어졌다니.
그는 궁금함을 담아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가쿠타 과장의 질문을 받은 겨울 또한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카반구 보건장관과 맺은 사연을 설명해 주는 방법이 가장 심플한 해결책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정명훈 지점장도 알게 될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겨울은 다소 궁색한 변명거리를 하나 만들어 냈다.
“잘 모르지만, 비교 견적을 받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가쿠타 과장은 겨울의 설명에서 커다란 빈틈을 하나 발견했지만,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USB를 건네주십시오.”
* * *
회의실에 들어간 정명훈 지점장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겨울이 부투야 실장 등과 맺은 사연을 보고하기 위해서는 카낭가 출장에 동행한 은센기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고였다.
그래서 급히 전화를 걸어봤으나, 당연히 전화를 받아야 할 은센기의 핸드폰 전원이 꺼져 있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까 궁리하다가, 킨샤사 국립대학 병원 로비에서 만났던 조연석 대사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맞아! 조 대사님이 있었지!”
정명훈 지점장은 그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네, 정 부장님. 부투야 실장과는 대화를 잘 나눴습니까?]
“덕분에 이야기를 잘 마무리했습니다, 대사님.”
[하하,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그래서 좋은 성과가 있었습니까?]
“부투야 실장께 너무 과분한 선물들을 받아서 얼떨떨한 지경입니다.”
[무엇을 받았는지 알려 달라고 하면 실례가 되겠죠?]
각국에 주재하고 있는 대사관의 가장 큰 임무는 뭐니 뭐니 해도 재외 국민들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해당 나라에서 자국 기업들이 어떤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는지 파악해서 본국에 보고하는 일이었다.
지금 조연석 대사는 이런 의도로 질문을 던져 왔으리라.
정명훈 지점장은 그에게 얻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제일 좋아할 만한 선물 한 가지만 풀어놓았다.
“대사님, 내무부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할 예정인 SUV 자동차 5,500대는 저희 대한자동차가 수주했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조연석 대사의 깜짝 놀란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네. 저희가 도요타 자동차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겨 줬습니다.”
[하하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대사님.”
[제가 이 사실을 본국에 보고해도 될까요?]
“그럼요.”
[하하, 알겠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은 이제 곤란한 부탁을 꺼내야 할 때가 왔음을 직시하고 말문을 열었다.
“대사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사실은 제가 송훈석 회장님께 한겨울 씨가 부투야 실장 등과 인연을 맺은 사연을 보고해야 하는데,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은센기라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불행히도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저도 단편적인 내용밖에 몰라요. 부투야 실장한테 직접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저도 그러고 싶긴 합니다만, 번호를 모릅니다.”
[흐음, 그럼 제가 그분의 번호를 문자로 보내 줄게요.]
정명훈 지점장은 조연석 대사에게 문자를 받자마자, 부투야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그도 단편적인 내용밖에 모른다는 대답을 해 왔다.
그러면서 국경 없는 의사회의 코비 브라이언 박사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고맙습니다, 부투야 실장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건 그렇고, 코발트 광산의 도로 신설에 대한 허가는 다음주 안에 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빠른 조치에 감사드립니다.”
[뭘요. 빨리 브라이언 박사님과 통화해 보세요.]
“네, 실장님.”
정명훈 지점장은 브라이언 박사가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먼저 문자를 전송했다.
― 안녕하십니까, 브라이언 박사님. 저는 한겨울 씨의 직장 상사인 정명훈이라고 합니다. 박사님과 전화를 했으면 좋겠는데, 가능하신지요?
윙윙―
불과 1분이 지나지 않아서 브라이언 박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정명훈 지점장은 빠른 속도로 통화 버튼을 눌러서 그와의 통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코비 브라이언 박사님.”
[네, 안녕하세요, 정명훈 지점장님.]
“제가 박사님께 연락을 드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정명훈 지점장은 이진호 사장에게 지시받은 내용과 현재까지 파악된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면서 용건을 꺼내 놓았다.
“…해서 박사님께 도움을 받고자 부득불 연락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죠. 사건이 발생한 날은 지난주 목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그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정명훈 지점장은 겨울이 그곳에서 있었던 사건을 대폭 축소해서 얘기한 이유를 완벽하게 깨달았다.
반군 기지에서 의약품을 되찾아왔다는 사실이 모두를 걱정시키는 일이라고 여기고 숨긴 것이리라.
그는 겨울의 오지랖 넓은 행동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브라이언 박사의 설명에 집중했다.
[…이렇게 해서 위독한 VIP와 마을 주민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겁니다. 한겨울 씨의 용기와 희생정신이 아니었다면, 저희 국경 없는 의사회는 큰 위기에 봉착할 뻔했습니다.]
“제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사실은 VIP들이 킨샤사로 돌아가려는 것을 제가 못 가게 막았거든요.]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 * *
같은 시각.
겨울은 사무실에서 무케나 사장과 통화 중이었다.
“사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정말 고맙습니다.]
“코발트 광산 개발은 저희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거 알고 계시죠?”
[그야 물론입니다. 도로 신설 허가를 받는 순간, 제가 킨샤사로 넘어가겠습니다.]
겨울은 이미 결론이 난 마당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절차를 대폭 생략하는 것은 어떨까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광산 개발을 위해서는 어차피 저희 회사 실무진들이 현장을 방문해야 합니다. 그때 한꺼번에 모든 논의를 진행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아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공동 개발을 위해서는 자료 검토가 먼저일 것 같습니다.”
[한겨울 씨의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 주면 되겠죠?]
“네, 그렇습니다.”
잠시 후, 브라이언 박사와 전화통화를 끝낸 정명훈 지점장이 회의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았다.
겨울은 그 즉시 그에게 다가가서 무케나 사장과 통화한 사실을 보고했다.
“…해서 자료는 저한테 보내 주기로 했습니다.”
“잘했어. 코발트 광산과 관련한 자료도 보고서에 첨부하고.”
“네, 지점장님.”
정명훈 지점장은 겨울이 보내온 보고서와 첨부 파일을 열어서 내용을 꼼꼼히 확인한 뒤, 코멘트를 달아서 이진호 사장에게 전송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한참을 일을 하다가 한숨 돌린 그는 핸드폰을 들어서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8시.
지금까지 퇴근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지점장, 늦은 김에 오늘 간단하게 회식이나 할까?”
“네, 좋습니다!”
“그럼 지금 준비하고 나가자고.”
* * *
이진호 사장은 평소 출근 시간보다 일찍 회사로 나왔다.
새벽에 아프리카 법인에서 보내온 보고서와 첨부 파일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보고서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검토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으나, 첨부 파일 내용은 워낙 방대했기 때문에 제법 많은 시간이 잡아먹혔다.
“휴우, 이제야 끝났네.”
그는 다 식어 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자신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정명훈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정 지점장, 보내 준 보고서는 잘 읽어 봤어요. 정말 수고했어요.”
[저보다는 한겨울 씨가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의 목소리에 겨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 있었다.
“하하, 겨울 씨한테도 수고했다는 말을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콩고 지점을 떠나기 전까지 세 건에 대한 업무를 어느 정도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장님, 저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얼마 전에 SUV 자동차 건을 가지고 오면 큰 선물을 준다고 했던 거 기억납니까?”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선물이 무엇인지 예상하고 있겠지만, 정 지점장의 임원 승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진심으로 기뻐하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인사 발표가 날 때까지 모른척하고 있어야 합니다. 알고 있죠?”
[네, 물론입니다. 아프리카 법인에서는 저만 임원으로 승진한 겁니까?]
“추성민 팀장도 같이 승진했어요.”
[네, 알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회장님과 통화할 예정이니까, 대기하고 있어 주세요.”
[네, 사장님.]
정명훈 지점장과의 통화를 마친 이진호 사장은 콩고 지점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출력한 후, 회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흙수저 성공 신화